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페니체 극장의 베르디 ‘오텔로’ 두칼레 궁전 공연 실황

베네치아로 돌아온 오텔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프란체스코 미첼리(연출)/그레고리 쿤데(오텔로)/카르멜라 레미조 (데스데모나)/루치오 갈로(이아고)/엘리자베타 마르토라나 (에밀리아)/정명훈(지휘)/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
| C major 716508 (PCM Stereo, DTS 5.1, 16:9, 149분) ★★★★☆


카메라는 먼저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산 마르코 광장을 비춘다. 그리고 이어지는 곤돌라에, 베네치아의 상징인 사자상은 필수다. 돌연 시계는 대여섯 바퀴를 돌고 으스름한 저녁, 두칼레 궁전의 안뜰로 들어간다. 궁전 2층에서 바라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익숙한 앵글이다. 순간 후기 고딕 양식과 절정기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한 기막힌 파사주에 휘갈겨 쓴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Io Odio Il Moro!(나는 무어인을 증오한다!)”

섬뜩하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이아고가 내뱉은 유명한 대사가 공연 시작 전 오케스트라의 어지러운 튜닝 소리와 함께 벌써부터 비극을 암시하며 식은땀을 흘리게 한다. 오프닝과 함께 검은 글자들은 산산조각이 나서 피처럼 사방으로 튄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조명의 마술이다.

궁전 마당 왼쪽 분수대 뒤로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가 종(縱)으로 위치하고, 나머지 오른쪽을 무대로 만든 기이한 구조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러나 기막힌 음향 포착으로 악기 간 밸런스는 콘서트홀과 같이 명징하고 자연스럽다.

정명훈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두칼레 궁전에서 열린 야외 오페라 ‘오텔로’의 지휘봉을 거머쥔 것만으로도 무한한 자랑거리다. 으르렁거리는 저현악기는 역동성을 시종일관 극대화하고, 특히 3막에서 베네치아의 특사가 도착한 뒤 “산 마르코의 사자 만세!”를 외치는 장면에서 금관은 압도적인 사운드로 포효한다.

여기에 일찍이 베로나 아레나 페스티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찬사를 받았던 연출가 프란체스코 미첼리의 천재적인 영감이 더해져 궁전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며 무대로 기능한다. 분수대를 기점으로 오른쪽으로 트레슬교 모양의 허접한 나무 통로가 죽 이어지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거대한 평상이 나오는데, 이게 전부다. 하지만 미첼리는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쏘아대는 프로젝션과 조명의 힘으로 4막이 끝날 때까지 잠시도 청중이 한눈팔지 못하게 한다. 분노와 격정은 빨강, 질투는 초록, 밤은 푸른색으로 투사하며 색의 향연을 펼친다.

1막에서 유명한 ‘자이언트 계단’을 올라 위층에서 오텔로가 등장하고 시민들이 “만세”를 외치면 왼쪽 벽에 드디어 사자 형상이 맺힌다. 탄성이 나온다. 자이언트 계단은 전편에 걸쳐 출연진의 드라마틱한 등퇴장을 책임진다. 나무다리 위에서 오텔로와 데스데모나가 부르는 ‘밤의 정적 속으로’는 쿤데와 레미조의 절창으로 객석을 감동으로 몰아간다. “자신의 형상대로 나를 창조한 잔인한 신을 숭배한다”는 이아고의 고백에서 실제로 검은 악마들은 소름 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2막 마지막에서 “피! 피! 피!”를 절규할 때 거대한 마리아상이 악마들에 의해 쓰러진다. 그리고 복수의 신을 찾을 때 무대는 붉은빛으로 타오르며 카타르시스는 극에 달한다. 3막, ‘수치의 독백’에서 악마들은 오텔로의 몸을 난도질하며 칼을 꽂는다. ‘아베 마리아’에서 붉은 묵주를 든 맨발의 레미조는 극히 사실적이다. 피날레, 죽은 데스데모나가 살아 일어나 오텔로가 자신을 두 번 부를 때 단도를 쥐어주는 대목은 전적으로 미첼리의 상상력이다. 결국 둘은 죽지 않고 퇴장한다.

‘무어인을 베네치아로 되돌리자!’는 라 페니체 극장판 ‘오텔로’의 또 다른 슬로건이다. 정명훈의 손을 잡은 가수들이 커튼콜에서 “비바 베르디!”를 소리치는 모습은 분명 오텔로가 베네치아로 돌아왔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진정한 명연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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