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다솔

저, 절대 착하지 않아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데뷔 음반 발매하고 독주회 연 김다솔. 외유내강 젊은 피아니스트의 성장하는 삶

선한 인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주도 그랬다. 피아니스트 김다솔은 나에게 ‘착실한 청년’이었다. 지난해 앨런 길버트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 무대에서도 오케스트라를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 안정적인 프레이즈를 유지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의 듀오 리사이틀에서도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섬세한 울림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신뢰할 수 있는 연주자지만, 고백하건대 재미는 없는 피아니스트라 생각했다.

지난 6월 15일, 김다솔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독주회를 열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데뷔 음반을 기념하는 연주회였다. 레퍼토리는 슈만 ‘아라베스크’ ‘유모레스크’ 그리고 쇼팽 발라드 1~4번. 담담한 걸음으로 등장한 김다솔이 건반 위에 손을 올리자마자 무대 위에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졌다. 찬란했다. ‘유모레스크’ 첫 부분. 슬픈 감정에 억눌린 듯 건반을 무겁게 터치하다가도 빠른 패시지에서는 차갑게 돌변했다. 쇼팽 발라드 1번에서는 보다 자유로웠다. 3번에서 격앙된 감정은 4번에서 그대로 응축돼 불안감을 증폭했다. 김다솔은 치밀하게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청중을 설득했다.

날카롭게 발톱을 세운 그를 처음 보았다. 우둔하게도, 이제야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철저하게 준비된 테크니션과 곡에 담긴 정서를 관객에게 완벽하게 전달하려는 욕심.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다음 날, 소공동의 한 커피숍에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연주회 잘 봤다. 이건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다. 감명받았다. 슈만과 쇼팽 레퍼토리로 각각 1·2부를 구성했는데, 1부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감정에 지배당하는 듯했다. 2부에서는 오히려 자유로워 보였다.

아직 녹음 파일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실제로 슈만을 연주하면서 중간에 울컥했다. 무대 위에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감정을 따라가는 편인데, 어제 연주회 역시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인가?

사실 나는 원래 음악을 들을 때 하나의 곡에 담긴 다채로운 감정 중 어두움과 슬픔을 더 잘 발견하고, 느끼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타고난 것 같다. 슈만은 사람을 뒤흔들 만큼, 또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지둥할 만큼 강렬한 힘을 지닌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오랫동안 무척 좋아했다.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슈만의 작품으로서 잘 표현할 수 있었다. 나와 가장 친한 작곡가라고 생각해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슈만의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아픈 기억과 슈만이 연결돼버렸다. 한동안 듣기도, 치기도 싫을 정도로 미워하다가 이번에 데뷔 음반을 녹음하면서 다시 꺼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제 무대에서 또 그런 감정들이 표출된 것 같다.

첫 녹음 과정은 어땠나? 결과물에 만족하는지?

2014년 2월부터 음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오랫동안 레퍼토리를 고민하다 슈만을 연주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3월에 하노버에서 녹음했고, 함부르크에서 악기를 공수해 연주했다. 3일 동안 녹음했는데, 첫 녹음이라 그런지 처음엔 좀 불편했다. 틀린 음을 지우고 다시 녹음하는 방식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작품 전체를 연주하는 것을 반복했다. 물론 보완 작업을 거치긴 했지만, 거의 실황 녹음이나 다름없다. 나의 의도를 잘 이해해준 톤마이스터 덕에 믹싱도 잘된 것 같다.

어제 연주회를 보며 떠오른 질문이 있다. 연주는 관객에게 들려주는 행위이니, 한 걸음 떨어져 귀로 들으면서 관객에게 개입할 여지를 주는 연주자가 좋은 음악가일까. 반대로 스스로 연주하는 음악에 완전히 몰입 혹은 도취해 ‘진실’된 음악을 들려주는 연주자가 좋은 음악가일까.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철저하게 관객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연주한 쇼팽 발라드 1번의 경우, 다른 어떤 음악보다 격정적이다. 온몸이 떨릴 만큼 로맨틱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이 곡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연주 내내 하염없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포르티시모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빨라지는 부분에서는 깔끔하게 소화해야 한다. 연주자가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돼 손가락을 막 뭉개버리면 관객들은 전혀 감동을 받지 못할 것이다. 나의 경우 몰입해야 하는 부분과 깨어 있어야 하는 부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오랜 시간 악보를 보며 공부한다. 또한 이것을 잘 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한다.

악보 보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전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있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행위인가?

그렇다. 디테일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악보는 정말이지 볼 때마다 새롭다. 예를 들면 똑같은 부분이 반복되어도 크레셴도의 위치가 미세하게 다르다. 그런 걸 찾아내서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 이러한 노력들이 전체 연주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믿는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 같은 것들이 실질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수백 년 전 쓰인 메시지를 탐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요즘은 개성 있는 연주를 하기 위해 안달 난 사람이 많지만, 나는 항상 의문이 든다. 그것이 과연 ‘자신만의 해석’인지? 클래식 음악이 연주자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작곡가가 남겨놓은 작품을 제대로 연주하는 게 연주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시대에 창작된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는가?

흥미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많은 관심이 가지는 않는다. 클래식 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하는 게 지금은 더욱 좋다.

클래식 음악에 현대적 장르 혹은 요소를 결합하는 창의적 접근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또 연주자가 파격적 비주얼로 등장하는 등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서 소비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가?

리스트 시절부터 편곡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재즈 장르나 영화음악 분야는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과 가까운 영역이지 않나. 그 외 여러 장르와도 잘 어우러지는 건 좋다고 본다.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앨리스 사라 오트가 아이슬란드의 싱어송라이터 올라뷔르 아르날스와 발매한 ‘쇼팽 프로젝트’를 들으며 참 영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관심을 받기 위해 억지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길게 가지 못한다. 유자 왕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짧은 스커트를 고르는 데에만 치중했다면 지금처럼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진부한 대답이지만, 나는 그냥 연주를 잘하고만 싶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능력은 없고, 옷차림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연주되는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의 인격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들으면 그 사람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지 않나. 내 음악이 자연스럽게 무르익으면 좋겠고, 그로 인해 연주 기회를 많이 얻어 더 많은 청중을 만나고 싶다.

‘침묵’을 훈련하고, ‘삶’을 돌보다

독일에서 유학한 지 10년째다. 스승인 카를 하인츠 카머링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3년째 아리에 바르디를 사사하고 있는데, 유학 생활은 어떤가? 앞으로 학업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더 이상 유학 생활이 아니다. 그냥 집이다. 처음에는 어학원에 다니고 새로운 친구들 사귀며 즐거웠는데, 이제는 그저 사느라 전전긍긍한다.(웃음)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는데, 이게 마지막 과정이라 학업은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 계속 레슨을 받으며 유럽에서 생활하고 싶다.

독일어는 완벽하게 구사하겠다.

생각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하루 연습량은 얼마나 되나?

무조건 많은 시간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지는 않는다. 연주를 앞두고 전체적인 사운드를 체크해보고 싶을 때는 몇 시간이고 앉아 있지만, 그 외에는 연습을 아예 안 할 때도 있다.

연습을 거르면 타격이 있지 않나?

사랑하는 사람과도 가끔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듯 피아노와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반면 듣는 건 멈추지 않는다. 음악을 듣거나 악보를 보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편이다. 사실 가장 필요로 하고, 또 즐겨 하는 건 완벽한 침묵 상태다. 때때로 방음이 완벽한 공간에 들어서면 정말 아무 소리도 안 날 때가 있는데, 그게 굉장히 강하게 다가온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음악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할 때 쉼표가 나오면 그때의 침묵을 떠올리는 식이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내가 내 성격에 질 때가 많은 것으로 보아 좋은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무척 예민해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가 종종 있다.

수년 전,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는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란,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차원의 세계를 구성하며 다른 차원의 일은 오로지 피아노로부터, 피아노가 존재하고 있는 세계로부터 파생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은 것인데, 피아노는 그저 악기일 뿐이며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궁극적으로는 삶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이라 밝혔다. 그러니까, 음악을 통해 짜릿하고 감동스러운 순간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픔들을 동반해야만 하지 않나.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데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묻는다는 게 장황해졌다.

완전히 동감한다. 아직 감지할 뿐이지만, 연주자로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음악을 하다 보면 어둡고 슬픈 감정에 휩싸일 때가 훨씬 더 많다. 최근 1~2년 사이에 이러한 감정에 빠져들다 보니 의욕도 없어지고 스스로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태로 연주하는 음악이 맑을 리 없다. 어두운 면모와 밝은 면모, 모든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역시 살아 있는 연주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음악과 삶을 분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사진 유니버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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