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③

PART ③ 김대진/수원시향의 R. 슈트라우스 릴레이 공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2월 1일 12:00 오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③ 김대진/수원시향의 R. 슈트라우스 릴레이 공연

슈트라우스라는 ‘뜨거운’ 연료

네 번의 정기연주회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 달구고 있는 수원시향의 온도는 한마디로 뜨겁다


▲ 수원시립교향악단

2010년 안팎으로 말러가 대유행했고, 2013년에는 베르디·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가 많았다. 하지만 2014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이하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은 이에 비해 좀 소홀한 듯하다. 물론 한 작곡가의 기념비 앞에서 음악가들이 전부 그를 기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베르디와 바그너 특수를 지나온 2014년의 연주계에서 ‘체감’으로 다가오는 슈트라우스의 생일 파티는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한 작곡가에 대한 악단의 애착과 집중, 더 정확히 집착이란 그 악단의 연료가 되기도 한다. 그 열정의 순도가 높아질수록 연료의 순도도 높아진다. 마치 위대한 소설가가 습작기에 본받고자 한 소설가의 글과 문체로 습작 노트를 가득히 채워 맷집과 체력을 키우는 것처럼.

지금 수원시향은 베토벤·차이콥스키 전곡 연주에 쏟았던 열정만큼 슈트라우스를 연료 삼아 활활 타오르고 있다. 9월에 ‘워너비 슈트라우스’에서는 ‘축전 행진곡’을 시작으로 호른 협주곡 2번(김홍박 협연)과 교향시 ‘죽음과 변용’ ‘돈 후안’을 선보였다. 10월 ‘슈트라우스의 알프스’에서는 오페라 ‘카프리치오’ 전주곡과 오보에 협주곡(이윤정 협연), 교향시 ‘알프스 교향곡’을 올렸고, 11월 ‘유머러스 슈트라우스’에서는 세레나데 Op.7과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를 위한 ‘부를레스케’(리 지안 협연),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오페라 ‘장미의 기사’ 모음곡을 선보였다. 12월 12일 ‘라스트 슈트라우스’에서는 소프라노 한경미의 협연으로 ‘네 개의 마지막 노래’와 교향시 ‘영웅의 생애’를 중점적으로 선보이며 막을 내린다.

슈트라우스가 12세에 작곡한 ‘축전 행진곡’부터 타계하기 1년 전인 1948년에 작곡한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선보이는 이 시리즈에는 슈트라우스의 음악적 생과 사가 담겨 있었다. 4회의 정기연주회 중 세 개의 관문을 지나온 김대진 예술감독을 만나 슈트라우스를 ‘연주한다는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 지휘 김대진

올 하반기인 9월 3일 ‘워너비 슈트라우스’를 시작으로 슈트라우스 곡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수원시향의 상반기를 잠시 회고해주십시오.

올해 2월에 삼성전자 후원으로 빈·부다페스트·프라하·뮌헨으로 이어지는 유럽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상반기도 슈트라우스 곡을 선보여 1년 동안 올리자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차이콥스키’를 진행하면서 차이콥스키에 푹 빠져 있었죠. 슈트라우스의 곡은 수원시향이 평소 하던 레퍼토리는 아닙니다. 연주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10여 년 전일 겁니다. 그래서 올해 6월 18일 수원화성국제음악제에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선보이며 전초를 다졌습니다.

첫 시작은 ‘워너비 슈트라우스’였습니다. 첫 공연을 끝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와! 슈트라우스의 곡은 정말 좋구나!

지금까지 총 3회의 무대와 11곡을 선보이며 슈트라우스에 대해 일관되게 들었던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요?

슈트라우스 곡은 오케스트레이션이 빽빽이 짜여 있습니다. 연주하다 보면 음악이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게 뭔지를 알려준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슈트라우스 곡을 하면서 ‘음악을 한다’라기보다 ‘음악이 연주를 해준다’라는 걸 느끼게 되었죠. 리허설 때도 단원들에게 한마디만 했어요. “연주자는 음악을 주도하고 선도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슈트라우스의 음악에 몸을 맡겨보도록 합시다! 흐르는 물처럼 우리 사이로 음악이 흐르게 하고, 흐름에 우리를 맡기면 자연스럽게 음악이 만들어지고 앙상블이 나오지 않을까?”라고요. 이런 상황을 느끼게 한 작곡가에 대한 존경심도 강해졌고요.

그럼 슈트라우스를 통해 단원들이 얻은 음악적인 실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슈트라우스의 교향시에는 각 악기별로 솔로 부분이 많습니다. 단원들의 연습량은 배가되고 기량이 늘죠. 저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형태로든 지휘자가 그리고자 하는 방향과 맞는다면 각 단원의 특색을 살리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휘란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독재가 필요한 거 아닙니까?

지휘자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배워가는 게 있습니다. 나 스스로를 악단 한가운데 앉혀보는 것입니다. 평단원으로, 때로는 책임을 지는 수석으로요. 옆에 어떤 주자가 있고, 연주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나라면 그것을 어떻게 할까?’라는 가정이 저 자신을 키우더군요. 그러다 보니 단원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소통도 잘됩니다.

총 4회의 정기연주회 전곡을 슈트라우스 곡으로만 올린다고 했을 때 단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특히 목관과 금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알프스 교향곡’ ‘틸 오이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과 같은 교향시의 곡명을 들었을 때는 관악 단원들이 좀 놀랐을 것 같은데요.

그럴 것 같죠? 의외였습니다. ‘우리도 드디어 해보는구나!’라며 상기된 분위기였습니다. 수원시향의 금관 파트에는 차세대 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주자가 많습니다. 늘 자랑하고 싶었고 그들의 역량 또한 슈트라우스 곡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슈트라우스 전곡을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한 작곡가에 집중하는 에너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피아니스트와 교수로서 얻은 철칙 중 하나가 베토벤이 견고하게 습득되면 아무리 큰 바람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악단에도 이 철칙을 갖고 대합니다. 그동안 베토벤와 차이콥스키 전곡 연주를 통해 한 작곡가에 집중하는 강훈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의 기운이 지금의 기반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단원들도 올해가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이라는 걸 들었을 때, 제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겁니다.

슈트라우스는 베토벤·차이콥스키와 달리 객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연습과 연주 분위기가 좀 남다르지 않습니까?

수석을 객원으로 초빙할 때를 제외하고는 객원 단원 초빙은 수석들의 임무입니다. 수석들에게 본인의 연주 외에도 파트의 안과 밖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긴 겁니다. 우리 악단은 예상외로 정말 잘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새 좀 드는 생각이 ‘지휘자라는 존재가 큰 방향을 그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과연 오케스트라에서 하는 일이 많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웃음).

정말 묻고 싶은 건 이겁니다. “베르디·바그너 탄생 200주년이었던 지난해와 달리, 또 말러와 달리 슈트라우스는 왜 ‘그만큼’ 연주가 되지 않을까?”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물어봐도 “진짜 모르겠습니다”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하려고 마음먹었던 레퍼토리이고, 오케스트라라면 넘어야 할 산이 말러와 슈트라우스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마침 베토벤·차이콥스키 전곡 연주를 하고 나니 슈트라우스가 ‘탄생 150주년’이라고 나타나서 마치 제가 그의 생년월일을 짠 것처럼 우리 악단의 행보와 어쩜 이렇게 잘 맞을까라고 생각하며 신기해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올해 전반에 다른 오케스트라가 이미 다 올리고 우리 악단은 막차를 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슈트라우스 곡을 선보이는 오케스트라가 별로 없다는 ‘현실’을 듣고 놀란 건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어지는 질문을 잠시 끊으며 김대진이 물었다. “우리의 슈트라우스 연주. 어떻게 들었나요?” 솔직히 말했다. 김대진과 수원시향의 열정, 땀이 묻은 슈트라우스 연주. 하지만 수원SK아트리움의 음향은 이 모든 것을 담기에 부족하다고···. 큰 음량은 큰 음량대로, 작은 음량은 작은 음량대로 아쉬움을 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3월에 개관 기념 페스티벌을 치른 수원SK아트리움은 지역 공연장으로선 상대적으로는 잘빠진 공연장이지만 수원시향의 도약과 활약에 있어서는 조금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 수원시향의 연주를 그들의 ‘고향’인 수원에서 들어본 전문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얘기한 대목이었다.

보통 일렬로 나열되는 금관 파트를 ‘워너비 슈트라우스’에서는 양옆에 따로 떼어 비스듬히 배치한 광경이 독특했습니다.

수원SK아트리움의 음향 상태에 맞춰 배치한 겁니다. 다른 지역 공연장에 비해 성공적으로 잘 지은 홀이지만 매회의 공연을 통해 보완할 점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2015년 2월경에 음향을 좀 부드럽게 감싸주게끔 보수하려 합니다. 무대와 객석의 충분한 간격이 확보되지 않아서 소리가 직선적이고 다소 공격적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금관 파트를 비스듬히 배치해 음향을 부드럽게 연출해봤습니다. 슈트라우스에 금관이 자주 나오기에 이번에 처음 시도해본 겁니다. 대공연장은 950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원래는 1,300석 이상을 예정하고 지은 홀입니다. 사정상 300석의 소공연장을 만들어야 했기에 줄어든 것이죠. 무대 사이즈는 똑같고 객석 수가 축소된 것입니다(그리고 그는 ‘수원 관객의 수준은 어떤 것 같나요’라고 물었다).

취재를 위해 지역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면 때로는 ‘지역 쇼크’라는 게 있습니다. 서울과 근접한 광역시만 해도 관객의 관람 수준이 예상외로 낮아 놀랄 때가 있습니다. 고백합니다만 저는 수원 관객들이 슈트라우스와 수원시향의 연주를 그렇게 높은 수준의 자세로 꼭꼭 씹어 먹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수원시향의 연주보다 더 놀란 건 이것이었습니다.

수원 시민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서울로 음악회를 다닐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수원시에 동거하는 오케스트라가 ‘차선’이었고 서울이 ‘첫 번째 선택지’였다면 그 순서를 바꿔나가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수원SK아트리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수원시향은 물론 관객의 수준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1년 정기연주회의 절반을 서울에서 했습니다. 아마도 슈트라우스를 들고 서울로 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부각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수원시향과 수원SK아트리움은 수원시의 뚝심입니다. 매번 의심해봅니다. ‘수원시향이 수원 시민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나?’라고요. 그리고 배짱도 부리고 싶었습니다. ‘슈트라우스 곡을 듣고 싶으면 수원으로 오십시오.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십시오!’라고요.

수원시향은 2015년에도 남다른 계획을 갖고 있겠죠?

2015년이 시벨리우스(1865~1957) 탄생 150주년이라는 것이 힌트입니다. 그리고 실황 녹음도 앞으로 ‘우리 홀(수원SK아트리움)’에서 해보려고 합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수원시립교향악단

R. 슈트라우스가 선사한 호른의 가능성

슈트라우스는 모든 악기군에서 뛰어난 작법을 자랑한 관현악법의 대가이지만, 그중에서도 그가 남달리 애호한 악기가 있다. 바로 호른! 슈트라우스는 뮌헨 궁정 오케스트라의 수석 호른 주자이자 당대 최고의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호른의 음색을 가까이 접하며 성장했다. 악기에 대한 탁월한 이해로 자신이 작곡한 곡 대부분에 호른을 적극적으로, 대담하게, 그리고 까다롭게 등장시켰다.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슈트라우스 곡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호르니스트 김영률(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에게 슈트라우스의 작품에서 호른이 차지하는 존재감에 대해 들어봤다.

기술적 어려움 슈트라우스의 관현악곡은 일단 악보만 봐도 무척 어렵다. 높은음을 오래 지속하거나 넓은 음역에서 연속음을 강한 다이내믹으로 불어야 하는 대목이 종종 등장한다. 슈트라우스에게 표현하지 못할 소리란 없던 듯하다. 호른족(族) 악기인 바그너 튜바를 비롯해 다른 작곡가들의 곡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목·금관악기들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인 효과를 표현했다.

숨 쉴 틈 없는 교향시 말러나 부르크너가 많은 교향곡을 작곡한 데 비해 슈트라우스는 교향시를 많이 남겼다. 상대적으로 형식에 구애를 덜 받고 표제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교향시가 슈트라우스 성향에 맞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악장이 나뉘어 있는 교향곡에 비해 한 악장으로 이어지는 교향시는 호르니스트의 탄탄한 체력과 뛰어난 기량을 요구한다.

두 곡의 호른 협주곡 사이에 흐르는 60년 간극 슈트라우스는 생애 두 곡의 호른 협주곡을 남겼다. 첫 번째 호른 협주곡은 19세에, 두 번째 호른 협주곡은 78세에 작곡했다. 60년의 간극만큼 곡의 분위기도 다르다. 제1호른 협주곡은 아버지 프란츠의 예순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기교와 악상의 참신함이 매력적이다. 제2호른 협주곡은 작곡가가 완숙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작곡한 곡으로 호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교가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도록 완벽한 작법을 구사했다.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는 협주곡이 아닌 교향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부족함이 없으며,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느끼는 슬픔과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며 느끼는 외로움도 엿보인다.

호른 8+12대, ‘알프스 교향곡’ 총보를 완성하는 데만 100일이 걸린 대편성 곡이다. 슈트라우스는 이 곡에서 8대의 호른을 무대 위에 올린 것도 모자라 12대의 호른을 추가로 무대 뒤편에 배치했다. 알프스의 풍경을 그린 이 곡에서 호른은 암벽, 숲 속, 초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대자연의 장엄한 울림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노래한다.

호르니스트에게 슈트라우스란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슈트라우스의 어려운 곡을 공연장에서 감상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요즘에는 교향악단의 연주 프로그램에 바그너·말러의 곡들과 함께 연주 시리즈 기획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금관악기 연주자들의 실력이 괄목할 만큼 향상되었다는 뜻일 테다. 슈트라우스의 제2호른 협주곡 같은 고난도의 곡도 콩쿠르 심사곡으로 종종 지정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영웅의 생애’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등을 보면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곡 안에서 호른의 역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호른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적시적지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호르니스트에게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은 꼭 학습해야 하는 레퍼토리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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