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치 융합 프로젝트2 ‘비단길: 실크로드’

큰 발걸음, 아쉬운 여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2014년 10월 2일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타란텔라(Tarantella)’와 ‘힐데가르드 변주곡(Hildegard Variation)’이 극장을 가득 채웠다. 두 곡의 중심을 잡고 있는 켈틱 하프의 울림은 중세 시대 주술사의 주문 같았다. 한마디로 오묘했다. 켈틱 하피스트 뤼디거 오퍼만의 음악은 켈틱 하프의 태생지인 켈트 문화권의 뿌리보다는 개인의 상상력을 앞세운 ‘월드뮤직’이었다.

이번 공연은 타악그룹 노름마치가 마련한 융합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1993년 창단한 노름마치는 예술감독 김주홍을 비롯해 이호원·오현주·김용준·김태호로 구성된 그룹이다. 노름마치는 ‘놀다’를 뜻하는 ‘노름’과 ‘마치다’의 ‘마치’가 합쳐진 말로 남사당패에서 통용되는 은어다. ‘이 사람(들)이 나타나면 판을 끝내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 노름마치는 해외로 항로를 돌려 해외의 ‘노름마치’들을 찾아 여행하고 있다. 이 여정에 붙은 이름이 ‘SSBD(Same Same But Different)’이다.

지난해 약관을 맞은 노름마치는 일본의 타악주자 즈지토리 도시, 안무가 안은미와 함께 SSBD의 첫 무대를 선보였고 올해 두 번째 무대로 뤼디거 오퍼만과 그가 예술감독으로서 이끄는 그룹 글로벌 플레이어스가 함께한 것이다. 첫 SSBD는 ‘일본’과 ‘한국’의 만남이었다. 올해는 그 여행지가 한국을 시작으로 몽골과 인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졌기에 제법 긴 셈이다. 그런 점에서 ‘비단길:실크로드’라는 공연 제목이 와 닿았다.

이번 무대에는 총 10곡을 선보였다. 그중에 노름마치와 글로벌 플레이어스가 컬래버레이션으로 선보인 곡은 4곡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이 일군 만남의 ‘과정’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보였으나 ‘결과’는 다소 미흡해 아쉬움을 남겼다. ‘금빛 흐름(Stream of Gold)’에서 모로코 전통 멜로디와 몽골의 멜로디, 그리고 그 음악들을 담는 그릇으로서 노름마치의 타악 장단이 뜨겁게 만났다면, ‘행렬(Karawane)’에서 마두금(엔크 자갈)과 신시사이저(라이너 그란친), 색소폰(롤란트 셰페르), 켈틱 하프 소리와 맞물린 김용준의 태평소는 끝내 용해되지 않은 쇳조각 같았다. ‘대화(Dialogue)’는 한국 장단을 흉내 낸 구음(口音)과 인도 타악기의 구음이 대화하듯이 만난 곡이다. 하지만 음악적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다만 한국과 인도의 전통음악에 구음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인문적인 사실만이 이 아쉬움을 메웠다. 이번 무대의 주인공과 같은 하프와 타악기 공존도 순탄치 않았다. 타악기와 현악기라는 태생이 다른 두 악기가 일군 컬래버레이션은 튕기는 여인과 거칠게 밀어붙이는 남자의 ‘해프닝’처럼 보였다. 사물놀이에 젖줄을 대고 있는 노름마치는 사물놀이가 갖고 있는 직유법에 굉장히 뛰어나다. 이번 무대는 어쩌면 하프와 타악기 사이에 부재하는 공통분모를 노름마치의 ‘직유법’이 아닌 한국음악의 즉흥성과 같은 ‘은유법’으로 엮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SSBD 시리즈를 수십 년 프로젝트로 끌고 갈 생각이라면 이번 무대의 아쉬움 같은 건 한낱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사실 공연보다 더 기대되는 건 노름마치가 해외의 ‘노름마치’를 찾아다니면서 그리는 지도와 탈주선이다. 그 여정은 상상만으로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여정을 볼 수 없다는 건 아쉽다. 언젠가 이것들이 하나의 결과물로서 형태를 갖추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도 살짝 가져본다.

사진 노름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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