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연출가 고선웅과 제러미 나이덱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4월 1일 12:00 오전

예술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연출가 고선웅과 제러미 나이덱의 무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2014년 세월호 참사, 역사적 상처를 주제로 한 두 개의 작품이 아름다운 봄, 무대 위에 오른다

연출가 고선웅
‘진정한 치유는 사랑이다’
여기 두 사건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긴 시간의 아픔을 지나 다시 온전한 삶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아직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또 하나는 사건의 전말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터널 속에서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치유의 길조차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현재형인 아픔과 의문점을 동시에 묻는다. 연극 ‘푸르른 날에’와 비언어신체극 ‘델루즈(Deluge):물의 기억’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웃과 연대해야 할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는 치유의 메시지다. 두 작품의 연출가 고선웅과 제러미 나이덱에게 물었다.
예술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연극 ‘푸르른 날에’
해마다 5월이면 생각나는 공연. 남산예술센터의 정체성과 비전을 완성도 있게 보여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1980년 5월의 광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 우리의 모습을 통해 과거와 역사를 바라보는 동시대적 시선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냈다.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승려 여산(민호)이 대학 시절 정혜와 사랑에 빠져 딸 운화를 갖게 되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에 빠져 삶을 포기하고 불가에 귀의하게 되면서 속세의 인연에 애달파한다는 이야기다. 고선웅 연출 특유의 경쾌하고 과장된 무대 어법이 만들어낸 ‘명랑한 신파’ 양식과 배우들의 에너지, 그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감동을 전한다.

연극 ‘푸르른 날에’는 올해로 5회째 무대에 오르는데, 같은 공연을 매해 올리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무대가 관객에게 사랑받고 기대를 모으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워낙 많이 올린 작품이라 연습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반대로 지난번보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당연히 있지요. 올해는 연출가로서 디렉션은 특별히 하지 않고, 대신 배우들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으로 차별화를 두었습니다. 같은 배역을 하면서 시간과 경험이 주는 자연스러운 성숙이 이루어졌을 거라 믿기 때문이죠. 전반적 흐름의 톤은 무난하게 하면서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소통하고 작품에 어울릴 수 있도록 편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5년 동안 남산예술센터에서 했던 작업은 어땠나요.
무척 좋았고, 행복했습니다. 경기도립극단에서 연출과 예술감독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관객과 어떻게 소통하느냐, 그 접점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번 무대에서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많은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준 역사적 사건이기에 그 아픔과 상처에 어떻게 접근할지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습니다. 불안과 공포를 어떻게 표현할지, 그리고 식상하지 않게 그려낼지, 또 궁극적으로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말이죠.

상처를 연극이라는 언어를 통해 공감하고 치유하는 것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역사적 아픔을 무겁게 그리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아픈 상처에 대한 이야기지만, 연극에서는 당연히 다른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아픔을 너무 무겁지 않게 해학적으로 풍자하면서 접근했는데, 사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혹시 무거운 주제를 너무 가볍게 다루어 상처 입은 분들에게 더 큰 아픔을 드릴까 봐 걱정도 되었지요. 다행히 이 작품에 담긴 주제가 변함없었고, 그 진정성을 알아주어 모두 공감하고 좋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작품의 주제가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해학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은, 연출을 하다 보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작품이 그렇게 말을 건네는 거죠. 그래서 더 재미있고 풍자적으로 연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배우의 말투와 표정, 움직임 등에 대해 어떻게 조언하고 이끄나요.
연출은 처음에는 연극 전체 흐름을 장악해야 하지만 배우들이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격려도 해주고 조언도 하면서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조율사처럼 지혜롭게 전체와 부분을 볼 수 있는 감각을 갖춰야 하고요. 다행히 이 작품은 배우들 역시 자부심을 갖고 있고, 배우들 사이의 앙상블이 아주 좋습니다. 연습을 할 때도, 공연을 할 때도 모두 행복한 작품이 바로 ‘푸르른 날에’입니다.
예술이 상처 받은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지도 궁금합니다.
슬픔에는 그 자체로 에너지가 있지요. 하지만 연극은 일정한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슬프다고 무조건 계속 울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배우는 모두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몸을 쓰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수많은 감정을 표현할 때 그래서 몸이 쓰이는 거죠.
재미있는 농담이나 해학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나요.
이상한 말 같지만, 우리는 아주 진지한 순간에도 진지할 수 없습니다. 일상을 그렇게 진지하게만 살 수는 없으니까요.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을 틀 수밖에 없어요. 연극 언어는 더욱 그렇지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극의 본질은 ‘농담’이에요. 허구를 통해 그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슬픈 언어로만 표현할 수는 없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죠. 연극에서 언어는 예술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고 철저히 연극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연습을 할 때는 슬픈 장면을 연기하고 있어도 재미있어야 하죠.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주제를 지키는 것입니다. 진정성이 있어야 하지요.

연극을 통해 어떤 치유를 원하시나요.
화해입니다. 이 연극을 보고 당시 5.18로 인해 직접 상처를 받은 분들과 관객 모두 분노의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분노가 아닌 치유, 그리고 치유를 통해 공감하고 연대해 함께 미래를 살아갈 희망을 갖자는 것이니까요.
문제가 해결되어야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상처에 가장 필요한 약은 어쩌면 시간일지 모릅니다. 시간에 따라 아픔과 기억은 희미해질 수 있겠지요. 그들의 상처가 시간을 지배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아물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통해 치유된 경험이 있는지요.
예술은 진실을 보여주는 기술이지요. 그중에서도 연극은 관객이 선택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우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납득할 수 있는 주제로 함께 공유하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술을 통해 저는 매일매일 성장하고 자유로워지고 치유되는 것을 느낍니다. 또 연극의 주제를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더 성장하게 되고 함께하는 배우들과 공동의 목표도 갖게 되고요.
진정한 치유란 무엇인가요.
모든 이야기에는 그 밑바닥에 사랑이 흘러야 합니다. 저는 진정한 치유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쳐주고 치유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연극은 우선 즐기고 재미있게 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제도 생각하는 것이지요.
‘푸르른 날에’와 함께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는 공연도 4월에 펼쳐집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시간이 지난 일이고 세월호 참사는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바라보고 치유하는 방식도 각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깊은 상실과 상처를 온전히 치료할 수 있는 열쇠는 없겠지요. 하지만 시간과 그들을 향한 관심과 나눔, 사랑이 아픈 마음을 조금씩 어루만져주고 미래를 열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역사적 상처는 함께 공유하고 아파해야 할 연대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 공연을 보게 될 관객, 아픔을 가진 관객에게 연출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좋은 작품, 좋은 배우들과 함께한 작업은 늘 행복합니다.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지만 저는 여전히 사랑과 낙관의 힘을 믿습니다. 작품을 만들 때도 늘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했으니까요. 이번 무대가 아픈 상처를 함께 보듬어줄 수 있는, 그리고 힘들지만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삶의 가장 ‘푸르른 날’임을 기억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출가 제러미 나이덱
‘치유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비언어신체극 ‘델루즈(Deluge):물의 기억’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의 국제 교류 프로그램인 ‘예술가공동창작워크숍’을 통해 2010년부터 한국과 호주의 예술가들이 협업 과정을 통해 완성한 프로젝트. 2014년 호주 브리즈번 페스티벌과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초청되었다. 호주 시인 주디스 라이트의 ‘홍수’를 모티브로 해 치유의 생명력과 거대한 파괴력을 동시에 지닌 물의 기억을 비언어신체극을 통해 들려준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것들을 기억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용·음악·신체극 등 다양한 공연 예술 분야에서 전 방위로 활동 중인 호주 예술가 제러미 나이덱이 연출을 맡았다.

‘델루즈(Deluge):물의 기억’은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특별 기획한 작품인데, 한국 무대에 올리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이 작품을 올리는 것이 흥분도 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한국에서 작업을 해왔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국적 시각과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깊은 상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지요. 몇 년전 호주 브리즈번에서도 큰 재해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 공연의 모티브가 된 2011년 호주에서 발생한 큰 홍수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운명과 그로 인한 파괴, 그리고 부활의 큰 순환의 한 면을 무대에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델루즈(Deluge):물의 기억’의 연결 고리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은 무엇인가요.
관객과 감정적으로 강한 연결점을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습니다. 아무리 표현하는 사람이 훌륭하게 뭔가를 말한다 해도 그것을 들어줄 만한 감정의 공감이 없으면 관객은 반응하지 않지요. ‘델루즈(Deluge):물의 기억’은 매우 추상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관객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저는 그 부분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작품은 문래예술공장의 국제 교류 프로그램 ‘예술가 공동창작 워크숍’을 통해 완성되었는데, 그 과정은 어땠나요.
호주에서는 예술가들이 새 작품을 만들 때 오랜 기간 일하는 것에 익숙한 편입니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기에는 늘 부족한 면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더 많은 지원을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이것을 ‘창조적 개발’이라 부릅니다. 이 작품의 시작은 2010년 문래예술공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철강과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하는 예술작업은 무척 매력적이었지요. 그런데 1년 후 호주 브리즈번에서 큰 홍수가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비탄에 빠졌지요.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 그리고 폐허가 된 도시와 마음을 치유할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것을 작품에 담고 싶었고, 그것이 ‘델루즈(Deluge):물의 기억’ 오리지널 버전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주디스 라이트의 ‘홍수’라는 시를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어떤 시인가요.

주디스 라이트는 호주의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한 사람이고 ‘홍수’라는 시는 비언어적신체극을 표현하기에 완벽한 언어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는 무서운 자연과 마주친 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가끔은 ‘홍수’가 주제인지 ‘그녀의 사랑의 기억’이 주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혼돈스럽기도 합니다. 물이 그녀에게 이야기하는지, 그녀가 물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물은 시종일관 당신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저 수백만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흘러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느낄 뿐이지요. 그렇게 물은 비인격적이면서도 때로는 아주 인간적으로 표현됩니다. 그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구체적으로 물의 파괴력과 물의 생명력을 어떻게 비언어신체극으로 표현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연에 진짜 물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기에 더욱 힘들었지요. 물을 표현하는 무용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발레는 매우 긴 라인을 가지고 있고, 파워풀한 도약도 포함되어 있지요. 물은 때로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흐르고, 때로는 거칠게 몰아치기도 합니다. 이런 다양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테크닉적 면에서도 많은 기술력과 감성을 요구합니다. 결국 이 작품의 열쇠는 인간의 몸으로 물을 표현해내는 것이지요.
예술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지요.
치유는 개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한마디로 단정 짓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쨌든 예술은 치유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사람들의 기억, 경험을 불러오고, 그 기억과 경험을 변형시킬 방법을 이끌어낼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희극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픔에 대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면, 비극 속에서 우리는 비록 인정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비극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지요. 그리고 이 비극적인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델루즈(Deluge):물의 기억’ 같은 작품 속에서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기억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일지 모릅니다.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니까요. 하지만 이때 억압된 그 감정의 골을 음악이나 무용 등의 예술로 표현하면서 외부에 표출하게 되면 그것을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마음이 정화되고 안정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미학적으로 그 슬픈 경험을 이끌어내 관객이 함께 슬픔의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인 슬픔과 고통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예술을 통해 당신도 치유된 경험이 있나요.
2013년 서편제 리허설 중 배우들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안숙선 선생이 심청전의 한 부분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심청이 아버지와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보면 심봉사가 딸이 살아 있는 것을 믿지 못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는 그 순간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퍼하던 어린 시절의 제 자신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끔 할머니가 살아계신 꿈을 꾸곤 했는데, 그 작품을 보면서 이제는 할머니의 죽음의 기억과 슬픔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한국 관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질문이 가장 대답하기 어렵네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언제 다시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게 될지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뭐라고 말할 수 있나요?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이 작품을 만든 이유입니다. 작품을 만든 사람이라고 해서 이런 슬픔을 극복할 뚜렷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비극적인 슬픔이 있을지라도 인생은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그래서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파괴의 한가운데에서 싹을 틔운 아주 작은 씨앗이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예술은 당신이 겪은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숨김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애도하게 한다. 완벽한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슬픔을 겪은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그 여정을 함께한다. 그 여정의 시간은 느리고, 종종 지체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작품을 만든 두 연출가는 말한다. ‘예술은 사랑, 예술은 희망’이라고. 치유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글 국지연 기자(ji@gaeksuk.com) 사진 심규태·서울문화재단

 

연극평론가 배선애의 시선
가슴에 패인 상처를 쓰다듬는, 연극적 언어와 그 치유의 여정
살이 패였다. 그 사이로 붉은 피가 흐른다. 아프다. 이것이 몸이 겪은 상처라면 의외로 간단하다. 병원을 찾아 약을 바르고 거즈와 붕대로 칭칭 감으면 된다. 문제는 이 상처가 마음에 났을 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직접 약을 발라주거나 붕대를 감아줄 수 없는 상처. 더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역사가 될 때,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이미 역사가 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그것을 다룬 연극이 상당한 편으로, ‘금희의 오월’ ‘오월의 신부’ ‘짬뽕’, 비교적 최근인 ‘푸르른 날에’ ‘아버지와 함께라면’ 등을 꼽을 수 있다. 초기작이 대체로 사건의 전말과 그 당시 직접적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최근 작품들은 그 사건의 상처를 현재진행형으로 품고 사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어루만져주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5.18 당시 아버지를 외면해 죽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절대 행복해선 안 된다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딸에게 아버지가 영혼으로 나타나 그러지 않기를, 지극히 행복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함께라면’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결코 죄가 아님을 아버지의 입을 빌려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치유와 위로의 정서는 ‘푸르른 날에’도 공유하는 부분이다. 2011년부터 매해 5월이면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하는 이 작품은 올해 초연 배우들의 마지막 무대로 한창 공연 준비 중이다. ‘아버지와 함께라면’이 아버지와 딸이라는 단순한 구조에 집중했다면, ‘푸르른 날에’는 보다 복합적으로 당시 사건의 재구성과 상처 받는 과정, 그리고 그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맥락과 치유라는 거대 서사를 보여준다. 주목할 것은 5년 연속 관객과 만난다는 사실로, 이 작품의 공연 역사가 곧 치유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는 항상 연극이 ‘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어떤 작품을 연출하든 그의 공연에는 놀이가 가득하고, 그것이 연극성으로 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푸르른 날에’도 예외는 아니다. 5.18의 뜨거운 현장, 고등학생이 죽기를 각오하고 무기를 잡을 수밖에 없는 그 극단적 순간에도 배우들은 양식적 연기와 과장된 화술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5.18에 웃음이라니! 자칫 사건 자체의 무게와 의미가 휘발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는 이 조합은 실상 매우 영리하고 차분한 연극적 장치로 기능한다. 즉, 결의와 비장이 넘쳐나는 장면을 오히려 웃음으로 채움으로써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그 현장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특정 사건을 소재 삼은 공연이 대체로 서사극 양식을 취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거리 두기를 통해 사건을 객관화하고 관객에게 판단의 시선을 부여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비극적 정서는 관객의 몰입과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유도하기에 사건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울릉도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상처꽃’이 서사극 양식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관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전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역사적 사건일수록 웃음 등의 연극적 장치로 거리를 두는 것은 사건에 감정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그 상황을 직시함으로써 사건 이후의 인물들과 상처에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아이디어다.
그렇다고 해서 ‘푸르른 날에’가 시종일관 우스운 것은 아니다. 민호가 쇠사슬에 목이 묶인 채 물고문을 받는 장면은 적나라하고 사실적이어서 그 장면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분노가 치민다. 사건 자체를 웃음으로 객관화하면서도 고통의 장면에서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주인공이 받은 상처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기 위해서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봤다면, 이제는 그 사건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이 어떻게 상처 받았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 관객이 공감을 해야 한다. 판단 이후에 이어지는 공감. 이러한 공감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현재진행형인 민호의 상처는 그저 특별한 상황을 겪은 타인의 이야기일 뿐이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은 민호에게 공감한 후에는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게 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주고받는 대사 속에 그 상처가 모두에게 현재진행형으로 작동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라는 인식의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고통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속세와 연을 끊고 출가한 민호가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욱 따뜻하다. 힘들었던 기억, 결코 자유로울 수 없던 그 상처들을 이제야 대면하고 그것을 서로 함께 어루만지는 위로와 치유의 모습이다.
놀이성에서 촉발된 웃음, 사건에 대한 거리 두기, 인물의 상처에 대한 공감, 그리고 치유의 양상까지 보여주는 ‘푸르른 날에’는 역사적 상처를 연극적 언어로 치유하는 방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픔과 상처에 빠져들지는 않으나 적극적으로 공감하면서 위로와 치유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5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축적했으리라 짐작된다. 작품 속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는 각자의 5·18과 그 상처가 해마다 다르게 다가올 것이고, 그것을 접하는 관객도 역사적 사건과 상처, 그것을 몸으로 겪어낸 인물들을 보며 지금 현재에 대한 고민을 쌓아갈 것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은 ‘세월호 참사’라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너무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이 팽배했고, 패배감과 죄책감의 늪 속에서 허우적댔다. 시대에 예민한 예술계는 세월호와 그 상처를 올해의 주요 화두로 삼을 것이다. 더구나 4월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진행 중인 이 사건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본격적으로 말을 거는 작품 ‘델루즈(Deluge):물의 기억’이 눈에 띈다. 작년에 이미 여러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물의 파괴력과 생명력을 보여준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실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세월호의 상처를 어루만지려 한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은 아물 시간이 없어 벌겋게 부어 있는 상처다. 이미 충분한 시간이 흘러 흔적으로만 남은 상처를 쓰다듬는 방법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그 손길이, 부어 있는 상처가 덧나지 않게, 차분히 부기가 빠질 수 있도록 정성과 사랑으로 어루만져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씩 아물 수 있게, 하지만 그 상처를 공감하고 잊지 않도록 그렇게 쓰다듬어주면 좋겠다. ‘푸르른 날에’가 그랬듯이 이 작품도 연극이,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그런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건네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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