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윤 마스터클래스 현장

영웅의 꿈을 공유하다 지난 1월, 조금 특별한 마스터클래스에서 마주친 그들의 꿈과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사무엘 윤 마스터클래스 현장

영웅의 꿈을 공유하다  

지난 1월, 조금 특별한 마스터클래스에서 마주친 그들의 꿈과 음악

어느날 누군가 내게 선생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지금 시대에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전혀 받지 않고 성장한 사람은 없을 터. 하지만 성년이 되고, 각자의 자리에서 프로로 살아가며 ‘선생’ 혹은 ‘스승’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아무도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면, 글쎄… 그는 자신의 현재를 다시, 달리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철없던 시절, 나의 대답은 “선생으로 존경할 만한 이가 없다”라는 의미가 짙었다. 하지만 사무엘 윤과 이야기를 나눈 지금 누군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감동을 느끼는 순간, 모두가 스승이다”라고 힘주어 답하고 싶다.

그가 세계 각지를 찾는, 무대 이상의 이유

지난 1월에 있었던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마스터클래스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그가 ‘객석’과 만난 2013년을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해 5월호 ‘객석’을 펼쳐보자. 커버스토리 주인공으로 나선 사무엘 윤의 인터뷰 기사 말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사무엘 윤은 자신이 베를린·파리·밀라노·바이로이트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세계 각지를 찾을 때에는 ‘무대’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방문할 도시가 정해지면 그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연락해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다 불러라’ 전한다. 도시에 도착하면, 수십 명의 음악학도들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매번 실패를 맛보는, 어려서부터 늘 잘해왔지만 막상 큰 어려움이 닥치자 맞서 싸울 힘이 없는… 여러 아픔의 유학생들이 모여 그를 기다린다. 사무엘 윤은 그들의 노래를 들어주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주고, 무엇보다 그 아픔과 희망, 꿈을 들어준다. 심지어 오페라극장 분장실에까지 학생들이 찾아와 노래를 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사무엘 윤 자신도 음악 앞에 좌절하고 주저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시간을 모두 건너왔기에 ‘받은 만큼 다시 돌려줘야 한다’라는 스스로의 원칙대로 공연을 위해 방문하는 곳마다 그가 도울 수 있는 유학생들을 만나왔다. 무대와 학생에 대한 그의 비중은 50 대 50이다. 그 균형이 맞춰질 때 그는 무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곤 한다.

당시 인터뷰를 담당한 기자는 이 얘기가 기사화되면 가는 도시마다 수십이 아닌 수백의 학생들이 찾아올지도 모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사무엘 윤에게 건넸다.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5년, 사무엘 윤은 한국에서 조금 특별한 마스터클래스를 마련했다.

꿈과 끈기, 음악에 대한 성실함으로!

사무엘 윤은 이번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선정된 한 명에게 독일 쾰른 오퍼의 오펀 스튜디오 2015/2016 시즌에 1년간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직접 마련했다. 그동안 이 특전은 호주오페라재단이 주최하는 콩쿠르에서 선발된 한 명을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최근 이 재단이 오펀 스튜디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면서 사라질 뻔했던 자리를 사무엘 윤이 쾰른 오퍼 극장장을 설득하고, 일신방직 김영호 회장의 후원을 통해 한국 성악도를 위한 기회로 살려냈다.

독일의 각 도시의 오페라극장마다 운영하고 있는 오펀 스튜디오는 일종의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형식상으론 ‘취업’을 하는 것이지만 내용상으론 ‘훈련’의 개념이 크다. 성공이 보장되는 스타 시스템이 아닌, 이를테면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 장그래의 생활과 비슷하달까. 쾰른 오펀 스튜디오는 매년 각 파트별로 한 명씩 선발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테너만 예외적으로 두 명을 뽑고 있는데, 어느 파트든 동양인이 입단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오펀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일정한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어린이 오페라 무대에 ‘투입’된다. 어린이 오페라라고 해서 쉽게 보면 안 된다. 독일의 어린이 오페라는 성인물과 달리 이탈리아어 아리아까지 모두 독일어로 부르고, 독일어 대사 비중도 높다. 오펀 스튜디오 계약은 1년 단위로 연장해 최대 2년까지 가능한데, 기간 중 실력이 좋고 운까지 좋으면 일반 오페라의 단역 기회를 얻기도 한다.

“오펀 스튜디오에 있는 동안 단역만 맡던 제게 처음 주어진 조역이 ‘피가로의 결혼’에서 정원사 안토니오 역이었어요. 그때 주연을 한다는 심정으로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무대에 섰죠. 공연이 끝난 뒤 극장장, 캐스팅 매니저가 제 앞에 오더니 ‘사무엘 윤이 이렇게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며 칭찬했어요.”

이러한 인턴십 과정은 현재 유럽 오페라극장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정단원이 되기 위한 필수 코스가 됐다. 사무엘 윤 역시 쾰른 오펀 스튜디오를 거쳐 정단원으로 발탁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검증받고 작은 기회를 통해 인정받는 시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성실하게 과정을 통과하며 끈기를 키우고, 자신의 음악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기본기를 갈고닦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7일과 9일,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일신홀에서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현재 유럽의 주요 오페라 무대에 서서 호감과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며 활약하는 그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갖는 첫 마스터클래스였기에 사람들의 관심과 궁금증도 컸다.

국내 각 대학 음대 교수들로부터 추천받은 학생 가운데 음원 및 동영상을 통한 사전 심사를 통해 선정된 대상자는 소프라노 세 명, 테너 다섯 명, 바리톤 네 명, 베이스 한 명까지 총 13명이다. 파트별로 최소 한 명씩 자리했고, 아쉽게도 메조소프라노는 없었다. 처음에 생각한 최종 대상자는 여덟 명이었지만, 동영상과 음원 심사를 하면서 좀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기회를 주자는 취지를 살려 다섯 명이 더 추가됐다.

참석한 학생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서울대·한양대·연세대·경희대·영남대·한세대·전남대·창원대에 재학중인 학생이 대부분이었고, 연령은 만 23세부터 31세까지로 평균 나이 20대 중반이었다. 마스터클래스는 사전 공지한 작품 중 각자 세 곡씩 골라 이 중 한 곡을 부르고 그에 대해 사무엘 윤이 피드백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경우에 따라 한 곡 이상 부르는 학생도 종종 있었다. 학생들이 택한 작품을 살펴보면 푸치니·베르디·도니체티 오페라 아리아 비중이 높았고, 모차르트를 택한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무엘 윤은 학생들의 상황에 따라 세세한 부분을 주문하면서 본인의 음역대가 아닌 아리아들도 즉석에서 부르곤 했다. 그의 노래가 간간이 울려 퍼질 때면 참관객이며 그 곁에 선 학생들까지 마스터클래스보다는 리사이틀에 온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의욕과잉’인 학생을 가라앉히고, ‘자신감 결여’인 학생에게는 힘을 북돋아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배역과 작품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자세, 발성뿐 아니라 표정 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인별 맞춤 처방(?)이 이어졌다.

지난 세월 그 스스로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무대에 오르내리며 체득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내용 가운데 많은 학생들에게 힘주어 말한 생생한 경험담, 마스터클래스 현장에서 다 전하지 못한 그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사무엘 윤의 지상 레슨

100번 듣고 10번 감동받아 1번 불러라

많은 학생이 고음이나 발성을 중심으로 연습만 열심히 합니다. 자신이 부르는 아리아를 그 누구로부터도 감동받은 적이 없다면,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부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학교 1학년 때, 명동 롯데백화점 인근에 음반 매장이 있었는데 쳇 베이커를 정말 좋아했던 저는 학교가 끝나면 늘 그곳으로 달려갔죠. 이쪽은 재즈 코너, 저쪽은 클래식 음악 코너로 나뉘어 있었는데, 저쪽으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제가 성악 전공생인 걸 알게 된 가게 주인아저씨가 선물로 준 음반이 헤르만 프라이의 필립스 에디션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들은 클래식 음반이었어요.

처음엔 별생각 없이 세검정에서 학교까지 통학하는 동안 버스 안에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음반에 실린 곡 중 아는 곡은 하나도 없었죠. 그러다 한두 곡에 끌리기 시작했고, ‘성악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으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듣다 보니 나중엔 음반에 실린 15곡이 다 좋아졌어요. 그러는 동안 꿈이 생기고,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졸업 후 유학 간 이탈리아에서도 레슨 때마다 리트를 부르곤 했어요. 이탈리아에서 독일 가곡이라니… 나중엔 레슨 선생님이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라며, 리트를 봐주셨어요. 그러다 당시 이탈리아와 독일 간 문화 교류 차원에서 이뤄진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게 됐는데 거기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중 하나를 불렀어요. 노래가 다 끝난 뒤 한 독일 교수님이 제게 건넨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자네 헤르만 프라이 같았어.”

제가 헤르만 프라이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받았기에 그렇게 부를 수 있었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부르는 아리아를 그 누구로부터도 감동받은 적이 없다면 다시 듣고 또 듣고, 새로 찾아서 들어보세요. 감동받지 못한 채 노래하는 사람은 그저 공부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와는 반대로 하는 편이죠. 발성과 고음에만 관심이 있으니 피아노 앞에서 연습만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감동이 없으면 언젠가 브레이크가 걸리게 돼요. 공부하는 수준 그 이상을 넘기가 쉽지 않은 거죠.

매 순간 감동의 소스를 찾아라

언제든지 감동의 소스를 찾도록 온몸의 감각을 깨운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달리 말해, 평소의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학생들을 만나 노래를 들어보면, 그 가운데 개인의 평소 생활과 패턴이 느껴져요. 이건 무대에서 부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표현하는 에너지는 평소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겉모습만 보면 비슷해 보이는 성악가가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데 왜 다르게 들릴까요? 성악은 태어나면서 가진 것보다 경험한 것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노래가 달라져요. 그래서 모든 만남이 소중한 것이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제가 악역을 잘하는 것도 평소 선과 악을 구별하는 소스를 충실히 체득해뒀기 때문이에요. 그럼 어디에서 감동의 소스를 얻느냐고요? 저는 모든 것에서 감동을 느낍니다. 언젠가 세비야에서 극장장의 초대로 플라멩코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거기에서 머리부터 손톱 끝까지 모든 감각을 사용하는 남자 무용수를 봤어요. 그는 춤을 췄지만 저는 그게 노래처럼 들렸어요. 그에게 받은 감동의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내 안에 담아뒀죠. 이런 직간접 경험이 쌓이면 무대에서도 자연스럽게 내보낼 수 있게 돼요. 제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설 수 있는 것도 단순히 성대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한 작품 안에서 넓은 음역을 넘나들면서 광대한 편성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할 때, 성대만 가지고는 절대로 되지 않죠. 평소 체득해온 경험에서 비롯된 캐릭터, 즉 색깔로 접근해야 해낼 수 있어요.

건강한 라인을 만들어라

라인 위에 내 음악이, 내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외침은 없어지는 울림일 뿐이고, 거기엔 감정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관객에게 전달되기는 힘들어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오페라 무대에 함께 서는 가수들을 보면 소프라노든 베이스든 이미 라인으로 부르고 있어요. 현재 톱 레벨 성악가 모두 마찬가지예요. 그 옛날 이탈리아에선 도시마다 있는 학교에서 누구는 허리를 써서 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고, 다른 이는 또 이런저런 방법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학파처럼 있었다는데, 비디오 시대인 지금은 그게 의미가 없어요. 그런 방법으로는 다 소화할 수가 없죠. 가장 건강한 음악은 소리가 먼저 나가기보다, 호흡에 내 소리를 싣는 겁니다. 내 호흡에 라인이 가고 그 라인 위에 올려진 게 모음이고 자음이어야 해요. 그래야 건강한 라인을 펼칠 수 있고, 듣는 사람도 깨끗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많은 학생이 연습실에서 들리는 소리만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걸 봅니다. 그냥 감으로만 느끼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표현하는지 거울을 보고 연습하면서 표정도 만들고, 스스로 어떤 얼굴인지, 자신의 음악은 어떠한지 객관적으로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사무엘 윤이 학생들의 노래, 그리고 꿈을 듣기 시작한 지 8년이 지났다. 레슨비는 따로 없다. 무대에서 필요한 돈을 받거니와, ‘받은 만큼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에 의해서다. 학생들은 레슨비 대신 사무엘 윤에게 자신의 고민과 소망이 적힌 종이를 쥐여준다. 사무엘 윤은 그것을 자신의 수첩에 하나하나 옮겨 적고 틈이 날 때마다 들춰보고 떠올리며 기억한다. 학생들도 사무엘 윤의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기억한다. 이러한 순환 고리는 사무엘 윤을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이 되고 있다.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최종 선발한 1인은 바리톤 최인식 씨다. 2월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는 그는 오는 9월부터 쾰른 오퍼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시작하게 된다. 사무엘 윤은 그의 모습에서 실력뿐 아니라 음악에 접근하는 자세와 성실함에 큰 점수를 줬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자기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것. 함께 지켜본 이들에게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하게 될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음악이 더욱 깊고 넓어져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울림으로 되돌아오길 기대해본다.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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