PART 4 영화 속 실내악의 심리학

영화가 말해주는 실내악 연주자들의 속마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피아니스트’
에리카가 유일하게 아름답게 그려진 트리오 연주 무대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에서 피아노 교수 에리카는 무표정의 억눌린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마흔의 교수인 딸의 사생활을 일일이 간섭하며, 옷 한 벌 자유롭게 사지 못 하게 하는 노모와 한 침대를 쓰며 살아간다. 빈 국립음대의 피아노 교수인 에리카는 하루 8시간씩 강의에 파묻혀 살면서 “베토벤이 잘못 쓴 악보가 네 그릇된 해석보다 훨씬 낫다”라며 독설을 퍼부어대는, 감정이 메마른 여자다. 에리카는 단순히 무미건조한 모습에 더해 혐오감을 자아낼 만한 행위들로 카메라를 끌고 간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를 배경으로 포르노 숍으로 걸어 들어가고, 에리카를 동경하는 젊은 제자 클레머에게는 마조히즘적 명령이 가득 적힌 편지를 건넨다. 클레머는 에리카의 폭력적인 언행에 몸서리를 치고, 그 뒤로 둘의 관계는 처절하게 뒤집고 뒤집히기를 반복한다.
문제는 에리카의 억눌린 욕망, 그리고 사도마조히즘적인 해소 방식으로 드러나는 뒤틀린 자아에 있는 것 같으나 영화는 그 어떤 것에도 가치판단하기를 거부한다. 일방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상호 교환이 가능한 사랑을 꿈꾸게 되는 그녀의 외모는 점점 아름다워지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꿈꾸는 듯했던 클레머는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피아니스트’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을 때 이 영화에서 음악은 주인공 대우를 받지 못했다. 대신 심리학적인 측면만이 크게 부각되었다. 하지만 욕망의 야누스적인 변신 속에서 클래식 음악은 묘하게 기능한다. 문명의 상징으로 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에리카에게 추함과 아름다움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번갈아가며 부여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에리카를 시종일관 그로테스크하게 그릴 뿐이지만, 그녀가 유일하게 예술가로서 그려지는 순간은 바로 그녀가 다른 사람과 함께 연주를 할 때다. 클레머는 살롱에서 피아노 듀오로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는 에리카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학생들을 윽박지르고, 질투에 눈이 멀어 제자의 코트에 깨진 유리 조각을 넣는 에리카가 유일하게 아름답게 묘사되는 순간이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하는 우아한 모습에 포르노 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 중첩되게 만든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다. 한 번도 사랑스럽게 그려지지 않는 그녀에게 우리는 동정의 시선을 던져야 한다는 메시지, 그것은 실내악 주자로서의 ‘피아니스트’ 에리카를 통해 던져진다. 김여항

‘스토커’
금지된 사랑, 그 아슬아슬한 감정이 담긴 듀엣

영화 ‘스토커’에서는 주인공 인디아와 그녀의 삼촌 찰리의 피아노 듀엣이 등장한다. 인디아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찰리에게 묘한 경계와 끌림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피아노를 연주하는 인디아의 곁으로 찰리가 다가와 앉는다. 그의 개입으로 인디아가 옆으로 밀려나자 그녀는 손을 뻗어 연주하는 척 찰리를 방해한다. 그러자 찰리는 인디아의 허리 뒤로 오른손을 휘감아 천연덕스럽게 연주를 이어간다. 그 결과 인디아는 찰리에게 안긴 모양으로 연탄곡을 연주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인디아의 다리가 스르르 풀리는 것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밀착된 남녀의 신체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성적 뉘앙스는 아슬아슬한 근친상간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피아노 듀엣 장면을 영화 전체의 핵심으로 꼽는다. 필립 글래스에게 듀엣 작품의 작곡을 의뢰할 때 그는 “이건 말이 피아노 듀엣 연주이지 사실은 섹스예요”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감독의 의도대로 이 장면은 찰리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인디아의 심경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나게끔 완성됐다.
이처럼 피아노 듀오는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두 연주자의 손과 밀고 당기는 선율이 시각적·청각적으로 중첩되어 성적 행위를 은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를 넘어서 어린 인디아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관문으로도 작용한다. 영화는 청각과 시각이 유난히 뛰어난 ‘사냥꾼’의 핏줄인 스토커 가문의 소녀가 자신의 본능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기록이다. 어렸을 때부터 성가신 동생을 땅에 파묻어버리며 윤리적 동요 없이 살인을 즐기는 찰리는 인디아의 숨겨진 본성을 자극한다. 이 둘의 피아노 듀엣 장면에서는 인디아의 거친 숨소리가 유난히 두드러지는데, 찰리의 숨소리는 편집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제거됐다. 두 연주자의 은밀한 공감대인 피아노 듀엣 연주가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인디아 한 사람의 내적 본성을 깨우는 촉매제로 작용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채은

‘페이지 터너’
피아니스트를 겨냥한 페이지 터너의 복수

“악보 넘기는 사람이 연주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말이다.
‘페이지 터너’. 음악회에서 연주자 곁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 흔히 실내악이나 피아노 반주가 필요한 무대에 등장하는 이들의 역할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다.
사실 악보를 넘겨주는 일은 보기보다 까다롭다. 실제 연주보다 조금 빨리 악보를 넘겨주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흐름에 딱 맞춰서 넘겨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페이지 터너에겐 연주자의 호흡을 파악하는 ‘눈치’가 필수다. 페이지 터너가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연주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일단 첫 페이지를 넘기는 데 약간의 문제가 생기면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연주자에겐 ‘불안’이 엄습한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동시에 연주자를 만족시키는 무대 위 보이지 않는 실력자가 바로 페이지 터너인 셈이다.
영화 ‘페이지 터너’는 연주자와 페이지 터너 사이의 미묘한 심리를 복수의 소재로 삼았다. 영화를 연출한 드니 데르쿠르는 파리정치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파리 음악원에서 비올라를 전공한 연주자 출신의 감독. 연주자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의 영화는 ‘복수’를 내세웠지만 정적이고 고요하다.
영화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멜라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유명 음악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는데, 심사위원이자 유명 피아니스트인 아리안(캐서린 프로트 분)의 산만함 때문에 실기 시험을 망친다. 이후 10년의 세월이 소리없이 흐르고, 멜라니는 아리안의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취직한다. 나중엔 그들 집으로 들어가 가정교사로 일하며 자연스럽게 아리안의 피아노 연습을 돕게 된다. 아리안은 멜라니를 알아보지 못할뿐더러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정신이 쇠약하고 예민해진 상태. 그런 그녀에게 차분한 멜라니는 만족스러운 페이지 터너가 되어준다. 아리안은 연주 때마다 페이지 터너인 멜라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이때부터 멜라니의 복수는 서서히 시작된다.
아리안과 친구들에게 중요한 연주를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멜라니. 결국 아리안은 다른 페이지 터너와 피아노에 앉는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D897의 도입부 연주가 시작되고, 긴장과 불안이 교차한 얼굴의 아리안은 첫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연달아 실수하며 연주를 완전히 망쳐버린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순조롭다고 여기는 순간, 멜라니가 한 방울 떨어뜨린 ‘불안’은 아리안의 연주뿐 아니라 그녀의 가정까지도 흔들어놓게 된다.
긴박감을 더하는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트리오 2번 Op.67과 멜라니의 치밀한 복수와 닮은 빼어난 균형미의 바흐 평균율까지, 영화 속 음악과 함께 뒤섞이며 차분하고 고요하게 다가오는 페이지 터너 멜라니의 복수는 그 어느 칼날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하며 치명적이다. 김선영

‘마지막 4중주’
오로지 4중주를 위해 참아왔던 욕망들의 폭발

“연주자가 이렇게 오래 쉼 없이 연주한다는 건 각 악기들의 음률이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야.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지!”
영화의 도입부에서 첼리스트 피터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에 관한 의견을 말한다. 이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현악 4중주단 ‘푸가’가 겪게 되는 이야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푸가 현악 4중주단은 25년간 단 한 번의 단원교체 없이 무려 3천 번의 연주를 쉼 없이 치러냈다. 그러다 팀의 기둥이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 병 초기 진단을 받고 은퇴 무대를 준비하게 되자, 네 명의 연주자들은 25년이란 시간이 무색할 만큼 갈등을 쏟아낸다. 갈등의 중심에는 제2바이올린 주자 로버트가 있다. 로버트는 새로운 첼리스트가 들어오면 자신이 제1바이올린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로버트가 제1바이올린에 욕심을 드러낸 이유는 그동안 거듭되었던 제1바이올린 주자 대니얼과의 갈등 때문이다. 대니얼과 로버트는 음악에 관한 생각이 극명히 달랐다. 로버트는 베토벤 연작을 악보 없이 암기해서 연주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지만, 대니얼은 “음악은 도박이 아니다”라는 말로 단칼에 거절한다. 로버트는 그동안 대니얼에게 자신이 모든 것을 억누르며 맞춰왔다고 느낀다. 마치 제1바이올린이 제시한 주제를 각 성부가 차례대로 모방하는 푸가 형식처럼 말이다.
영화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의 갈등을 극대화하여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도 음악적 개성이 다른 네 명의 연주자가 모여 오랜 시간 4중주단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솔리스트와 달리, 실내악단 연주자는 스스로의 개성을 다른 연주자들과 맞춰나가야 한다. 이 영화는 실내악 단원들 간에 숨겨왔던 갈등과 극도의 심리 싸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려낸다.

장혜선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