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풍부한 연주자들은 동료들 손을 잡고 신선한 음악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피아노 듀오부터 내레이터와 플루트로 구성된 듀오까지, ‘새로운 조합’ 탐사를 시작해본다
피아노 트리오, 현악 4중주, 목관 5중주…. 전통적인 실내악단의 편성과 레퍼토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음악가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조합을 탄생시키고 있다. 피아노 네 대만으로 앙상블을 만드는가 하면, 클라리넷 세 대로 전 세계를 누비기도 한다. 독특한 조합을 만들어냈거나 혹은 전통적인 편성이라도 예사롭지 않은 레퍼토리들을 발굴해내는 프런티어들을 찾아 인터넷을 유랑해보았다.
먼저 외로운 악기, 피아노로 탐험을 시작해보자. 협연 연주를 할 때나 다른 연주자들과 호흡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들을 위로해주는 건 피아노 트리오를 비롯한 실내악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들만의 조합은 어떠한가? 전통적으로 작곡가들은 네 손을 위한 작품들을 소소하게 남겼는데, 여기에 영감을 받은 연주자들은 클래식 음악의 다른 명곡들까지 거침없이 연주하기 시작했다. ‘크로스오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피아노 듀오 페란테 앤 타이허(Ferrante & Teicher)는 1960년대에 이미 색깔 있는 조명을 사용한 무대 위에서 팝 음악들을 편곡해 연주했다. 듀오로 전 세계를 유랑하는 라베크 자매가 전통적인 연주회에 주로 등장하는 편이라면, 요즘 젊은 연주자들은 스스로 곡을 편곡해 자신만의 개성을 선보이는 연주 방식에 주목한다.
아우프강(Aufgang)이라는 밴드를 운영하며 피아노에 컴퓨터를 연결해 클럽에서 디제이로도 활동 중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는 같은 음반사 소속의 앨리사 사라 오트와 본격적인 듀오 활동을 시작했다. 트리스타노의 작곡 능력, 두 남녀의 준수한 외모에 메이저 아티스트의 특권인 튼튼한 기획력까지 더해져 이들은 피아노 듀오 연주가 보일 수 있는 마법을 마음껏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6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예정).
그러나 듀오로도 아쉬운 피아니스트들은 점차 그 수를 늘려간다. 암스테르담 피아노 콰르텟은 피아노 네 대의 풍성한 화음을 펼쳐내며, 피아노 가이즈(The Piano Guys)와 파이브 브라운스(The 5 Browns)에 이르면 피아노가 다섯 대나 된다. 심지어 피아노가 7대 등장하는 세븐 피아노스(Seven Pianos)까지, 덧셈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제 피아노 외에 악기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순혈주의’ 앙상블들을 더 살펴보자. 우선 기타 콰르텟이 수적으로 우세하다.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이 현악 4중주에 끼지 못하는 설움을 자신들만의 팀을 만들어 해소하고 있는 것. 1980년에 창단한 로스앤젤레스 콰르텟을 비롯해 브라질리언 콰르텟·미니애나폴리스 콰르텟 등 여러 단체들이 자신들만의 레퍼토리를 왕성히 개발하고 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비발디 ‘사계’를 편곡해 음반을 발매한 보티첼리 기타 콰르텟과 4인조 기타 그룹 피에스타가 있다.
자비네 마이어가 이끄는 클라리넷 트리오인 트리오 디 클라로네(Trio di Clarone) 또한 흥미로운데, 이들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의 시작을 여는 멋진 클라리넷 선율을 무려 세 대의 클라리넷으로 멋지게 뽑아낸다. 첼리스트 양성원과 즐겨 연주를 하는 클라리넷 앙상블 레봉백은 네 대의 클라리넷으로 구성된다. 크로아티아의 젊은 두 청년 투 첼로스가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면, 줄리안 로이드 웨버와 그의 부인 지아신 로이드 웨버가 만든 첼로 듀오도 조용하지만 강한 팀이다. 제임스 골웨이와 그의 부인 레이디 진 골웨이도 플루트 듀오 팀을 꾸려 행복한 노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각양각색의 관악기 주자들도 현악기 주자들 못지않게 당당히 팀을 이루고 싶다면? 그 조합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내한 연주로 국내 팬들에게도 친근한 캐나디언 브라스는 튜바·호른·트롬본과 트럼펫 두 대로 이뤄진 퀸텟이며, 같은 조합으로 이뤄진 엠파이어 브라스도 1971년부터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트럼펫과 트롬본 세 대씩에 튜바까지 총 일곱 명으로 구성된 노질 브라스(Mnozil Brass)까지, 각종 브라스 밴드들이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기존 실내악단들도 조용히 주어진 것만 연주하기엔 뭔가 아쉬울 터. 왕성한 협업 활동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개발하는 실내악단들을 꼽아본다. 우선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비롯해 기돈 크레머와도 내한한 이력이 있는 이구데스만 앤 주(Igudesman & Joo). 이들은 전형적인 바이올린과 피아노 듀오이지만 기상천외한 코미디 쇼를 벌이는 독특한 인물들이므로 가히 ‘새로운 조합’이라 할 만하다. 비틀스의 ‘Come Together’를 비롯한 다양한 노래들을 편곡한 곡들을 수록하여 음반을 발매하는 한편, 카운터테너·재즈 가수를 구분하지 않고 세상의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공연을 펼치는 에벤 콰르텟도 주목할 만하다. 현악 4중주단 브루클린 라이더는 아예 밴조 연주자 벨라 플렉과 새 팀을 꾸려서 함께 활동 중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정말 독특한 편성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포르투갈의 유명한 기타 듀오 아사드 형제는 클라리넷 연주자 친구 파키토 데리베라를 끼워주기 위해 트리오를 창단했으며, 브루클린 라이더와 함께 다니는 밴조 연주자 벨라 플렉은 더블베이스와 타블라를 추가한 자신만의 트리오도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 타일과 에드거 메이어가 합쳐 만든 더블베이스와 만돌린 듀오나 바이올린 두 대와 더블베이스를 위한 타임 포 스리(Time For Three) 조합도 상당히 놀라움을 자아내는데, 한 발 더 나아가 내레이터와 플루트 연주자까지 주커만 앤 블룸(Zukerman & Bloom)이라는 이름의 듀오 팀을 만들었다고 한다. 트럼피터 호칸 하이덴베리에리와 퍼커션 연주자 콜린 커리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태생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는 현대음악 앙상블에 이르면 그 수는 이루 셈하지 못할 정도. 올해 내한한 뱅 온 어 캔 올스타를 비롯해 101개의 각양각색 조합이 컨템퍼러리 클래시컬 앙상블이란 카테고리로 위키피디아에 정리되어 있다.
국제적인 매니지먼트와 메이저 음반사들은 새로운 조합들에 투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New Music’ ‘Special Ensemble’이란 항목 아래 속속들이 영입된 앙상블들을 확인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한가? 대답은 어쩌면 ‘새로운 조합’ ‘새로운 레퍼토리’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