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전형적인 아메리칸 뮤지컬, 레너드 번스타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뉴욕 하면 흔히 생각나는 건 마천루라 불리는 거대한 고층빌딩의 숲이지만, 사실 빈티지 뉴욕의 상징은 로프트(loft)라는 이름의 건물이기도 하다. 로프트는 층고가 높은 공장형 건물을 주택으로 개조한 것으로, 벽돌로 지어진 단단한 짜임새와 외측 벽면에 달린 철제 비상계단 등이 특징이다. 1961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도 뉴욕식 로프트가 등장한다. 여기서 웨스트 사이드란 맨해튼의 서북쪽, 즉 어퍼 웨스트 사이드를 일컫는 것으로, 영화 속에 묘사된 산 후안 힐의 서민 주택가가 실제로 이곳 62~63번가 일대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는 더 이상 로프트가 서 있지 않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재개발 정책으로 주변 건물이 전부 헐리고 거대 복합문화시설인 링컨 센터가 대신 들어선 것이다.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연극 공연장과 줄리어드 스쿨 등이 빼곡히 모인 링컨 센터의 등장은 지역의 문화 지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길거리 스낵 카에서 풍겨오는 진득하고 끈적이는 햄버거와 핫도그 냄새 대신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오페라와 클래식 콘서트를 찾는 세련된 뉴요커들을 맞이하고 있다. 분명 과거보다 깨끗하고 쾌적해졌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느껴졌던, 그 어떤 사람 냄새가 없어진 건 조금 아쉽다.
‘미국 음악의 구세주’로 불리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삼았다. 중세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원수 사이인 집안의 남녀가 겪는 비련의 사랑을 20세기 뉴욕으로 옮겨와 백인 갱단 샤크파의 토니와 푸에르토리코계 갱단 제트파 두목의 여동생 마리아 사이의 금지된 사랑으로 재창조되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뮤지컬이지만, 창작 당시만 해도 대단히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장르와 경계를 넘나든 3각 협업으로 탄생했다.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번스타인이 음악을 맡고, 브로드웨이의 자존심 스티븐 손드하임이 실감 나는 대본을 썼으며, 여기에 패기 넘치는 연출가 해럴드 프린스가 가담해 기념비적인 명작을 엮어냈다.
번스타인은 뮤지컬보다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 더 유명했고, 노래보다 춤을 강조한 연출도 당시엔 새로웠다. 무엇보다 이민사회의 갈등을 직설적으로 풀어낸 사회고발 드라마에 비극적인 결말이라는 것이 당시 브로드웨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타일이었다. 이로 인해 초연 당시에는 찬반이 엇갈렸지만 지금은 브로드웨이 역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이후 번스타인은 호세 카레라스·키리 테 카나와 등 당대 최고의 오페라 가수를 총동원하고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은 클래시컬 버전도 내놓았는데, 이 또한 지극히 아름다워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야말로 ‘아메리칸 클래식’의 대명사임을 느끼게 해준다.
비록 지금의 웨스트 사이드가 너무 상업적으로 매끈하게 변했다 해도 실망하지 말자. 그때는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보길 바란다. 첼시·미트패킹 디스트릭트·소호 일대에는 아직도 ‘올드 뉴욕’의 빈티지한 감동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보헤미안적인 흐느적거림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이곳 거리에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호방하고 유려한 음악을 즐겨보자.
music 신대륙의 광활함을 담아낸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남긴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체코 출신의 드보르자크는 대서양을 건너와 이곳 뉴욕의 음악원장을 지냈는데, 당시 느끼고 체험했던 신대륙 미국의 광활한 자연과 진취적인 기상에 조국 체코에 대한 짙은 향수를 더해 이 곡을 완성했다. 특히 이국적인 노스탤지어로 가득 찬 2악장의 고독과 열정적인 낭만이 넘쳐 흐르는 4악장이 유명하다. 초연은 카네기홀에서 이뤄졌으며, 뉴욕 필은 지금도 이 교향곡에서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찾고 있다. 한편 드보르자크가 뉴욕 시절 살았던 집은 로워 맨해튼 17번가에 있었다. 20세기 말 뉴욕시가 이 일대 건물을 허물고 재개발을 시도하자 하벨 대통령을 비롯한 체코 정부가 나서서 보존을 주장했다. 그러나 뉴욕시가 비싼 땅값 등을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지금은 대형 종합병원이 들어서 있다.
music 뉴욕 비즈니스맨의 감성, 아이브스 ‘어둠 속의 센트럴 파크’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미국 현대음악가들의 자취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현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아이브스는 당대에 성공한 금융가로 더 유명했다. 그는 맨해튼의 대형 보험회사 부사장까지 지낸 전설적인 비즈니스맨이었지만 퇴근 후엔 시간을 쪼개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남겼다. 특히 ‘어둠 속의 센트럴파크’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으스스한 분위기에 독특한 음악적 표정이 인상적이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로 널리 알려진 새뮤얼 바버는 1966년 메트로폴리탄 재개관 기념작으로 오페라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발표했다. 작품의 성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메트는 여전히 이 작품을 그들의 위대한 역사로 되새기고 있다.
dance 반짝이는 아름다움, 조지 발란신 ‘보석’
미국에 입성한 조지 발란신에게 뉴욕의 ‘빛을 받아 번쩍이는 수많은 빌딩들’은 러시아에선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영감의 요소였다. 뉴욕 한복판에서 마주친 반 클리프 앤 아펠 보석상을 보며 얻은 감흥을 ‘보석(Jewels)’에 담아냈다. 여기에 미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빛나는 순간과 서구의 문화가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보석’은 그가 홀린 듯 바라봤던 루비·에메랄드·다이아몬드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발란신 스타일의 동작들은 거칠고 과장되며 격식에 연연하지 않는 미국식 유머를 보여준다. 줄거리 없이 오직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완성된 ‘보석’은 자유분방한 미국 문화와 반짝이는 이미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novel 기회의 땅에 드리워진 고단함,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황금의 도시 뉴욕과 롱아일랜드의 대저택이 상징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누린 경제적인 호황 속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룬 미국 상류층의 모습이 소설의 배경인 뉴욕과 롱아일랜드의 모습과 삶을 통해 그려진다. 그러나 곧 몰락하는 과정이 주인공 제이 개츠비의 고단한 삶의 궤적과 일치한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고급 승용차, 주말마다 벌어지는 사치스런 파티,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 등의 모습은 어쩌면 기회의 땅인 미국과 황금의 도시인 뉴욕의 숨겨진 내면의 얼굴을 가리려는 화장기 짙은 겉모습이라 해도 좋은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사람을 미쳐가게 만든다. 탐욕과 이기주의, 공허감이 가득한 현대판 바빌론의 결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뉴욕을 거닐어볼 필요가 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뉴욕은 황금빛이다.
play 전형적인 뉴요커가 바라본 풍경, 토니 쿠슈너의 ‘미국의 천사들’
원조 명품 ‘미드’(미국 드라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니 쿠슈너의 ‘미국의 천사들’은 1992년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먼저 소개됐고, 이듬해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에이즈 위기를 몸소 체험한 동성애자들이 주인공인데, 이들의 눈앞에 미국을 상징하는 천사들이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부유층, 백인, 남성 또한 일거에 소수자적인 위치로 내몰릴 수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모토로 내건 미국 사회가 사실상 얼마나 배타적이고 편견으로 가득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집필한 토니 쿠슈너는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대 예술학부에서 연극을 배운, 전형적인 뉴욕의 젊은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뉴욕의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맨해튼의 화려한 레스토랑, 브루클린의 허름한 건물, 우범지대로 유명한 사우스 브롱크스, 그리고 택시 안 까지. 실제로 이 작품이 TV 시리즈물로 만들어질 당시 경쟁작이던 ‘섹스 앤 더 시티’ 만큼이나 뉴욕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music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play 정진세(작가·연극평론가)
novel 한송희(북칼럼니스트)
dance 김태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