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 ‘로미오와 줄리엣’ 들여다보기 Part 3

국립오페라단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날 시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 벤저민 윌슨 ‘데이비드 개릭이 개작한 1748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의 데이디브 개릭과 줄리엣 역의 앤벨러미’

PART 3

국립오페라단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날 시간

올해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 되는 해이고, 2년 뒤인 2016년은 그의 사후 400주기가 된다. 이미 영국에서는 올해부터 3년간을 셰익스피어 특별 주간으로 정해 그의 수많은 희·비극과 사극 드라마를 순차적으로 공연하고 있기도 하다.

천부적인 언어 감각에서 탄생한 다채로운 비유와 찬란한 문학적 수식, 전 유럽을 넘나드는 국제적 배경 속에 펼쳐지는 강렬한 드라마성은 우리 모두를 셰익스피어의 포로로 만들었다. 그는 이후 거의 모든 예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거니와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음악과 발레, 영화 및 연극의 거의 모두에 알게 모르게 셰익스피어의 흔적과 영향이 들어가 있다. 오페라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음악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는데, 특히 프랑스의 샤를 구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섬세하고 감각적인 음악으로 재해색해 불멸의 러브 스토리에 또 하나의 생명력을 더했다.

국립오페라단이 10월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할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선 역량 있는 두 명의 주역 가수가 눈길을 끈다. 로미오 역의 프란체스코 데무로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출신으로는 거의 최초로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젊은 테너이다. 준수한 외모와 깔끔하고 감각적인 음색을 지닌 리릭테너인 데무로는 이미 지난해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로미오 역을 맡아 아름다운 노래와 실감나는 연기로 커다란 갈채를 받은 바 있다. 2011년 런던 코번트 가든 데뷔 무대에서 안토니오 파파노의 지휘로 ‘쟈니 스키키’의 리누치오를 불러 격찬을 받았고, 이를 기점으로 국제적인 매니지먼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지금은 빈과 파리, 뉴욕 무대에서도 그를 빈번하게 만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경험 면에서나, 개인의 역량과 열정 면에서나 그에 대한 기대는 여러모로 각별하다고 하겠다.

줄리엣 역의 이리나 룽구는 몰도바 태생의 러시아 소프라노로, 라 스칼라 아카데미에서 오페라 수업을 받은 후 크고 작은 배역으로 무대 수련을 쌓았다. 2007년 스칼라 극장에서 안젤라 게오르규의 대역으로 비올레타를 노래해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는데, 여배우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외모, 명확한 발성과 대리석 조각처럼 다듬어진 정교한 인토네이션 위에 동유럽 소프라노 특유의 끈적거리는 로맨티시즘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가 출연한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장식하면서 국제적인 인지도를 한껏 높였다. 메조소프라노를 연상케 하는 다크하고 풍부한 느낌의 표현력 위에 기교적으로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콜로라투라소프라노의 능력을 겸비하고 있는 매력 만점의 여가수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엘리자 모신스키는 국내 오페라 팬들에게도 낯익은 연출가다. 지난 2002년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베르디의 ‘오텔로’가 그의 코번트 가든 버전 프로덕션이었고,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돈 카를로’도 그의 작품이다. 전통적으로 무대미술의 입김이 강한 비주얼 위주의 이탈리아식 연출과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해 늘 찬반이 엇갈리는 독일어권 연출에 비해 모신스키의 무대는 균형과 조화, 그리고 연극적 뼈대가 강점이다. 원작의 서정과 스펙터클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과감한 생략과 집중으로 드라마적인 긴장감을 자아내는 데 특히 뛰어나다는 평가인데,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작품인 만큼 더욱 기대를 모은다. 셰익스피어 전문가이지만 지금껏 ‘나부코’나 ‘시몬 보카네그라’ 등 베르디의 대형 사극 오페라에서 탁월함을 보여왔던 그가 프랑스 오페라를 또 어떤 시각으로 다듬어낼지도 큰 관심사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섬세함과 화사한 색채감각이 특징이다. 음악은 뜨겁다기보다는 오히려 정묘하고, 주체할 수 없는 10대들의 사랑은 파스텔 톤의 화사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특유의 선율과 리듬으로 아련하게 표현된다. 현재 국제적인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최고 역량의 젊은 가수들이 출연하고, 연출가 또한 의심할 여지없는 우리 시대의 거장이다. 결국 공연의 관건은 관현악이 얼마만큼 구노 음악 특유의 정밀한 뉘앙스와 분위기를 잘 살려주느냐에 있다고 하겠다. 줄리안 코바체프의 지휘와 프라임필이 엮어낼 음악에 각별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글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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