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녀가 자유로운 이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의도치 않게 ‘한국 탱고음악의 대표주자’가 된 고상지. 그녀가 말하는 ‘정통성’과 ‘대중성’

고상지는 한국의 반도네온 연주자 중 가장 유명하다. 실력이 최고로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건 사실이다. 대학 때 처음 반도네온을 손에 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동률·정재형·이적 등의 음반과 공연에 참여하며 대중매체에 노출됐다. 탱고 불모지에 가깝던 한국에서 카이스트 출신의 젊은 여성 반도네오니스트의 등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코디언을 닮은 신비한 악기를 연주하는 그녀에게 매스컴은 ‘최초의’ ‘유일한’ 반도네오니스트라는 수식어를 마구잡이로 붙였다.

그저 신기하고 좋아서 반도네온을 시작한 고상지는 이후 불안·고독과 싸워야 했다. 자신이 처음도, 최고도 아니라는 해명을 해야 했고, 연주력에 대한 의심과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악기의 희소성 덕에 크고 작은 공연과 음반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그녀는 ‘명성’에 걸맞게 자신을 발전시켜갔다. 지난해 자작곡만을 담은 정규 1집 음반 ‘Maycgre 1.0’을 발매한 그녀는 현재 고상지밴드로서 단독 무대와 가요, 드라마·영화 음악 작업을 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고상지와 ‘정통성’과 ‘대중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의도치 않게 ‘한국 탱고음악의 대표주자’가 되었지만 꾸준히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는, 그러면서도 탱고음악에 대한 진지함은 잃지 않는 그녀와의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고상지의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고상지의 시작’부터 꺼내야겠죠. 초등학교 때 가야금을 공부했다고 들었어요. 그때 배운 국악이 현재 음악 활동에 영향을 미치나요?

가야금은 초등학교 4학년에 시작해 6학년까지 했어요. 어머니가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하셨거든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종종 어머니의 장구 소리에 맞춰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어요. 전공을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아버지가 반대하셔서 그만뒀죠. 그런데 그뿐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음악 활동에 영향을 미친 건 오히려 어릴 때 들은 게임 음악이에요. 제가 집에서 막낸데, 언니·오빠가 항상 집에 최신 게임을 구비해놓고 즐겼거든요. 제가 작곡한 곡을 들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때 들었던 배경음악이나 효과음들이 현재 제가 하는 음악과 더 많이 연관돼 있어요.

대학에서 토목·산업디자인을 공부하다 음악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을 때 한국의 탱고음악 시장은 어땠나요? 당시 탱고음악을 공부하고, 반도네온을 연습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궁금해요.

사실 특별한 계획이 없었어요. 아르헨티나에 사는 이모로부터 반도네온을 손에 넣었고, 그저 재미있게 연주할 뿐이었죠. 대학 내 밴드부에서 베이스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했는데 그때는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다가 특이한 악기를 연주하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블루오션’이라는 단어는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생각해낸 말이지만, 어쨌든 이 악기를 하면 연주하는 나도, 듣는 사람들도 즐겁겠구나 싶었죠.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반도네오니스트로 활동하던 사람이 레오 정 씨, 하림 씨 정도였는데 우연한 기회로 하림 씨를 알게 됐어요. 덕분에 악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동률 씨의 콘서트 무대에서 연주하게 됐고요. 입이 떡 벌어지는 수의 관중 앞에서 반도네온 솔로를 하고, 첼리스트 송영훈 선생님과 듀엣 연주를 하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김동률 콘서트의 옥에 티는 저 이상한 아코디언 연주자다’라는 소리를 듣고 엉엉 울기도 했어요.

반도네온은 독학으로 학습하다 이후에 일본과 아르헨티나에서 공부했죠. 특히 아르헨티나 에밀리오 발카르세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에서의 유학생활은 탱고음악의 문화를 이해하기에 좋은 기회가 됐을 것 같아요.

어떤 분이 한국에서 힘들게 연주하는 제 모습을 보고 일본의 유명 반도네오니스트 료타 고마쓰에게 메일을 보냈고, 놀랍게도 선생님으로부터 응원 메일이 왔어요. 이를 통해 인연을 맺어 3년 간 석 달에 한 번씩 일본으로 날아가 레슨을 받았죠. 아르헨티나에서 제가 공부한 학교는 각 악단별로 연주의 특징이 뚜렷한 곳이라 편곡이 중요한 탱고음악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오니스트들은 대부분 자신감 넘치고 자유로운 성격이었죠. 연습하면서 자책만 하는 저를 다들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2년 간 지내며 음악적으로 많이 성숙했지만, 그 나라의 문화나 음식은 저와 잘 맞지 않아 힘든 점도 많았어요.

탱고음악은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를 기점으로 크게 전후가 구분되죠.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통 탱고와 음계나 화성 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현대 탱고’ 중 상지 씨가 더 관심을 두는 음악은 어느 쪽이에요?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 장르의 색채를 띠는 피아졸라의 음악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혁신적인 음악이라며 놀라워했지만, 탱고음악은 원래 이민자들의 음악이라 여러 장르가 뿌리에 있거든요. 이를 피아졸라가 극대화시키고, 겉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굳이 구분지어 생각하지는 않고요. 제 취향에 맞는 탱고음악을 골라 듣는 편이에요. 1980년대 활동했던 탱고음악가 오마르 발렌테의 음악을 좋아해요.

1집 음반의 제목인 ‘Maycgre 1.0’은 ‘M’부터 ‘E’까지, 일곱 개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이니셜을 딴 것이라 들었어요. 정통 탱고음악이 아닌,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얻은 자작곡들을 첫 앨범으로 발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단 피아졸라로 대표되는 훌륭한 연주자들이 이미 좋은 연주를 많이 남겼으니 제가 숟가락을 얹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들보다 뛰어난 연주를 선보일 자신이 없었죠. 다른 의미에서는, 1집 음반은 제 음악세계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이기도 해요. 애니메이션을 하루에 세 시간씩 꼬박꼬박 볼 정도로 사랑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곡을 쓰거든요. 제 ‘일상’과 ‘이상’을 반영한 음반이에요.

반도네오니스트보다는 작곡가로서의 행보에 집중하려는 건가요?

당장 작곡만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연주자로서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어요. 반도네온을 늦은 나이에 시작해 최선을 다해 연습해도 어릴 때 시작한 연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크닉이 약할 수밖에 없죠. 실력을 쌓기 전에 큰 무대를 접해서인지 무대에서 즐거움보다 두려움을 많이 느끼기도 하고요. 그런데 방에서 혼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마음껏 보면서 곡 쓰는 것은 마냥 즐거워요. 그래서 연주보다는 작곡으로 점점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아요.

최종 꿈은 애니메이션 음악감독인가요?

아니요. 그저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쓸 뿐이에요. 애니메이션을 너무 사랑해서 음악감독을 맡았다가 영상을 망칠까 봐 겁나기도 하고, 제 취향이 소수인지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지도 않아요. 지금처럼 자유롭게 곡 쓰고 연주하는 게 좋아요.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거나 성우와 협업하는 일이 제 관심분야예요.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예를 들면 1집 음반에 ‘출격’이라는 곡이 있는데, 캐릭터들이 출격하는 장면을 보면서 쓴 곡이에요. 제 곡을 들으면서 제가 작곡 당시에 본 장면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다면 흐뭇할 것 같고요.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누군가는 차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다른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막 오르면서 곡의 정서를 느끼겠죠.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 이 음악이 깔렸는데, 제 의도와 맞게 잘 쓰인 것 같아 기뻤어요.

작곡의 목적이 매우 구체적이네요. 상지 씨가 이러한 행보를 걷고 있음에도 여전히 국내에서는 탱고음악을 대표하는 연주자로 알려져 있죠. 탱고음악의 대중화나 인재 양성 등 오로지 한국 탱고음악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음악가들의 눈에는 상지 씨가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음악 활동을 대중음악으로 시작했어요. 탱고음악을 무척 사랑하고, 꾸준히 공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죠. 매체의 힘으로 얼굴이 알려진 거고요. 한국의 탱고음악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분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계속 열심히 하면서 제 음악 세계를 알리고, 그분들도 목적에 따른 성과를 얻게 되면 지금의 ‘오해’는 자연스럽게 풀릴 거라 생각해요.

고상지는 생각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기자가 질문을 던지면 고민하는 기색 없이 분명히 답했다. 예상하지 못한, 그렇지만 명료한 답을 내놓는 그녀를 보며 음악 활동을 하면서 부딪히는 질문에도 내면에서 답을 찾으며 거침없이 나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상지는 7월 1일에 시작한 소극장 공연 ‘웬즈데이 프로젝트’를 8월 5일에 마무리하고, 15일에 료타 고마쓰, 성시연/경기필과 협연 무대를 갖는다. 독특한 행보만큼 창의적인 음악을 많이 들려주길.

사진 심규태·KT&G 상상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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