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안드레아 셰니에’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

유행을 좇기보다 살짝 비켜가기. 스테파노 포다가 무대를 만드는 방법을 듣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국립오페라단 ‘안드레아 셰니에’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

유행을 좇기보다 살짝 비켜가기. 스테파노 포다가 무대를 만드는 방법을 듣다

지난 2월 초,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작품 ‘안드레아 셰니에’ 연습에 한창인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배우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스테파노 포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180cm에 마른 체격. 왠지 철저하고 예민한 성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단번에 떠오른다.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올 블랙 의상에 캐러멜 컬러 밍크 목도리를 두른 모습에선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미’를 추구하는 그만의 취향이 슬며시 풍겨 나온다.
스테파노 포다와 국립오페라단 모두 첫 제작인 ‘안드레아 셰니에’는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작품으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투쟁에 나선 시인 앙드레 셰니에의 생애를 그린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다. 오페라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이름을 표기해 ‘안드레아’가 됐다.
해외 유수의 오페라극장에서 연출뿐 아니라 무대미술·의상·조명·안무를 총괄하며 현대미술 작품 같은 무대를 선보여온 스테파노 포다의 포지션은 이번 국립오페라단 프로덕션에서도 동일하다. 때문에 그는 개막을 40여 일 앞두고 입국해 이런저런 것들을 챙기고 있었다.
1994년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로 데뷔한 스테파노 포다는 유럽뿐 아니라 남미와 북미 등지에서 ‘리골레토’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마리아 스투아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100편 이상의 오페라를 올리며, 그만의 정체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무대를 선보여왔다. 특히 2008년 토리노 왕립오페라극장에 올린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는 2012년 BBC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20세기 랜드마크 오페라 프로덕션 2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스테파노 포다의 작품은 일단 무대 디자인과 조명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거대한 스케일을 구성하는 개개의 요소는 언뜻 봐도 디테일에 공들인 티가 확 난다. 철저하게 완벽한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대개 오페라 무대에선 주역 가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기 마련인데, 포다의 작품에선 그마저도 거대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에 불과해 보인다. 누구 하나 튀는 것이 아닌, 대칭과 균형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마라톤같이 이어지는 연습 중 짧은 휴식 시간에 만난 스테파노 포다는 그간 해외의 다양한 무대에서 만나온 한국 성악가들의 실력과 성실함, 정확성과 열정이 신뢰로 쌓여, 국립오페라단의 제안을 수락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 토리노 왕립오페라극장의 마스네 ‘타이스'(2008)

각각의 프로덕션마다 연출뿐 아니라 무대미술·의상·조명·안무를 맡아왔다. 어떤 관점으로 각각의 요소를 조율하는지 궁금하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다. 오페라에는 극만 있는 것도, 음악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페라는 모든 예술을 합하고 연결한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이기에 연출·무대미술·의상·조명·안무를 맡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드는 장인처럼 일한다고 할까. 여기에 내 신조가 있다. 오페라는 영화와 다르다. 테크놀로지와는 거리가 멀다. 오페라는 관객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인식한다. 관객은 무대에 오르는 이야기를 보면서 작품에 한정된 이야기나 연출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각 영역에 작용하고, 각 요소가 이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 그래서 애호가뿐 아니라 어린아이와 청소년, 젊은이와 노인, 교양이 있든 없든 모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역사를 다루지만, 과거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이것을 통해 자극받고 지적으로 깨어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작품과 마음이 연결돼야 한다. 한때 오페라극장은 박물관 같은 존재였고, 사람이 기도하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교회 같은 역할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오페라극장에서 가장 인간적인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런 작용을 영화관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
각각의 영역을 처음부터 모두 해낸 것은 아닐 텐데, 시작은 무엇이었나.
유년 시절이 좀 독특했다. 다섯 살 무렵 다른 아이들이 밖에서 뛰놀 때, 나는 집에서 인형 옷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관심으로 처음에는 의상, 그다음에는 무대미술, 이후에는 조명을 배웠다. 유년 시절엔 오페라 연출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전통적 스타일의 당시 오페라에 흥미가 없었다. 공연을 눈으로 봐야 하는데, 나는 눈을 감고 귀로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공부를 시작한 이후 똑같이 눈을 감고 오페라 음악을 들었는데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현대무용 중 하나인 부토를 했던 것도 나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 됐다. 이제 내게 오페라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매체가 됐다. 의상과 무대미술, 조명 중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조명이라 답하겠다.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만들어내서다. 조명은 몸이 없는 음악과도 같다. 마치 음향 파도 같다고 할까? 내 꿈은 언젠가 오직 조명만으로 오페라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오페라를 옛 시대의 의상과 무대장치로 공연되는 ‘전통적’ 무대와 연출가가 시대와 배경을 자유롭게 설정하는 ‘현대적’ 무대로 나눌 때, 최근 유럽에서 성행하는 연출가 중심의 무대인 레지테아터는 종종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현재 유럽 오페라계는 너무 현대적인 것을 따라가는 것이 유행이다. 오페라를 좀 더 흥미 있게 만들기 위해 특정 사건을 가져와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추세다. 하지만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거기에 담긴 정신보다 외향적인 것만 바꾸는 편이 많다. 예를 들어, 현대적인 가죽 의상을 입고 노래는 중세시대처럼 하는 식인데, 이런 행태가 잘못됐다기보다는 예술의 중요한 본질을 내면으로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 음악의 거대한 콘셉트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한다.
그간의 작품을 보니 무대미술에서 돌이나 나무 등 자연적 재료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떤가? 손이나 얼굴 등 신체 특정 부위를 거대한 조형물로 만들어 무대에 배치하는 형태도 눈에 띄던데.
예술가마다 자신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내 작품에서도 관객이 충분히 짐작할 만한 상징이 존재한다. 나는 돌과 나무를 자주 사용하고 고풍스러운 스타일을 선호한다. 다르게 말하면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자연적인 것, 수작업한 것을 자주 사용한다. 또 현대미술을 매우 좋아한다. 내 무대엔 설치물이 많은데 관객에게 상징적 의미를 금방 알아챌 수 있게 돕기 위한 것이다. 상징적 의미와 취하는 방식은 현대적이지만, 그 재료는 앤티크해야 한다. 내 생각에 공연은 시대의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살짝 비켜가야 한다. 이를테면 사진과 비슷하다. 아무리 그 당시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멋지게 찍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진다. 그게 무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페라 같은 공연 예술은 오늘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유행을 따르면 안 된다.


▲ 스테파노 포다의 ‘안드레아 셰니에’ 무대미술 디자인

한국에서 ‘안드레아 셰니에’는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이다. 게다가 프랑스 대혁명기라는 배경을 관객이 낯설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시대와 공간을 넘어 어떤 보편성을 보여줄 생각인가.
오페라는 패러다임이고 본보기다. 프랑스 대혁명은 한 인간 계층이 끝난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굉장히 큰 변혁인데, 이런 변혁은 100년에서 200년마다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것에 집중할 생각은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프랑스 대혁명 전후 대조되는 상황과 세상이다.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 그 사이에 깨져 있는 사건, 시대와 시대가 나눠지게 되는 계기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줄 생각이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첫 장면은 바로크 시대인데, 흰 의상에 금이 간 벽을 보여주고, 움직임도 매우 경직되어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엔 시대가 바뀌고 현대사회를 보여주게 될 것 같다.
평소 작업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는가.
어두운 방에서, 새롭게 작업해야 할 오페라 음악을 듣는다. 거의 다 외울 정도로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그러고 나선 시간 여유를 두고 잊어버린다. 스스로 알고 기억하는 데에서 조금 멀어지는 게 필요하다. 그런 상태에 다다르면 내면에서부터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때 연필을 들고 디자인을 하기 시작한다. 모든 요소를 한 번에 봐야 하기에 극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되도록 간결한 방향으로 결정하지만, 처음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는 정확해야 한다.
자신의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 가지 꼽는다면.
관객으로 하여금 감동받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을 중시한다. 마치 바닷가에 쌓은 작은 모래성과도 같다. 아무리 쌓아도 파도가 밀려오면 허물어지는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모든 게 왔다가 또 흘러간다. 이것이 오페라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고, 오페라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늘 영원성을 잡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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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안드레아 셰니에’ 들여다보기
3월 12~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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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발발된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실존했던 프랑스 시인이자 외교관인 앙드레 셰니에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역사적 사건과 함께 남녀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골자로 삼은 베르디나 푸치니의 오페라와 달리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사회 풍경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과 변화를 내세운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다.
프랑스 대혁명 전 어느 시골, 코와니 백작의 성에서 열린 파티. 하인 제라르는 귀족들의 방탕한 삶을 비난하며 분개하고, 성에 초대된 셰니에는 백작의 딸 마달레나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이후 셰니에는 프랑스 대혁명에 가담하면서 수배자가 되고, 마달레나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산과 가족을 잃고 거리를 헤맨다. 철없는 아가씨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마달레나는 셰니에의 정치적 노선을 지지하는 격려의 편지를 익명으로 보내던 중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오래전부터 마달레나를 마음에 품고 있던 제라르는 혁명 정부의 당원이 되어 그녀를 찾아다니다 셰니에와 마달레나가 함께 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셰니에를 체포한다. 이후 제라르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셰니에의 구명을 호소하는 마달레나의 결연한 태도로 인해 혁명재판소에서 셰니에를 변호하기에 이른다. 결국 셰니에한테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마달레나는 간수에게 “내일 아침 처형당할 여성 대신 자신이 처형당하게 해달라”고 청한다. 결국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함께 사형장으로 향하는 호송 마차에 오른다.
무대는 대혁명 직전의 봄, 귀족들의 파티 장면으로 시작된다. 2막은 그로부터 5년 후인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로 이어지고 이후 혁명재판소 풍경에 다다른다. 4막 생 라자르 감옥에서 셰니에가 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을 부른 뒤 마달레나와 함께 ‘우리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를 부르며 사형장으로 향하기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휘 다니엘레 칼레가리 연출·무대·조명·의상 스테파노 포다
안드레아 셰니에 박성규·윤병길 마달레나 고현아·김라희 제라르 루치오 갈로·한명원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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