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⑤

PART ⑤ R. 슈트라우스 오페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2월 1일 12:00 오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⑤ R. 슈트라우스 오페라

제작부터 수요까지, 그 험난한 과정

한국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는 명성뿐 실제 무대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 이유를 7명의 전문가에게 들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오페라는 일장일단이 있다. 손해를 예상하고 ‘감행’하거나, 긍정적으로 검토하더라도 결국엔 공연 목록에서 ‘제외’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장점과 단점들이다. 규모가 큰 오페라일수록 이러한 방식(?)은 빈번하게 드러난다.

오페라는 태생부터 흥행과 밀접하게 관계되어온 장르다. 1607년 몬테베르디의 첫 오페라 ‘오르페오’가 성공한 이래, 귀족들에게 위촉받아 탄생한 새로운 작품이 당대의 관객들과 만났고, 지속적으로 리바이벌되어왔다. 서울시오페라단 이건용 단장은 “흥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페라는 음악사에서도 독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위 ‘잘 팔리는’ 오페라는 흥행 작곡가, 관객, 작품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전제로 하는데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는 말을 건넸다. 결국 창작 시점부터 수요를 염두에 두지 않은 오페라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선 이야기에서 ‘작품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보자. 오페라는 다양한 장르 음악, 연출에 의한 극적 장치, 그것을 실행할 공간을 전제로 하는 무대예술이다. 이것은 문화를 품은 한 도시의 예술적 자원(사람·공간)과 시스템(예산·기획)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본궤도로 돌아가보자. 작곡가의 탄생과 서거를 기념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책임이나 의무가 아니며, 또 강요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케팅 방법론 차원에서 작곡가나 혹은 단체를 잘 모르는 대중에게 관심받고 주목을 끌기에 이만큼 좋은 타이밍도 없다. 단체로서는 새로운 레퍼토리, 프로덕션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다.

다만 이 기회를 취할 것이냐의 문제, 그 방법이 필요함에도 제작자의 입장에서 선택을 주저하거나 우회할 수밖에 없는 이유, 또는 나름의 시도를 강행하면서 얻은 득과 실, 그러한 현재를 목격하는 이들의 시선, 그 과정에서 모두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그너는 필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선택?

먼저 작곡가가 주 활동 무대로 삼았던 독일어권 극장과 관객 사이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이하 슈트라우스) 작품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프랑크푸르트 오퍼에서 객원 지휘자이자 전속 음악코치를 맡았고, 2009년부터 동양인으로는 처음 베를린 슈타츠오퍼 부지휘자로 발탁돼 현재 독일 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지휘자 윤호근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슈트라우스는 작품 대부분이 규모가 커서 독일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작곡가 중 하나입니다. ‘살로메’ ‘엘렉트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이 음악만 3시간 30분이 넘고, 4관 편성 오케스트라인 데다 프로덕션 비용도 많이 들죠. 독일에서도 큰 도시인 뮌헨·드레스덴·베를린 중심으로 공연되고, 그 외에 함부르크·프랑크푸르트 정도에서 공연됩니다. 이들 극장과 관객들이 선호하는 슈트라우스의 작품은 ‘장미의 기사’죠. 엘레강스하면서 살롱적이고,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시간과 늙음에 관한 이야기라 공감대를 높이 사는 편이에요.”

슈트라우스를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작곡가는 바그너다. 바그너 이후 이름을 알린 독일어권 오페라 작곡가들은 바그너의 영향권 안에 있는 동시에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그중 한 명이 문학 텍스트를 응축된 음악으로 표현한 교향시를 통해 성공을 거뒀던 슈트라우스다. 한국 관객들에겐 바그너와 슈트라우스의 작품 모두 ‘어려운 독일 오페라’로 취급되지만, 윤호근은 두 작곡가의 작품이 서로 다른 대칭점에서 균형을 갖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독일 오페라에서 바그너는 권력에 대한 질문과 함께 민족적이고 철학적인 테마를 주로 다루고 있는 반면, 슈트라우스는 인간의 늙음이나 죽음, 욕정 같은 인간적인 갈등을 주로 다뤘죠. 바그너 팬들 중에서도 균형감을 맞추거나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을 즐기려고 할 때 슈트라우스의 ‘아라벨라’나 ‘장미의 기사’를 택하죠. 바그너 애호가들은 자연스럽게 슈트라우스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오페라를 챙겨보는’ 이들이 느낀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간 온도 차는 어떨까. 국내에서 활동 중인 오페라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바그너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면, 슈트라우스는 정서적으로 풀어내야 할 특유의 세련미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그 정서 차이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슈트라우스는 한국에서 실연을 접할 기회 자체가 적다 보니 해외 음반이나 영상만으로 접하는 사람은 편견에 빠지기 쉽습니다.”(황지원)

“바그너 기념 해에 강의를 할 때는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작곡가 명성도 있고, 마니아 사이에서 ‘바그너는 필수’라 하니 초심자들은 어렵고 재미없어도 열심히 공부합니다. 반면 슈트라우스는 ‘슈트라우스는 선택’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큰 것 같아요. 음악사에서 바그너 이후, 슈트라우스까지 아는 사람이 드물고, 마니아는 더 적은 편이죠.”(이용숙)

한국에서 무대에 올릴 만한 슈트라우스 작품을 꼽아달라는 물음에 많은 이들이 ‘장미의 기사’를 택했다. 슈트라우스 초기에 나타나는 전위적인 작곡 기법으로 무조음악에 가까운 ‘살로메’나 ‘엘렉트라’ 같은 작품에 비해 소재나 음악 면에서 관객이 이해하기 용이하고 무대 규모 면에서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대본에서 모든 영감과 음악적 소재를 끌어낸 작곡가

많은 사람들이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자·연주자·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킨 것은 대본이었다. 귀에 익은 멜로디나 화려한 의상, 무대장치만으로 관객이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달리 작곡가 슈트라우스와 환상 콤비를 이룬 동시대 작가 호프만슈탈의 대본은 철학적이고 지적이다. 따라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오페라를 봤다간 머릿속이 하얘지기 십상이다. 슈트라우스‐호프만슈탈의 ‘그림자 없는 여인’ ‘아라벨라’ 같은 작품은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페라 애호가도 한두 번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작품인지라 독일어권에서도 관객 자체가 한정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다면 슈트라우스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간 ‘살로메’ ‘장미의 기사’ ‘그림자 없는 여인’ ‘아라벨라’ ‘엘렉트라’를 독일 유수의 슈타츠오퍼에 올려온 윤호근은 대번에 ‘가사’를 꼽았다.

“첫 번째도 가사, 두 번째도 가사입니다. 슈트라우스는 철저하게 대본에서 모든 영감과 음악적 소재를 끌어낸 작곡가이기에 그의 작품은 가사에서 시작해 가사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의 오페라 총보를 보면 굉장히 복잡한데도 불구하고 대사 속에 담긴 인간의 심리를 작곡가가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게오르그 숄티가 ‘장미의 기사’를 연습할 당시 슈트라우스를 찾아가 뒷부분이 너무 어렵다고 한 말에 ‘자네가 이 대사를 다 외워서 지휘할 수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닐걸세’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작곡가가 대본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죠.”

지난 5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에 도전했던 한국오페라단이 프로덕션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떠했을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기간 중 올라간 이 작품은 2008년 카를로스 바그너가 연출한 국립오페라단 ‘살로메’ 이후 첫 공연이자, 올해 유일하게 공연된 슈트라우스 오페라이다.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07년 피에르 루이지 피치 연출의 이탈리아 라 페니체 극장 프로덕션 ‘살로메’ 초청 공연을 기획했지만 마지막에 포기한 기억이 납니다. 정부 예산 없이 티켓 판매 수입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민간단체이기에, 제작자로서 관객 호응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던 것이 큰 이유였어요. 올해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을 맞이해 다시 용기를 냈지만, 솔직히 확신 없는 상황에서 공연을 올렸습니다.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지만, 거기에서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한국오페라단 ‘살로메’ 프로덕션에서 음악은 마우리치오 콜라산티와 서울필하모닉, 연출은 마우리치오 디 마티아가 맡았다. 유럽의 무대 디자인을 토대로 한국에서 무대와 의상을 제작하고, 살로메 배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자들 역시 한국인 성악가와 무용수, 연기자들로 구성됐다.

“한국인 성악가들 대부분이 이탈리아 아리아에 익숙해, 독일어 발음 공부가 필수였습니다.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면서 슈트라우스의 불협화음과 생전 경험하지 못한 박자에 출연진 중 여러 명의 포기자가 속출했어요. 가수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 모두 3개월간의 연습 기간 내내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연주자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것에 비해 듣는 사람은 그리 어렵지 않게 느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작품에 비해 수십 배로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세세하게 들려준 박 단장은 ‘살로메’ 한국 프로덕션을 마련했다는 것과 그 중심에 우리 성악가들이 있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며, 이번 경험으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올리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편성 오페라가 우리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이유

이번 취재를 통해 슈트라우스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과 그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올해 국내 클래식 음악계가 슈트라우스 작품을 조명한 방법과 정도에 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시선이 엇갈렸다. 하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아쉬움과 바람만큼은 한목소리로 모아졌다.

가장 먼저 나온 목소리는 제작자와 단체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 즉, 흥행이나 관객 동원 면에서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작품을 올리겠다는 선구자적인 모델의 필요성이었다. 과거 국립오페라단이 올린 ‘보체크’나 ‘룰루’도 당시에는 모두가 모험이라 말했지만, 결과와 관객 호응 모두 긍정적이었던 것처럼 이런 사례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오페라에 필요한 인적 자원 중 한국인 성악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가수는 충분합니다.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처럼 어려운 작품을 소화할 수 있는 우리나라 가수도 많다고 봅니다.”(윤호근)

“지난봄 ‘살로메’ 무대에 오른 박준혁(요하난), 이재욱(헤롯), 김선정(헤로디아스) 등 우리 가수들 상당수가 발성과 연기, 무대 장악력 면에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습니다.”(이용숙)

반면, 연출가와 지휘자는 아직 부재하다. 특히 난해한 독일 작품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방법은 결국 연출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작품을 잘 알고 경험이 풍부한 연출가와 지휘자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오페라 연출가나 지휘자들의 경험치가 이탈리아 오페라를 중심으로 쌓여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인적 자원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슈트라우스 작품을 6개월 이상 준비하는 해외 프로덕션 시스템과 비교할 때, 국내 오페라 프로덕션의 분침과 시침은 매우 급하게 돌아간다.

“바그너나 슈트라우스 작품은 장기 계획 아래서 작업이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 시스템에선 국공립 단체의 수장이 2~3년에 한 번씩 바뀌다 보니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작품을 배치하고, 각각의 프로덕션을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황장원)

실행의 어려움은 극장에서도 발생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케스트라 피트가 문제다. 슈트라우스나 바그너 오페라의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4관 편성.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극장에 100여 명의 인원이 들어갈 오케스트라 피트는 전무하다. 설계부터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감안하지 않은 채로 지어졌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억지로 구겨 넣거나 규모를 줄여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바그너나 슈트라우스 작품에서 오케스트라 규모를 줄이면 복잡한 패시지나 유장하게 끌어야 할 부분에서 부족한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급하게 연주하는 경우도 생기죠. 그런 상황에서 작품 본연의 충분한 감성을 제대로 살려내기란 쉽지 않습니다.”(이용숙)

이런저런 고비(?)를 넘어 공연이 오르더라도 관객에게 더 다양하게 슈트라우스를 학습하고 소비할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슈트라우스 작품은 한국어 자막이 달려 유통되는 영상물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오페라에 비해 슈트라우스 작품은 반복적인 대사와 선율이 적고, 단번에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대사가 많기에 모국어 자막 없이 오페라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집에서 볼 수 있는 오페라 영상물은 잠재된 관객을 늘리는 방법인 동시에 개별 학습 수단이 된다. 현재 수입 영상물에 한글 자막을 다는 것은 소명의식을 가진 사설 업체의 몫으로 돌려져 있다. 이에 대한 부분이 공적 자원을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대규모 오페라 작품을 자주 올리기 부담스러운 여건을 감안할 때, 그랜드오페라를 체임버 오페라 버전으로 선보이는 시도들—현재 서울시오페라단이 지속하고 있는 오페라 마티네와 같은 방법—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압도적인 오케스트라를 앙상블로 줄이는 외소함에 아리아를 다 듣지 못하는 아쉬움을 감안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의 접촉 빈도를 늘려나가는 것이 관객 개발 차원에선 무엇보다 중요하다.

취재에 도움 주신 분들(가나다순)

김학민(연출가)

박기현(한국오페라단 단장)

윤호근(베를린 슈타츠오퍼 부지휘자)

이건용(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이용숙(오페라 평론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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