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⑥

PART ⑥ 집에서 만나는 R. 슈트라우스 오페라 DVD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2월 1일 12:00 오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⑥ 집에서 만나는 R. 슈트라우스 오페라 DVD

‘엘렉트라’ 2013년 엑상프로방스 실황

순간순간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카메라워크로 ‘엘렉트라’의 뜨거움을 담아내다


▲ 에벌린 헤를리치우스(엘렉트라)/발트라우트 마이어(클리템네스트라)/
에이드리앤 피존카(크리소테미스)/미하일 페트렌코(오레스테스)/에사 페카 살로넨(지휘)/파트리스 셰로(연출)/파리 오케스트라
Bel Air Classiques BAC 110 (16:9, 2.0 PCM, DB 5.1, 110분+인터뷰 23분)

이만큼 마음을 울리는 ‘엘렉트라’는 이제까지 없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이하 슈트라우스)의 가장 극단적인 음악 실험이 이처럼 인간미 넘치는 감동의 드라마로 새롭게 태어난 데는 탁월한 영화감독이자 거장 오페라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의 공이 가장 컸다. 지난해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 최고의 화제작이자 성공작으로 평가받았던 셰로의 ‘엘렉트라’는 2013년 7월 초연 후 밀라노·뉴욕·헬싱키·바르셀로나·베를린 순회공연이 예정되어 더욱 화제를 모았고, 지난 10월 셰로가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마지막 연출작으로 세상에 남았다.

변화가 거의 없는 잿빛 무대 벽들과 푸르스름한 조명은 출구 없는 감옥에 갇힌 듯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상황을 반영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세 명의 여성 가수는 발군의 성악적 기량과 밀도 있는 연기로 극적 긴장을 최대화했다. 타이틀롤을 맡은 소프라노 에벌린 헤를리치우스의 명징한 발성과 혼을 불어넣은 연기는 숨을 멎게 할 정도다. 엘렉트라가 아버지 아가멤논의 이름을 외쳐 부르며 그의 부재에 몸부림치는 첫 장면,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발트라우트 마이어 분)에 맞서 “당신이 죽는 꼴을 보며 환호하겠다”며 실신하기 직전까지 발광하는 장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여동생 크리소테미스(에이드리앤 피존카 분)에게 함께 복수할 것을 요구하는 강렬한 대결 장면 등, 최상의 적역 여가수 세 명이 펼치는 끝없는 음악적·감정적 에너지의 분출은 1시간 50분 내내 감상자를 꼼짝 못하게 옭아맨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숨긴 채 10년 만에 집에 돌아온 오레스테스(미하일 페트렌코 분)를 엘렉트라가 알아보는 장면에서 정서적 폭발은 극한에 이른다. 2013년 6월 29일 파트리스 셰로와의 인터뷰를 담은 23분간의 보너스 영상에서 알 수 있듯, 셰로는 이제까지 연출가들이 무시하고 넘어간 늙은 하인들의 존재를 이 장면에서 새롭게 부각시켰다. 엘렉트라보다 먼저 오레스테스를 알아보고 그를 포옹하는 하인들, 엘렉트라를 향한 오레스테스의 대사 “마당의 개들도 나를 알아보는데 누이가 나를 못 알아보다니…”에 이어 “오레스테스!”를 외치는 엘렉트라의 환희에 찬 절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음악적·극적 감동의 체험이다.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는 개별 악기군의 또렷한 음색과 풍성한 양감을 동시에 살리며 터질 듯 팽창하는 극적 음악으로 감상자를 압도한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속도감도 매혹적이다. 특히 오레스테스를 통한 복수가 완성된 후 엘렉트라가 환희의 흥분 속에 자신을 잊고 춤추는 장면에서 오케스트라의 응집력은 최고조에 달해 보는 이를 절정으로 이끈다.

셰로는 세 여주인공 각자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고려했다. 크리소테미스의 인생관을 인정했기에 그를 열정 없는 멍청이로 그리지 않았고, 클리템네스트라가 굳이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를 강하고 당당한 여인으로 형상화할 이유를 찾았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섬세하고 치밀한 연출을 선보여 ‘디 벨트’지로부터 “히치콕의 스릴이 담긴 복수극”이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두려움과 놀라움을 담은 하인과 하녀들의 표정을 순간순간 클로즈업으로 포착해낸 카메라워크도 신선한 효과를 낳았다. 무대 인사 때 클로즈업된 파트리스 셰로의 마지막 모습이 그의 영화와 오페라를 사랑했던 모두에게 가슴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글 이용숙(오페라 평론가)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