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거대한 시칠리아 목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아름다운 시칠리아 섬의 풍광과 그 속에서 소용돌이처럼 피어나는 인간 군상들의 비극.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이야기다. 군 제대 후, 마을로 돌아온 술집 아들 투리두는 건들거리는 백수지만 품성만은 착한 청년이다. 그에게는 산투차라는 약혼녀가 있지만 입대 전 사귀었던 여자친구 롤라를 잊지 못해 아직도 남몰래 잠자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롤라는 이미 알피오라는 마부와 결혼한 상태여서, 작은 시골마을에 그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다.
이 오페라는 흔히 베리스모 오페라(사실주의 오페라)의 효시로 불리며,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함께 짝을 이뤄 자주 공연된다. 그러나 ‘팔리아치’가 고단한 민초들의 각박한 삶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다소 건조하고 격정적인 작품이라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남녀의 애욕에 얽힌 치정보다는 시칠리아 섬의 짙푸른 풍광과 가슴 시린 서정이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다.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레오파드’ ‘시네마 천국’ ‘마레나’ 등은 제각기 등장인물이 다르고 줄거리도 각각이지만, 결국 우리의 기억에 남는 건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동반한 시칠리아의 아름다움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
오페라는 진한 시칠리아의 방언을 사용한 테너의 뜨거운 로망스 ‘시칠리아나’로 시작된다. 이어 핏빛처럼 검붉은 시칠리아의 오렌지, 아란차 로사에 빗대 남국의 봄을 찬양하는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합창이 황홀하게 이어지며, 곧이어 유명한 인테르메조가 터져 나온다. 인물들의 갈등이 극대화되어 폭발되기 바로 직전에 등장하는 이 음악은 정말로 가슴이 시릴 만큼 아름답다. 시칠리아의 풍광이 지닌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그려낸 음악이 어디 또 있을까. 오페라를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선율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대중적으로 유명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성난 황소’ 첫 장면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섀도복싱을 할 때 흐르는 바로 그 음악이며, ‘대부3’에도 등장한다. 대부 마이클 코리오네는 시칠리아 마시모 극장 앞 계단에서 암살자들의 총에 딸을 잃는다. 소피아 코폴라가 열연했던 매리가 흉탄에 쓰러지고, 대부는 딸과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이때 흐느끼듯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로 이 간주곡이다.
이탈리아인들에게 가장 이탈리아적인 정서를 잘 드러낸 오페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들 중 상당수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이야기하리라. 마스카니는 짧은 단막 오페라 속에서도 가슴으로부터 전해지는 뭉클한 선율을 만들어냈으며, 사실 이들 모두는 가사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시칠리아의 태양과 하늘, 그리고 대지를 노래하고 있다. 결국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오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칠리아 목가(牧歌)’가 되는 것이다.
music 이탈리아 전역에 남긴 바그너의 흔적, ‘니벨룽의 반지’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 위주로 흘러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이탈리아를 사랑한 작곡가였다. 이탈리아 전역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의 첫 화음을 구상한 것이 서부 리구리아 앞바다의 도시 라 스페치아였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영롱한 2막은 베네치아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구상하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신비로운 영성마저 느껴지는 대작 ‘파르지팔’은 의외로 남부 이탈리아 일대에서 작곡되었다. 특히 2막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과 아름다운 여인들이 기사 파르지팔의 감각을 황홀하게 감싸는 마법의 정원 장면은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아말피 해안의 소도시 라벨로에서 쓰였다. 그는 평생 동안 철저히 게르만적인 예술작품을 썼지만, 마음은 항상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을 고대하고 갈망했다.
music 지중해적 정서가 가득한, 레스피기 ‘고풍적 춤곡과 아리아’
볼로냐 태생의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는 이탈리아 고전기 문화예술에 대한 한없는 오마주를 음악으로 표현해냈다. ‘고풍적 춤곡과 아리아’라는 관현악 모음곡은 이탈리아 예술의 위대한 전성기인 르네상스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회고와 추억으로 가득하다. 보통 현악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이 음악은 실로 지중해적인 정서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이탈리아 특유의 건조한 대지와 짭조름한 공기 위로 살며시 불어와 우리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미풍처럼 나긋나긋한 아름다움을 뜻한다. 레스피기는 비례와 균형이 주는 질서 속에서도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던 고전기 이탈리아 예술의 위대함을 음악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주인공이라 할 것이다.
dance 영감의 도시에서 벌어진, 존 노이마이어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각색한 존 노이마이어의 작품에서 주인공 아셴바흐의 직업은 창작의 동기가 고갈되어 고뇌하는 안무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부진한 작업을 뒤로하고 어딘가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던 찰나 두 명의 곤돌라 뱃사공이 등장하는데, 이들에 이끌려 이동한 곳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베네치아는 실제로도 바그너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었고 작품 활동에 몰두했던 도시라는 점이다. 작품에 대해 “토마스 만의 소설을 자유롭게 다룬 죽음의 춤”이라고 밝힌 노이마이어는 무채색의 무대를 배치해 베네치아가 주는 암울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novel 사랑의 충만한 감정을 담아, 포스터 ‘전망 좋은 방’
시뇨리아 광장의 살인 사건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에머슨 부자와 묘한 인연으로 엮인 고지식한 영국 처녀 루시에게 피렌체는 어쩌면 억눌린 자신의 내면이 폭발하는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소설 ‘전망 좋은 방’은 예의범절 속에 갇혀 자신의 삶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여인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변화를 이끈 도시가 바로 피렌체다. 영국인들에게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는 자유로움이 충만한 도시였을 수도 있다. 루시가 처음으로 느끼는 위험한 사랑의 충만한 감정을 담아 조지와 키스했던 장소가 어디일지 찾아보는 것도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소설 ‘전망 좋은 방’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다. E. M 포스터는 인습에 갇혀 있는 우리가 피렌체의 ‘전망 좋은 방’을 택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길 원한다. 미소 짓게 만드는 밝고 경쾌한 소설의 결말은 어서 빨리 피렌체로 여행가고 싶게 우리의 마음을 부추긴다. 소설 ‘전망 좋은 방’에서 피렌체는 푸른빛이다.
play 지중해의 치열한 현실을 그려낸,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의 연극 무대는 연출가로 하여금 고민에 빠지게 한다. 극중 배경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럽 각국의 장소들이 소환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단 두 곳만이 언급된다. 무역항을 끼고 있는 베네치아와 상상의 도시 벨몬트. 이 작품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베니스에서 온 ‘남자’들이라면, 문제를 해결하며 여유롭게 화합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벨몬트에서 온 ‘여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베네치아는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기억되지만,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집필했던 1596년 당시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치열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정치적·경제적 공간이었다. 물론 지금의 연극 무대에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나 곤돌라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 등을 베네치아의 이미지에서 따오기도 한다.
‘베니스의 상인’은 어떤 관점에 보느냐에 따라 ‘법 질서와 현실 정의’를 다루는 극이 되기도 하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셰익스피어가 설정한 도시인들의 냉혹함은 실상 과거 베네치아의 이미지에서 비롯되었건만, 이를 어쩌랴. 심신이 지친 현대인들은 이 작품을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야경이 연상되는,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만 보고 싶어 하는 것을.
music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play 정진세(작가·연극평론가)
novel 한송희(북칼럼니스트)
dance 김태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