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 마 & 실크로드 앙상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0월 31일 12:00 오전

언제나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진실한 마음으로 세상과 만나며, 소통을 위한 시도 앞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 그 모든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음악가. 실크로드 앙상블과 함께 요요 마가 펼쳐놓은 길 위의 음악은 경계를 허물고 세상을 움직이는 울림이 되고 있다

PART❶ 파리에서 만난 요요 마와 실크로드 앙상블

실크로드 앙상블은 여러 언어와 음악을 한자리에 모은다. 언제, 어디서든 이것은 유효하다. 내한 공연에 앞서 지난 9월 8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무대에 오른 요요 마와 실크로드 앙상블을 먼저 만났다


▲ ⓒMagdalena Lepka

인류 최초의 언어가 음악이었다는 여러 가설은 그것을 증명할 확고한 증거가 없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최초의 음악’이 어떠한 형태인지 알지 못하고, 음악으로서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단순한 형태, 그러니까 고함에 가까운 노래 같은 것일지라도.

이러한 가정에서 바벨탑 이야기는 중요한 상징을 갖는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쌓은 탑의 이름인 바벨(Babel)은 그들에게 ‘신의 문(‘bab’은 문을, ‘el’은 신을 뜻한다)’을 의미한다. 자신이 초대하지도 않은 인간들이 감히 자신의 신성한 영역에 도달하고자 했으므로 신은 노했고, 그의 분노는 사람들이 이전에 했던 ‘공통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케 했다. 바벨탑 건축은 중단되었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언어의 분화가 공동체의 파괴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최초의 음악’이 다양한 음악으로 분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언어와 음악의 밀접한 관계를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벨탑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에게 다르게 해석되고, 또한 영감을 주었다. 화가 피터르 브뤼헐,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영화감독 프리츠 랑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지난해 15주년을 맞이한 실크로드 앙상블의 여정은 여러 관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유럽 음악의 연주에 익숙한 현악기인 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와 각 나라의 문화·역사를 달리하는 악기들, 그러니까 인도 타악기인 타블라, 우리의 해금에 해당하는 이란의 카만쉐, 중국의 비파, 우리의 생황에 해당하는 생 등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연주한다. 비파는 이미 기원전 2세기경에 출현했다고 문헌이 전하고 있고, 생은 소위 입으로 부는 오르간으로 유럽에서 하모니움·하모니카·아코디언을 낳게 만든 악기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프로젝트 이름인 ‘실크로드(Silk Road)’는 이런 면에서 더욱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우리가 아무리 시끄러운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해도 이는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음악이 만국 공용어라고 말할 때, 음악이 머리보다는 가슴에 호소하는 언어라는 관점에서는 수용될 수 있어도 진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기쁨을 느끼지만, 아프리카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모차르트의 음악은 이해할 수 없는 지루한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강렬하고 복잡한 리듬의 한국 사물놀이를 유럽인들은 시끄러운 음악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다만 유사한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특정 음악은 그들에게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크로드 앙상블은 여러 언어와 음악을 한자리에 모은다. 요요 마는 이러한 시도를 15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앙상블의 음악감독인 요요 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그는 바흐의 첼로 모음곡을 무용·영상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고, 영화음악 작곡가인 엔리오 모리코네와 함께 작업을 했고, 재즈·탱고를 연주했다. 그 바탕이 음악적 호기심이든지 경계 허물기이든지 간에 첼리스트로 시작해 여전히 첼리스트로서 이어지는 그의 작업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여느 다른 클래식 연주자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연주자들은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면 규모가 큰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말하자면 다른 의미의 샐러리맨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예술적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기피한다. 주어진 시간, 장소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을 연주할 뿐이다. 예술가가 스스로의 예술적 직관과 본능을 따르지 못하는 시스템은 예술의 자발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요요 마는 끊임없는 실험이라는 방식으로 음악가로서 자발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실크로드 앙상블 프로젝트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권의 음악가들 만남이자 실험의 장이기도 하다.

 


▲ ⓒHYOSUNG

잃어버린 ‘최초의 음악’의 흔적을 짚어내는 소릿결

아시아 투어에 앞서 지난 9월 8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열린 요요 마와 실크로드 앙상블의 공연을 관람했다.실크로드 앙상블은 현재 15명의 음악가가 모인, 말하자면 지휘자가 없는 소규모 체임버 오케스트라 같은 형태다. 15명의 그룹에서 서로 다른 음색으로 연주하는 4명의 타악기 주자는 실크로드 앙상블에서 리듬과 타악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둘, 콘트라베이스 하나의 편성은 이 앙상블의 바탕이 현악임을 깨닫게 해준다. 여기에 이란의 현악기인 카만체와 중국의 현악기인 비파가 추가되어 색채를 더한다. 카만체는 강렬한 독주로 종종 나선다. 비파는 하프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관악기로는 클라리넷과 생, 그리고 백파이프의 일종인 가이타가 존재한다. 생은 아시아에서도 앙상블 전체를 지탱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생은 여러 음을 동시에 낼 수 있는 관악기이기에 마치 두 명 이상의 호른 주자로 비유할 수 있다. 가이타는 두 종류가 사용되었는데 그 강렬함은 오케스트라에서 네 명의 트럼펫 주자가 동시에 부는 것과 유사한, 혹은 그 이상의 효과를 낸다. 물론 이것은 유럽 오케스트라의 관점에서 앙상블을 바라본 것이고, 정반대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실크로드 앙상블의 연주자 가운데는 작곡가들도 있다. 클라리네티스트 키난 아즈메, 비파 연주자인 우만, 타블라 연주자인 산딥 다스 등이다. 우만은 자작곡인 비파 독주를 위한 ‘밤의 생각’을 스스로 연주했지만, 아즈메는 앙상블 전체를 위해서, 산딥 다스는 네 명의 타악기 연주자를 위해서 곡을 썼다. 자신이 연주자로 참여하는 앙상블을 위해 곡을 쓰는 작업은 어떤 특정 연주자나 단체를 위해 작곡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작업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다양함과 낯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이날 연주회를 통해 펼쳐졌고, 음악적 흐름의 맥이 잘 짜여 있었다.

프로그램 마지막 곡이었던 ‘투르세아스카’는 모두 악보 없이 연주했다. 쓰여 있는 것과 쓰여 있지 않은 것, 정해진 것과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었고 모든 것이 자유롭게 흘렀다. 연주자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충만했고, 이 기쁨은 청중에게 전달되었다. 이날 샹젤리제 극장에는 다른 공연에 비해 다양한 인종의 청중이 모였는데, 이들 모두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실크로드 앙상블은 우통의 생이 화려한 독주로 시작하는 곡을 앙코르로 들려주었다.

음악은 슬픔을 위로하고, 굳게 닫힌 심장을 열게 하며, 축제를 진정 축제답게 한다. 기쁨과 감동은 음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넘쳐나는 기쁨 앞에서는 다른 모든 사유는 녹아 없어진다. 그렇다. 바벨탑은 허물어졌지만, 그 덕분에 생겨난 서로 다른 언어가 다양한 음악을 가능케 했다. 실크로드 앙상블의 음악가들은 자신과 본질적으로 다른 음악가들에게 스스로를 개방함으로써 전혀 다른 음악 세계를 만들어냈고, 어쩌면 잃어버린 ‘최초의 음악’을 예상치 않은 방법으로 되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김동준(음악평론가)

PART❷ 요요 마에게 길을 묻다

시대와 문명을 연주로 체득하며 ‘음악의 실크로드’를 인생의 좌표 위에 선명히 그려가고 있는 요요 마. 지난 9월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그와 실크로드 앙상블의 발걸음은 그 방향을 돌려 서울로 향하는 중이다. 길 위에 서서 어제와 오늘의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개척해나가는 요요 마에게 열 가지 질문을 던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에서 무엇이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스스로가 중요성이나 정당성을 절실히 느끼거나, 판단의 잣대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지 않다면 더욱 그러하다.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듯, 요요 마는 첼리스트다. 네 살의 나이에 첼로를 잡고 이미 10대 시절에 웬만한 첼로 레퍼토리를 섭렵한 그는 고전뿐 아니라 현대음악, 크로스오버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어 음악의 바다에서 거침없이 항해하며 사고와 삶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시켜왔다.

실크로드에 대한 요요 마의 관심은 20대 초반 하버드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류학과 역사학을 비롯한 다양하게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지식적 소양을 쌓았고, 전 세계 음악에 대한 관심을 연주를 통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음악의 실크로드’를 인생의 좌표 위에 그려나갔다.

동양과 서양을 이으며 과거 수천 년 동안 많은 발걸음이 오고 갔던 실크로드. 그 길 위에서 혼합되고 더해졌던 동서양의 건축과 미술 양식, 음악에 주목하고 각 지역 간의 교류와 함께 문화유산을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요요 마는 실크로드 프로젝트 재단 예술감독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여 개국에서 모인 음악가들과 요요 마는 실크로드 앙상블을 이끌며 새로운 음악을 개발하고 연주하는 데 힘쓰고 있다. 실크로드 앙상블에 속한 한국인 음악가들의 활동도 돋보인다. 장구 연주자 김동원이 단원으로 소속되어 있으며, 실크로드 앙상블이 작곡가 김지영·강준일·김대성에게 위촉한 곡들은 곳곳에서 연주되어왔다.

지난해 15주년을 맞이한 실크로드 앙상블은 기념 음반 ‘국경 없는 선곡집(A Playlist Without Borders)’을 내놓으며 동양과 서양의 음악적 교차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음반에 수록된 ‘밤의 명상’ ‘사이디 스윙’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들어볼 수 있는 곡이다.

지난 9월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요요 마와 실크로드 앙상블의 발걸음은 유럽의 도시들을 거쳐 10월 아시아로 방향을 돌린다. 10월 28~29일 내한을 앞두고 유럽 투어에 한창인 요요 마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요요 마와의 일문일답.

어느 분야든 하나의 이슈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이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1998년 시작된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지난 15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지속해온 가치는 무엇인가.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문화와 교육, 양쪽에 중점을 두고 있는 단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르침은 먼저 배운 것을 나누는 것이다. 더불어 뚜렷한 방법으로 가르칠 때 가장 좋은 배움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가 ‘실행(do)’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경험적 가치를 통해 그것을 ‘어떻게(how)’ 다루는지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실크로드 앙상블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의도적인 설정을 한다. 오직 협업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와 규범이 각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앙상블은 창의적인 역할을 모두 해낼 수 있다. 동시에 이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앙상블에 소속된 단원 모두가 리더일 뿐 아니라 최상의 제2바이올린 주자 같은 역할을 하도록 독려한다. 동시에 창의성으로 인한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안전한 범위 안에서 이뤄지기에 모두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9월 유럽을 거쳐 10월부터 아시아 투어가 이어진다. 이전 시즌과 차별되는 부분이 있다면.

지난 해외 투어 이후 세계정세는 더욱 복잡하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나는 우리의 역할이 평화적이며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조명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러한 움직임이 다른 이들에게 도전이 되길 바란다.

해외 투어 레퍼토리는 어떻게 결정되나? 각 대륙별, 세부적으로는 각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문화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 정하는지 궁금하다.

방문하는 도시에 따라 레퍼토리를 정하는 기준이 있다. 아주 오래됐거나, 반대로 새로운 작품이라서 단원들이 한 번도 접하지 못했거나 연주한 적 없는 곡들을 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우리의 음악으로 인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면서 또 다른 세계에 도착했다는 인상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행기를 타지 않고서도 앉은 자리에서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다!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더라도 대륙별 관객들의 피드백이 다를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귀와 눈과 경험, 그리고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의 반응은 절대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평론가와 리뷰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실이다. 나는 비판적인 의견도 굉장히 관심을 갖고 그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감상과 그에 대한 이유들은 음악적 전통에 대한 나의 물음이며, 작곡가들과 온 인류에게 되묻는 질문이 된다. 이것은 곧 대화·현실·상상 그리고 본질로부터의 시작이다.

내한 공연 프로그램 중 15주년 기념 앨범에도 수록된 ‘밤의 명상’은 중국의 비파, 일본의 샤쿠하치, 한국의 장구로 구성된 3중주곡이다. 최근 정치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세 나라가 음악 안에서 경계와 긴장 없이 하나가 되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3중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밤의 명상’과 같은 조합은 정치적인 것을 문화적으로 승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작품이 긴장을 완화시키거나 지금과 같은 정치적 상황에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면 난 만세를 외칠 것이다!

한국 전통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 특별히 ‘아리랑’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비유하자면 우리는 각각의 사회로 들어가는 입구를 잘 찾아내고, 좋아하는 편이다. ‘아리랑’은 민족적으로 깊고도 중요한, 상징적인 곡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존중한다. 그렇기에 상징적 의미를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약간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는 것을 좋아하고, 시도할 생각이다.

20여 년 전 한국 전통음악을 처음 접한 이후, 실크로드 앙상블 레퍼토리에 한국 전통음악과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여왔다. 당신이 한국음악에서 느낀 매력과 에너지에 관해 설명해달라.

특히 한국의 민속음악에 매력을 느낀다. 한국의 음악가들이 이와 관련된 상당한 곡들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음악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근원적이고 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계절을 만끽하는 것이다. 또 남녀 간의 사랑이자 애통함을 비롯한 강렬한 감정들을 포함한다. 이것은 각각의 문화를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크로드 앙상블에서 보컬과 장구를 맡고 있는 김동원은 어떤 연주자이자 동료인가.

그가 매우 열정적인 사람임을 알고 있다. 2005년 나고야 아미치 엑스포에서 본 김동원의 공연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한국의 전통음악을 세계 각지에서 온 관객들에게 선보인 자리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누구나 삶 속에서 문화를 향유하고 공감하도록 그동안 실크로드 지역 출신의 여러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해왔다. 그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악기들의 조합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각 문화 요소, 즉 목소리·악기·연주자들에 있어서는 다른 점들이 발견된다.

연주 활동 외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다방면으로 수행하는 데 어떤 고민과 실천의 과정이 이뤄지는가.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을 논의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단체를 운영하는 것은 꽤 복잡한 일이다. 무엇보다 제한된 자원과 시간을 통해 사회에서 우리가 바라는 영향력을 어떻게 끼칠 수 있느냐에 관한 부분을 고민한다. 몇몇 이들은 수많은 학교의 6학년 교실을 방문해 사춘기 청소년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고, 프로젝트에 필요한 조언을 해줬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에서 문화적 기업 정신에 관한 강좌도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여름에는 공립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의 문화적인 시민성에 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중이다. 동시에 비슷한 가치를 가진 단체를 찾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의 공연을 통해 문화를 향유하고, 그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한다. 또 각자 자신이 속한 환경을 바라보면서 서로 무엇이 다른지, 서로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찾고, 나아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삶 속에서 마주치는 역경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한 예술이 될 것이다.

음악이 인간과 사회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음악은 종종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동시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의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문제 해결에 대한 발상을 더해준다. 더불어 더 넓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감하며 헤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PART❸ 장구 연주자 김동원이 바라본 요요 마

지난 2000년부터 요요 마와 함께 새로운 소릿길을 만들고 있는 장구 연주자 김동원. 실크로드 앙상블 유럽 투어에 한창인 그가 ‘객석’ 편집부로 편지를 보내왔다. 10년 넘게 실크로드 앙상블 멤버로서 함께 호흡하며 시간을 보낸 김동원의 눈에 비친 요요 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가 처음 아쟁산조를 들었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아쟁이 흔들어대는 비브라토를 처음 듣고는 ‘이건 미친 비브라토구나!’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수천 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강인하게 살아남았는지를 이해하고 나서 그 아쟁의 비브라토는 마치 5,000년 묵은 나무가 대지의 슬픔으로 큰 가지를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 2001년 8월, 요요 마가 메타기획의 김수연과 나눈 대화 중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8월,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열린 두 번째 실크로드 프로젝트 워크숍에서였다. 요요 마는 1998년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창설하면서 세계 각지의 저명한 작곡가들에게 실크로드 지역의 음악과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지는 곡들을 위촉했다. 한국에서는 강준일 선생이 ‘해맞이굿(Hae Maji Gut, 2001)’이라는 장구와 첼로, 피아노가 어우러지는 특이한 편성의 트리오 곡을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넘겨주었다. 이 곡은 원래부터 사물놀이 연주자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인데, 그 과정에서 내가 경기도당굿의 아름다운 장단들의 구성과 흐름을 채보해 강 선생께 전하고, 함께 연주 구성을 상의하는 방식으로 유기적인 창작이 이루어진 곡이었다. 요요 마는 이 곡을 비롯해 한국적인 영감을 바탕으로 작곡된 곡을 연주할 때면 왼손을 위아래로 흔들어가며 마치 아쟁의 농현처럼 깊고도 강렬한 비브라토를 구사했다. 이렇듯 그는 관습과 규범을 고수하기보다는 남과 소통하기 위해 기꺼이 새로운 실험을 감행할 줄 아는 연주자다. 그리고 이를 위해 먼저 다가서서 상대방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공부하고 감응한다.

“오래전에 읽은 신라의 역사 중에서 에밀레종의 신화가 기억에 남아요.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요. 이 이야기를 곡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요? 제가 관련된 자료와 신화 등을 보내드릴게요.”

– 2005년, 요요 마가 작곡가 김지영에게 곡을 위촉하면서 전한 이야기

2006년 뉴욕 카네기홀 초연 이후, 미국 각지를 돌면서 연주해 각광받은 작곡가 김지영의 ‘에밀레종(Ancient Bell, 2006)’은 바로 요요 마의 제안으로 작곡된 곡이었다. 만일 요요 마가 한국 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이해가 없었다면 이 곡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05년, 나고야 아이치 엑스포에서 공연하기 위해 이동하던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나와 요요 마, 그리고 이제 갓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합류한 20대 중반의 젊은 첼리스트 마이크 블록이 함께 차를 탔다. 늘 그러했듯이 요요 마는 그 젊은 첼리스트에게 이런저런 의견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제는 마이크가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요요, 실크로드의 정신이나 비전을 대표하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무엇이라고 하겠어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요요 마가 대답했다.

“교육!”

내가 아는 한, 요요 마에게 ‘교육’이라는 단어는 수직적 개념이 아니다. 서로 대등하게 배우고 나누고 공감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이루자는 뜻에서의 교육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한다는 것에는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소통함으로써 이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진정 특별한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왜 이 짓을 하겠어요? 이건 무엇을 증명하려는 게 아니에요. 서로 나누려는 거지요.”

-2014년, 요요 마가 팟캐스트 ‘On Being With Krista Tippett’에서 한 인터뷰

요요 마는 아시아의 어느 길거리에서 만난 어린이나 영국의 여왕이나 똑같이 정성을 다해 인사하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높은 명성과 예술적 성취를 이룬 사람이면서도 따뜻한 마음으로 쉬지 않고 세상과 만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사람들과 나누려는 사람이 바로 요요 마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 배우고, 그리하여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의 삶과 문화를 새로운 경지에서 발견하고 창조하게 될 것이라는 비전을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에겐 그와 함께 걷는 길이 즐겁다.


김동원은 실크로드 앙상블 멤버로 장구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다.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예술학과 교수이며, 캐나다 ‚악졍淪閨국제즉흥음악비평학연구소(IICSI)와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방문교수 겸 레지던시 즉흥음악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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