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창단 50주년 기념 음악회 ‘함께 미래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창단 50주년 기념 음악회 ‘함께 미래로’

4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걸어온 50년, 걸어갈 50년

1965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창립할 당시 국악계를 흔들던 파동과 진동은 시쳇말로 장난 아니었다. 무엇보다 ‘국악’과 ‘관현악’을 붙이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이 땅의 ‘국악’과 물 건너온 ‘관현악’의 꺾꽂이는 긍정의 효과와 동시에 알레르기를 낳았다. 어쨌든 실험은 계속되었다. 단원들에게 악기는 실험 도구였을 것이고, 정간보의 음률이 이사한 오선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가 지금의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을 만들었다.

이번 공연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창단 50주년을 축하하는 무대였다. 막이 오르고 ‘반세기 역사를 지켜온 창작음악의 종가(宗家)’라는 표어가 스크린에 비춰졌다.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작곡가 김희조·김용진·김영동·이상규, 해금 명인 지영희 등은 종가의 장손이었고, 그 수하의 훌륭한 연주자들을 배출시킨 터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창작 음악의 사관학교’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이날의 지휘봉은 원영석이 잡았다. 1부에서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이 함께해 조원행 편곡의 ‘수작(秀作)’과 정동희가 편곡한 판소리를 선보였다. 2부에서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50주년꿈나무특별연주단이 함께해 이준호 작곡·박경훈 편곡의 ‘축제’와 신윤수 편곡의 ‘전통의 향기’ 그리고 이번 무대를 위해 위촉·초연한 김백찬 작곡의 ‘함께 미래로’를 연주했다. 원영석은 말만 객원일 뿐 꾸준히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지휘대에 오르는 종가의 지휘자다. 그래서인지 단원들과 호흡도 밀도 있게 잘 맞았다.

조원행이 편곡한 ‘수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강덕의 ‘송춘곡’(1965), 김용진의 합주곡 4번(1967), 이성천의 ‘새야새야 민요 주제에 의한 환상곡’(1985), 이상규의 ‘대바람 소리’(1978), 이해식의 ‘향발굿’(1985), 전인평의 ‘선비와 호랑이’(1981), 이건용의 ‘산곡’(1992), 김영동의 ‘매굿’(1981), 황의종의 ‘만선’(1984), 김백찬의 ‘얼씨구야’(2014)까지 하이라이트 부분을 선별해 엮은 옴니버스 곡이다. 18분에 해당하는 길이, 그리고 글로 적으면 한두 줄로 요약되는 곡이지만,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이 ‘수작’이 탄생하는 오늘을 위해 50년의 시간을 달려왔을 것이다. 끊김 없이 흐르는 단악장 구성으로 곡이 바뀔 때마다 무대 위 스크린에는 작곡가의 이름과 곡명이 비춰졌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라는 거목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창작 음악을 담아온 ‘용기(容器)’로서 역할, 즉 그릇으로서 노릇을 충분히 해온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실험을 담을 ‘용기(勇氣)’ 즉 담대함이다. 지나온 50년보다는 나아갈 50년에 희망을 걸게 하는 ‘딴짓’을 더 많이 시도했으면 한다. 사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모체로 삼은 서양의 오케스트라들은 오늘날 경제적 난관에 봉착해 운영의 묘를 궁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문법을 수용·응용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 ‘그 이후’에는 무관심했다.

앞으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을 통해 ‘국악관현악계의 금난새’가 나와 재미난 입심으로 국악이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단원의 배치를 다각적으로 실험해 최상의 음향을 이끌어낸 ‘국악계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같은 지휘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즉, 실험과 딴짓이 시끌시끌하게 진행되었으면 한다.

사진 나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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