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선택과 집중으로 압축된 별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월 8일~2월 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선택과 집중으로 압축된 별미


▲ 사진 클립서비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무비컬 같은 노블컬이다. 작품의 제작 동기에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가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뿌리가 되는 스토리 라인은 영화보다 소설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원작으로부터 효과적인 ‘거리 두기’에는 활자가 훨씬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이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미국 남북전쟁 이야기를 프랑스 예술가들이 뮤지컬화했다는 사실에 의아해한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도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하고, 이탈리아 베로나를 배경으로 쓴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프랑스 뮤지컬로 각색되는 요즘, 이 정도의 파격과 실험은 괜찮다 여겨진다면 뮤지컬의 글로벌한 흐름을 이해하는 수준급 애호가라 인정할 만하다. 여기에 프랑스 사람들의 특별한 ‘영화 사랑’을 이해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프랑스 뮤지컬 ‘십계’가 찰턴 헤스턴의 연기로 유명한 영화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거나,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앤서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를 떠올리게 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원작 영화에 대한 프랑스인의 애정은 뮤지컬 무대만의 ‘별미’를 탄생시켰다. 촘촘하기보다 듬성듬성한 극 전개가 그렇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과 보통 영화의 곱절에 가까운 영상을 무대화하면서 프랑스 예술가들이 취한 방식은 ‘선택과 집중’이다. 덕분에 뮤지컬은 영화나 소설을 알아야 더욱 만끽할 수 있는 특성도 지니게 됐다. 대사보다 노래를, 스토리보다 감성을, 그리고 친절한 설명보다 함축적 압축미를 즐기는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이 적극 활용된 셈이다. 덕분에 원작이 멀게 느껴지는 일부 한국 관객에게는 허술한 극 전개가 모호한 잔상을 남기는 문제점을 낳게 됐다. 장면 사이의 비약을 원작에 대한 이해로 보충할 수 있어야 비로소 보는 재미가 완성될 수 있다. 영화의 잔상이 깊은 탓에 아무래도 배우들에게 더욱 엄격해지는 경향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이 작품의 ‘원죄’다. 그래서 ‘얼마나 잘하나’보다 ‘얼마나 비슷한가’를 따지게 되는 선입견을 극복해야 비로소 무대가 보이는 아이러니도 있다. 코르셋을 조여 개미허리를 만드는 비비안 리의 뒷모습을 기대하거나 클라크 게이블과 계단에서 환상적 키스 신을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는 나름 만족스럽다. 바다와 서현, 그리고 언더스터디로 참여한 신예 함연지까지 스칼릿에 대한 나름의 매력이 잘 담겨 있다. 레트 버틀러 역의 김법래·주진모·임태경은 관객 연령층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다. 음악적으로는 임태경이, 거친 남성미는 김법래가, 세련된 연기는 주진모가 조금씩 앞선다. 애슐리 윌크스 역의 마이클 리와의 만남은 뜻하지 않은 명절 보너스 같은 즐거움을 남긴다. 한국 관객을 위해 프랑스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타라의 테마’를 극의 앞뒤에 배치한 것은 절묘한 시도다. ‘주말의 명화’ 시그널로 유명했던 선율은 원작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프랑스 원작의 16:9 화면 같은 무대를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서 4:9의 안방극장 브라운관으로 축소시킨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회화 같은 몇몇 장면의 이미지는 무척 고급스럽다. 앙코르 공연 때는 얼마나 더 현지화에 성공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클립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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