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세이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특별한 만남 ‘음’과 ‘언어’로 통하다

일본·미국·스위스에서 1년간 진행된 클래식 음악에 대한 프로젝트 대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오자와 세이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특별한 만남

‘음’과 ‘언어’로 통하다

오자와 세이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특별한 만남 ‘음’과 ‘언어’로 통하다

지난 1월 14일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창단 50주년 기념 콘서트에 참여한 배우 존 말코비치는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음악을 사랑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피아노 협주곡에 맞춰 소설 ‘영웅과 무덤’ 중 ‘장님에 대한 보고서’를 낭독하는 그의 목소리는 저음부의 선율이 되어 하나의 음악을 완성했다.

도서출판 비채에서 출간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도 시종일관 자신이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책을 들여다보면 (이 책뿐만 아니라 하루키의 대부분의 책을 들여다보면) 그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췄으며, 경의의 태도로 음악과 예술을 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오자와 세이지와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이지의 지휘 역사를 되짚는 과정을 통해 흩어진 조각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이 책은 하루키가 묻고 세이지가 답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음악가인 세이지와 비음악가인 하루키 사이에는 분명 벽이 존재하지만 둘의 대화는 매우 솔직해 ‘공감’이라는 통로를 만든다. 하루키와 세이지는 대부분 음반을 틀어놓은 채 대화를 이어간다. 근 50년간 발매된 레코드를 통달한 이가 아니라면, 그들이 듣는 음반을 찾아 들으며 읽는 것이 책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일본에서는 책에 언급된 곡을 수록한 음반을 발매했는데, 아쉽게도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았다) 360페이지에 달하는 두 거장의 대담을 세 가지 키워드로 짧게 엮어봤다.

카라얀과 번스타인에 대해 말하다

하루키와 세이지는 베토벤 협주곡 3번을 글렌 굴드 협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베를린 필 녹음과 글렌 굴드 협연, 레너드 번스타인/컬럼비아 오케스트라 녹음으로 비교하며 듣는다. 하루키는 빈에서 카라얀을 사사하고 뉴욕에서 번스타인의 부지휘자로 일한 세이지의 스토리를 심도 있게 이끌고, 세이지는 느꼈던 바를 꾸밈없이 이야기한다.

세이지 카라얀 선생은 베토벤의 음악이란 게 이미 확고하게 자기 안에 뿌리를 내린 상태라, 초장부터 독일적이라고 할지, 틀이 딱 잡힌 심포니란 말이죠. 게다가 카라얀 선생은 굴드의 음악에 섬세하게 맞춰줄 마음이 아예 없고.

하루키 카라얀은 자기 음악을 확실하게 하면서 남은 부분은 네가 적당히 알아서 해라, 하는 식이죠. 그 때문에 피아노 독주부라든지 카덴차에선 굴드가 그런대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내거든요. 하지만 그 앞뒤가 어째 살짝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세이지 그렇지만 카라얀 선생은 그런 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지 않나요?

하루키 그렇죠. 완전히 자기 세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굴드도 처음부터 그 부분은 포기하고 자기 페이스로 연주하고 있고 말이죠. 카라얀이 수직 방향으로 음악을 만드는 옆에서 굴드는 수평 방향으로 시선을 준다고 할지.

세이지 그나저나 이렇게 들어보니 재미있는데요. 협주곡인데 이 정도로 솔리스트 생각을 안 하면서 심포니로 당당히 연주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하루키 이번에 들을 건 같은 베토벤 협주곡 3번인데, 굴드와 번스타인, 뉴욕 필 단원을 중심으로 편성된 컬럼비아 오케스트라의 녹음입니다.

세이지 이쪽이 훨씬 글렌답군요. 아까보다 훨씬 편하고 여유 있어요. 그렇지만 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어째 카라얀 선생과 번스타인의 비교 같아지는데, 디렉션이란 말이 있죠. 방향성이에요. 그러니까 음악의 방향성. 그게 카라얀 선생의 경우엔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단 말이죠. 긴 프레이즈를 만들어나가는 능력. 그리고 그런 걸 우리에게도 가르쳐줬어요. 그에 비해 레니는 천재 기질이라고 할지, 천성적으로 프레이즈를 만드는 능력은 있지만, 자기 의사로, 의도적으로 그런 걸 만들어가진 않거든. 카라얀 선생은 확고한 의사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집중해서 그걸 합니다. 카라얀 선생은 경우에 따라 미세한 앙상블을 희생하더라도 그쪽을 우선하고 말이죠.(세이지는 번스타인을 레니라고 부른다)

하루키 번스타인은 그런 부분에 관해 별로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본능으로, 몸으로 해버린다는 말씀이군요.

말러 시대의 개막을 지켜보다

번스타인이 뉴욕 필과 말러의 음악을 ‘만들어가던’ 1960년대 초, 세이지는 부지휘자로서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세이지는 당시 영어가 서툴러 번스타인의 ‘음악’은 메모했지만 ‘말’은 놓치기 일쑤였다고 고백한다.

하루키 말러를 처음 듣기 시작했을 때 이 사람은 혹시 작곡하는 법을 근본적으로 잘못 아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게 점점 외려 쾌감으로 다가온단 말이죠. 마지막에 카타르시스 같은 걸 확실하게 얻는데, 하지만 중간 과정은 흐지부지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세이지 말러의 음악은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또 실제로 어렵지만, 내용을 확실하게 읽어나가면, 일단 감정만 실리고 나면, 그렇게 복잡하게 뒤엉킨,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음악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저 그게 몇 개씩 겹쳐서 온갖 요소가 동시에 나오고 하니까 결과적으로 복잡하게 들리는 거죠.

하루키 전혀 상관없는 모티프가, 경우에 따라선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모티프가, 동시 진행으로 나오고 그러죠. 거의 대등하게.

세이지 그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근접하게 진행되고 하니까 난해하게 들리는 거예요.

하루키 196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일반적인 음악 팬이 말러를 듣는 일은 별로 없었죠?

세이지 거의 없었어요. 그런 때 레니는 끈덕지게 말러를 연주한 거예요.

하루키 오케스트라가 실제로 말러를 연주하는 걸 들어보고 어떠셨는지요?

세이지 아 참, 충격이었어요. 동시에 번스타인이 이런 음악을 말 그대로 ‘개척하는’ 현장에 있다는 게 참 행복했고.

하루키 말러는 사후 반세기쯤 지나 기적적으로 부흥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체 어떤 원인이었을까요?

세이지 내 생각엔 오케스트라가 실제로 연주해보고 이거 재미있는걸, 하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게 말러 부흥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게 아닐까요? 오케스트라가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해서, 그래서 앞 다퉈서 말러를 연주하게 된 거예요. 특히 미국에선 말러를 못하면 오케스트라가 아니란 풍조까지 생겼죠. 세상 사람들이 말러에 관심을 갖도록 레니가 애를 상당히 많이 썼어요. 레니는 자기가 작곡가이기도 하니까 ‘이 부분은 그냥 이렇게 해라. 다른 부분은 생각하지마라’ 하는 지시를 연주자한테 내릴 수 있었거든. 좌우지간 자기 파트에 전념해라. 그렇게 연주하면 결과적으로 듣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게 나오는 거예요.

음악이든 글이든 내재된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하루키는 글 쓰는 법을 음악에서 배웠다고 털어놓는다. 음악에서 배운 리듬감을 단어의 조합, 문장의 조합, 문단의 조합, 문장부호의 조합, 톤의 조합에 녹여내 읽는 이를 앞으로, 앞으로 보내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세이지의 ‘음’과 자신의 ‘언어’가 같을 거라는 하루키의 발상은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하루키 스코어(악보)란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 번역을 해서 매일 영어로 된 책을 읽고 그걸 일본어로 옮기는데, 가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부닥칠 때가 있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팔짱을 끼고 몇 시간씩 그 문장 몇 줄을 노려본단 말이죠. 그렇게 해서 막연히 알게 될 때가 있는가 하면 그래도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제 생각엔 그런 ‘꼼짝 않고 노려보는’ 시간은 언뜻 보면 낭비 같지만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것 같거든요. 스코어를 읽는 것도 혹시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이지 어려운 스코어는 그런 게 비교적 많죠. 그렇지만 음, 이건 말하자면 직업에 관한 내막 같은 이야기인데, 악보엔 오선밖에 없단 말이죠. 그리고 거기에 적힌 음표 자체는 어려운 게 전혀 없어요. 단순한 가타카나, 히라가나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이어지다 보면 이야기가 점점 어려워지거든. 간단한 단어는 읽어도 그게 조합돼서 복잡한 문장을 이루면 쉽게 이해할 수 없어져요. 뭐가 쓰여 있는지 알려면 어느 정도 지식이 필요하단 말이죠. 그거하고 마찬가지인데, 음악에선 그 ‘지식’ 부분이 무척 큰 거예요. 글보다 기호가 간단한 만큼 모르면 정말 철저하게 알 수 없어요, 음악은.

하루키 스코어를 읽는 건 언제 하시는지요?

세이지 아침이군요. 아침 일찍. 집중해야하는 데다, 술이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안 되니까.

하루키 비교할 건 아니지만, 저도 늘 아침 일찍 일합니다. 제일 집중을 잘 할 수 있으니까요. 장편소설을 쓸 때는 꼭 4시에 일어나죠.

세이지 그러고 몇 시간 일합니까?

하루키 다섯 시간쯤 일하는군요.

세이지 난 이제 다섯 시간 못 버텨요. 4시에 일어나도 8시쯤 되면 아침을 먹고 싶어져서.(웃음)


▲ ⓒNobuyoshi ARAKI

사진 도서출판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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