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를 뜨겁게 달구는 공연들 파리 오페라극장 달군 두 개의 공연 노이마이어 무용극 vs 구노 오페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펼져진 존 노이마이어 안무의 ‘대지의 노래’와 오페라 ‘파우스트’, 서로 다른 아름다움의 미학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4월 1일 12:00 오전

 

파리 오페라극장 달군 두 개의 공연
노이마이어 무용극 vs 구노 오페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펼져진 존 노이마이어 안무의 ‘대지의 노래’와 오페라 ‘파우스트’, 서로 다른 아름다움의 미학


▲ ‘대지의 노래’의 한 장면 ⓒAnn Ray

파리 오페라극장은 최근 존 노이마이어 안무의 ‘대지의 노래’(2월 24일~3월 12일)와 미셸 플라송 지휘의 오페라 ‘파우스트’(3월 2일~28일)를 무대에 올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대지의 노래’는 파리 오페라극장과 존 노이마이어가 ‘마니피카트’(1987)와 ‘실비아’(1997)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며, ‘파우스트’는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폴란드 테너 피오트르 베찰라의 인기가 한몫을 한 작품이다. 영감을 주는 안무가, 그리고 이 시대 가장 믿음직한 테너 중 하나가 등장하는 무대를 중계한다.


▲ ‘대지의 노래’중 군무 장면ⓒ Ann Ray

존 노이마이어의 동양적 안무 빛난 말러의 ‘대지의 노래’
지난 40년간 초대 단장 겸 상임 안무가로 함부르크 오페라 발레를 이끌어온 존 노이마이어는 세계적 안무가다. 그는 수많은 발레단을 거치며 120편이 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그 특유의 철학을 담은 작품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원전을 재해석하되 왜곡하지 않는 절제된 ‘노이마이어 스타일’에 관객은 늘 찬사를 보낸다. 이번에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작품도 마찬가지다.


▲ 동양적 미학이 가미된 존 노이마이어의 안무 ⓒAnn Ray

노이마이어는 2009년 말러 교향곡 3번에 이어 이번에도 말러의 ‘대지의 노래’에 안무를 입힌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사실 2번과 8번을 제외한 모든 말러 교향곡을 안무한 말러 마니아다. 이번 작품은 하나의 프롤로그와 6곡의 노래로 구성된 1시간 25분 정도의 공연. 파트리크 랑게의 지휘로 파리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솔리스트로는 테너 니콜라이 슈코프와 바리톤 오뒤르 욘손이 열연했다. 당나라 시를 텍스트로 삼은 ‘대지의 노래’에는 딸을 잃은 말러의 슬픔이 켜켜이 배어 있다. 노이마이어는 노래의 내레이션을 안무로 표현하기보다 음악의 흐름에 무용수가 몸을 맡기도록 했다. 그래도 중국의 이미지는 여전히 짙다. 이는 노이마이어가 라이트모티프로 쓴 하늘과 땅, 공과 허, 순간과 영원, 음과 양 같은 이원론의 상징체계가 빚어내는 효과라 할 수 있다. 프롤로그는 침묵 속에서 시작한다. 무대 중앙에 있던 둥근 태양이 점차 황금색 초승달로 변한다. 바닥에는 청바지 차림의 청년이 누워 있고, 그 옆에는 45도로 기울어진 작은 잔디밭이 보인다. 공중에서 청년을 비추는 거울은 마치 세상사를 반영하는 하늘같다. 이때 정적을 가르며 라에티시아 퓌졸이 등장한다. 그녀는 하늘거리는 하얀 의상을 입고 발끝으로 무대를 가로지르다 달이 푸르게 변하자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 장면에서 노이마이어는 침묵을 안무로 표현하는데, 이때의 침묵은 단순히 텅 빈 공허가 아니었다. 그건 외려 풍부한 독백이었다. 마치 노자 사상의 핵심 화두인 ‘비어 있으되, 비어 있지 않은 것’처럼. 마지막 노래 ‘아듀’의 멜로디를 발췌한 피아노 연주가 들리자 청년(마티오 가니오 분)은 깨어나 잔디밭 위로 기어 올라간다. 이어서 카를 파케트가 등장해 가니오와 같은 동선으로 듀오를 이룬다. 이때 다시 라에티시아 퓌졸이 등장하자 청년은 그녀에게 매혹돼 함께 춤을 춘다. 이 같은 라이트모티프를 반복하며 ‘대지의 노래’는 듀오·트리오·군무로 변화무쌍한 골격을 형성한다. 의상은 반복되는 라이트모티프 안무에 색감적 변화를 주는 요소고, 조명은 태양과 달의 변화를 형상화해 동적인 하루와 고상한 밤의 분위기를 감칠맛 나게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흙빛 조끼 차림으로 펼치는 군무에서는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를 팔로 번쩍 들어 올린다. 여자 무용수의 팔과 다리는 십자가처럼 교차되어 마치 걸어가는 듯한데, 흡사 중국 경극이나 태국 전통 무용의 동선 같다. 노이마이어의 안무는 기하학적일 만큼 경직된 제스처에 연한 바람의 숨결 같은 동선이 교차되는 묘미가 있다.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매우 동적인 발동작이 절정을 이룬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티외 가니오가 함께 유희를 펼치던 남성 무용수를 떠나 라에티시아 퓌졸을 따라가는 것으로 ‘아듀’를 고한다. 혁신적인 동선은 없지만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그리고 유년기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한 청년의 삶과 정신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의식을 다룬 안무가 인상적이었다. 다시 말해 철저히 말러적이고 미학적인 무대였다. ‘피가로’지는 이 공연에 대해 “천상적인 것과 신비로움에 흠뻑 젖은 무대!”라고 대서특필했다. 특히 군무에 출연한 한국 발레리나 박세은의 퍼포먼스를 두고 ‘당스 아베크 라 플륌’지는 “박세은은 동양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노이마이어의 안무 세계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녀의 흑단 같은 머리와 단아한 얼굴은 자연스러운 춤처럼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평했다. 말러의 동양적 감성 텍스트, 동양적 외모와 충만한 감성을 지닌 무용수 그리고 노이마이어다운 발레 해석이 삼박자를 이룬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섬세하지 못한 연출이 아쉬운 오페라 ‘파우스트’


▲ 오페라 ‘파우스트’중 왈츠 장면 ⓒVincent Pontet

프랑스가 사랑하는 지휘자 미셸 플라송은 올 시즌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두 편의 프랑스 오페라를 지휘한다. 마스네의 ‘르 시드’와 구노의 ‘파우스트’가 그것이다. ‘파우스트’는 전 가르니에 극장장 장루이 마르티노티가 2011년 연출한 작품으로 그의 어시스턴트였던 장로망 베스페리니가 재연출을 맡았다. 막이 오르면 서재가 보이고, 무대 가운데 놓인 작은 책상 앞에 실내 가운을 입은 파우스트가 보인다. 거대한 무대장치는 모두 백색이다. 고뇌하는 인물, 파우스트 역으로는 황금빛 보이스의 소유자 테너 피오트르 베찰라가 분했다. 이때 어둠 속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한다. 악역을 맡은 일다르 아브드라자코프는 베이스바리톤으로 기존의 메피스토펠레스에 비해 음색이 밝은데, 그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가 젊음의 상징인 마르게리테(소프라노 크라시미라 스토야노바 분)를 파우스트에게 보여주자 무대 뒤에서 역광을 받으며 그녀가 인형처럼 등장한다. 파우스트가 변신한 것은 바로 그 순간. 가운을 벗어 던진 그가 가면을 벗자 혈기왕성한 청년이 된다. 2막 술집 장면에서는 1막의 백색 서재가 둘로 나뉘고 그 사이에 바(bar)가 설치됐다. 하층민과 술집 여자들은 모두 젊고 날씬하며 야한 차림을 하고 있다. 부르주아 여자들은 모두 뚱뚱하고 늙었으며 긴 드레스를 입고 있다. 파우스트가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마르게리테를 찾아 나서자 그녀의 오빠 발렌틴 역의 장프랑수아 라푸앙트가 수려한 보이스로 아리아 ‘이곳을 떠나기 전’을 부른다. 공군 제복을 입은 발렌틴의 차림새로 보아 때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인 1940년대쯤으로 추정된다. 이어지는 코러스는 그 유명한 ‘왈츠’. 파리 오페라 합창단원의 3박자 리듬에 맞춘 합창과 춤의 하모니는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3막의 무대는 마르게리테의 집 앞으로 바 대신 나무가 등장한다. 갈색의 나무는 단풍이 들었지만 하얀 꽃을 피웠다. 시빌이 꽃다발을 들고 마르게리테를 찾아온 직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보석 성자를 들고 그녀를 유혹하러 온다. 산책에서 돌아온 마르게리테는 보석을 발견하고 치장하는데, 고급스럽기는커녕 멀리 있는 청중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울긋불긋한 플라스틱 재질의 보석이 유감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어진 마녀들의 축제는 더욱 괴상하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파우스트가 도착한 곳은 산이 아니라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어느 아파트. 동물 가면을 쓴 마녀들은 노골적인 성행위를 흉내내며 파우스트를 둘러싼다. 그 어떤 심리적 긴장감이나 호기심도 자아내지 않는 단순하고 지루한 연출이었다.


▲ 오페라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Vincent Pontet

이어진 교회 장면은 더욱 그로테스크했다. 파우스트에게 몸을 준 마르게리테는 마을 사람에게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추방당한다. 그녀에게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포하는 신부는 황금 가운을 펼치고 그녀를 품 안에 가둔다. 신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면이지만, 마치 드라큘라가 피를 빨기 위해 여자를 자신의 망토 안에 품는 것 같아 우스꽝스러웠다. 파우스트에게 버림받고 교회에서 추방당한 그녀 앞에 남은 것은 감옥뿐이다. 공연의 마지막 20여 분 동안에는 그녀를 찾아 감옥에 온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테의 듀오로 베찰라와 스토야노바의 하모니가 감격적인 대단원을 이뤘다. 피날레는 다시 파우스트의 집. 늙고 홀로된 파우스트는 마르게리테의 환상에 사로잡힌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역광 속에서 다시 마르게리테가 등장하며 오페라는 막을 내렸다. 노장 미셸 플라송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눈부신 지휘로 환호를 받았지만 연출가 베스페리니는 관객의 차디찬 시선과 야유를 감수해야 했다. 파우스트를 열연한 베찰라는 고음에서 목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뻑뻑함이 느껴져 아쉬웠다. 그는 알프레도나 루돌프 역처럼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역에는 제격이지만 파우스트처럼 드라마틱한 내면 연기를 요구하는 역할에는 약하지 않은가 싶다. 반면 스토야노바는 테크닉이나 감정이입 면에서 뛰어났고, 시빌 역을 맡은 아나이크 모레 역시 뛰어난 연기로 갈채를 받았다. 오페라 작품을 총괄하는 연출의 중요성을 실감한 무대였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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