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나헴 프레슬러와 에벤 현악 4중주단의 90세 기념 공연 실황
노장은 황혼에 더 찬란하다!
85세의 메나헴 프레슬러가 보자르 피아노 트리오의 해체를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은퇴를 예견했다. 노장은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 느긋한 휴식을 만끽할 거라고 생각했다. 프레슬러는 53년간 보자르 트리오를 이끌며 매번 피아노 트리오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실내악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자리를 크게 차지했다.
사람들의 빤한 예상과 달리, 트리오 해체 직후 프레슬러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본격적인 연주 활동에 나섰다. 비스(BIS)와 라 돌체 볼타(La Dolce Volta) 등 레이블과 계약하며 독주 음반을 발매했을 때, 사람들은 89세의 노장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음반이 되리라 예견했을 터. 하지만 노장의 전진은 그 후로도 거침이 없었다.
2014년 1월, 메나헴 프레슬러는 연주자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베를린 필하모니홀에 처음 오르며 베를린 필과 함께 각별한 ‘데뷔’를 감행한다. 그의 나이 91세로, 연주 생활 70여 년 만의 첫 무대였다. 베를린 필은 최고령 연주자와의 첫 협연을 기리며 음악회에 다음과 같은 부제를 헌정했다. ‘전설의 데뷔(Debut of a Legend)’.
이 DVD는 2013년 그의 90세 생일을 기념해 파리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을 담았다. 음악회는 데칼코마니를 접듯 두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드보르자크 피아노 5중주 Op.81과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 D667를 보면 A장조의 조성을 공통으로 관통하는 이 두 작품을 프레슬러는 오래전부터 한 무대에서 연주해왔다.
인상적인 것은, 보면대에 놓인 메나헴 프레슬러의 낡은 악보다. 손때가 묻어 모양이 우그러진 악보는 낱장으로 해체 직전인 듯 테이프를 덧대 연명하고 있다. 시간의 풍화를 짐작하자니 절로 숙연해진다.
반면 건반에 잇닿는 노장의 터치는 맑고 투명하다. 가벼운 익살을 자연스레 구사하면서도 너그러운 품을 잃지 않는다. 90세에 이르면 정신과 육체의 에너지가 물리적으로 흐릿해지기 마련인데. 마음을 가식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경지는 그래야 가능한 것일까.
프레슬러와 함께 연주한 에벤 현악 4중주단은 그와의 만남을 회상하며 노장의 활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젊은 현악 4중주단과 피아니스트의 세대 차는 반세기를 훌쩍 넘긴다. 뮌헨의 헤라클레스홀에서 첫 리허설을 하며 청년들은 노장의 체력을 우려했다. 미국의 블루밍턴부터 장장 11시간 50분의 비행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나헴 프레슬러는 당일 저녁 리허설을 취소하지 않았다. 연습은 5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젊은 청년들이 간간이 샌드위치로 에너지를 보충할 때도, 프레슬러는 한시도 건반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간 음악계는 나이 어린 영재의 출현에 유난히 환호하며 주목해왔다. 하지만 이제 ‘인생 100세 시대’가 움트고 있다. 황혼기에도 예술의 정수를 불태우는 노장에게 경의를 표한다. 90세 생일을 축하하는 그의 동료들과 청중의 표정에서 그 진심이 묻어나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