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④

PART ④ R. 슈트라우스 가곡의 명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2월 1일 12:00 오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④ R. 슈트라우스 가곡의 명암

대중성인가, 예술성인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연주회를 통해 본 국내 독일 가곡 연주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2014년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이하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전 세계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곳곳에서는 다양한 그의 작품들이 공연되며 지난해 바그너 탄생 200주년에 버금가는 성대하고 화려한 행사와 기획이 이어졌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한국은 잠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엔 국립오페라단이 ‘파르지팔’을 올리기라도 했지만, 올해 슈트라우스 오페라는 대한민국오페라축제 기간에 오른 ‘살로메’를 제외하면 한 편도 제대로 공연되지 못했다. 그나마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가 ‘알프스 교향곡’을 연주하고 수원시향이 4회에 걸쳐 그의 작품을 조명한 것, 서울시향이나 대구시향 등이 한두 곡씩 연주한 것이 고작이다.

국공립 단체나 재단법인 기관 소속 예술단체에서는 청중의 수준을 고려한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핑계를 댈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 원인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오케스트라가 그의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고 풍부한 경험과 뜨거운 마음으로 슈트라우스를 해석할 지휘자가 국내에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슈트라우스 전문 가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잘 부를 만한 합창단도 적으며 이를 소화해줄 만한 어쿠스틱 컨디션을 갖춘 전문 콘서트홀도 거의 없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편중된 레퍼토리에 안주하며 예술단체의 주체들이 악단과 레퍼토리 발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데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고급음악문화에 대한 지원이 지나치게 야박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기도 하다.

전문적인 기획 시스템이 필요한 현실

슈트라우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곡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올해 한국 내의 슈트라우스 가곡 리사이틀 가운데에는 주목할 만한 가수의 리사이틀도 없었고 흥행적으로 성공을 거둔 기획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우선 그의 가곡은 피아노 반주로도 연주되지만 음악의 특성상 오케스트라 반주를 할 경우에 가장 큰 효과가 발휘된다. 전국적으로 극소수의 오케스트라에서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연주했을 뿐 오케스트라들이 성악가를 따로 영입해 작곡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슈트라우스의 성악 작품들을 연주하는 콘서트에서는 가곡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췌 장면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그의 가곡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는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가곡의 분야가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슈트라우스 가곡의 비대중성은 곧 오케스트라와 오페라하우스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사실 슈트라우스의 가곡은 연주와 해석 모두 가장 어려운 수준의 작품들이다. 그렇기에 대단히 유명하거나 전문적인 가수들이 등장해야만 음악을 제대로 구현하며 객석 또한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독일어권 수준으로 부를 수 있는 국내 가수가 많지 않고 해외의 슈트라우스에 특화된 가수들을 불러오기에는 개런티가 턱없이 높다. 예를 들어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은 1회 공연에 베를린 필 2회 공연 가까운 개런티가 필요하다. 이 개런티를 낮추려면 오페라하우스에서의 공연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 콘서트 출연과 더불어 피아노 반주의 가곡 공연까지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기획으로 묶어야 한다. 사설 매니지먼트들은 경제적인 측면과 흥행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가곡 리사이틀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의 열쇠는 국공립 단체와 콘서트홀이 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올해 서울에서 슈트라우스를 기념하기 위한 두 개의 주목할 만한 가곡 연주회 시리즈가 열렸다. 지난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3회에 걸쳐 소월아트홀에서 열린 25회 한국반주협회 정기연주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 음악회’와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14일까지 5회에 걸쳐 서초동에 자리한 모차르트홀에서 열린 리더라이히 예술기획 주최의 ‘2014 독일 가곡 페스티벌’이다. 일회성 공연은 여기저기에서 열렸지만 적어도 규모 면에 있어서 이 두 공연을 중요하다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공연의 특징은 여러 가수들이 등장해 자신이 맡은 곡만 부르고 들어가는 일종의 갈라 콘서트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미 있는 기획과 정성 어린 공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형식에는 약점이 있다. 우선 가곡 리사이틀이라는 것은 한 가수의 해석관에 비친 작곡가의 시적 세계를 감상하는 것인데, 가사를 일관되게 해석하기보다는 여러 명이 등장해 노래만 부르고 가는 형식은 가곡을 감상하는 올바른 형식이 아니다. 그리고 홍보의 포인트와 인지도가 낮다 보니 관객층이 다양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한글 번역본을 구입하여 그 노래의 멜로디를 접해볼 수 있었다는 점은 작은 위안이었다.

이렇게 아카데믹한 가곡 기획이 구심점을 갖고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연주가 아니라 일반 애호가들이 표를 구매해 가곡을 감상할 수 있을 만한 인지도와 실력을 갖춘 해외의 가수들을 섭외해야 한다. 사설 매니지먼트 회사에 시장의 논리대로 맡겨놓는다면 언제까지나 한국은 가곡의 볼모지가 될 수밖에 없다. 국공립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단체들이 공연에 대한 범위를 넓히고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공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수준 높은 성악가들이 내한했을 때 하나의 공연만이 아니라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반주의 가곡 공연까지를 연계하여 소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만 발전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가곡의 가사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학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킬 만한 아티스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가곡의 세계와 가까워지게 하는 것이다. 바꿔 생각해보면 슈퍼스타급 성악가가 내한해 하루 일정의 가곡 리사이틀을 갖는다고 해서 슈트라우스 가곡의 예술성과 그 가치를 조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중장기적 측면에서 더더욱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렇게 콘서트홀·오케스트라·오페라하우스의 삼박자가 호흡을 함께하면서 음악문화 시스템과 가곡의 전문성을 정착시킨다는 청사진은 모두 예산의 규모와 기획자의 전문성에 달린 것인데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R. 슈트라우스를 노래하는 성악가들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슈트라우스가 생전에 작곡한 전체 작품을 살펴보면 성악곡의 비중이 가장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트라우스의 가곡이 다른 독일 작곡가에 비해 한국에서 는 대중에게 덜 친숙한 편이며 활발히 연주되는 작곡가는 아니다. 소프라노 정복주(전 이화여대 교수)·메조소프라노 김선정·바리톤 박흥우에게 성악가들이 말하는 슈트라우스 가곡 연주에 관해 들어봤다.

현대적 색채로 화려해진 후기 가곡

슈트라우스의 전기 작품은 슈만과 브람스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아 쉽고 친숙한 선율로 작곡됐다. 이탈리아풍의 멜로디 라인을 따라 후기낭만음악의 성향을 띠는 대표적 작품에는 ‘헌정’ ‘만령절’ 등이 있다. 그러나 그의 후기 작품을 살펴보면 조성이나 화성 등이 복잡해지면서 20세기 현대음악으로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완전한 반음계적 음악이 아닐지라도 전체적인 음악적 색채가 현대음악 쪽으로 치우쳐 있다. 슈트라우스는 특히 후기로 갈수록 오케스트라 반주 가곡을 중심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오케스트라 반주 가곡들은 오페라 아리아 못지않은 성량과 테크닉이 필요한 화려한 곡이 많은데 ‘네 개의 마지막 노래’가 대표적인 예다. 그의 가곡을 동시대 작곡가 휴고 볼프·구스타프 말러와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그들에 비해 슈트라우스는 ‘가곡’이란 장르가 가지는 본래의 내면적 사색과 성찰의 요소보다 ‘보여주기 위한 음악’으로 변형시켜 외적인 효과, 무대적인 화려함을 추구했다.

중요한 겻은 발성 테크닉과 가사 해석

슈트라우스 가곡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발성과 가사 해석이다. 슈트라우스의 가곡은 주된 음역대(테시투라)가 높아 고음 가수를 위한 곡이 많고, 음역대 전환 부분(파사조)에 주요 음들이 걸쳐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연습과 테크닉이 특히 요구된다. 또한 주로 오케스트라 반주로 작곡된 곡이 많아서 관현악 편성을 고려한 충분한 호흡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비강과 두성 울림을 극대화시킨 고도의 발성 테크닉이 요구된다. 주로 귀국 독창회나 최상의 기량을 뽐내야 하는 콩쿠르 무대의 주요 레퍼토리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슈트라우스 가곡은 후기 가곡일수록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가사의 중요성 또한 높아진다. 따라서 가사에 대한 적확한 해석 없이는 가곡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고 완벽한 연주가 불가능하다. 번역에 있어서도 단순히 시를 해석하는 것을 넘어 음악·가사·극의 결합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중이 난해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글 조지현 인턴 기자(jo@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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