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家족의 발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객석’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다섯 가족을 만났습니다.
인연이 짙어져 가족이 되고 대를 이어가며 음악을 공유해온 사람들.
특별한 가족의 소소한, 하지만 단 하나뿐인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지휘자 김명엽·김광현 부자

말 없는 사이  

카메라 앞에 두 남자가 섰습니다. 한 사람은 합창 지휘자 , 다른 사람은 오케스트라 지휘자군요. 볼수록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아 보이는데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두 사람은 부자 (父子) 입니다. 아들 김광현 지휘자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집 안 풍경은 음악과 관련된 책이며 LP,CD,비디오테이프가 잔뜩 꽂혀 있는 거실에서 시작됩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늘 스리 테너의 공연 실황 비디오를 꺼내 틀어놓으셨어요. 그때마다 제 시선을 끈 건 성악가들이 아닌 주빈 메타였죠.” 어린이 찬송가를 작곡하고 지휘자로 활동하는 아버지와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 음색이 빼어난 남동생까지. 네 식구가 모이면 그곳이 집이든 운전하는 차 안이든, 가족은 자연스럽게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어머니가 나비넥타이를 꺼내는 날은 두 아들과 공연장에 가는 날이었답니다. 또, 아버지를 따라 합창단이며 오페라 연습도 자주 구경했지요. 연습실 한구석에서 ‘카르멘’ 이나 ‘라 트라비아타’ 를 지켜보던 시간은 지휘자의 꿈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었답니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합창 지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해요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회 날이었어요. 합창단을 연습시킨 아버지가 아닌 다른 지휘자가 포디엄에 서 있는 걸 보고, 어린 마음에 속상해하던 기억이 있어요. 공연이 다 끝나고 혼자 엉엉 울었거든요. 제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택하게 된 것도 이런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 웃음 )” 아버지 김명엽 지휘자는 6 ·2 5 전쟁 때 부모를 잃고 자수성가한 ‘개척자 세대 ’ 입니다. 자녀들에겐 “음악가는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한다” 며, 스스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늘 강조했다고 합니다. 합창 지휘자로 활동하던 아버지 ‘덕택 ’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 특별히 해준 건 없다는 것이 부자의 공통된 이야기입니다.

“악기를 사주거나, 밤늦게 연습실에서 집으로 데려다주는… 여건 정도는 만들어줬지만, 음악을 직접 가르치거나 직접적인 도움을 준적은 없어요. 아들이 하는 공연을 봐도, 성격상 칭찬에는 인색했어요. 음악에 대한 코멘트를 아예 안 했죠 . 어쩌면 광현이가 섭섭했을지도 모르겠어요. ” 대한민국 부자 사이의 침묵은 ‘음악 ’ 도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흐르는 유산은 그 어느 것보다 값지고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서른 살 결혼하던 날까지 매일 아침 저와 제 동생을 끌어안고 기도를 해주셨어요. 오늘 하루를 지날 때… 로 시작되는데, 저희에 대한 사랑을 늘 말보다 몸으로 보여주셨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책이나 음반, 영상물은 젊은 시절부터 모은 건데, 이걸 줄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죠. 옛날엔 저 녀석이 언제 커서 저 책을 읽나, 이 음반은 또 언제 꺼내 들어보려나 하고 생각했죠. 근데 결혼하고 분가한 뒤에 보니 책이랑 DVD 몇 개가 안 보이더라고요.( 웃음 )” 외모며, 성격까지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 음악 안에서 나란히 걸어가는 동반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과 달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옐로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이 지휘자인지라, 개성은 선명하되 단원들을 늘 따뜻한 가슴으로 대하길 바란다고요 .

글 김선영 기자 (sykim@gaeksuk.com ) 사진 박진호 (studio Bob)

지휘자 김명엽은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2대 단장 ·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 울산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했으며 , 34 년간 연세대 · 추계예대 교단에서 학생들을 만나왔다. 현재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재직하고 있다 . 지휘자 김광현은 서울대에서 작곡 · 지휘를 전공하던 중 2004 년 샤를 뒤투아에게 발탁돼 제 9 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초청, 규슈 심포니를 지휘했다. 이후 슈투트가르트 국립 음대 지휘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경기필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역임했으며, 현재 원주시향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트리오- 바이올리니스트 주연주·주연경, 첼리스트 주연선

세 자매의 행복한 동행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는 학창 시절부터 늘 누군가와 함께 연주하는 현악기 주자들이 부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딸인 세 자매에게 어린 시절부터 여러 악기를 가르치면서 음악가로서 꿈을 키워주었다. 그리고 딸들이 초등학교 4 학년이 되었을 때 무릎에 앉혀놓고 한 명 한 명에게 물었다 . “ 넌 무슨 악기가 하고 싶니 ? ” 이렇게 해서 첫째 주연주와 셋째 주연경은 바이올린을, 둘째 주연선은 첼로를 택했다. 꼬마 숙녀들이던 이들이 자라 이제 결혼해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 서울시향에서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 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 음악으로 영혼을 울리는 순간을 꿈꾸는 그들에게 물었다 . “ 당신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

큰딸 주연주, 온화한 성품의 바이올리니스트

“ 여러 악기를 공부했지만 특히 바이올린 곡이 재미있고 , 음색이 좋아서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비올라의 매력에도 흠뻑 빠져 있답니다. 대학 때부터 유학 시절까지 계속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같이 했는데, 요즘 다시 꺼내서 시작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걸까요? 비올라 음색도 참 매력이 있어요. 전 음악을 ‘즐거움 ’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즐거움을 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요. 무엇보다 가족이기에 서로 질책할 수 있고 아파해줄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 주연선 “ 연주 언니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 참 간결하고 담백합니다. 어릴 때부터 동생들을 보살피던 따뜻하고 온화한 마음이 연주할 때도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같이 연주를 할 때도 언니는 늘 저희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줍니다. 포용력 있는 성격 때문에 어른들이 특히 언니를 좋아하세요 . ”

둘째 딸 주연선, 몰입하면 끝장을 보는 첼리스트

“ 첼로의 낮고 묵직한 음색에 많이 끌렸어요. 무엇보다 저와 악기의 소리가 잘 맞았죠. 음악을 하는 건 참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연주를 하고 만나면 음악 얘기를 할 수 있어 든든하고 즐거워요. 세 자매가 서울시향 단원으로 모두 연주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이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 저희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운명적으로 가족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가 봐요 . ” 주연경 “ 음악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저흰 모두 열정적이에요. 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 서로 격려해주고 때로는 냉혹한 비판자가 되어주기도 하죠. 특히 연선 언니의 깊이 있는 첼로 음색을 참 좋아합니다 . ”

막내 주연경, 밝고 낙천적인 바이올리니스트

“ 어린 시절 많은 악기를 배웠지만 제겐 오직 바이올린뿐이었어요. 다른 악기는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거든요. 무엇보다 공부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 하지만 힘들었던 유학 시절에는 연선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울기도 하고 조언도 많이 받았어요. 제게 가족은요. 편안한 집 같아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휴식처처럼 따뜻하고 포근하죠 .” 주연선 “ 연경이는 평소 성격이 밝고 음악도 굉장히 맑아요 . 어린 시절 연경이는 연습하기 싫을 땐 방에서 도망칠 만큼 용감한 아이였어요 .( 웃음) 연경이의 바이올린 음색은 화려하고 매력적이죠. 어딜 가나 분위기 메이커예요. 하지만 내면의 깊이가 느껴지는 음악을 연주할 때면 영락없이 진지한 음악가로 돌아가죠. 연경이가 있을 때 저희 가족들의 입가엔 언제나 웃음꽃이 핀답니다 . ”

맑고 동그란 눈이 유난히 닮은 주트리오. 초록빛 봄 햇살처럼 세 자매가 전하는 밝고 화사한 선율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녀들의 말처럼 어쩌면 오르막길이 아닌 인생의 내리막길을 향할 때 기꺼이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 아닐까 .

글 국지연 기자 (ji@gaeksuk.com)

바이올리니스트 주연주는 예원학교 · 서울예고 ·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예일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시향 제 1 바이올린 단원이다 . 첼리스트 주연선은 예원학교 · 서울예고 ·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하고 라이스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시향 첼로 수석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주연경은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라이스 음대 석사를 마치고 서울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서울시향 제 1 바이올린 부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플루티스트 박지은 부부

1+1=3

“어제 아기 낳느라 전화를 못 받았어요!”

수화기 너머 해맑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플루티스트 박지은입니다. 얼마 전 ‘아르스 노바 ’ 에서 서울시향 단원들과 함께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오른 그녀가 4월 19일,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이 인터뷰 첫마디에 들려옵니다. 아기 이름은 아직 고민 중이라, 지금은 ‘사랑’이라는 태명으로 부르고 있다네요 .

어쨌든 목관악기 연주자인 부모를 둔 덕에, 사랑이는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엄마 뱃속에서 뭐 하나 불면서 나올 것 같다 ” 는 이야기를 듣고 다녔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본인이 정말 원하는 게 아니면 취미 정도로만 악기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네요. 사랑이가 결국 무엇을 잡게 (? ) 될지는 시간이 좀 더 흘러야 알 수 있겠죠?

서울시향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을 때 많은 음악 팬의 눈물을 흘리게 한 박지은 ·채재일 부부. 처음엔 두 사람도 그저 서로 말이 잘 통하는 동료였다고 합니다 .

“플루트 바로 뒷자리가 클라리넷이잖아요. 연주가 끝나면 항상 그날 공연을 서로 리뷰해줬어요. 리허설이랑 실제 공연 중 어느 때가 더 나았는지 물어보거나, 전체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이라든가. 좋아하는 음악가이자, 허물없이 친한 한 살 터울의 오빠였죠.”

연애하기 전에는 서로에 대한 작은 편견들이 있었다고 하네요.

‘직업상 항상 바쁘고 음악이 중요한 사람이니, 왠지 남자친구나 배우자에겐 소홀하지 않을까.’ ( 채재일 )

‘항상 무슨 일에도 철저하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니, 왠지 연애도 연습 스케줄 짜듯 시간 단위로 나눠서 할 것 같다.’ ( 박지은 )

귀여운 (!) 오해도 잠시. 서로의 몰랐던 면모를 알아가면서 사랑도 음악도 더욱 깊어지게 되었답니다 .

그리고 연애한 지 1년 5개월 만인 2013 년 3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합니다 .

부부가 되고 나니, 동료이자 연인으로 지켜볼 때와는 다른 면모에 또 놀랐다고 하는데요. 박지은의 경우 채재일이 매일 끼니 챙겨 먹듯 연습하는 모습에 놀라고, 채재일은 생각보다 (? ) 연습을 안 하는 박지은이 실전에 강한 걸 보고 신기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두 사람 모두 서울시향에서 목관악기 수석을 맡은 데다, 각자 음악 세계가 확고하니 서로에게 경쟁심을 한 번쯤 느꼈을 것 같다고요.

“오히려 늘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목표 의식도 뚜렷하고, 완벽주의자라 연습도 엄청 철저하죠 . 예전엔 저희 둘 다 수석인지라 자리가 주는 부담감을 잘 아니까, 서로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어요 . 그래서 같이 살수록 진국이다 싶어요. 조금 닭살스럽지만 제가 남편을 ‘보물단지 1호 ’, 아기를 ‘보물단지 2호 ’ 라고 부르고…”

이때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를 가로막는 사랑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뭐든 해낼 것 같은 기운 넘치는 소리가 왠지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제 대화를 마무리해야겠네요 ! 박지은·채재일 부부를 무대에서 만나는 건 올여름 대관령이 될 것 같은데요. 9 월에는 함께 리사이틀을 가질 예정이라니, 엄마와 아빠가 된 이후에 달라질 두 사람의 연주를 기대해 볼까요?

글 김선영 (sykim@gaeksuk.com)

플루티스트 박지은은 맨해튼 음대 및 예일 대학교 대학원 졸업 , 2005 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향 수석 주자, 한양대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야마하 목관악기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은 줄리아드 음대 및 대학원 졸업 , 200 7년 LA 오페라 오케스트라 종신 단원이 되었고, 서울시향 수석 주자를 역임했다. 현재 리드제작사 리코와 뷔페 크람퐁의 아티스트이자 금호아트홀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 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영남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오보이스트 정예창 가족

홀로서기를 위한 든든한 지원군

클라리넷 주자인 아버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어머니 사이에 선 오보이스트 정예창이 장난스럽게 두 귀를 막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포즈다. 프랑스 파리에 유학한 지 벌써 10년. 올해 한국 나이로 스물넷이 된 정예창은 오랜만에 마주한 부모님이 반가우면서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쑥스러운 듯 웃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건 물론 외롭죠. 그래도 부모님이 젊은 시절 유학하신 곳이라 그런지 처음 갔을 때도 파리가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어요.”

네 살인 정예창이 먼저 잡은 악기는 오보에가 아닌 바이올린이었다. 여덟 살 터울의 형이 아버지 정운대를 따라 클라리넷을 공부했고, 정예창은 자연스럽게 어머니 이혜영을 좇아 바이올린을 배웠다. 이혜영은 평소 친분이 있던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정예창의 레슨을 부탁했는데, 어린 정예창은 어머니와 선생님의 ‘열성’에 두 손을 들었다.

“어린 마음에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연습할 때도 어머니께 꾸중을 많이 들었거든요. 선생님도 엄청 꼼꼼히 가르쳐주셨고요.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오보에를 알게 됐고, 돌파구를 만난 듯 빠져들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인 것 같아요. 다른 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오보에 소리가 참 좋았거든요.”

정예창은 부모님의 격려 덕분에 더욱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2005년 금호 영재 콘서트의 독주회 무대로 데뷔한 이후 2011년 이탈리아 키에리 콩쿠르 1위, 2012년 프랑스 앙리 토마시 목관 5중주 콩쿠르 1위, 2013년 루마니아 게오르게 디마 오보에 콩쿠르 1위, 스위스 무리 오보에·바순 콩쿠르 3위를 수상하며 세계 여러 무대에 오르는 동안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방황의 시기를 이겨냈다.

“처음 콩쿠르에서 입상하지 못했을 때는 좌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도전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부모님은 별다른 말씀 없이 ‘최선을 다했으니 충분하다’고 하셨어요. 아주 오래 준비한 콩쿠르에서 떨어졌는데도 말이죠! 제가 어떤 과정에 있는지 아셔서 그랬나 봐요. 덕분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무대가 두려웠는데,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겨 제가 생각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KBS교향악단 클라리넷 수석을 지낸 후 천안시향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아버지 정운대를 보며 정예창은 오보에 외 다른 악기에도 귀 기울이게 되었다.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은 바수니스트 세르조 아촐리니의 연주곡이라며, 음악에 대한 주관을 뚜렷이 했다.

“저만의 색깔을 가진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관악기의 보컬적 테크닉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연주자가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아버지도 ‘악기는 수단일 뿐 음악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막내아들이 이젠 어엿한 ‘동료’가 되어 부모님과 음악적 교류를 나눈다.

“음악 지식이나 연주자로서 생활 태도 등 제가 보고 자란 부모님의 모든 면이 제게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지 못하지만, 제 음악에 대해 부모님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앞으로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으면 해요. 음악에는 세대 차이가 없잖아요! 생각과 느낌을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연주자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음악으로 더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1992년생인 오보이스트 정예창은 파리 고등 음악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탈리아 키에리 콩쿠르 1위(2011), 일본 가루이자와 오보에 콩쿠르 특별상·프랑스 앙리 토마시 목관 5중주 콩쿠르 1위(2012), 루마니아 게오르게 디마 오보에 콩쿠르 1위·스위스 무리 오보에·바순 콩쿠르에서 3위(2013)를 입상했다. 클라리네티스트·지휘자 정운대는 뤼에유말메종 국립 음악원을 졸업하고 KBS교향악단 수석, 천안시향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혜영은 뤼에유말메종 국립 음악원 졸업 후 KBS교향악단에서 활동 중이다

아버지 정운대가 아들에게

콩쿠르 결과에 오래 낙담하거나 들뜨지 않고 다시 차분히 연습을 시작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젊을 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신세대라 그런가. 참 흐뭇하다. 관악기는 피아노나 성악과 달라서 솔리스트로 살아가기가 쉽진 않을 거야. 그럼에도 베를린 필하모닉의 알브레히트 마이어처럼 앙상블도, 독주도 잘하는 연주자가 됐으면 한다. 음악을 한 지 50년쯤 되니 ‘악기쟁이’가 아닌 진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태해지지 말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노력하다 보면 네가 원하는 지점에 다다를 수 있을 거다. 언제나 힘내라, 아들.

어머니 이혜영이 아들에게

예창아, 어린 네게 바이올린을 가르칠 때 사실 나도 마음이 아팠단다. 내 눈엔 네가 정말 예쁜데, 자꾸 야단을 쳐야 하니 엄마와 아들의 관계까지 나빠질까 걱정스러웠어. 어린 나이에 홀로 외국에 나가 10년간 씩씩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엄마랑 아빠는 차에 탈 때 항상 네 생각을 하며 네가 연주한 음악을 듣는단다. 엄마는 언제나 네가 자랑스러워!

트럼피터 안희찬 가족

온 가족이 바람 부는 이야기

Scene # 1 안희찬과 임시원 부부

때는 1990 년, 용평 리조트입니다. 트럼피터 안희찬과 임시원은 코리안심포니에서 주최한 캠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안희찬은 임시원을 보며 “트럼펫을 참 잘하는 친구네 ” 라고 생각했죠. 1990 년대 초반,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이던 안희찬은 잠시 한국에 들어옵니다. 친구 따라 놀러 간 서울대 음대에서 우연히 임시원을 다시 만났고, 안희찬은 즉석에서 트럼펫을 꺼내 함께 듀엣을 해보자고 합니다. 짧은 만남 이후 1991년, 유학에서 돌아온 안희찬은 금관 5중주단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금관 실내악 초석을 다지리라!’ 결심합니다 . 금관 5중주에는 두 명의 트럼피터가 필요하죠. 함께할 단원을 생각하던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임시원. 곧장 연락해 함께 실내악을 해보겠느냐 물으니 , 임시원은 선뜻 수락합니다 . 1991 년 가을, 이들의 금관 5중주 연습은 시작됩니다. 이듬해 안희찬은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집니다 . “그냥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어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봤는데, 여자라고는 임시원밖에 없는 거예요. 코리안심포니 수석 할 때였는데, 오케스트라 여자 단원들은 그냥 직장 동료니까 …. ” 금관 5중주단 활동 때문에 안희찬과 임시원은 매주 만나 연습하고, 또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텄지만, 사실 트럼펫 연습이 데이트의 전부였어요. 단둘이 극장에 가도 잠만 자다 나왔다고 합니다 . 해가 바뀌기 전, 서울대 입구 앞 어느 커피숍 2층. 안희찬이 임시원에게 불쑥 말을 건넵니다 .

“우리 그냥 결혼이나 하자 .”

나중에 알았지만, 임시원은 코리안심포니에서 안희찬이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하네요. 도입부 트럼펫 솔로를 멋지게 뽑아내는 모습에 ‘안희찬의 미래 ’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 1993 년,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합니다. 이듬해 큰딸 안석영이 태어납니다. 임시원은 1995 년 KBS 교향악단에 입단해 10 년간 활동합니다. 그사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두 명 더 늘었죠 . 이후 임시원은 늦은 나이를 걱정하는 남편 안희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아이를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유학을 떠나 다시 학생이 됩니다 .

Scene # 2 큰 딸 안석영과 막내아들 안석진

2006 년, 미국에서 중학교에 입학한 큰딸 안석영은 교내 악단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트럼펫을 선택합니다. 브라스 밴드와 재즈 밴드 활동은 트럼펫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지요. 2 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선화예중 3학년에 편입합니다.“ 트럼펫이 ‘전공’ 이 되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물밀듯 몰아쳤어요. ‘부모덕에 입상했냐’ ‘비밀 레슨을 받는 게 아니냐’ 등 뒷말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당시엔 상처도 많이 받았죠.” 선화예고에 입학한 뒤에는 자진해서 실내악 단원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금관 5중주단에서 함께 연주하는 것을 보고 늘 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안석영은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관악기를 계속한다면, 관악기를 위한 작곡이나 금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우리나라 금관악기의 지평을 넓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합니다. 호른을 배웠지만, 구강 구조상 포기해야 했던 둘째 딸은 지금 만화가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 그리고 남은 건 막내아들 안석진.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느 날, 가족들에게 갑자기 트럼펫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 그리곤 트럼펫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선화예중에 입학합니다. 지난 30 년 사이 안희찬과 임시원 부부에게는 세 자녀가 생겼고, 음악계에도 굉장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안희찬이 말합니다.“ 내가 지금 10대로 돌아가 나 같은 선생한테 배우면 참 좋겠다! 난 너희가 부러워!” 그 말을 듣던 어머니 임시원이 말합니다. “언제부턴가 큰딸과의 대화가 마치 동료 음악가와 수다 떠는 기분이에요. 막내와도 그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 ”

글 장혜선 기자 (hyesun@gaeksuk.com)

트럼피터 안희찬은 KBS 교향악단 수석, 코리안심포니 수석, 아시아 필하모닉 수석을 역임했다. 강남윈드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코리아 브라스 콰이어 · 서울 금관 5중주단의 리더로 활동하며,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트럼피터 임시원은 서울대학교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졸업, KBS 교향악단과 부천필하모닉 단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페스티발앙상블과 서울 금관 5중주단에서 활동하며, 서울대 · 숙명여대 · 선화예고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트럼피터 안석영은 요제프 하이든 트럼펫 콩쿠르, 해외 파견 콩쿠르, 아트실비아 콩쿠르 영실비아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트럼피터 안석진은 선화예중 1학년에 재학 중이며 , 서울대학교 동문 전국 관악 실기 경연대회에서 1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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