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안드레아 셰니에’

간명한 연출의 승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4월 1일 12: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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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안드레아 셰니에’
3월 12~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간명한 연출의 승리

프랑스 혁명기 비운의 시인 앙드레 셰니에를 다룬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가 올랐다.
첫날인 3월 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커튼이 올라가자 청중은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린 세련되고 멋진 무대에 탄성을 터트렸다. 혁명기 프랑스인은 귀족·하인 할 것 없이 검은 옷을 입고 등장했는데, 모두 하얀색 분칠로 영혼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을 느끼는 주인공들인 셰니에와 마달레나,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하인 제라르는 모두 살아 있는 얼굴색을 띠고 있었다. 토리노 극장의 오페라 ‘타이스’의 화려한 연출과 무대로 오페라 팬들에게 기억되는 스테파노 포다가 맡은 연출·무대·의상·조명은 청중에게 전혀 어렵지 않으면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간명하게 드러냈다. 의상과 분장 그리고 거대하지만 낡은 샹들리에를 통해 저무는 귀족 시대의 위기와 몰락을 그려냄과 동시에 그들의 운명이 죽음과 매우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죽은 귀족의 사회’가 바로 1막이었다. 

1막 ‘즉흥시’를 부른 테너 박성규의 음색은 셰니에가 보유해야 할 깊이 있는 지성미를 담아내지 못한 듯해 아쉬웠다. 2막과 3막에서 들려준 시원한 고음은 좋았으나 마지막 4막의 아리아와 2중창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번 프로덕션의 유일한 외국인 성악가인 제라르 역의 루치오 갈로는 베테랑의 존재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노래에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를 부를 때 모성이 가장 강한 동물 중 하나라고 하는 거미를 소재로 만든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Maman)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을 무대에 내린 채 마달레나로 하여금 어미 거미의 보호 아래 노래하게 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마달레나 역을 맡은 고현아의 고급스러운 음색과 열정적인 연기는 뛰어났다. 베르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마치 쥐처럼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 표현이나, 혁명재판 장면에서 살생부 종이를 구겨 죄인들에게 돌팔매질하듯 던지는 장면에서의 철저한 앙상블은 포다 연출의 승리였다.
마지막 공연인 3월 15일, 두 번째 캐스팅 무대를 감상했다. 셰니에 역의 윤병길은 즉흥시를 열혈 시인의 지성을 담아낸 음색으로 비장하게 불러 갈채를 받았다. 4막의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으나 윤병길의 음색은 혁명기 시인 앙드레 셰니에의 쓸쓸한 고독감과 잘 어울렸다. 마달레나 역의 김라희는 여유롭고 풍요로운 가창력을 보여주며 무대 위에 안정감을 더했다. 제라르 역의 한명원은 부드러우면서 멋진 음성으로 ‘조국의 적’ 등을 조화롭게 불렀다. 두 번째 팀 케미스트리는 매우 뛰어난 것이어서 긴박감도 살았으며, 무대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2막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구호 자유·평등·박애 세 단어 앞에 혁명의 주먹을 배치했고 3막에서는 거미 조형물, 마지막 4막에서는 거대한 돌 재질의 깨진 두상으로 단두대에서 잘려나간 마달레나의 머리를 표현한 포다의 연출은 복잡한 설명 대신 큰 화두를 던지는 방법을 택했다. 마티외 역의 박정민, 로세르 역의 전준한, 베르시 역의 양송미·양계화, 수도원장 역의 전병호, 마들롱 역의 김지선, 밀정 역의 민경환 등 조역들의 탄탄한 활약도 이 오페라를 빛나게 했다.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의 깨끗하고 섬세한 화음, 연기자들이 보여준 목가극에서의 마리오네트 연기와 군중 장면도 탁월했다. 이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룬 다니엘레 칼레가리가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이번 ‘안드레아 셰니에’ 무대의 성공을 견인했다. 

글 장일범(음악평론가) 사진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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