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꼭 정해놓고 듣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쓸쓸할 때면 자연스레 손이 가는 곡이 있다. 바로 정재일의 ‘주섬주섬’. 그의 앳된 목소리와 조금은 바보 같은 미소가 이 곡의 정서와 겹쳐 나의 머릿속에 정재일은 ‘우울한 소년’의 이미지를 지녔다. 무용극 ‘클럽 살로메’ 개막을 앞두고 만난 정재일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우울한’은 맞는데 ‘소년’은 글쎄, 아닐걸요” 하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17세 소년 시절의 정재일은 ‘천재’라 불리며 세상에 알려졌다. 한상원(기타)·정원영(건반)·이적(보컬) 등 삼촌뻘 선배들과 밴드 긱스를 결성해 활동했다. 내로라하는 음악가들 사이에서 작·편곡부터 연주·프로듀싱까지 그것도 훌륭히 해내던 ‘재일 군’.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아홉 살에 기타를 잡은 그는 정규 고등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벌써 17년이 지났다.
그의 성장 과정이 궁금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떤 분야의 소질을 발견하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무엇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당연한 듯 먼저 한다. 그리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범위에서 그 ‘무엇’이 되기 위한 길을 찾는다. 하지만 정재일은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생각하며 달려왔다. 소년 정재일은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이 ‘하고’ 싶었을까.
“딱히 다른 꿈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하지만 프로 무대에 데뷔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죠. 생계유지 문제도 있었고, ‘기회’가 여러 번 찾아오기도 했어요. 재즈를 가르치는 학원에서 작곡을 공부하다 기타리스트 한상원 형을 만났는데, 이제 막 시작하는 제게 본인의 솔로 음반에 연주자로 참여하라며 베이스 기타를 빌려주었죠. 또 장선우 영화감독을 통해 원일 형을 알게 됐는데, 영화 ‘꽃잎’의 영화음악 작업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묻더군요. 고민할 여지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정신없이 배워나갔습니다.”
특별한 ‘순간’을 연주하다
재능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소년 정재일에게 음악가로서의 방향성을 제시한 건 독일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의 ‘카네이션’이었다. 정재일은 이 작품을 통해 익히 들어온 음악도 무대 위 이미지와 결합하면 전혀 다른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황홀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었죠. 현대무용이라는 장르에서 인상을 받았다기보다는 2~3시간 동안 극장 안에서 펼쳐진 ‘무언가’에 강렬함을 느꼈어요. 일본 전통 예술인 노가쿠(가면극)도 좋아해요. 1년에 두세 번은 노가쿠를 보기 위해 일본에 가죠. 긴 호흡으로 저를 꼼짝 못하게 하는, 그런 예술 작품이 제게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피나 바우슈와의 만남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관객으로서 뜨거운 경험은 예술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음악을 바라보는 기회를 만들었다.
“전에는 잘한다, 잘한다 하니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는데, 소비의 기쁨을 알고 나니 창작자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아직까지 창작을 하면서 스스로 황홀한 적은 없어요. 항상 고민되고, 고통스럽고, 완성된 후에도 아쉬움이 남죠.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나 좋은 작품에 압도당했을 때예요.”
대중음악과 영화·극음악 작업을 왕성하게 해온 정재일의 행보 중 눈에 띄는 건 2009년부터 미술가 장민승과 함께 선보인 프로젝트다. 사운드와 조명만으로 소격동의 옛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을 채운 ‘A. 인터미션’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애플리케이션에 내장된 GPS와 지도를 이용해 경상남도 함양의 상림을 트레킹하고,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각 장소를 위해 작곡한 음악이 자동 재생되는 ‘상림’을 발표했다. 공간감적 경험을 통해 보다 색다른 순간을 느끼도록 하는 음악가와 미술가의 특별한 협업이다.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그냥 ‘보세요’ 하고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걸 감상하는 환경까지 디자인해보자는 아이디어로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영국 고음악 보컬 그룹 힐리어드 앙상블의 음악을 스웨덴의 자작나무숲에서 들었을 때와 동네 기사식당 앞에서 들었을 때 감흥이 같을까요? 물론 아니겠죠. 작품을 접하는 공간과 빛까지 연출했을 때 생기는 반응이 궁금하고 흥미로워요. 다른 어떤 종류의 음악 작업을 할 때도 이 생각은 항상 머릿속에 있어요.”
국악 그룹 푸리부터 영화 ‘바람’까지
다시, 소년 정재일. 긱스로 데뷔하기 전부터 그는 전통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종묘제례악을 보고 거대한 우주를 느낀 꼬마는 열아홉 살에 국악 그룹 푸리의 멤버가 되었다. 원일·김웅식·한승석·정재일 조합의 푸리는 전통음악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월드뮤직의 색깔을 띠며 다채로운 창작 활동을 펼쳤다.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던 그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영화 ‘바람’(2009)이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정재일은 국악기만으로 모던하고 드라마틱한 음악을 완성했다. 발랄하게 튕기는 가야금 소리는 배우 정우가 연기한 주인공 ‘고딩 짱구’의 맹한 표정과 만나 폭소를 자아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흥미로운 시도와 높은 완성도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정재일이 소리꾼 한승석·극작가 배삼식과 함께 발매한 음반 ‘바리어벤던드(이하 바리)’가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크로스오버 음반상을 수상한 것은 조금 이상하다. ‘크로스오버’가 넓은 의미로 통용되긴 하지만, ‘바리’는 서양 악기가 사용되었을 뿐 지극히 한국음악적이다. 바리 설화를 바탕으로 배삼식이 작사한 ‘바리’는 가슴에 사무치며 ‘빨래2’에서 정재일의 피아노·기타 연주는 진정 발군의 리듬감을 선보인다. 많은 경계를 허물고 전통음악에 다채로운 색을 입힌 정재일.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 전통음악에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배울 기회가 많았는데, 참 아쉬워요.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에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국악 작곡을 전공하려고 시험도 봤어요. 1차에서 떨어졌지만. 푸리 활동을 할 때도 멤버 넷이서 머리를 맞대고 많은 고민을 했는데, 제대로 된 학습은 못했어요. ‘악기를 하나라도 배워둘걸’ ‘소리를 조금이라도 해볼걸’ 하면서 깊이 파고들지 못한 걸 후회해요. 현재 제가 하는 음악은 서양음악가가 표현하는 한국음악일 수밖에 없으니까.”
확신을 위한 새로운 도전
서른셋 청년 정재일은 매우 바쁘다. 5월 22~25일에 공연된 무용극 ‘클럽 살로메’에서 작곡·연주를 맡았다. 6월 7일부터는 정재일이 획기적인 록 편곡을 선보여 호평을 받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재공연을 시작하며, 18·19일에는 피아니스트 지용·베이시스트 성민제와 슈베르트 작품을 연주한다. 가을이면 가수 박효신의 정규 음반과 ‘바리’ 해외 공연을 준비한다. 10월에 공연될 안애순 안무·김지운 연출의 국립현대무용단 ‘어린왕자’의 음악도 정재일이 맡았다.
“새로운 일, 그래서 재미있는 일, 그래서 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을 합니다. 무용극 ‘클럽 살로메’는 이지나 연출·이용우 안무와 배우 지현준·무용수 최수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게 신선했어요. 언어에 의해 흐르는 작품은 음악을 드라마에 정확히 맞춰야 하지만, 무용 공연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작곡가로서 창의적인 생각을 발휘할 수 있어 즐거워요. 디토 페스티벌에서는 슈베르트의 ‘마왕’을 한국 전통 성악으로 선보일 예정이에요. 독일어로 부르는 건 이미 많은 이들이 했으니 한국어 텍스트로,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이용해 표현해보려고요. 그 외에도 여러 슈베르트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정재일의 활동 범위가 넓은 것은 그의 능력이기도, 고민이기도 하다. 군에서 지낸 2년을 제외하고 지난 18년간 쉼 없이 일해 온 그는 잠시 멈춰 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잠깐 숨을 고르기로 한 것이다.
“현재의 저는 매우 애매한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정재일’이라는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저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음악은 없으실 거예요.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면 되지 뭐’ 하다가도, 60세가 돼서도 음악을 하려면 ‘핵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고, 사카모토 류이치도 그만의 음악이 있잖아요. 그래서 내년부터 공부를 하려고요! 대학에서 작곡·연출을 배울 예정이에요. 이미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지만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스스로 시간을 두고 저를 돌아보면서, 확신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려고요. 더 늦어지면 앞으로 음악적으로 소멸할 것 같아 두려워요.”
“‘천재’ 소리 들으면서 자만한 적은 없어요?” 하고 물으니 “아직도 자만하고 있어요” 하며 헤헤 웃었다.
“그런데 꼭 자만하는 순간 형편없어지더라고요. 천재와 바보 사이를 계속 오간다고 할까요. 멋있게 솔로 연주를 한 후 열화와 같은 박수를 만끽하고 있으면 그 순간 바로 틀리는 식이에요. 자꾸 잘 모르는 방향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요. 취하지 않으려 하고요.”
정재일이라는 작은 묘목은 푸른 잎을 무성하게 틔웠고,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뿌리를 고르고 있다. 울창한 숲을 이루어 정재일이라는 정체성을 완성하길.
사진 심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