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건네는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

발행인의 글·네 번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27일 12:00 오전

“6월이다! 초여름 싱그럽구나. 아카시아 꽃 그루는 우리 차지다. 초록바람 살랑 시원하구나. 향긋한 꽃향기 마시며 놀자”

어느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들으니 그제서야 시절이 제대로 가늠이 되었습니다. 아, 그래. 이제 6월이구나. 가장 빛나고, 싱싱하고, 푸르고, 향기로운 시절, 초여름이구나.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어둡고, 우울하고, 심란하고, 서럽기 그지없습니다. 더 슬픈 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노란 리본 하나 가슴에 새긴 채 속으로 슬픔을 억누르는 일밖에는요.

우리 ‘객석’ 가족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누군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여 ‘객석’이라는 이름으로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자 몇 달 전부터 기획한 특집을 일단 보류하고 ‘죽음을 기억하는 예술’이라는 테마로 바꾸었습니다. 상처를 보듬고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죽음을 애도하는 예술 이야기로나마 작은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지요. 오랜 세월에 걸쳐 각 분야 예술가들이 어떻게 죽음을 기억하고 표현하며 , 남겨진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치유하려 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특집 기사를 구성했습니다.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장고의 글을 보내주신 여러 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그분들이 보내온 글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죽음에 건네는 위로’라는 짧은 문장으로 압축하기에는 너무나 깊고 정성 어린 영혼의 울림들이 다양한 예술 장르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첨단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지만 여전히 클래식이 사랑받는 건 이처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치유의 화두, 힐링의 전언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특집기사 속에 세월호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글들을 읽으며 눈물을 삼키곤 하였습니다. 연극 전문 필자인 조만수님의 말대로 ‘막을 수 있고 피할 수 있었으나 인간의 이기심과 졸렬함으로 방치된 코미디 같은 죽음’ 앞에서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랜 전통의 예술전문지 속에 애도의 마음을 담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객석’의 특집기사를 읽으며 그 큰 슬픔을 함께 나눌 독자들이 있으니 더 감사한 일이지요.

아직도 시청 앞 서울광장은 초록을 덮어버린 노란 리본의 물결이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는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이겠지만 젊고 안타까운 죽음들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기만 합니다. 더불어 한 사람의 아버지, 대한민국의 어른, 그리고 나아가 ‘객석’의 가족으로서 이 안타까운 현실을 꼭 기억하고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는 데 제 마음을 보태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발행인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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