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맷 로랑

천 번째 밤, 천 번째 콰지모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월 1일 12:00 오전

16년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출연한 그의 현재진행형 뮤지컬 이야기

무려 16년간 950회 이상이다. 맷 로랑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콰지모도를 연기한 햇수와 횟수다. 2012년, 뮤지컬 ‘위키드’의 젬마 릭스가 한국에 왔을 때 4년간 초록 마녀 엘파바를 연기한 그녀의 피부가 분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초록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맷 로랑은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꼽추 분장을 하고 허리를 굽힌 채 콰지모도의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 음악 활동도 병행하고 있지만, 그가 곧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역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맷 로랑은 1998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초연된 이듬해인 1999년부터 합류해 현재까지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캐나다·러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무대에서 콰지모도를 연기하고 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오리지널 팀은 2014년 12월, 한국에서 두 번째 세계 투어를 시작했고, 그는 곧 1,000번째 무대에 오를 것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뮤지컬의 고전으로 볼 수 있다. 진중하고 시적인 매력의 음악과 가사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와는 다른 독자적인 형식을 구축했다. 은유적으로 표현된 무대에 노래·연기를 하는 배우와 전문 댄서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오페라에 가까운 ‘송스루(Song-through)’ 형식의 음악과 맨손으로 건물이나 담장을 뛰어넘는 야마카시 기법의 동작이 한 무대에 어우러진다. 집시 에스메랄다에게 사랑을 느끼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주교 프롤로, 근위대장 푀뷔스는 각기 다른 인간상으로 15세기 파리의 사회적 혼란을 그린다. 경주를 시작으로 대구·대전·서울·부산으로 공연을 이어갈 맷 로랑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적은 결단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래도 16년간 힘들었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 같아요.

16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무대를 꼽으라면 1999년 1월, 저의 첫 공연 때일 것 같네요. 파리 팔레 데 콩그레에서 콰지모도 역으로 무대에 처음 섰을 때 연습 시간이 부족해 예민한 상태였거든요. 초연 배우인 가로우가 강한 인상을 남겨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던 상황이기도 했고요. 배역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고,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어요. 제가 연기하는 콰지모도를 스스로 즐길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 뒤로 천천히 발전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콰지모도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들을 합니다.

콰지모도는 절름발이에 귀가 거의 들리지 않고, 한쪽 눈이 안 보이는 꼽추이지만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외적으로, 또 내적으로 당신은 콰지모도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나요.

일단 콰지모도가 말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노래를 할 수 있으니까요!(웃음) 무대에서 가끔 들리는 소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누군가 저를 불렀을 때 바로 돌아서지 않으려고 해요. 눈은 분장 팀에서 알아서 해주니 걱정이 없죠.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콰지모도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성당 밖으로 나온 적이 없고, 에스메랄다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사랑에 빠졌기에 그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진실하게 그를 표현하는 것이 저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자 매일 밤 공연의 목표입니다.

30대에 처음 맡은 역할을 40대가 되어 연기하며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분명 나이를 먹으며 더 많이, 그리고 넓게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 듯합니다. 처음 콰지모도를 연기할 때 그를 완전히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더라고요. 40대가 되어 새롭게 느낀 것은 콰지모도가 생각보다 로맨틱한 인물이라는 거예요.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콰지모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멋진 남자가 아닐까요.

당신의 머릿속에 강하게 기억되어 있는 공연이 있나요?

부모님이 처음으로 파리 팔레 데 콩그레에 와서 공연을 보았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어요. 스스로 평가하기에 그날의 무대는 최고였거든요. 부모님은 당신들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고, 그날의 기억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를 지탱해줄 만큼 큰 위로가 되었어요.

당신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이지요. 당신은 어떤 아버지인가요?

스물세 살 된 큰아들과 다섯 살짜리 막내아들이 있어요. 스스로 좋은 아버지라 자부합니다(웃음). 쉬는 날 아이들과 함께 체스를 두거나 영화 ‘스타워즈’를 봐요. 얼마 전에는 막내아들에게 캐나다 인기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줬죠. 그 아이는 저를 닮아서인지 음악에 소질이 있어요. 피아노나 우쿨렐레 같은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죠. 해외 공연이 많으니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깁니다.

한국 공연은 올해로 10주년이 되었네요. 한국의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많은 한국 팬들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으니 사실 따로 전할 이야기는 없어요(웃음). 올 때마다 환영의 편지와 선물을 무척 많이 보내주세요. 매번 감사한 마음이죠. 투어 공연 중에는 개인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한국에 매우 여러 번 왔음에도 다른 좋은 공연을 많이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훌륭한 뮤지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다음에는 공연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방문해 좋은 작품도 많이 보고 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사진 STUDIO2YM(이유미)·마스트 엔터테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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