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역사를 바라보는 예술계의 눈, 어떻게 바뀌었을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해방 이후 지금까지, 연극·뮤지컬·영화가 민족의 아픔을 기억해온 방식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연극·뮤지컬·영화를 한 데 모았다. 각각의 작품을 시간 흐름에 따라 줄 세워 보니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해방 직후 탄생한 작품은 대부분 용맹한 독립군이나 선한 조선 민중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70년대에는 공연 예술과 스크린에 대한 혹독한 검열 아래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성을 고무하는 노골적인 작품들이 대거 생겨났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극작·연출가들의 세대교체가 진행되며 역사를 자유롭게 바라보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트라우마적 과거와 거리 두기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대의를 위해 희생한 영웅에서 일상적이고 소소한 갈등을 겪는 인물로 중심이 이동하며 식민지 시대 역사극도 ‘보편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제시대를 ‘경성 코드’로 조명하는 작업은 패션·연애·미디어 등 소재의 다양성을 가져왔다.

이는 사회적 관계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선대에는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하며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현 시대는 대부분의 사람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에 반대한다. 개인을 보호하는 시스템은 와해·해체되고, ‘개인’이 곧 ‘사회’가 되었다.

작품 목록은 1945년 이후 공연된 것을 초연 순으로 정리했다. 창작 작품을 중심으로 했으며 실제로 공연되지 않고 희곡으로만 남은 것은 제외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으로만 한정해 공연예술사에 의미 있게 기록된 역사 소재 작품들을 모두 소개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럼 페이지를 넘겨 새로운 역사가 될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진행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정리 장혜선 기자(hyesun@gaeksuk.com) 임형준 기자(byejun@gaeksuk.com)

김인혜 인턴 기자(editor2@gaeksuk.com)

PLAY

연극에 드러난 광복의 ‘추억’ 그리고 현재성

일제강점기 35년의 두 배 시간인 70년이 흘렀다. 광복이라는 명칭이 환기하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기억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

일제강점기를 키워드로 놓고 보았을 때 시기 구분은 대략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1910~1945), 해방기(1945~1950), 전쟁과 분단 상황 아래 군부 독재 시기(1950~1987), 그리고 이른바 87체제 이후 현재까지 시기(1987~)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에는 직접적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과 현실 비판의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다면, 전쟁과 분단 이후에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새롭게 재편된 국제적 냉전 질서로 더 복잡하고 굴절된 양상을 보인다. 일제강점기 한국근대희곡의 대표작으로는 김우진의 자연주의극 ‘이영녀’(1925)와 표현주의극 ‘난파’(1926), 송영의 풍자극 ‘호신술’(1931), 유치진의 비판적 사실주의극 ‘토막’(1933) ‘소’(1935), 함세덕의 서정적 사실주의극 ‘동승’(1939) ‘무의도기행’(1941) 등이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식민 지배와 종속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뜨거운 역사적 화두이자 쟁점이다. 반면 우리 내부의 친일 잔재 청산 문제는 여전히 느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수요 집회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해성 ‘빨간시’(2011)) 일제 말기 만주국 군관학교 졸업생으로 일본군에 충성을 맹세하는 조선인 엘리트 청년들의 비틀린 내면을 풍자한 박근형의 ‘만주전선’(2014) 식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얻고 있다.

국립극단 공연인 ‘흑하’(1978)에서 다루고 있는 항일투쟁사, 뮤지컬 ‘명성황후’(1995)와 ‘아리랑’(2015)에서 다루는 민족수난사는 이 시기에 대한 ‘공인된’ 역사적 관점을 대변한다. 그러나 일제 말기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논리, 곧 일본 국민으로 동화하여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군인으로 총동원되어야 한다는 국책 연극 ‘국민연극’이 1942년부터 전쟁 기간 동안 조선총독부 지원 아래 대대적으로 진행된 것 또한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유치진의 국민연극 ‘흑룡강’(1941)은 일본이 세운 만주국을 선전하기 위해 직접 만주를 취재한 이후 쓰였고, 대표적인 카프(KAPF) 극작가인 송영과 신파극 작가 임선규 또한 국민연극을 썼다. 국민연극 내부의 다양하고 복잡한 지형에 대한 실체 파악과 심층적 분석 또한 아직 충분치 않다. 일제 말기 전시 총동원기와 해방기의 짧은 시기에 대한 역사적 검토가 아직까지도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지금 현재 이 시기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역사관을 의심해봐야 한다.

해방기의 문제적 작품으로 오영진의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1949)가 우리의 근대 고전으로 현재에도 반복해 재공연되고 있고, 잊혔던 진우촌의 ‘두뇌수술’(1945)이 2012년 젊은 연출가 윤한솔에 의해 발굴되어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무대화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친일과 저항의 단순한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선 문제적 지점을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주목받는다. 한편, 이에 앞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작가로 정복근을 들 수 있다. 정복근은, 조선 왕실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의 비극적 인생을 다룬 ‘덕혜옹주’(1995), 일본에 끌려간 징용자와 정신대 출신 조선인들이 조선에 돌아오지 못하고 침몰한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을 다룬 ‘짐’(2007), 영웅 안중근의 친일파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너다’(2010) 등 한·일간 역사에서 은폐되었던 역사에 대해서 과감하게 문제제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적극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최근의 대중문화 영역에서 퓨전 사극이나 풍속사 측면에서 재조명되는 현상과 관련하여 주목해볼 만하다. 역시 연극에서도 동일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극작·연출가성기웅의 일련의 모던 경성 시리즈, 예컨대 ‘깃븐우리절믄날’(2008) ‘소설가 구보씨의 1일’(2010), 체호프의 ‘갈매기’를 재창작한 한·일 공동 제작 작품인 ‘가모메’(2013) 등이 화제가 되었고, 신은수의 일련의 대한제국 황실 시리즈, 예컨대 ‘운현궁 오라버니’(2009)나 ‘봄이 사라진 계절’(2013) ‘거울 속의 은하수’(2014)도 주목해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박근형이 ‘만주전선’에서 우리의 친일의 역사를 풍자적으로 비틀고, 정복근이 ‘나는 너다’에서 이질적인 역사적 관점을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역사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우리의 근대에 대해 ‘이질적인 일상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는 일본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가 ‘서울시민 1919’(2003)에서 보여준 1919년 3월 1일, 경성의 일본인 가족의 일상을 극사실주의적으로 보여주면서 또 다른 역사적 관점을 보여주는 것과도 다른 것으로, 정치 비판과 이분법적 역사관으로부터 거리를 획득한 젊은 세대 특유의 발랄한 감각과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이들 공연의 ‘모던 경성’을 다루는 방식이 시리즈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점은, 이들의 역사 감각이 단순히 일회성의 대중문화 코드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지금 현재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의 부활, 중국의 부상 등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서 일제강점기의 식민 지배와 탈식민 문제는 여전히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 폭주에서 이전 시대의 제국주의 전쟁의 기반이 되었던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도 새롭게 바라볼 필요성도 던져주고 있다. 광복 70주년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급박해진 동아시아 정세를 목격하고 있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1)‘아내의 길’은 1945년 8월 13~16일에 공연된 연극이다. 조선 여인들의 인고의 삶을 그린 내용으로, 8월 13일에 개막해 이틀 간 많은 관객을 모으며 인기를 끌었고, 15일에는 온 국민이 해방의 기쁨을 만끽한 덕에 상연을 잠시 멈췄다. 이튿날 공연을 재개했지만 친일이 드러나는 대사가 여럿 등장해 관객들의 야유와 항의를 받으며 자진 중단했다. 이 작품은 해방 후 첫 공연으로 기록되어 있다.

2) ‘독립군’은 조선연극동맹이 처음 올린 작품이다. 조선연극동맹은 8월 광복 이후, 우익 극단에 대립하여 설립한 좌익 극단 동맹이다. 이들은 ‘3·1운동’ ‘3·1운동과 만주영감’ ‘님’ ‘기미년 3월 1일’ 등을 공연했고, 1948년 8월에 해체했다.

3)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1949년 초연 당시 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957년 ‘인생차압’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친일파 사업가인 이중생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횡령, 공문서 위조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마저 이용한다는 내용으로, 본격 사회 비판 극으로 볼 수 있다.

4) ‘풍금소리’는 광복 후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일제강점기를 겪은 사람들의 피폐한 모습을 그린다. 같은 해 발표된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역시 해방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아픔을 이야기한다.


▲ ©스튜디오 반

5) ‘도라지’는 조선의 개화를 꿈꾼 두 청년 김옥균과 홍종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김옥균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만큼 작품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1994년, 오태석연극제의 폐막작으로 초연되었으며, 지난 6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리딩 공연을 가졌다.

6) ‘눈꽃’은 1930년대 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던 중 도망쳐 만주 땅에서 마을을 이룬 한인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이 탄생한 1990년대 중반은 독립운동에 집중돼 있던 소재가 소련·중국 영토에서 사회주의를 통해 민족 해방 운동을 하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 등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시기다.


▲ ©연희단거리패

7) ‘서울시민 1919’은 일본의 극작·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이다. 1919년 3월 1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한 일본인 가정의 거실만을 배경으로 하여 일상을 보여준다. 일본인들의 이중성과 더불어 이 집에 들르는 손님들이 지니는 의식의 정체성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드러낸다.

8) ‘두뇌수술’은 1945년 해방 직후 진우촌 작가가 발표한 희곡을 젊은 연출가 윤한솔이 2012년 초연한 작품이다. 한 의사가 지능이 낮은 부잣집 아들과 가난하지만 총명한 시골 청년의 두뇌를 교환하다 벌어지는, 창작 당시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은 조선인의 몸에 식민시대 일본인이 들어와도 조선인은 조선인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9) ‘가모메’는 체호프의 ‘갈매기’를 한국의 1930년대 버전으로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성기웅이 각색을, 다다 준노스케가 연출을 맡아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했다. 성기웅 극작가는 이전에도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 ‘깃븐우리절믄날’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다정도 병인양 하여’ 등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을 꾸준히 선보였다.


▲ ©작은신화

10) ‘봄이 사라진 계절’은 친일파 이완용을 주인공으로 한다. 1909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완용 앞에 2009년에 살던 이재명이 나타나는 공상과학 스토리다. 신은수 극작가는 ‘운현궁 오라버니’ ‘거울 속의 은하수’ 등에서도 역사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 ©극단 골목길

11) ‘만주전선’은 194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조선에서 유학 온 청년을 중심으로 한다. 지배 권력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나약함과 나태함을 드러내며 현대인의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MOVIE

진지하지만 자유로운 접근이 흥행 역사 영화를 만든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지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영화에서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영화 ‘타짜’와 ‘도둑들’의 감독 최동훈의 신작 ‘암살’(2015)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창 아시아로 뻗어나가던 1933년이 배경이다. ‘암살’은 백범 김구가 이끌던 상하이 임시정부와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을 중심으로 조선 주둔군 사령관 마모루 가와구치와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하는 이야기다. 그들은 암살로 당장 조선이 독립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적, 일제의 움직임을 둔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의가 있다고 믿는다. 특이한 것은 암살단의 중심이 여성 저격수인 안옥윤이라는 점. 언제나 유머가 넘치는 최동훈 감독의 영화답게 심각하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도 완전히 웃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암살’은 화려한 액션으로 관객을 매료시키지만 이야기가 다소 늘어지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영화는 자칫 심각해지기 십상이다. 참혹하던 시대를 웃으며 볼 수 있는 마음은 도저히 아니라는 것을 제작자도, 감독도, 관객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지한 마음으로만 영화를 만들면 아무도 보지 않는다. ‘암살’ 이전에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은 다양한 시각과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근래의 경향은 ‘경성’이었다. 1930년대의 경성은 일제에게 지배당한 비극적인 시기이지만, 조선이라는 중세가 끝나고 서구의 근대가 이식되던 혼돈과 변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한복은 양복으로 바뀌었고, 조그만 라디오에서 드라마와 음악이 흘러나오고,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의 사람과 문물과 사상이 흘러들던 파리가 예술의 도시가 된 것처럼, 경성도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그 혼돈 자체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경성’을 키워드로 하는 영화로는 ‘모던 보이’(2008) ‘라듸오 데이즈’(2008) ‘YMCA 야구단’(2002) 등이 있다. ‘YMCA 야구단’은 야구라는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겪는 사회적 갈등을 잘 보여준다. 양반이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야단을 들으면서도 야구단에 가입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반면 ‘모던 보이’와 ‘라듸오 데이즈’는 서구 문물을 마구 즐기다가 난데없이 항일운동으로 무리하게 흘러가며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경성의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풍경을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가도 반일의 좁은 틀에 갇혀버린 결과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2008)과 ‘그림자살인’(2009)은 오히려 자유롭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민족의식이나 반일에 거의 개의치 않는다. 사기꾼과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새로운 문물을 활용하여 진기한 상황과 액션을 만들어내는 것에만 열중한다. 그것이 오히려 관객에게 어필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풍경은 서구에서도 매혹적이었다. 아예 그 시대의 풍경을 확장시켜 상상력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스팀펑크’라는 장르도 있다. 가쓰히로 오토모의 ‘스팀보이’(2004)와 투명인간과 네모 선장 등이 나오는 ‘젠틀맨리그’(2003) 같은 영화다. 하지만 근대로의 이행이 순조롭던 서구와 강제로 식민지가 되면서 근대가 이식된 한국이 당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 인물을 중심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방법은 언제나 유효하다. ‘청연’(2005)은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이야기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인 윤심덕을 그린 ‘사의 찬미’(1991)와 시인 이상과 꼽추 화가 구본웅 그리고 기생 금홍의 이야기를 담은 ‘금홍아 금홍아’(1995)도 있다. 아무리 개인적인 삶을 파고든다 해도 인간, 특히 위인은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던 예술가들의 고달픈 영혼이 내비친다.

1980년대와 그 이전에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은 ‘땡볕’(1984)과 ‘뽕’(1985) 등 고단한 서민의 삶을 그린 영화와 ‘일송정 푸른 솔은’(1983) 등 항일 운동을 직접적으로 그린 영화로 양분된다.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일제강점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던 시절이다. 하지만 마카로니 웨스턴의 영향으로 ‘쇠사슬을 끊어라’(1971) 등 만주를 배경으로 한 액션 영화들이 1970년대에 등장했다. 오락 영화로서 일제강점기를 즐기려면 가상의 공간(처럼 보이는) 만주로 가야 했던 것이다. 만주 웨스턴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영화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은 점점 다양해질 것이다. 결코 기억에서 지워지지 말아야 할 역사이지만 그렇다고 교육적 의도만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재미있을 리는 거의 없다. 민족의식을 잃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을 기대한다.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MUSICAL

+ 상상력, 역사 소재 뮤지컬이가야 할 길

역사만큼 좋은 뮤지컬 소재도 없다. 단순히 사극으로서의 재미뿐 만은 아니다. 역사 소재의 콘텐츠는 현실을 빗대어 이야기하기 좋은 ‘풍자’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흘러간 옛 세월 속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현실에 근간을 두는 것이다. 사학자들은 화를 낼 지도 모르지만, 뮤지컬에서 역사의 진위는 부차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뮤지컬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세월에 따라 변천돼왔다. 초창기 뮤지컬 작품은 대부분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라는 거대 담론 아래 비틀린 시대적 상황이나 민초들의 비애, 왜곡된 역사 등을 조명하며 민족적 울분이나 공분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대표적인 경우가 윤호진 연출의 ‘명성황후’(1995)다. 일본 낭인에 의해 국모가 시해된 역사적 비극을 담은 이 작품은 뮤지컬이 아직 대중적인 장르로서 완전한 정체성을 확보하기 이전인 1990년대에 등장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로서 정체성을 확보했고,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는 인기를 누렸다. 대부분의 관객이 울분을 토하게 되는 엔딩 신은 죽은 명성황후가 등장해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열창하면서 절정을 이룬다. 훗날 같은 연출가가 만든 ‘영웅’(2009) 역시 비슷한 시각과 맥락을 유지한다. 안중근을 소재로 한 이 뮤지컬은 지난겨울,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중국 하얼빈에서 막을 올리며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故 김효경 연출의, 동학혁명을 다룬 ‘징게 맹개 너른들’(1994)이나 일제 침략기를 전후로 한 ‘간도 아리랑’(1995)도 엇비슷한 성격과 관점의 작품들이다.

근대사 소재의 초창기 창작 뮤지컬이 스토리를 거대 담론으로 전개한 데에는 당시 창작 뮤지컬이 공공적 성격의 단체들에 의해 제작된 시대적 상황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다. 국가적 지원으로 제작하던 당시의 뮤지컬은 대중성이나 흥행성보다 오히려 계몽주의적 관점에서의 교육적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서울예술단의 모태인 88서울예술단, 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인 서울시립가무단 그리고 그 이전 시절의 작품들이 그렇다.

근래에 들어서는 역사 뮤지컬들도 다양성을 보이며 변화하고 있다. 사건보다 인물이, 거대담론보다 각론이나 서사 위주의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며 ‘이야기를 보는 재미’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소재뿐 아니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때로는 낯설 정도로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일 때도 있다. 젊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주축을 이뤄 제작한 ‘콩칠팔 새삼륙’(2012)은 구한말을 배경으로 여성간의 동성애를 다루고 있고, 이지나 연출의 ‘잃어버린 얼굴 1895’(2013)는 고종과 달리 사진을 남기지 않았던 명성황후의 사연을 미스터리극 형식으로 재해석하며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일제가 아닌 시아버지 흥선 대원군이었다는 음모론을 제시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중국의 국민배우가 된 영화배우 김염의 사연을 다룬 ‘상하이의 불꽃’(2014),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 많은 이야기를 담은 ‘꽃신’(2014), 구한말 왕실 여인이었던 실존 인물 소재의 ‘덕혜옹주’(2013), 몇 해 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딤프(DIMF))에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제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 여인의 사연을 그린 이지혜의 ‘아리랑-경성 26년’(2013) 등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다양한 시각과 입장에서 재해석한 뮤지컬 작품들이라 볼 수 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아리랑’(2015)도 막을 올렸다.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얼마나 무대를 찾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다양성의 실험이 대형 무대에서 시도된다는 점에는 우선 반가움이 앞선다.

역사 뮤지컬의 인기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역사 뮤지컬의 묘미는 현실에 기반을 둔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도전이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해 나래를 펴길 기대한다.

글 원종원(뮤지컬평론가·순천향대 교수)

1) ‘징게 맹개 너른들’은 신동엽 시인의 장편 서사시 ‘금강’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의 투쟁과 좌절을 통해 당대 시대상을 표현했다. 당시 서울예술단 단장이던 이종덕이 계몽주의적 작품만을 지속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제작한 상업적 뮤지컬이다.

2) ‘꽃전차’는 오태석·이강백이 처음 극작한 뮤지컬로 초연 당시 화제를 모았다. 꽃전차는 8·15 광복 당시 차체를 꽃으로 장식한 채 서울 시내를 달리던 전차를 일컫는다. 당시 전차를 몰던 노인과 주변 인물들이 꽃전차의 감격을 되살리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과정을 그린다. 가볍고 유쾌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3) ‘영웅’은 독립을 위해 싸우던 안중근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윤호진 연출작으로,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화려한 무대장치로 초연 당시 이목을 끌었다. 2011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했고, 올해 2월에는 하얼빈 환구극장에서 공연됐다.

4) ‘콩칠팔 새삼륙’은 초연 당시 국내 뮤지컬계에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객석 대다수를 점유하는 여성 관객들이 선호하던 남자 배우들 중심이던 뮤지컬계에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 거기에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두 여인의 동성애를 그렸다는 점 때문이었다. 런던·뉴욕에서 유학하고 온 작곡가 이나오는 세련된 음악을 선보이며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다.

5) ‘윤동주, 달을 쏘다’는 극작가 한아름이 ‘영웅’에 이어 창작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로 시를 쓰며 저항하던 시인 윤동주의 슬픔을 노래한다. 시인의 작품은 멜로디 없이 무대에서 그대로 낭송되는데, 고유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시대적 아픔을 표현한 무대로 호평을 받았다.

6) ‘아리랑-경성 26년’은 경성 시대의 젊은 여성이 영화 ‘아리랑’을 제작하던 나운규와 창작자들을 만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3년 2월 서울에서 워크숍 공연을 치르고, 6월 대구에서 딤프 개막작으로 정식 공연을 개최했다. 딤프에서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여 개발한 작품으로, 흥미로운 설정과 접근으로 개성 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7) 역시 딤프에 소개된 ‘상하이의 불꽃’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화려한 상하이를 배경으로 그린 뮤지컬이다.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태어나 홀로 상하이에서 성장하며 중국의 인기 영화배우가 된 실존 인물 김염의 삶을 바탕으로 한다.

8) 일본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컴포트 우먼’은 오프브로드웨이 초연작이다. 오는 7월 31일부터 8월 10일까지 세인트 클레먼츠 극장에서 총 18회 공연된다. 뉴욕시립대에 재학 중인 김현준이 극작·연출하고, 11개국의 배우 50여 명과 30여 명의 스태프가 참여한다. 국내에 소식이 알려지며 제작비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화제의 공연

뮤지컬 ‘아리랑’

9) 광장에 모여 만세 삼창을 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의미를 되새기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다각도로, 다양하게 광복의 의미를 떠올리며 공유해왔다. 연극·뮤지컬·영화도 역사의 이면에 있던 수난과 고통을 꾸준히 담아왔다. 앞선 세 명의 필자의 글을 보니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작품의 소재는 확장되고, 접근 방식도 점차 과감해졌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언제 발표된 작품이든 창작된 그 시대를 반영하고, 드러내고, 때로는 풍자했다는 것은 공통된 방식이었다. 역사극은, 다른 의미에서는 ‘현재의 기록’인 셈이다. 지난 7월 16일에 정식 개막한 뮤지컬 ‘아리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난 7월 15일, 뮤지컬 ‘아리랑’을 관람했다. 원작인 조정래의 동명 소설과는 매체의 특성이 다른 만큼 인물 설정이나 스토리 전개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일단 뮤지컬에서 수국과 득보, 수익과 옥비는 각각 사랑하는 사이로 등장하지만, 이는 원작과 다른 설정이다. 또 뮤지컬에서는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각색해 소설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던 공허 등의 역할은 축소되고, 신세호 등은 아예 사라졌다. 일제의 무분별한 토지사업이나 군사교육 등의 시대적 배경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각 인물의 드라마를 클로즈업해 풀어냈다.

축소된 스토리로 무대를 효과적으로 꾸미면서도, 원작이 가진 정서는 깊이 있게 담아낸 것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감골댁 역의 김성녀는 큰아들 영근을 해외로 떠나보내고, 딸 수국마저 체포돼 끌려가자 허망한 가슴으로 한 서린 노래를 부른다. 텅 빈 무대에서 반주도 없이 울려 퍼지는 그녀의 노래는 소설에서 등장했던 감골댁의 파란만장한 삶을 응축했다. 끝내 죽지도 못하고 까맣게 타버린 그녀의 뒷모습과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도 맘 놓고 울지 못하는 딸 수국의 모습은 소설에 못지않은 감정을 드러낸다.

무대에 구조물은 거의 없고, 후면의 영상과 사방의 조명을 통해 정서를 표현했다. 빈 듯한 무대는 출연진(민중)이 한꺼번에 등장하거나, 각 공간에서 연관된 장면들이 오버랩되어 허전하지 않았다. 좌우로 움직이는 트래블레이터가 등장인물과 소품들을 바삐 나르며 전개를 도왔다. 특히 득보와, 오빠인 그를 구하기 위해 고마다의 첩이 되는 동생 옥녀가 서로 엇갈려 미끄러지는 장면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1부 중간에 빠른 전개를 위해 대사 없이 파노라마처럼 무대 전환이 이루어지는 장면 역시 구조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음악을 맡은 김대성 작곡가는 서양악기들과 함께 해금·북을 중요하게 사용했다. 북은 혼란스러운 환경과 민초들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했고, 해금은 그 자체로 민중의 ‘울음’이 되었다. ‘아리랑’은 여러 번 변주·반복되었는데, 등장인물들이 한 목소리로 ‘완창’하는 대목은 1부와 2부에서 각각 한 번씩 등장했다. 수익과 독립군들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 부르는 장면과, 수익의 재판을 앞두고 다 함께 결의를 다지다 일본군의 구두 굽 소리가 들리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속삭이는 장면에서 불렸다. 두 번 모두 반주는 없었고 오로지 성악으로만 연주했는데, 이러한 설정은 ‘소리’ 자체로 솔직하게 전달됐다. 포장된 것 없이 낱낱이, 그저 순간의 울림이 됐다.

‘아리랑’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기뻐도 부르고 슬퍼도 부르는, 흔하지만 그래서 더 사무치는 ‘소리’ 아니던가. 끝 부분에 출연진이 공중에 떠오른 수의들을 가리키며 관중을 바라보는 장면 역시 역사의 현재성을 드러냈다.

역사의 예술화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실화가 누군가의 사고(思考)를 통해 재현된다면, 현재의 우리는, 이제는 볼 수 없는 과거를 주관적인 기억으로 그저 메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역사를 담은 예술 작품이 계속해서 탄생하고 그 자체로 흥미로운 건, 역사가 곧 현재이고 과거가 곧 미래이기 때문이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사진 신시컴퍼니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