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흐 현악 4중주단 50주년 기념 음반

체코 정통 실내악단 탈리흐 현악 4중주단, 단원들의 세대 변화로 짙어진 색다른 개성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탈리흐 현악 4중주단 50주년 기념 음반

체코 정통 실내악단 탈리흐 현악 4중주단, 단원들의 세대 변화로 짙어진 색다른 개성

반세기를 함께한 체코의 대표 실내악단
1964년 체코의 바이올리니스트 얀 탈리흐에 의해 창단되어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은 체코를 대표하는 실내악단일 뿐 아니라 명실공히 이 시대 최고의 현악 4중주단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특히 스메타나와 야나체크, 드보르자크 등 체코 음악 연주에서 그들의 연주만큼 우리 감성에 와 닿는 해석을 해낼 수 있는 현악 4중주단도 드물다. 물론 네 명의 주자들이 선보이는 고른 기량과 탁월한 앙상블 감각 덕분에 베토벤과 멘델스존 등 독일 음악 해석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이 시대 완벽한 앙상블의 대명사인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이 은퇴한 지 수년이 흐른 지금,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이야말로 그 자리를 대신할 유서 깊은 실내악단이라 할 만하다.
이번 라 돌체 볼타 레이블의 재발매 시리즈 중에는 그동안 칼리오프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의 음반 가운데 여러 음반 상을 수상한 음원이 다수 포함돼 있어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의 진가를 엿볼 수 있다. 디아파종 황금상을 수상한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음반(1977)과 베토벤 현악 4중주 제13번 음반(1977),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1995)을 비롯해 초 드 클라시카상에 빛나는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 음반(2001)과 2006년 ‘그라모폰’의 실내악 명반에 노미네이트된 야나체크의 현악 4중주 녹음(2005)에 이르기까지 탈리흐 현악 4중주단 명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번 시리즈 중 1970년대 음원과 2000년대의 음원이 각기 다른 개성을 보여주어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이 멤버 교체를 통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은 그사이 두 차례의 리더 교체를 비롯해 약간의 멤버 교체가 있었다. 현재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을 이끌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얀 탈리흐 주니어는 1964년 이 4중주단을 창설한 얀 탈리흐의 아들로, 아버지에 이어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을 맡아 이끌어가며 탈리흐 집안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본래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의 창설자 얀 탈리흐의 삼촌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바츨라프 탈리흐로 체코 음악을 주도해온 인물이니, 탈리흐 가문은 체코 음악의 전통을 몇 대째 이어온 셈이다.

네 명의 친구가 나누는 정다운 대화
얀 탈리흐 주니어가 1997년 제1바이올린을 맡기 전까지는 바이올리니스트 페트르 메시에레우르가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의 리더를 맡아 활동했다. 이번 라 돌체 볼타의 음반을 들어보면 리더 교체에 따른 변화가 감지된다. 1997년 이래 지금까지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의 리더를 맡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얀 탈리흐 주니어가 참여한 음반에서는 좀 더 강한 활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페트르 메시에레우르가 제1바이올린을 맡아 연주한 1970년대 음반을 들어보면 따스하고 부드러운 맛이 강하다. 

메시에레우르가 참여한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의 경우 네 성부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고 템포도 안정돼 있다. 통일적인 앙상블이 돋보여 고전주의 음악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다. 반면, 1997년 얀 탈리흐 주니어로 리더가 교체되고 2000년 비올리스트 블라디미르 부카치가 합류하면서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의 연주는 더욱 강한 활력을 뿜어낸다. 연주자들의 뛰어난 개인기 덕분인 듯하다. 특히 비올리스트의 활약이 많은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1번 ‘나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부카치의 호소력 짙은 비올라 연주와 페트르 프라우세의 푸근한 첼로 연주는 이 곡의 표제적 내용을 더욱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야나체크의 현악 4중주 작품도 각 연주자의 기량이 돋보이며, 그 표현도 결코 과하지 않아 듣기 편안하다.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부제로 잘 알려진 야나체크의 현악 4중주 1번은 야나체크가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활을 브리지에 밀착해 칼칼한 소리를 내는 특수 주법이나 두 음을 빠르게 교대하는 트릴 주법 등 여러 주법을 통해 남녀 간 연애 감정이 온갖 자극적인 소리로 표현됐다. 그러나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은 그토록 자극적인 곡에서조차 듣기 편안하고 조화로운 앙상블을 들려줘 인상적이다. 이 작품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이 같은 자연스러운 연주는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의 특별함은 어떤 곡에서든 그들만의 정제된 사운드와 밸런스를 잃지 않는 데 있을 것이다. 뛰어난 개인기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음색을 표현하고 관현악을 방불케 하는 풍부한 음향을 만들어내면서도 그들이 만들어낸 톤은 항상 잘 다듬어져 있어 상당한 친근감을 준다. 그래서 그들의 연주를 듣다 보면 마치 네 명의 친한 친구들의 정다운 대화에 동참하듯 편안해진다.

탈리흐 현악 4중주단 50주년 기념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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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현악 4중주를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라 말했지만,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의 연주는 ‘네 명의 친구들이 나누는 정겨운 대화’처럼 느껴진다. 그 어떤 현악 4중주단보다 완벽한 밸런스와 호소력 짙은 표현력을 갖추고, 완벽함을 넘어선 인간미와 부드러운 음색이 우리의 마음을 감싸주기 때문이리라. 체코 음악 특유의 따스한 감성을 담아 전 세계 음악 팬을 매료시킨 탈리흐 현악 4중주단이 최근 라 돌체 볼타 레이블을 통해 50년 연주 생활의 역사를 담은 명반을 다시 발매해 화제가 되고 있다. 

탈리흐 현악 4중주단 | La Dolce Volta | 하이든 LDV 258·베토벤 LDV 278·모차르트 LDV 279·멘델스존 LDV 280·쇼스타코비치 LDV 263·스메타나 LDV 255·야나체크 LDV 256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신나라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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