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화려함과 비움의 미학, 러시아와 독일 오페라의 최근 동향 분석
지난 5월 20일 오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크류코프 운하에서 바라본 마린스키 2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1990년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기에 시민들이 자신의 집 외벽에 페인트칠하는 것조차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2007년 콘서트홀이 개관해 두 개의 극장으로도 충분해 보였던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 왕국’이 또 다른 매머드급 공연장을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게르기예프는 기존 마린스키 극장 건너편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와 동급인 학교와 그 외 몇몇 건물을 해체하고 ‘마린스키 2’라는 이름의 어마어마한 공연장을 2013년 5월, 기어이 오픈하고야 말았다. 게르기예프가 절친인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초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이 살기 힘든 늪지대를 돌로 메워 건설한 도시이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 대부분의 건물에는 지하 주차장이 없다. 주차장 공사도 하지 않았음에도 무려 1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다는 마린스키 2의 현대적 외관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300년 세월을 간직한 고색창연한 주변 건물과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4층 모서리에 위치한 ‘스트라빈스키 포이어’의 계단식 좌석에서 통유리 창으로 크류코프 운하를 유유자적 떠다니는 유람선과 스트라빈스키가 어린 시절 살았다는 집을 바라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거꾸로 흘렀다. 극장 안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북방의 베네치아’라는 수식어를 떠올리게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원래 1783년 황실 극장으로 지은, 최초의 러시아인에 의한 러시아 극장인 볼쇼이 카멘니 극장이었다. 마린스키 극장이 올해 진행하고 있는 232회 시즌의 기원이 된다. 1860년의 일이다. 볼쇼이 극장 건너편의 서커스 극장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그 자리에 마린스키 극장이 들어섰다. 1887년 볼쇼이 극장을 음악원 용도로 내어주기 전까지 두 개의 극장 시스템으로 운영하던 마린스키 극장은 126년 만에 다시 ‘두 지붕 한가족’으로 두 개의 오페라하우스를 갖추게 되었다.
마린스키 2의 호화스러운 무대
저녁 7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막이 올라가기 직전. 백야(白夜) 때문에 과도하게 늘어난 빛으로 인해 마린스키 2의 로비는 여전히 강렬한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티켓은 당연히 매진이었다. 콘서트홀까지 세 개의 공간에서 매일 진행하는 공연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체로 만석이다. 주말에는 낮부터 저녁까지 총 6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여기에 마린스키 2 안에 있는 셰드린홀과 무소륵스키홀의 콘서트까지 합치면 공연 횟수는 더 늘어난다. 한국 대표 공연장이라 자부하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에서 매일같이 공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관 위주의 우리 극장 시스템과 달리 마린스키 극장은 거의 95% 이상을 자체 기획으로 소화한다. 세 개의 오케스트라와 200명이 넘는 발레단을 거느린 이유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공연이 매진되는 것은 현재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어느 공연장에서도 볼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프랑스의 거장 샤를 루보가 2002년 12월에 제작한 마린스키 극장 버전의 ‘라 트라비아타’는 호화롭고 격조 높은 무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공연 전 3층 로비에서는 1868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러시아 초연한 ‘라 트라비아타’의 포스터와 의상, 소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로비는 호박을 형상화한 황색 벽면 덕에 갤러리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클라우디아 숄티는 영화 ‘불멸의 연인’에도 출연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여배우이자 연출가이며 헝가리 태생의 지휘자 게오르크 숄티의 딸이기도 하다. 그녀가 6월 17일, 2015 백야의 별 페스티벌에서 뉴 프로덕션으로 ‘라 트라비아타’를 마린스키에 올린 만큼 ‘루보 판 라 트라비아타’의 마지막 무대를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인생사의 허무함을 깃털에 비유한 걸까. 마린스키 극장의 전통인 연녹색 막 대신 깃털 하나가 도드라진 브라운 톤의 막이 보는 이를 압도했다. 마린스키 극장 소속 일곱 명의 지휘자 가운데 보리스 그루진에 이어 명장으로 입지를 굳혀가는 미하일 신케비치는 게르기예프와 마찬가지로 일리야 무신을 사사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거장이다. 전주곡에서 그의 지휘봉이 궤적을 그리자 현악기의 울림은 비올레타의 상처받은 여린 가슴처럼 파르르 떨렸다. 막이 올라가고 알레그로의 도입부에 다다르자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특유의 격렬한 음의 폭풍이 밀려왔다. 세월이 퇴적된 곰삭은 소리를 들려주는 기존 마린스키 극장에 비해 마린스키 2의 음향은 확실히 세련되며 잔향이 풍부했다. 하지만 어둑어둑한 톤 컬러에서는 마린스키 극장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다.
우아한 흰색 드레스를 입은 비올레타가 등장하자 파티에 초대된 손님으로 변한 합창단은 거침없이 탄성을 질러댄다. 러시아 합창단에서만 느껴지는 원색적인 비브라토와 직선적 창법이 더욱 매력적이다. 이윽고 ‘마시자, 마시자’를 외치는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사실 이날 노래만 놓고 봤을 때 주인공은 알프레도를 연기한 드미트리 보로파예프가 아니라 비올레타를 열연한 옥사나 실로바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하고 2007년부터 마린스키에 합류한 실로바는 그동안 무려 30개 이상의 배역을 소화하며 극장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한 실력파 소프라노. 이에 반해 보로파예프는 성량은 우렁찼으나 고음에서 매끄러운 소리를 내지 못했고, 특히 메사 디 보체를 구사하는 부분에서 다소 불안했다. 러시아 남성 성악가들이 바리톤과 베이스는 강세이나 테너에서 상대적으로 약세라는 공식이 이날도 드러났다.
제르몽 역의 블라디슬라프 술림스키는 두터운 질감의 저음과 베르디 바리톤 특유의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비정한 아버지와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양심 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했다. 현재 마린스키 극장의 전속 가수는 안나 네트렙코를 비롯해 무려 120명이 넘는다. 가히 세계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성악가는 러시아와 과거 독립국가연합에 속해 있던 러시아어를 쓰는 나라 출신이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한 극히 이례적인 ‘순혈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독일 대부분 극장이 한국인 성악가를 비롯한 ‘다국적 군단’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그만큼 자국인만으로도 충분히 수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막이 올라가자 객석에서 작은 탄성이 들려왔다. 루보가 무대에서 사용한 주재료는 커튼이었다. 아낌없이 쓰는 풍성한 커튼이 3막 내내 모양을 바꿔가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고, 샹들리에는 효과적인 양념 역할을 담당했다. 전날 발레 ‘한여름 밤의 꿈’에서 환상 속으로 몰아넣은 조명은 다음 날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명 스태프는 잠시도 쉬지 않고 무대를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 둔갑시켰다.
1막 무대는 얼핏 당시 시대에 맞게 평범한 듯 보였지만, 샹들리에와 고전 명화가 그려진 세 개의 판 옆으로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일그러진 누드화를 배치해 상류사회의 화려함 속에 가려진 성적인 타락을 묘사했다. ‘축배의 노래’를 부를 때 등 돌린 채로 앉은 손님들의 모습은 비올레타를 철저히 무시하는, 가진 자들의 이중적인 행태를 고발하며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광란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를 부르는 실로바의 노래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리릭한 목소리는 객석 구석구석까지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2막 1장은 내내 어두웠다. 비올레타의 브라운 톤 집은 같은 색으로 갈아입은 의상에서 낙엽과도 같은 쓸쓸함이 밀려왔다. 2막 2장, 플로라의 살롱은 거대한 해파리를 엎어놓은 형상의 커튼이 압도적이었다. 집시와 투우사의 합창은 붉게, 도박 장면은 푸른색으로 치장했다. 마린스키 발레의 남자 무용수 두 명이 연기한 춤사위는 오페라의 보는 즐거움을 배가했다. 마침내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의 얼굴에 묵직한 돈다발을 던졌다. 고개 숙인 비올레타는 바로 이 땅의 모든 약자의 고통을 대변하듯 흐느꼈다. 루보는 철저히 계산된 연출로 비올레타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부조리한 면을 바라보도록 했다.
3막의 편지 장면과 ‘지난날이여, 안녕’에서 실로바는 창백한 얼굴로 처절한 넋두리를 읊었다. 명연기이자 절창이었다. 비올레타의 비극은 처참했으며, 때늦은 알프레도의 귀환은 우리 시대 부모의 일방적인 보살핌 아래 고이 자란 ‘엄친아’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
루보의 ‘라 트라비아타’는 음악성과 연기 그리고 무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명품 프로덕션이었다. 극장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마린스키 2는 무대 곳곳에 교묘하게 지휘 모니터를 숨겨놓아 청중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도 성악가들이 편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했다. ‘라 트라비아타’ 3막의 어두움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걸까. 공연이 끝난 저녁 11시, 아직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늘은 환히 빛나고 있었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미니멀리즘
5월 28일 저녁,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육중한 열주 사이사이로 ‘라 트라비아타’를 보기 위해 단장한 뮌헨 시민이 모여들었다. 베를린 슈타츠오퍼가 공사로 잠시 주춤한 사이,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바이에른 사람들은 진정한 ‘독일 1위 오페라하우스’를 수성한 듯 자부심으로 가득 차 보였다. 드레스덴 젬퍼 오퍼를 제외하고 독일에서 실내장식이 가장 아름다운 극장의 객석은 역시 빈자리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마린스키 2의 넉넉한 좌석과 비교하면, 필자의 자리는 한 줄의 50개 의자 가운데 25번째라서 24명의 근엄한 독일인이 모두 일어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악명 높은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과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독일 스타일이었다.
‘라 트라비아타’의 인기가 뮌헨에서 이토록 거셌던가. 귄터 크레머가 1993년에 연출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라 트라비아타’는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지만 극장은 마치 초연 같은 분위기였다. 이 프로덕션은 2001년만 해도 디아나 담라우가 출연했고, 아냐 하르테로스와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는 물론 지난해에는 롤란도 비야손과 레오 누치가 주역으로 출연한 최고 히트작이다. 한 해 정도 쉴 만도 하건만, 매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역시 작품성과 흥행 때문이었다.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크레머가 메가폰을 잡은 모차르트 오페라 ‘미트리다테’의 선연한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색감과 기발한 암시는 이미 뮌헨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시작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막이 올라가자 강렬한 컬러가 진가를 드러냈다. 무대는 칠흑같이 어두운 데 객석 앞쪽으로 최대한 몰아세운, 검은 칠을 한 수많은 문이 열리자 진한 선홍빛 배경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모든 출연진의 의상은, 남자 출연진은 검은색, 여자 출연진은 흰색으로 나뉘었고 1막은 끝내 흑·백·적 세 가지 색상으로 종결되었다. 그런데 이 단순하고 적은 예산의 무대와 의상은 놀라울 만큼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네 하나 달랑 매달고 바닥 전체를 낙엽으로 깔아버린 2막 무대는 아르데코풍의 전형이었다. 아래로 매달린 샹들리에는 비올레타의 비극을 배가했다. 플로라의 살롱은 허무할 만큼 단조로웠고, 호화로움의 절정을 구가하는 집시와 투우사의 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장면을 암시와 색의 전환으로 처리했다. 예를 들면 3막의 축제 행렬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으로 대체했다. 비올레타의 침실은 흰 매트리스 한 장이 전부였다. 샹들리에는 바닥에 떨어져 널브러져 있었다. 한 여인을 짓밟는 가진 자들의 잔인함은 단순했지만 끝까지 이어졌다.
2011년 베로나 디 아레나 페스티벌에 비올레타로 출연해 찬사를 받은 알바니아의 국보급 소프라노 에르모넬라 아호는 명불허전이었다. 목소리는 기본이었다. 감정의 폭발과 절제, 그리고 고통받는 약자의 아픔을 절묘하게 연기하며 곳곳에서 청중의 갈채를 독차지했다. 마린스키 2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긴 알프레도는 요즘 상한가를 달리는 슬로바키아 테너 파볼 브레슬리크의 스핀토에 가까운 매력적인 음성으로 보상받았다. 제르몽 역의 알렉세이 마르코프는 마린스키 극장의 솔리스트인데, 뮌헨에 초청받아 나무랄 데 없는 노래와 연기를 선보이며 작품의 완성도를 한껏 높였다.
커튼콜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극장 측에서 객석 조명을 켜지 않았다면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청중은 발로 바닥을 구르며 열광했다. 우크라이나의 젊은 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프는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장악하며 성악진과 환상적 호흡을 일구었다. 그녀의 다이내믹한 해석은 크레머의 연출과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음악은 시종일관 박력 있는 템포를 유지했고, 3막은 이완을 극대화했다.
“행복과 슬픔은 곧 끝날 겁니다. 죄인에게 죽음은 마지막 쉼터입니다. 눈물도 꽃다발도 내 무덤에는 없고, 이 뼈들 사이로 십자가를 만들지도 않을 겁니다.”
‘라 트라비아타’ 3막, 비올레타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아리아의 2절 가사는 가장 절절한 그녀의 고백이다. 이 때문에 파리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 있는 마리 뒤플레시의 무덤에는 언제나 추모객의 꽃다발이 끊이지 않는다 했던가. 마린스키 2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라 트라비아타’는 어쩌면 이 오페라의 핵심이라 할 수 없는 이 대목을 삭제하고 1절만 부르고 넘어갔다. 시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프리마돈나를 배려해서였을까. 아쉬웠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라 트라비아타’는 독일 오페라하우스의 연출·무대 동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해 예산을 절감하면서도 청중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방식이다. 반면 마린스키 2의 ‘라 트라비아타’는 고전과 현대를 적절히 혼합하며 있는 그대로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했다. 무대와 의상 또한 서로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공연 도중이 아니면 공연장 안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린스키 2와 달리 로비에서도 모든 촬영을 불허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를 보면서 젊은 층과 외국인을 위해 오페라하우스가 좀 더 능동적으로 변해야 함을 느꼈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 제언하고 싶다. 더 이상 오페라는 어른만의 ‘놀이’가 아니며, 모든 공연은 그 자체로 축제이며 왁자지껄해야 한다고 말이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