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홍향기

가면 속 눈빛으로 죽음을 연주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멀티플리시티, 침묵과 공의 형상’에서 죽음 역을 맡은 무용수 홍향기와 무용평론가 문애령이 나눈 대화

세계적인 천재 안무가 나초 두아토, 그가 만드는 마법 같은 움직임.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유니버설발레단이 올리는 ‘멀티플리시티, 침묵과 공의 형상’은 춤과 음악으로 바흐의 일생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롭고 색다른 무대다. 온몸으로 연주하는 바흐 음악의 매력은 무엇일까?

반갑습니다. 이번 무대는 바흐와 여인, 그리고 ‘죽음’이 중심을 이루는 작품인데 팀 구성이 어떻게 되나요? 전수 과정도 궁금합니다. 안무자가 직접 오셨는지요?

주역 여인은 김나은 언니, 바흐는 중국 출신 후앙 젠, 그리고 제가 한 팀입니다. 5일간의 공연이라 주역이 두 그룹인데요, 다른 팀은 황혜민과 엄재용 선배가 맡아요. 저는 작년에 했던 ‘죽음’ 역을 이번에 또 하게 되었고, 두 번째라 좀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긴장됩니다. 순서를 알기 때문에 좀 편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연습해보니 정신이 바짝 드는 거예요. 작년에는 나초 두아토가 직접 왔는데, 올해는 1999년 초연 때부터 출연한 독일 출신 토마스가 지도하고 계십니다.

작품 해설을 보면, 1막 ‘멀티플리시티’는 바흐의 대표적 음악을 연결해 안무했고, 2막 ‘침묵과 공의 형상’은 바흐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 주를 이룹니다. 홍향기 씨가 맡은 ‘죽음’은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요, 출연 장면을 설명해주세요.

‘죽음’은 1막 다섯 번째 장에서 첫 솔로를 하고, 2막에서도 여러 차례 다양한 구성으로 출연합니다. 음표 역할의 남자 군무, 여자 군무 다음에 다시 솔로를 추고, 2막 후반부에서는 가면을 벗고 바흐의 부인 역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1막과 2막에 극적 연결성이 있어 행복에서 죽음으로 장면이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음 역이 1막에도 등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나초 두아토의 동작은 워낙 개성적인데, 특히 이 작품에서는 장면이 엄청나게 많이 바뀌네요. 출연자들이 어려워하지 않나요?

네. 작년의 경우 처음에 토마스가 순서만 알려주셨고, 그다음에 여자 선생님이 오셨고, 마지막에 나초 두아토가 오셔서 점점 자리가 잡혔어요. 순서를 알고, 훈련으로 이해하면서 점차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2006학번이시네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해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학에 입학했는데, 발레 일대기와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을 소개해주세요.

선화예중을 졸업했고요. 영재 입학하기 전 2월에 로잔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한예종을 한 학기 다닌 후 1년간 러시아 바가노바에서 유학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졸업하고, 2011년 발레단에 들어왔어요. 올해 솔리스트가 됐고요. 전에는 드미 솔리스트였어요. 작년부터 ‘호두까기 인형’ 주역을 맡았고, 올해도 김태석 씨를 파트너로 주역 5회 공연을 했어요. 공연 기간이 길어 여자 주역만 아홉 명이었는데, 작년보다는 만족스러운 무대였습니다. 입학을 일찍 했지만, 한예종을 10년 넘게 다녔으니 김선희 교수님, 김혜식 교수님, 고학년 때는 리타 선생님, 반료자 선생님께 두루 배웠습니다.

콩쿠르는 로잔이 처음이었나요? 좋아하는 무용수가 울리아나 로파트키나라고 해서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로잔 전에 크지 않은 해외 콩쿠르에 몇 번 나갔어요. 그러다 로잔과 바르나에서 같은 해에 입상했어요. 울리아나 로파트키나와는 우선 라인의 차이점이 크죠.(웃음) 제가 팔을 짧게 쓴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어 상체를 쓰는 데 좀 두려움이 있어요. 울리아나가 ‘백조’ 하는 것을 봤는데, 굉장히 감동했어요.

홍향기 씨가 좀 더 여유롭게 춤추면 상체가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뒷목 라인의 긴장을 풀면 좋아하는 무용수와 비슷해질 것 같더군요. 이번 ‘멀티플리시티, 침묵과 공의 형상’은 음악 해석도 참 어려울 것 같아요. 발레 음악의 율동적 리듬감하고 좀 다른데,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는지요?

우선 음악을 계속 듣고, 영상은 못 보게 하세요. 남을 따라 하게 되니까. 자기만의… 안무자가 어떤 동작을 주더라도 그걸 저만의 스타일에 맞춰주신데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 스타일을 찾으라며 다른 영상은 보지 말라고 하세요. 출연자의 개성을 중요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죽음’은 눈빛이 중요한 역할이에요. 가면을 쓴 상태라 첨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내면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오라를 계속 강조하세요. 두 팔을 올리는 동작을 할 때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깊은 호흡과 함께 눈에도 힘을 주는 ‘죽음’을 연기해야 한다고 하시죠. 제가 성격이 밝아 카리스마 있게 잘 안 돼서….

그래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보이니까 배역을 주셨겠지요. ‘호두까기 인형’ 외에 다른 주역 경험도 있으신가요?

작년 8월에 이동탁 씨와 ‘돈키호테’ 주역을 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욕심내던 작품이라 좋았고요. ‘오네긴’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드라마 발레도 하고 싶어요. 특히 백조와 흑조의 대조적 성격을 한 무대에서 보이는 ‘백조의 호수’는 꼭 해보고 싶어요.

홍향기 씨는 유니버설발레단이 특별히 키우는 스타로 보이는데, 백조와 흑조 중 본인이 어디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또 필수 기교인 3막의 푸에테 투르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현란하게 시작하는 것보다 마지막 깔끔하게 2회전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입니다만.

저는 흑조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흑조는 세지만 죽음 역할처럼 싸늘하지 않고, 제가 그런 성격은 못 되지만 왕자를 유혹하고 무대를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흑조 역이 좋아요. 절정의 회전 기교는 무용수의 영원한 과제예요.

흑조를 더 잘하는 무용수가 드물기에 그런 주역이 백조 역까지 잘 소화한다면 가장 멋진 무대가 될 겁니다. 이번 ‘멀티플리시티, 침묵과 공의 형상’ 다음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으신지요?

호주 안무가 글렌 머피의 신작을 6월에 공연할 예정입니다. 그분의 다른 작품을 좋게 보신 문 단장님께서 ‘지젤’의 현대 버전을 의뢰하셔서 유니버설발레단 세계 초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문훈숙 단장이 세계적인 추세를 잘 아니 기대가 큽니다. 일단 홍향기 씨 공연하는 날, 가면을 꿰뚫는 눈빛을 확인하겠습니다. 앞으로 더욱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진 강태욱(studio WORKROO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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