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 발견한 잃어버린 울림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천재현과 건축사 조인숙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음악 짓고 집 짓는 두 사람이 만나니 자연스레 질문이 오고간다.오늘날 전통음악이 거할 곳은 어디인가, 전통건축의 빈 공간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음악 짓고 집 짓는 두 사람이 만나니 자연스레 질문이 오고간다.오늘날 전통음악이 거할 곳은 어디인가, 전통건축의 빈 공간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지난 4월의 봄 밤, ‘예인, 한옥에 들다’ 공연이 첫선을 보이는 날이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숨듯이 자리 잡은 민씨 가옥의 안채. 툇마루에 맨발을 올려놓았다. 전통식 격자 문양을 이루듯 결구되어 있는 마루의 나무들은 그 위에 수직으로 선 자의 무게에 응답이라도 하듯 삐거덕 삐거덕거렸다. 몇 백 년을 머금은 시간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소리로 다가오고 발끝으로 밀려오는 그 오래된 시간 앞에서 조심스럽게 몸가짐을 추슬렀다.

연주 시작 몇 분 전, 민씨 가옥 안채에 앉은 손님들 사이로 ‘예인, 한옥에 들다’ 시리즈의 첫 예인 원장현이 대금과 거문고를 들고 등장했다. 뒷마당을 향해 난 풍경을 배경으로 명인이 앉으니 연주회의 풍경이 완성된다. 곧 산조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명인의 소리는 대금의 속살을 지나, 작은 공간을 정직하게 채웠다. 반주를 맡은 장구의 울림은 마루를 지나 손님의 귀가 아닌 엉덩이와 허리로 그 떨림을 전했다.

사람들은 전통음악이 근대화를 겪으며 잃어버린 것을 ‘음량’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악기의 구멍과 명인의 입에 마이크를 덧댔다. 하지만 어떤 명인은 마이크 앞에서만 명인이었지, 그것 없이는 명인이 될 수 없는 이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음량’은 얻었지만 실제로 물려받아야 할 전통음악 속의 정직한 ‘울림’과 ‘떨림’은 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간 음악을 한옥에 담고, 한옥을 음악으로 채우며 ‘예인, 한옥에 들다’와 ‘내일의 예인’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천재현과 건축사 조인숙을 만나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물어봤다.

 

두 분의 만남은 음악과 건축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서로 고민을 풀어주고, 새로움에 대한 눈뜸을 도모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각기 다른 장르의 만남에서 오는 고민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천재현 남산골 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이 올해 3월부터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옥이 갖는 ‘전근대적 가치’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또 국악이 현대화 또는 탈근대화를 겪는 가운데 놓친 ‘전통’의 느낌을 어떻게 전할까도 고민합니다. 한 마디로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버렸던 ‘전근대적 가치’에 대한 자연스러운 교감과 체득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예인, 한옥에 들다’를 준비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을 텐데요.

천재현 개인적으로 한옥에 관한 부분은 감각적인 경험밖에 없고, 실질적인 지식은 전무후무했어요. 제 부족한 경험과 감각이 어떻게 하면 보편적인 지식과 근거를 가질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예술에는 필요에 따라 어떤 이론적 권위가 필요할 때가 있죠. 자유분방함 이면에 흐르는 질서라고 할까요? 이와 관련된 전반적인 부분을 남산골 한옥마을 고문을 맡으신 조인숙 선생께 문의했습니다.

조인숙 이 땅에 서양식 공연장문화가 내려온 역사는 짧아요. 우리 음악은 지금과 같은 공연장 공간에 갇힌 적이 없었지요. 서양의 공연 문화가 접목되는 과정에서 잠깐 갇힌 것뿐이라 생각합니다. 한옥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기존 공연장과 연주 문화에 대한 비판이 아니에요. 근대화와 현대화를 거친 전통음악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본 다음 그동안 잃어버렸던 ‘원초적인 것’을 다시 찾아가는 노력의 하나라고 봐요. 잠시 외유했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죠. 국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회귀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 같은데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두 분의 이야기 중 “전근대적인 것”(천재현) “원초적인 것”(조인숙)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내부자들끼리 통용되는 미덕의 말이지만, 이 말을 풀어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좋을까요.

천재현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 부분을 앞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제 몫이라고 봅니다.

조인숙 그건 특정 분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문화 전반의 흐름인 것 같아요. 한옥의 인기는 이 땅에 서구식 건축물을 지어볼 만큼 다 짓고 나서 일어난 현상이거든요. 문화 경쟁에서 상대방이 절대 못 따라오는 것이 있어요. 바로 과거에 남아있는 ‘흔적’들입니다. 절대로 새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죠. 이제는 자국의 문화를 높이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내 문화’에 대한 기저를 높이는 시기라고 봐요.

한옥에서 음악을 들을 때 소리가 굉장히 생소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극장에서 마이크를 통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소리에 더 익숙하지 않습니까.

천재현 예상했습니다. 마이크를 사용해 리버브(잔향)를 넣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연주자도 많습니다. 마이크의 사용은 ‘조미료’ 같은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해주신 순수한 맛과 같은 음악을 아는 일은 연주자조차 쉬운 경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옥에서 연주할 때는 연주자의 감성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천재현 2000년부터 정가악회를 이끌고 있으며, 2014년에 통합된 남산골 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아리랑, 삶의 노래’ 시리즈를 연출했고 최근작으로는 서울남산국악당 상설공연 ‘평롱(平弄): 그 평안한 떨림’이 있다.

매 공연마다 천재현 감독님이 관객들에게 “몸이 괜찮으신 분들은 방석을 빼고 감상하시면 공간의 울림을 더 느끼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본인이 한옥에서 느낀 인상과 체험을 음악만큼 챙겨가며 관객들과 공감하기를 원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천재현 10여 년 전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에서 희한한 체험을 했어요. 거문고를 연주했는데 예상외로 멀리 있는 대문까지 또렷이 들리더라고요. 그 울림에 대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안 됐고, ‘내가 저런 공간을 갖게 되면 음악회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었죠. ‘예인, 한옥에 들다’는 처음에는 마루 위에 평상을 놓고 그 위에 연주자들을 앉히려 했어요. 만대루의 경험이 떠올랐던 거죠. 만대루는 누각이기에 아래가 휑해서 그 사이로 공명이 생기죠. 그래서 여기도 평상을 설치하면 그 공명이 재현되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직접 연주를 해봤는데 마루에서의 연주와 평상 위에서의 연주 느낌이 너무 다른 거예요. 마루 위에서 연주할 때는 악기가 마루와 공간 전체를 울렸죠. 사실 평상을 놓으면 연주자의 모습이 잘 보이고 창밖의 배경과도 잘 어울렸지만 이 음악회의 목적이 ‘잃어버린 울림’을 찾는 것에 있으니 그 효과에 집중하고자 했어요. 보기와 달리 한옥에서 하는 연주는 물리적인 문제들이 많이 걸려 있어요. 안에서의 진동과 울림은 물론이고 밖에서 부는 바람, 기후,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도로 소리까지….

조인숙 창경궁은 남산골 한옥마을보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도 차 소리가 못 넘어와요.

천재현 왜 그런가요?

조인숙 마당이 여러 개니까 도로 소리가 넘어오면서 그 안에 하나 둘 걸려드는 거죠. 제 생각에 우리 음악은 밑으로 깔리는 특성이 있어요. 악기를 바닥에 놓고 연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봐요. 서양의 고딕식 성당을 보면 서서 합창을 하고, 소리가 높은 곳으로 날아가 울리죠.

천재현 한옥에서 연주를 하면 관객 몇 명이 앉아있느냐에 따라서도 음악이 달라져요. 이런 변화의 요소를 최소화하고 일률화한 게 서양식 극장이죠. 하지만 우리 음악은 그런 환경을 원한 게 아니에요. ‘산조의 자유로움’ ‘연주자들의 호흡에 의존한다’는 말처럼 자연스러운 맥락에서 나온 것일 겁니다. 저는 그래서 전통음악의 이러한 유연한 성격을 잘 받아들이는 공간 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인숙 맞아요. 서양식 극장은 설계할 때 객석거리, 시(示)거리, 근거리를 따지고 잔향 시간을 일일이 측정하고 음향에 있어서도 고루 같게 만들죠. 그들에게는 일찍부터 이런 기준으로 음악당을 만드는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울림이 좋은 한옥을 찾아다니는 것이 새로운 공연장을 짓는 것보다 현명한 방법일 수 있겠네요.

조인숙 그럴 수도 있죠.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회도 좋지만, 각지의 중요한 한옥을 순회하면서 마스터클래스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전국에 음악회 용도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구조와 조건을 안고 있는 한옥이 많은 편인가요.

조인숙 과거에는 공연장을 짓지 않고 가옥 내에서 했으니 이런 조건이 어느 전통 가옥마다 다 갖춰져 있다고 봐야죠. 오히려 쓸 만한 가옥은 서울보다 지방에 더 많아요.

서양의 콘서트홀은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느 기간 동안 건조되느냐에 따라 음향이 달라지는데, 한옥에도 그런 생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인숙 그렇다고 봐야죠. 현재 귀중하게 보존되는 한옥들 중에는 그런 성격과 수준을 지니고 있는 한옥들이 있습니다.


▲ 조인숙 한국과 독일에서 건축공학과 미술사학, 문화재학을 수학했다. 베이징 국제레저센터 Willows, 경기도 광덕사, 일붕선교종의 천간사 등을 설계했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의 대표이자 남산골 한옥마을의 고문이다.

천재현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같은 명기의 개념이 있고, ‘어느 홀에 가면 소리가 어떻게 들린다’는 개념이 정착한 반면, 우리 음악에는 악기도 공연장도 그런 개념이 없어요. 누군가 부지런히 연구해야 할 부분이죠. 근대화 이후 백여 년 넘게 그런 고민을 못 해왔다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살펴보니 한옥은 사용 면에서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으로 명확히 나뉘더군요. 한옥의 공간마다 어떤 성별 같은 것이 있나요.

조인숙 현존하는 한옥의 대부분은 조선의 시대적 이념을 표방하고 있어요. 당시 사회 기조가 성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성리학의 근본은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맞이한다는 뜻) 그리고 남녀유별이죠. 차별이 아닌 구분 말예요. 가옥을 남성 중심 공간(사랑채)과 여성 중심 공간(안채)으로 나눴고, 편의에 따라 두 공간을 연결하기도 했어요. 창덕궁도 왕이 집무를 보는 희정당과 왕비가 있던 대조전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결되어 있기도 해요.

천재현 그런데 남성 공간은 여성 공간에 비해 왜 이렇게 조그마한가요?

조인숙 우리가 운영하는 남산골 한옥마을의 이승업 가옥(서울특별시민속자료 제20호)도 그렇죠? 하지만 사랑채가 큰 경우도 많아요. 좋은 예가 19세기 초에 지은 창덕궁 연경당인데, 사랑채는 크고 안채는 작죠. 안채는 살림을 하는 공간으로, 안채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살림살이가 크다는 거예요. 사랑채는 대부분 접대용으로 사용했죠.

앞선 질문에 이어 우리 음악에도 성별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천재현 음악은 여성 연주자가 연주하면 여성의 음악이 되고, 남성 연주자가 연주하면 남성의 음악이 되면서 사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해야 한다고 봐요. 남성 주자가 만든 산조라고 해서 여성 연주자들이 굳이 남성처럼 연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자신을 내세우는 것보다 그런 개념적인 권위에 따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음악이나 건축 모두 사람을 닮아가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조는 그것을 지은 사람의 이름이 곡 제목 앞에 붙죠. 예를 들어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와 같이.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을 알면 음악을 아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옥도 ‘옥인동 윤씨 가옥’ ‘윤택영 재실’과 같이 건물 앞에 사람의 이름이 붙더라고요. 사람을 통해 산조를 이해하는 방식처럼 한옥도 그와 같이 볼 수 있을까요.

조인숙 거의 그렇다고 보는 게 맞아요. 살았던 사람의 기호와 신분을 반영해 짓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 남은 전통 가옥들은 지은 사람과 후손이 살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한옥뿐만 아니라 그런 의미도 박제화된 상태입니다. 좋은 예로 옥산서원에 있는 독락당(獨樂堂)은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퇴임 이후 살았던 곳인데, 건축적인 가치는 물론 주인이 지닌 역사적 가치 또한 많기에 보존했지만 더 이상 삶의 공간으로 쓰이지는 않죠. 참고로 ‘민씨 가옥’과 같은 명칭은 문화재에 관해 국가에서 정한 규칙을 따른 것입니다. 보존을 위해 원래의 터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된 경우가 많아 가옥 명칭 앞에 동(洞)과 성을 붙여서 원래 어디에 있던 누구의 집이라고 표기하는 거죠.

음악을 즐기려면 퇴근 후 오디오를 틀면 되지만, 한옥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 안에 한옥을 들여놓을 수도 없고···.

조인숙 살아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한옥을 삶의 공간으로 연결하여 그 안에 살 때 가장 즐길 수 있죠.

천재현 한편으로 쉽게 살아볼 수 없는 곳이 한옥이기도 해요. 이 공간 안에서 음악도 들어보고 다양한 일들을 체험하는 것이 한옥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어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에는 종묘에서 제례를 지낼 때 태평소를 불면 그 소리가 노량진까지 들려서 제례가 끝나는 것을 알았다고 해요.

조인숙 소리가 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바람도 타고 멀리멀리.

천재현 놀랍죠. 이런 경험이 지금은 쉽지 않지만 이런 작은 공간에서 음악도 듣고, 빗소리도 들으면 공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삶의 관계가 좀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더 좋은 경험을 만들어서 안겨주는 것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이 그려갈 남산골 한옥마을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천재현 그동안 전통음악만이 지닐 수 있는 ‘전근대적 가치’를 추구하고, 시도하고 싶었으나 대중성과 대중화라는 이유로 포기했던 적이 많습니다. 포기하고 접었던 것들을 충분히 비판해보고, 한편으로는 경험적으로 체득한 것을 이런 공간과 음악으로 증명하는 노력을 계속하려 합니다. 많은 비판과 칭찬이 필요한 때입니다.

조인숙 저는 그런 천 감독을 뒤에서 받쳐주는 것!

남산골 한옥마을은 지난 4월 여섯 명의 예인을 초청해 민씨 가옥 안채에서 음악회를 선보였고, 5월 14일부터 6월 20일까지 ‘내일의 예인’이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고등학생 여섯 명과 일반부 열두 명이 참여하는 ‘내일의 예인’은 명고수의 반주 심사를 통과하고 멘토링을 받은 젊은 예인들이 산조를 중심으로 준비한 무대를 한옥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매주 수·목·금 오후 8시에 1인 단독 무대로 오르며, 장현아·김하연·이서영(이하 가야금), 서정희·김세린·이하영(이하 거문고), 정다연·홍성하(이하 해금), 한규아·박경진(이하 아쟁), 임혜정·박수빈(이하 대금)의 무대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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