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소리의 속살

김효영의 생황 특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월 1일 12:00 오전

‘세종실록’을 보면 “길고 짧은 여러 죽관이 가지런하지 않게 한 개의 바가지 속에 꽂혀 있다. 마치 봄볕에 생물이 돋아나는 형상을 상징하며 그것이 물건을 생(生)하는 뜻이 있기에 이를 생(笙)이라 부르며, 바가지를 몸으로 삼은 악기이기 때문이 이를 포(匏)라 부른다”고 적혀 있다. 생황은 봉황이 날개를 접은 모양이라고 해서 ‘봉생(鳳笙)’이라고도 하며 ‘천상의 소리’로 불리는 신비로운 음색을 지닌 악기로 전해진다.

생황의 역사는 곧 전통음악과 악기가 겪은 수난사였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은 생황의 맥을 끊어버렸다. 조선 후기에 그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김홍도(1745~1806)의 ‘포의풍류도’나 신윤복(1758~?)의 ‘연당의 여인’과 같은 풍속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나마 당겨진 불씨 또한 사그라들었다. 이러한 생황이 지금 젊은 연주자들에 의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뿌리에 대한 ‘복원’과 외연으로의 ‘창작’ 사이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생황은 관대에 들어 있는 금속제 떨림판을 울려 소리를 낸다. 대금·피리·단소 등의 관악기들과 달리 내고 마시는 숨에서 모두 소리를 낸다는 점이 특이하다. 두 개 이상의 음을 동시에 울려 ‘화음’이 가능하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포(바가지)에 꽂힌 죽관 수에 따라 음색과 음량은 물론이고 연주법도 제각각, 그리고 연주곡의 범위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생황’이라고 싸잡아 부르기보다 정확히는 ‘17관 생황’ ‘24관 생황’ ‘37관 생황’이라 불러야 한다.

17관 생황은 전통음악에 주로 사용되며 ‘어제’를 잇는다. 개량을 거친 24관·37관 생황은 클래식 음악·현대음악·탱고·재즈 등과 만나며 ‘내일’을 일구고 있다. 김효영은 그중 대표적인 연주자로, 특히 24관 생황을 주로 다루며, 37관 생황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전통음악은 물론이고, 서울시교향악단이 선보인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슈’로 인해 날로 인기를 얻고 있는 생황의 곳곳을 살펴보는 건 국내에서 ‘객석’이 처음일 것이다. 그만큼 악기의 구조 또한 베일에 가려져 음색만큼이나 ‘신비화’되어 있다. 김효영도 “음색의 매력만큼 악기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라며 인터뷰 현장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국내에서 생황은 보통 피리 주자들이 겸한다. 김효영 또한 피리를 전공한 뒤 생황을 만났기에 하루하루가 배움과 가능성을 살피는 시간으로 채워진단다. 그럼 이제 김효영(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 안내하는 생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상원사 범종의 비천상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위치한 상원사에는 725년, 성덕왕 때에 제작된 범종(국보 제36호)이 있다. 범종의 중앙에는 생황과 수공후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이 새겨져 있다. 오랜 시간을 머금은 악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성이 가능한 악기 생황은 ‘화성’이 가능한 악기다. 두 개의 지공 혹은 두 개의 키를 누르면 두 개의 음이 ‘동시에’ 난다. 풍금·아코디언·반도네온 등과 같은 원리다. “자, 한번 보여드릴게요”라며 생황을 부는 김효영. 하나, 둘, 셋, 넷. 각개의 음들이 쌓인다. 다양한 음색이 무지개처럼 겹쳐진다. 생황의 음색이 신비롭다고 하는 평에 공감이 가는 순간이다. 여러 개의 음을 낼 때는 하나의 음을 낼 때와 달리 숨도 그만큼 많이 들어간다.

오죽 관의 재질은 오죽(烏竹)이다. 오죽은 문자 그대로 까마귀(烏)의 색깔처럼 검은색 대나무(竹)이다. 관의 안을 파서 만든다.

꼭 오죽만 써야 하나요?

“생황의 재료는 꼭 오죽만 써야 하나요?”라고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김효영은 중국에서 참나무와 상아로 만든 것도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이 특별 제작한 악기들이었다고. 대부분 오죽을 쓴다고 한다.

생황의 주민등록증(?) 생황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고 중국에서 생산된다. 김효영의 37관 생황은 중국 텐진에서 제작한 것이다. 옆의 관에는 제작 번호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감싸는 손 “한번 들어보실래요?” 잘 자란 식물이 있는 화분 같다. 그 소리는 부드럽지만 연주자의 입술과 손이 닿는 곳은 차가운 쇠다. “저는 쇠 알레르기가 있어요. 악기 때문에 손이 엉망입니다.” 김효영의 손은 거칠었다. 국악기를 이루는 여덟 가지 재료들을 ‘팔음(八音)’이라 일컫는다. 금(金)·석(石)·사(絲)·죽(竹)·포(匏)·토(土)·혁(革)·목(木)으로, 쇠·돌·실·대나무·박·흙·가죽·나무를 뜻한다. 생황은 박·바가지를 뜻하는 포(匏)에 속한다. “관을 담고 있는 바가지를 지금은 쇠로 만들지만 과거에는 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개 악기가 차가울 때는 사진에 보이는 마개를 열고 온수를 붓는다. 그러면 안에 나 있는 골에 온수가 채워지고 음색이 한결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연주자의 손에 온기가 전해진다. 생황의 따뜻한 마음(?)이 연주자에게 전해지는 순간이다.

17관 생황 ‘생황’이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생황은 대부분 17관 생황이다. 길이가 다른 관들은 봄볕에 돋아나는 초목을 상징하기도 하며, 봉황의 날개에 비유되기도 한다. 관이 빽빽이 꽂혀 있는 24관이나 37관과 달리 중간이 비어 있다. 마치 대숲 같다. 궁중음악 ‘수룡음’ ‘염양춘’은 단소와 함께 하는 17관 생황의 매력을 흠뻑 맛볼 수 있는 곡이다. 이 연주 형식은 일명 ‘생소병주(笙簫竝奏)’라고 일컫는다.

분주한 손가락 생황은 지공과 키를 막고, 누르기보다는 부드럽게 감싸는 악기다. 연주자의 손가락은 ‘1인 다역’이다. 예를 들어, 오른손의 둘째 손가락은 3~4개의 지공을 동시에 막기도 한다. 보통 손가락 끝으로 지공을 막거나 누르는 다른 관악기와 달리 손가락 마디까지도 사용한다. 사진 속 표시된 지공은 손가락의 마디로 막는다. 때로는 손가락 하나로 두 개의 지공을 막고 키까지 누르는 묘기도 감수해야 한다.

37관 생황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슈’는 서울시교향악단만의 인기 레퍼토리다. ‘슈’의 협연을 매번 담당하는 우웨이가 사용하는 생황은 37관 생황이다. 김효영은 37관 생황을 2010년에 처음 손에 쥐었다. 중국에서 직접 구매한 것이다. “37관 생황은 주문 후 제작하는 데 1년 정도 걸릴 때도 있어요. 중국에 숨은 일인자가 있기도 하고요. 공장에서 제작하는 것은 신속히 구할 수 있지만 뭔가 부족해요.” ‘개량’을 확실히 거친 37관 생황은 일단 빠른 스케일이 가능하다. 악기의 체급만큼이나 음량 또한 크다. 그만큼 들고 나오는 숨도 빠르고, 많아야 한다.

지금도 37관 생황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란다. 김효영은 2011년 우웨이의 스승인 상하이음악학원의 라오스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2014년 여름에는 파리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우웨이와 만나 많은 교류를 나눴다.

생황의 머리 위에서 본 생황은 다연발총의 총구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이 위로 소리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닙니다. 관 속은 막혀 있습니다. 소리는 포(바가지)에 꽂혀 있는 떨판(황엽)에서 나요.”

주법은 진화한다 “가능성이 무한한 악기예요.” 생황은 현대음악에도 많이 쓰인다. 때로는 그 독특한 생김새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어 새로운 주법을 낳기도 한다고. “팬플루트를 불 때처럼 죽관 위에 바람을 세게 불어넣기도 합니다. 물론 특정 곡에서만 쓰는 특수 주법이에요.” 

황엽 관대 밑 부분에는 쇠붙이 떨림판이 있다. 이파리를 뜻하는 ‘엽(葉)’ 자를 써서 황엽(篁葉)이라고 하며, 흔히 ‘떨판’이라고도 한다. 재질은 동(銅)으로, 구리를 뜻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황엽을 울려 소리가 난다. 2014년 7월호 ‘악기 탐구 시리즈’에서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악기가 소개된 적이 있다. 반도네온도 이와 비슷한 리드를 몸 안에 수십 개를 숨기고 있었다.

황엽 교체·청소 밀랍❶으로 황엽을 관대에 고정시킨다. 청소 시 인두로 밀랍을 녹여 황엽을 떼어낸 뒤 관을 청소한다. “생황은 숨을 불어넣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면서 소리 내는 악기입니다. 그래서 관대의 위생은 필수예요.” 조립 시에는 황엽을 놓고 밀랍을 인두로 녹여 고정시킨다.

붉은 점의 비밀 붉은 점들은 음정을 잡아주는 무게 추이다. 이 또한 인두로 녹여 아주 조금씩 붙이거나 덜어낸다. 무게가 많아질수록 황엽의 음정은 낮아지고, 적을수록 높아진다. 이 작업을 할 때는 정확한 음정을 위해 튜너를 사용한다. “옆에 보이는 이 돌을 물과 희석해 동판에 곱게 간 뒤에 황엽에 얇게 바릅니다. 그러면 소리가 더 고와져요.” 

생황의 키 생황은 진화한다. 몸체에 부착된 키는 개량의 증거다. 키의 원리는 클라리넷·오보에와 비슷하다. 그래서 키를 수리할 때는 클라리넷·오보에와 같은 목관악기 전문점을 찾기도 한다.

1인 9역 열 개의 손가락보다 훨씬 많은 지공과 키들. ‘악기 탐구 시리즈’에서 관악기를 취재하다 보면 늘 묻는 것이 있다. “가장 많은 지공과 키를 담당하는 손가락은 무엇인가요?” 김효영이 엄지라고 답한다. 엄지는 아홉 개의 키와 지공을 번갈아 누른다. 1인 9역인 셈이다.

생황을 배우고 싶다면 생황은 초보자용과 전공자용을 크게 나누지 않는다. 악기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 17관·24관·37관 중에서 24관을 일반인이 많이 배운다. 연주할 수 있는 곡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악기 가격은 천차만별. 인터넷 쇼핑몰에서 30만 원에 구입할 수 있는 17관 생황부터 중국에서 직접 구매해야 하는 500만 원 이상의 37관 생황까지 다양하다. “전공자들은 좋은 악기를 소유하기 위해 중국 내에 루트를 뚫기도 합니다.” 김효영의 37관 생황은 중국에서 직접 공수한 것이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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