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정명화&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 나윤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 나윤선(좌)·정명화(우)

정명화가 ‘클래식’을 던지니 나윤선이 ‘재즈’로 받고 ‘국악’으로 되묻는다. 그러는 사이에 축제란 무엇인가, 쉼과 함께 하는 음악은 무엇인가, 너와 나의 음악이 함께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답들이 풀려나온다. 7월의 태양 아래 음악의 숲을 일구어 그늘과 바람을 선사할, 그들이 만드는 축제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관령국제음악제(7월 23일~8월 2일)는 클래식의 산천초목을,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7월 1~26일)은 한국음악의 숲을 일구는 축제다. 두 축제는 사실 많은 점이 닮았다. 세계를 누비는 ‘음악가들’, 7월의 ‘여름’, 강원도 대관령과 서울 남산이라는 ‘산’,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와 여우락 워크숍이 챙기는 ‘미래’, 음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장르와의 ‘교감’이 있다. 그래서일까. 두 축제의 예술감독 정명화와 나윤선도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예술감독이라는 점, 아니 그 이전에 세계 무대를 누비는 첼리스트와 재즈 보컬리니스트로 음악가라는 점, 그리고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만들겠다는 의지. 그래서 축제를 빚으며 짓는 웃음과 고민도 닮았나 보다.

두 사람은 가장 기억에 남는 페스티벌로 대화를 열었다. 그때의 ‘기억’이 대관령국제음악제와 여우락 페스티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기 때문일까. 그럼 정명화의 1969년으로 가보자.

정명화에게 축제란 ‘만남’이다

1969년 이탈리아 스폴레토로 향하는 기차 안. 첼로와 바이올린을 든 두 여성의 수다는 정신없었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90분 정도 갔어요. 경화랑 기차 안에서 막 떠들다가 도착했다는 방송을 듣고 짐들을 거의 집어던지듯 내리고 광장에 도착했는데 ‘이런 꿈같은 곳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명화는 뉴욕에서 학업을 마치고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발을 내민 스폴레토 페스티벌 무대와 유럽의 축제가 주는 인상은 강렬했다. 그곳은 신세계였다. 당시의 예술감독은 작곡가 메노티로 안정적인 재정 기반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실내악 공연이 이어졌다. 음악에 오페라·발레·연극 등이 곁들여졌으며, 풍부한 음식과 문화를 즐기는 관객이 있었다. 정명화는 축제의 기운에 취했고, 스폴레토 페스티벌의 중심인 실내악에 푹 빠져들었다. 살을 맞대고 주고받는 호흡.

“실내악은 곡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까지는 지루할 수가 있어요. 솔로 레퍼토리와 달리 전체를 파악해가며 아기자기한 홀에서 유명한 연주자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참 재밌었어요.”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숲을 일구고 있는 게 아닐까. 정명화의 추억과 이야기에는 ‘매일’ ‘함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정명화에게 축제는 ‘만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가진 것이 다 다른데 나이, 경험과 상관없이 동등하게 만나 연주하고 서로 배우는 곳이 축제예요. 그래서 나이가 많은 저도 대관령에서 젊은 음악가와 눈을 맞춰가며 연주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올해로 12회를 맞은 대관령국제음악제에는 전 세계에서 온 51명의 음악가와 실내악단·합창단·GMMFS 오케스트라가 음악의 나무를 심는다. 별들의 ‘만남’이기도 한 ‘저명연주자 시리즈’는 알펜시아리조트 내의 알펜시아 콘서트홀·뮤직텐트는 물론이고(7월 23일~8월 2일), 공동 예술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횡계 주민을 위해 성당에서 연주하며, 성악가들이 강릉 선교장에서 무대를 펼치는 등 다양한 공연으로 평창·원주·춘천·춘천·양양 등을 순회한다(7월 14~31일).

서로를 키우며 윤작(輪作)이 이뤄지는 곳

축제란 ‘만남’이 분명하다. 무대에서 음악가들이 만남을 갖는다면,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에선 가르침의 손길과 배움의 눈빛이 서로 만난다. 음악학교는 ‘저명연주자 시리즈’와 함께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또 다른 기둥이다. 올해도 7월 20일부터 16일간 11개국에서 바이올린·비올라·첼로·피아노와 실내악을 전공하는 125명의 학생들이 함께할 예정이다. 그 안에는 사제(師弟)의 수직적 만남이 있으면서 동시에 눈높이를 맞춘 수평의 교감이 있다.

“나이, 경험에 관계없이 학생과 어린 음악가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어요. 95퍼센트를 풀었지만 풀리지 않은 5퍼센트의 해답이 그들로부터 올 때도 많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도와주다 보면 나도 궁금해하던 것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돼요.” 무대와 학교, 연주와 교육, 빛나는 음악가와 아직 나오지 않은 빛을 머금은 음악가가 ‘만남’을 통해 서로를 키우며 윤작(輪作)이 이뤄지는 곳이 대관령국제음악제다.

정명화는 올해 강원도와 또 다른 인연을 맺었다.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는 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계촌초등학교와 계촌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하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이다. ‘음악이 있어 즐거운 학교’라는 슬로건으로 2009년 창단한 계촌초등학교의 계촌별빛오케스트라와 그 학교 졸업생들이 진학한 계촌중학교 오케스트라는 이곳의 명물이다. 계촌별빛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이 프로젝트는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계촌리에서 진행하며, 계촌리가 클래식 마을로 발돋움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정명화는 음악으로 마을을 끌어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이수빈, 첼리스트 여윤수, 피아니스트 김태형, 현대차 정몽구재단 온드림 앙상블 등은 물론 대관령 별빛을 닮은 눈빛의 계촌리 아이들이 정명화의 품 안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다. 강원도에 펼쳐지는 음악의 숲은 이렇게 매년 넓어지고 녹음도 짙어지고 있다.

나윤선에게 축제란 ‘변화’다

정명화에게 축제가 ‘만남’이라면, 나윤선에게 축제는 ‘변화’가 아닐까 싶다. 정명화가 스폴레토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1969년은 자신이 태어난 해라며 웃는 나윤선은 기억을 프랑스로 옮긴다. 20년 이상 머문 제2의 고향. “유학 시절 프랑스인의 재즈 사랑과 200개가 넘는 재즈 페스티벌에 놀랐어요”라며 2001년에 참가한 마르시악 재즈 페스티벌을 떠올린다. 그녀의 지도교수가 데모 CD를 페스티벌 관계자에게 보냈고, 그 결과 나윤선에게 오프스테이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정말 행복했어요. 제 무대 옆에는 6000명 정도 들어가는 텐트가 있었는데, 키스 재럿이 공연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 태어나면 저곳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페스티벌의 규모가 크다고는 해도 마르시악의 인구는 1300명밖에 되지 않았다.

“작은 도시에 전 세계 유명 뮤지션이 다 모이고, 윈턴 마살리스가 대부인 거예요. ‘어떻게 시골 마을에서 이런 축제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알고 보니 1978년 그 지역의 영어교사가 자신이 좋아하는 세 개의 음악 그룹과 지인들을 모아 시작한 역사가 지금은 22만 명의 관객을 담는 큰 그릇이 된 것이다.

“나중에는 재즈 전문 중학교도 생겼어요. 음악과 축제가 주변을 변화시키는 힘을 느꼈죠.” ‘변화’의 힘. 그 힘은 싹을 틔운 음악의 나무를 키워 숲을 만든다.

“키스 재럿이 선 무대에 제가 2012년에 올랐어요. 무엇보다 감동을 준 것은 2001년의 제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었어요. ‘윤선을 그때 봤는데, 정말 많이 성장했네’라고 칭찬을 해주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동양에서 온 재즈 싱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페스티벌이었어요. 그래서 여우락에 발을 막 디딘 음악가가 훗날 국립극장을 일주일 내내 채우는 뮤지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한국음악·재즈·월드뮤직의 선 잇기

정명화와 나윤선이 만드는 축제에는 만남과 변화와 꿈이 있다. 나윤선이 올해부터 맡은 여우락 페스티벌의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를 줄인 말로, 한국음악의 다양한 변화와 모습을 볼 수 있는 축제다.

흔히 ‘전통음악’이나 ‘국악’으로 불리는 한국음악은 지금 엄청난 변화의 옷을 입는 중이다. 그간 여우락을 지켜본 이들은 월드뮤직 음악가 양방언 전 예술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재즈 보컬리스트와 한국음악의 선 잇기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음악이 월드뮤직(양방언)·재즈(나윤선) 등 여러 장르와 만나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윤선은 지금 설렘 반, 떨림 반의 마음으로 한국음악과 재즈가 동거할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다. 아니, ‘한국음악’과 ‘재즈’라기보다는 ‘한국적인 것’과 ‘재즈적인 것’, 즉 각 음악에서 추출된 엑기스와 느낌의 교류인 것이다.

나윤선에게 2015년은 휴식과 함께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계획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음악 공부는 그 휴식의 한 방편이었다. 물론 그녀에게 한국음악은 늘 가까이 있었다. 어느 날은 방송에서 흘러나온 한 판소리꾼의 노래를 듣고 차를 멈춘 적도 있었다고. 이 소리꾼 세계적이다, 정말 세계적이다… 라며. 그런 그녀는 지금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공부’와 ‘예술감독으로서 업무’를 동시에 진행하며 한국음악의 매력에 눈뜨고 있다. 이런 상황과 심정을 이야기하자 정명화도 “나도 잘은 모르는데…”라며 자신의 체험을 들려준다. 그 어디서도 듣지 못한 정명화의 한국음악 체험과 기억을.

“요새는 판소리가 좋더라고”

때는 1950년대. 정명화의 모친 고 이원숙 여사는 명동에서 한식당 고려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집 앞에 명동예술극장(당시 시공관)이 있었어요. 여성국극이 오를 때면 경화랑 정신없이 보다가 내내 울고, ‘경사났네~’ 하면서 끝나면 웃으며 왔어요. 그리고 방에서 둘이 문 닫아놓고, 그 역할을 다시 해보는 거야. 스카프도 두르고. 살다 보니 그때 체험한 그 감성이 내 음악에 녹아날 때가 많더라고요.”

정명화는 한국 작곡가의 곡을 초연할 때마다 그 기억의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렸다. 2013년 여름, 나는 원로 평론가와 KBS 1FM ‘실황 음악’에서 나오는 대관령국제음악제 중계를 듣고 있었다. 정명화는 이영조가 작곡한 첼로·대금·타악기를 위한 ‘모리’를 연주했다. 그때 옆에 계시던 원로 평론가가 말했다. “아쟁 소리를 아는 첼리스트만이 연주할 수 있고, 아쟁처럼 울 수 있는 작곡가만이 쓸 수 있는 곡이네.”

“조그마한 경험이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공부하면 돼요. 모를 땐 깜깜한데 알면 아무것도 아닌 게 너무나도 많아요. 나도 예전에는 해금이 뭔지도 잘 몰랐어요. 요새는 판소리가 재밌더라고. 이런 감수성을 바탕으로 배우고 적용해가면 돼요. 그러면서도 그 음악이 지니고 있는 ‘순수성’을 유지하는 게 늘 중요해요.”(정명화)

나는 정명화의 추억에 웃고, 나윤선은 선배의 격려에 얼굴이 환해진다. 사실 나윤선에게 한국음악은 음악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한 부분이었다. 7집 ‘Same Girl’에 강원도 아리랑을 담을 때도, 소치에서 아리랑을 부를 때도 그랬다. 그런데 여우락이라는 거대한 숲을 통해 다가온 한국음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젊은 국악인들이 이렇게 잘하는지 몰랐어요. 국악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깨졌어요. 정책적 지원은 많은데 그들이 경험을 펼칠 무대와 기회가 적은 게 아쉽더라고요. 여우락과 제가 그들이 성장하고 세계로 나아가는 다리가 되었으면 해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팀들을 보면 10명 중 한 명은 동양인이에요. 여우락의 음악가들도 각개전투하듯이 해외로 나가 그렇게 승부를 보았으면 좋겠어요. 여럿이 있을 때는 든든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자유롭잖아요.”

“그때 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그런 나윤선도 처음엔 앞서 말한 ‘각개’, 즉 점(點) 단위의 존재였다. 이후 세계 음악가들과 만나며 재즈라는 선으로 나윤선과 아리랑과 세계를 이었다. 이제는 그 선들이 얽혀 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전 세계인이 몰려든다. “재즈나 월드뮤직, 이쪽은 입소문이에요. 소문이 나면 그 음악을 들고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어요.”

점에서 선으로, 그 선이 면을 만든 과정을 겪은 그녀는 이제 ‘맏언니’처럼 젊은 국악인을 챙기고 싶어 한다.

“젊은 국악인은 지금 쭉 한길을 가기보다는 넓어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부작용도 있지만 그때 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직접 해봐야 긴지 아닌지 알잖아요.”

이 지독한 경험주의자는 여우락에 14개의 실험실, 아니 무대를 마련했다. 올해의 여우락은 총 네 개의 테마로 구성해 입체적으로 진행한다.

‘믹스&매치’는 나윤선과 그간 호흡을 맞춘 해외 음악가들이 한국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네 개의 무대를 선보인다. ‘2015 초이스’는 여우락이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한 거문고 주자 허윤정의 폭넓은 음악 세계와 지음(知音)들을 만나볼 수 있는 두 개의 무대를 보여주고, 여기에 나윤선도 함께할 예정이다. ‘센세이션’은 한국음악을 중심으로 재즈·인디음악·월드뮤직·영화음악·대중음악·발레·미디어아트 등이 한데 모여 각양각색으로 어우러지는 네 개의 무대로 구성했다.

그리고 노래! 나윤선은 축제 살림을 하면서도 노래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녀가 메인인 ‘디렉터스 스테이지’는 여우락의 포문을 여는 무대, 시인 고은의 낭송과 그룹 불세출의 음악과 함께하는 공연, 그녀의 주요 곡을 국악과 재즈가 어우러지도록 편곡해 선보이는 공연, 이렇게 세 개의 무대로 구성했다.


▲ 공동 예술감독 정경화와 바이올리니스트 보리스 브로프친·권혁주&GMMFS 앙상블, 알펜시아 뮤직텐트

축제, 제3의 시선이 필요하다

“전통음악이 국경을 넘어 월드뮤직으로서 새로운 여정을 그리는 데 여우락이 큰 도움이 됐으면 해요. 그래서 안팎을 아우르는 ‘제3의 시선’으로 국악을 바라보고 있어요.”(나윤선)

“예술감독에겐 그 시선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분야를 깊이 알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 너머도 바라볼 줄도 아는. 깊이 있는 태도가 잘 배인 사람은 다른 분야랑 만나도 그 세계를 금세 이해하더라고요. 안숙선 명창도 서양 현악 주자들이 조금 흔들리면 그 부분을 다 짚어내더라고요. 나 감독이 만든 여우락은 틀림없이 기막힐 거야.”(정명화)

여우락에는 14개의 공연 외에 음악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여우톡’, 한국음악 전공생을 위한 ‘여우락 워크숍’(7월 6~10일)과 해외 뮤지션들의 마스터클래스 등 만남의 다리가 놓인다. 그것은 ‘변화’로 가는 가교이기도 하다. 나윤선은 앞서 말한 마르시악의 재즈 전문 중학교를 떠올린다.

“초청받아 수업하러 학교에 가보니 블루스 수업에 열한 살 정도 된 아이들이 눈을 감고 즉흥연주를 하고 있는 거예요. 마르시악 페스티벌을 처음 만든 영어 선생은 나중에 이 학교 교장이 되고 그 뒤에는 시장이 됐어요. 학생들은 매년 윈턴 마살리스와 함께 온 유명 뮤지션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고요. 음악, 음악가, 축제가 주위를 변화시킨 것을 보면 역시 감동적이죠.”

대관령을 적실 프랑스의 ‘멋’

대관령국제음악제는 매년 주제를 내건다. 지난해는 남유럽 국가의 음악가를 중심으로 한 ‘오 솔레미오’였고, 올해는 ‘프랑스 스타일(French Chic)’이다. 총 13회로 예정된 ‘저명연주가 시리즈’의 64곡 중 33곡은 프랑스 작곡가 라모(1683~1764)부터 티에리 에스카이슈(1965~)에 이르기까지 16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1971년 파리에 처음 갔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시크(chic)는 정명화가 파리에서 본 석재 건축물, 여인들의 옷매무새, 혀끝에 맴돌던 음식, 여유가 묻어나는 사람들의 매너, 시간의 무게를 머금은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통해 느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프랑스만의 세련미’와 그 멋을 대변하는 단어다.

“시크는 엘레강스, 아방가르드, 앙코르와 같이 세계 공용어가 된 프랑스 단어예요. 우리가 보통 ‘멋있다’는 표현을 할 때 시크라는 단어를 쓰잖아요.”

프랑스를 주 무대로 활동해온 나윤선도 정명화가 느낀 프랑스만의 ‘멋’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그녀에게 프랑스는 불편해도 ‘멋’지고, 초라해도 ‘멋’진 예술의 시공간이다.

“페스티벌에 다닐 때 대부분 테제베(TGV)를 타고 다녔어요. 나중에 노선표를 봤는데, 테제베가 서는 곳은 제가 다 내려보았더군요. 도시마다 재즈 페스티벌이 있다는 거죠. 어느 날은 니스역에 내렸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대도시인데. 연세 있는 분들도 무거운 걸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더라고요. 그렇게 유명한 고흐의 무덤도 가보면 너무 초라해요. 그런데 이렇게 삶의 많은 부분이 불편해도 예술에는 아끼지 않는 나라. 그런 멋이 있어요.”

대관령을 채우는 프랑스 음악에서 그 멋이 어떻게 드러날까. 이를 위해 정명화는 메시앙 오마주 공연부터 프랑스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프를 위한 공연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에스카이슈, 한국의 이신우 등의 곡을 초연해 음악사를 살찌우기도 한다.

대관령에 불어올 춤바람

춤과 함께하는 무대도 빼놓을 수 없다. 정명화는 음악과 함께하는 춤은 무용수·연주자·관객 모두 좋아한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 자신도 소싯적에는 옷자락 휘날리는 춤꾼(?)이었단다.

“어릴 적에는 춤과 노래를 제일 잘했어요.”

‘댄싱9’을 즐겨 보던 정경화가 어느 날은 정명화에게 그랬단다.

“언니가 60대만 되었어도 저기에 나갔을 텐데.”

이번에도 춤과 함께하는 무대는 대관령국제음악제만의 자랑거리다. 미국 대시 앙상블(The Dash Ensemble)의 그레고리 돌바시안(Gregory Dolbashian)이 라벨 ‘볼레로’를 바탕으로 안무한 작품을 초연하고,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 서희와 프랑스 출신 알렉상드르 아무디(Alexandre Hammoudi)가 출연한다. 연주는 오케스트라가 아닌 네 대의 첼로와 타악기가 맡는다. 이 밖에도 두 무용수는 라흐마니노프 ‘엘레지’에 맞춰 무용 작품 ‘비가 올 확률’을, 차이콥스키 ‘피렌체의 추억’의 2악장에 맞춰 ‘잔인한 세상’을 선보인다.

“춤을 볼 때마다 미켈란젤로가 해부했던 인간의 몸이 생각나요. 특히 남성 무용수들은 움직일 때마다 근육의 섬세함이 다 보이잖아요. 그 섬세함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관객에게 멋진 경험이에요. 무용수들은 자신들을 위해 최고의 음악가들이 실제로 연주를 해주니 기분이 좋고, 또 특별하다고 하더라고요.”(정명화)


▲ 그룹 두 번째 달과 고래야가 함께 한 ‘달에 사는 고래’,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엄마의 품같이, 언니의 손길 같은 음악축제

“축제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요. 중요한 건, 대중에게 수준을 낮춰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음악을 ‘귀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또 여러 장르가 섞이는데, 각 장르가 지닌 순수성도 잘 지켜야 하고요.”(정명화)

“좋은 연주자들과 환경은 어디든 많아요. 하지만 진지하고 신실하게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분명 달라요. 그들이 어디로 갈지, 그 자신들도 지켜보는 이도 잘 몰라요. 그래서 그들이 제대로 가기 위한 ‘장치’들이 늘 필요한 거죠.”(나윤선)

나윤선이 ‘장치’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것이 ‘축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치’를 통해 나윤선의 말대로 예술가는 길을 찾고, 정명화의 말대로 음악가와 관객이 한데 모이고 섞인다. 축제란, 그렇게 숲을 만드는 것이다. 그 숲에 심은 음악 나무와 그 얽힘 속에서 새로운 것과 의미를 찾아가는 창조가 축제다. 그래서 그 얽힘은 혼돈이 아니라 풍요로움이다. 무엇보다도 축제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감독의 시선과 시점에 따라 만화경처럼 변화한다. 과거에는 이 풍요로움을 오용하거나 보여주기 식 축제를 위한 재료로 삼기도 했다. 한데 모아 펑 터뜨려 세간의 주목을 끈다는 발상은 지극히 남성적이고, 관료적 발상이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열정, 시간, 삶을 바치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어요. 특히 재즈는 남성 연주자가 많은데 여성 연주자도 점점 늘고 있고요. 페스티벌 예술감독도 남성이 많지만, 여성 코-디렉터들이 많아지며 서로 보지 못하는 것을 챙겨주며 나아가는 경우가 많아요.”(나윤선)

“예전과 달리 요새는 남성들도 살림과 육아를 나눠서 담당해요. 그러면서 커리어 우먼이 많아졌죠. 여성 감독이 많이 나온다기보다는 여성들이 보다 자유롭게 활동하고 후에 감독이 될 수 있는 터전이 활발히 닦이고 있는 것 같아요.”(정명화)

오늘날 축제는 바뀌고 있다. 밥을 더 달라는 아이에게 한 숟가락에 많은 양을 담아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라, ‘한번 주면 정 없다’며 두 숟가락으로 나눠 밥을 오롯이 담아주는 엄마·언니 같은 마음으로.

강원도 대관령과 서울 남산에 모인 음악가들을 돌보는 ‘큰엄마’ 같은 정명화와 ‘맏언니’ 같은 나윤선의 대화는 이 뒤로도 쉼 없이 이어졌다. 그 대화의 일부로 끝을 맺는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읽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송현민 정명화·나윤선 두 예술감독이, 함께 만들고 싶은 축제를 그려보면 어떨까요?

정명화 재밌겠네요! 일단은 200석·700석·1500석의 공연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독주·실내악·오케스트라에 맞춰서.

나윤선 저는 6000석짜리도요.

정명화 아, 그렇지. 클래식은 그렇게 크면 안 되지만, 나 선생은 마이크를 쓰니 그런 크기의 홀도 하나 있으면 좋겠어.

송현민 초청하고 싶은 예술가는요?

정명화 공연장이 그렇게 갖춰진 뒤에는 큰 은행이 하나 필요해요. 그래서 아무 때나 가면 예산이 딱딱 나와서 우리가 계획했던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나윤선 하하. 맞아요. 뮤지션에게 누구와 연주하는 게 꿈이냐고 물어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다 만나도록 해줘서 그 꿈을 이뤄주는 거예요!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많이 초청해야 해요. 주민과 예술가들이 한 식당에서 같이 밥 먹고 있는 광경은 정말 재밌어요.

정명화 알펜시아리조트에 호프집이 딱 하나 있는데, 밤이면 전 세계 음악가들이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아티스트와 관객이 길거리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나윤선 축제는 동네 주민들의 입소문도 중요해요. 그 입소문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더라고요.

정명화 그렇지, 그렇지.

송현민 그럼 초청하고 싶은 예술가는…

정명화 너무 많지! 그 커다란 은행만 있다면… 하하하. 그래도 축제에는 감독이 제일 중요하지.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진행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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