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받는 인기에 비하면 그 곡의 뿌리인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 ‘결혼’ ‘시편 교향곡’에 대한 관심은 한참 떨어진다. 특이한 편성의 칸타타에 무용이 더해지곤 하는 독특한 형식이 높은 문턱으로 작용한 탓이다. 근래 들어 연주가 꾸준히 느는 것은 고무적이다.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최고의 선행 자료는 두 가지이다. 먼저 오자와 세이지의 DVD(조금 다른 캐스팅의 음반도 있다)가 있다. 연출가 줄리 테이머는 스트라빈스키가 겹겹이 친 금기를 걷어내고 그의 걱정과 달리 스펙터클한 연출이 음악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음을 증명했다.
하버드 대학 강연 ‘대답 없는 질문’에서 번스타인은 1960년대 당시 낯설었던 이 작품이 베토벤·베르디·헨델·클루크 등으로부터 뼈대를 가져온 신고전주의 작품임을 강조한다. 번스타인은 소포클레스와 프로이트에 대
한 선입견으로 무겁게 다가오는 ‘오이디푸스 왕’을 그리스 식당에서 들은 배꼽춤 음악이나 글리 클럽이 부르는 하버드 응원가를 동원해 명쾌하게 해부한다.
존 엘리엇 가드너는 이미 런던 심포니와 중요한 스트라빈스키 녹음을 둘이나 남겼다. 오페라 ‘난봉꾼의 행각’과 ‘시편 교향곡’(모두 DG)은 자신의 70세를 기념하는 이 바비컨 콘서트가 느닷없는 시도가 아님을 상기하게 한다(그는 21세에 ‘오이디푸스 왕’의 악보를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작고한 전임 음악감독 콜린 데이비스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현 음악감독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이 곡을 녹음했으니, 런던 심포니가 ‘오이디푸스 왕’을 위해 내세울 지휘자로 가드너는 최상이었다.
‘오이디푸스 왕’은 라틴어 가사이지만 모국어 해설자가 등장한다. 가드너는 영화 ‘칼라스 포에버’에서 마리아 칼라스 역을 맡아 유명한 파니 아르당을 세웠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이웃집 여인’에서 그녀의 상대역이었던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 음반 해설을 맡은 것에 자극받았을까?
좀 더 드라마틱한 게르기예프의 해석과 정교하고 짜임새 있는 가드너의 해석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고, 해설자의 존재감도 모두 돋보인다. 가드너 음반에서 특히 돋보이는 성악가는 르네 야콥스의 사울이자 마르크 민코프스키의 헤라클레스였던 기돈 삭스이다. 그가 부르는 크레온은 단순히 죄를 추궁하는 외삼촌이자 처남 이상으로, 준엄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스튜어트 스켈턴이 부른 크레온의 조카이자 매형 오이디푸스는 평범하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조카스타는 제니퍼 존스턴이 그보다 좀 더 몰입해 부른다.
가드너가 최근에 내놓았던 베토벤 ‘장엄미사’(SDG)는 과거(Archiv)에 비해 엄청나게 전투적이었다. 그러나 몬테베르디 합창단의 테베 시민은 베토벤 때와 달리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며 담담하게 감정이입을 한다. 어떤 방식이거나 그보다 나은 그리스 코러스를 기대하긴 어렵다.
‘결혼’을 커플링한 게르기예프에 비해, 가드너는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를 함께 수록했다. 헨델과 모차르트를 오가는 스트라빈스키의 눈부신 줄타기를 감상하는 데 런던 심포니 현악 앙상블이 좀 더 윤기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가드너가 이끌어내는 정교한 앙상블과 매력적인 커플링으로 스트라빈스키 초심자와 애호가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