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오텔로’

이아고는 왜 악인이 됐을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 일러스트 신현영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이아고는 베르디의 품에서 잔인한 신의 아들로 재탄생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해타산적이었던 이아고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비로소 신중하고 음울한 악인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서곡도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오페라 ‘오텔로’는 바다의 폭풍우를 묘사하는 맹렬한 관현악으로 관객의 혼을 빼놓으며 시작한다. ‘아이다’ 이후 오페라 작곡에서 손을 뗀 주세페 베르디(1813~1901)를 삼고초려로 설득한 후배 작곡가이자 대본작가 아리고 보이토(1842~1918)는 베르디에게 서둘러 대본을 갖다 바쳐 ‘오텔로’의 1887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초연을 가능하게 했다. 베르디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영국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1604년 작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가 이 오페라의 원작이었다.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쓰여 주인공의 이름이 ‘오텔로’로 바뀌게 된다.

이 비극의 핵심 주제는 열등감으로 인한 질투와 의심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인종차별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주인공 오셀로는 15세기 유럽에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흑인이면서도 뛰어난 지략과 무예로 베네치아 총사령관이자 키프로스의 통치자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백인들의 증오와 피부색 및 출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아내의 정절을 의심하면서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파멸에 이른다. 그런데 원작에서나 오페라에서나 주인공 오셀로(오텔로)보다 훨씬 매력적인 인물은 이 끔찍한 비극의 기획자인 이아고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다 보면 이 작품 제목은 ‘이아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아고라는 인물의 개성이 탁월하게 강조되며, 베르디 자신도 이 오페라의 제목을 두고 ‘이아고’와 ‘오텔로’ 사이에서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오텔로’로 지었다고 한다.

대체 이아고는 왜 그랬을까? 왜 자신을 신임하고 가까이에 두려는 상관 오셀로를 그토록 증오하고 그에게 복수하려 했던 것일까? 원작에선 이아고가 원했던 부관 자리를 얻지 못한 데 대한 앙심, 그리고 베네치아의 모든 귀족 남자가 선망했던 아름다운 데스데모나를 흑인 오텔로에게 빼앗긴 데 대한 집단적·인종적 증오가 상세히 언급된다. 오페라에선 이보다는 다른 이유에 중점을 둔다. 자신은 “악의 원자(原子)에서 태어났노라”고 말하는 이아고의 아리아 ‘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로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즐겁다는 이아고는 천국이나 지옥을 믿지 않는다. “죽으면 먼지로 돌아갈 뿐, 그 뒤엔 아무것도 없다”고 노래하는 그는 단호한 무신론자다. 무신론을 악과 등치시키려는 이탈리아적 신앙심이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베르디의 이아고는 악행에 뚜렷한 이유가 없는 ‘천성적 악인’으로 묘사된다.

‘라 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 시절의 베르디였다면 이아고라는 악인의 간교함과 사악함을 극적인 아리아로 관객에게 선명하게 각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아고의 ‘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는 음산하게 중얼대는 독백처럼 들린다. 이아고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은 성악 선율보다는 그 배경으로 들려오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이다. 베르디의 음악이 후기로 갈수록 극 중심, 관현악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캐릭터 자체에도 이처럼 변화가 찾아왔다. 그래서 ‘오텔로’를 발표한 베르디는 “바그너를 모방했다”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셰익스피어의 이아고는 베르디의 이아고에 비해 훨씬 성격이 밝은 수다꾼이다. 그래서 ‘오셀로’의 명대사는 대부분 오셀로보다 이아고의 입을 통해 나왔다. 이아고는 자신을 겉과 속이 다른 인간으로 소개하며, 주인을 이용해 실속을 다 차리고 결국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받드는 자들을 정신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 칭찬한다. 오셀로 앞에서는 충성을 다하는 척해 신임을 얻었지만, 실상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명철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이성적이고 타산적이며 철학적 깊이까지 지닌 인물이다. “당신이 애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만 피 끓는 욕정일 뿐이고, 의지가 굴복한 형국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오셀로에게 충고한다. “장군님, 질투를 경계하세요. 질투란 ‘초록빛 눈을 가진 괴물’로, 사람 마음을 잡아먹는 놈이죠. 아내가 바람난 남편이 되어도 그걸 운명으로 체념하고 부정한 아내에게 미련을 갖지 않는 남자는 행복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이아고가 지닌 이런 르네상스적 이성과 활력은 베르디의 오페라에서는 사라졌다. 대신 이아고는 신중하고 음울한 19세기 낭만주의적 악인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