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허승연 음악을 위한 고독의 시간

‘허트리오’의 맏언니 허승연이 8년 만에 귀국 독주회를 연다. 그녀가 들려주는 유럽에서의 생활과 음악 이야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피아니스트 허승연

음악을 위한 고독의 시간

‘허트리오’의 맏언니 허승연이 8년 만에 귀국 독주회를 연다. 그녀가 들려주는 유럽에서의 생활과 음악 이야기

슬픔이 어떻게 삶을 위로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아이러니한 것이 많다. 아픔이 때로는 아픔을 가장 깊이 위로해주기도 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슬픔으로 아픈 삶을 위로한다. 그의 음악은 겨울을 닮았지만, 그의 정신은 봄을 닮았다. 슈베르트 음악 정신의 정점인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은 죽음을 앞둔 그가 고통과 두려움의 감정을 음악으로 승화한 아름다운 곡들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 선 2월.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한국에서 8년 만에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허승연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

허승연은 예고 재학 중 독일로 유학해 하노버 음대와 쾰른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을 거쳐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해왔다. 스위스 경제대학에서는 문화 경영을 공부하기도 했다. 1996년 자매인 허희정(바이올린), 허윤정(첼로)과 함께 허트리오를 결성해 유럽 순회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스위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취리히 음악원 학장으로 지내다 지난해 8월 부총장이 되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음악원으로 학장 8명, 교수 500명, 학생 1만5000명입니다. 부총장직을 맡으면서 영재 프로그램, 국제 교류 프로그램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11월에는 프리 칼리지를 만들어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욱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연주자로서 유럽에서 꾸준히 연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국 무대라 감회가 더 특별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허트리오로서 연주와 협연은 했지만, 독주회는 8년 만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 나올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허트리오 연주 투어가 워낙 많다 보니 이제야 독주회를 하게 되었네요. 그래서인지 제게는 이번 무대가 아주 의미 있는 독주회가 될 듯합니다. 특히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마지막 세 소나타를 한 무대에서 연주하게 되어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이번 독주회에서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을 모두 연주하는데요. 이 작품을 선곡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연주자에게는 언젠가 꼭 하고 싶은 레퍼토리가 있어요.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연주 프로그램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세 곡을 한꺼번에 연주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큰 에너지와 조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슈베르트 음악은 그 순수함 때문에 늘 좋아했습니다. 화장을 하지 않은, 보석을 달지 않은 그런 음악이라고나 할까요. 음악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이 음악을 잘 표현하려면 음을 비워야 합니다.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음악이 좋아지고 슈베르트가 표현하고 싶어 한 것에 가까이 갈수록 제 마음도 순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모든 음악에는 인생의 스토리가 담기게 마련입니다. 이번 무대에서는 슈베르트 음악을 통해 제 인생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니스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슈베르트가 인생의 마지막 무렵에 작곡한 곡들입니다. 젊은 나이에 이런 곡을 작곡했다는 것은, 슈베르트가 짧은 생애에서 느낀 삶의 고통과 기쁨을 음악에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제게는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그래서 지금이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합니다. 연주를 하면서 제 인생을 돌아보고 또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이 음악은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보석과도 같습니다.

작품을 준비하고 연주하면서 느낀 점, 특히 슈베르트라는 작곡가를 인간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슈베르트의 곡을 연습하다 보면 단순하게 들리는 멜로디 안에 너무나 많은 고통과 환희가 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멜로디를 깊이 있게 청중에게 전달하려면 연습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어린 나이에 이런 깊이 있는 음악을 작곡한 슈베르트의 성숙함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은 슈베르트의 음악은 그 자체가 너무나 숭고하고 많은 뜻을 가진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세 소나타의 특징과 이 곡을 통해 꼭 표현하고 싶은 것, 나누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 작곡한 것으로 피아노곡 중 대표곡으로 꼽힙니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이 아까운 이 곡을 통해 진정한 제 음악에 대한 애정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음악의 길, 그것은 나의 작은 우주

허트리오 활동을 하면서 가족 모두 연주를 하는데, 음악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은 어땠나요.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알고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음악의 길을 걷게 되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점점 변해가는 이 세상에 음악이 있기에, 또 제가 음악을 할 수 있기에 감사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허트리오의 실내악 활동에서 얻는 기쁨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가족이 함께 연습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모아 무대에서 연주할 때의 기쁨, 끈끈한 사랑은 우리 자매의 음악을 더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 함께 음악을 하면서 어려움도 있을 텐데요, 그리고 함께 실내악 연주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 자매는 어린 시절 각각 유학을 갔기에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몰라 생기는 어려움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시간을 함께한 추억이 많아 너무 좋습니다. 이젠 다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며 존중하지요. 우린 만나면 집중적으로 연습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편이에요. 저희가 실내악을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음악의 흐름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장점이 시너지 효과를 내 다이내믹한 음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특히 호흡을 맞추거나 음악을 해석할 때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요.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열여섯 살 때 독일로 유학을 가서 피아노에 전념하며 열심히 지냈어요. 어느 날, 교수님이 제게 3주간 연습을 금지하고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고 느끼고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연습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마음으로 바깥세상을 구경하며 지냈어요. 하지만 2주가 지나니 ‘내가 왜 독일에 와 있는지’ ‘왜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 점점 깊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3주째가 되면서 제 마음 깊은 곳에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주가 지나자 교수님이 물으셨죠. ‘앞으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요. 그때 전 ‘뮤직 메이킹’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저를 와락 안으며 ‘웰컴!’ 하시는 거예요. 그 일이 제게 음악가로서 가야 할 길을 알려준 듯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연주, 그리고 음악이 줄 수 있는 좋은 삶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좋은 연주는 남에게 보여주는 음악이 아닌 진정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인생과 나의 소리를 담은 연주를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음악은 제 안의 또 다른 세상이고 우주입니다. 그 안에서 느끼는 기쁨, 고통, 슬픔을 저만의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음악과 연주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음악은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연주는 그 받은 것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자신만의 고독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 너무 바빠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음악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드바이스가 있다면.

음악에 쫓기지 말고 즐기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많이 들으세요. 오케스트라 연주를 많이 듣다 보면 자신의 악기를 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음악을 이해하고 음악의 흐름이나 색깔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공부가 되고요. 혹 외국에 나가 공부하게 되면 언어부터 배워 그 나라의 문학과 문화 등을 깊이 이해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숙한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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