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소년국악단의 ‘용기’는 기성 국악인들이 만든 ‘금기’를 뛰어넘는다. 그 가운데 유경화라는 쎈 언니, 강한 누나가 있다
오늘날 아이돌 문화는 10, 20대의 세대론이자 문화계 전반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이른바 터-진-입 문화. 그들은 ‘터진-입’으로 자신들을 대변하고, 기성세대의 판에 ‘터-진입’하여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기성세대에 ‘비해’ 덜 성숙하다는 편견과 기성세대에 ‘의해’ 더 교육 받고 성장하여야 한다는 편견도 이들 앞에선 무효가 된다.
1995년 창단된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은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대금, 소금, 피리, 타악, 소리 등 40명으로 구성된 악단으로 세종문화회관에 상주하고 있다. 보통 9세부터 24세 이하를 청소년이라고 하는데,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은 전문성을 위해 대부분 음악대학 전공자로 구성되었다. 그간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의 정체성은 기성세대의 관점에 의한 것이었다. 어설프지만 풋풋하다, 불완전하지만 기특하다라는. 하지만 변화가 일어났다. 청소년 특유의 감수성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며 브랜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보수적인 국악계와 기성세대가 닦아놓은 판에 쳐들어가고(터-진입), 입을 벌려(터진-입) 자신들의 목소리와 음악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 가운데 유경화 단장이 있다. 그녀는 춤, 거문고, 타악기는 물론이고 이제는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철현금(명주실이 아닌 철현을 사용하며 거문고와 기타를 합친 개량악기)을 통해 국악과 월드뮤직의 중심에 있다. 올해로 창단 10주년을 맞은 서울시청소년국악단. 8월에 재공연으로 오르는 미스터리청소년음악극 ‘꿈·꾸·세’를 앞둔 그녀를 만났다.
연임을 축하한다. 2013년 5월에 취임 후, 재임을 통해 2018년 5월까지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을 책임진다. 전 단장인 김성진(2005~2006, 2008~2013)이 이끌 때는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했고, 유 단장이 취임할 즈음 ‘서울시청소년국악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과 기성 국악관현악단의 차별화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왔다. 관현악단 체제에 필요한 지휘자보단 다양한 형태의 무대를 만들 수 있는 예술감독 같은 단장이 필요하다는 대안이 나왔다. 결국 나는 그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부임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고민과 활동이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이 나아갈 방향과 같다. 더 많은 자유를 통해 상상과 몸을 열어 창작 정신을 발휘하는 것. 물론 그 기조는 전통음악이다.
예전의 정기연주회는 기존의 관현악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자체적으로 레퍼토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 변화의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방학 때는 매년 있는 8월 정기연주회 준비와 성장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캠프를 통해 제공한다. 이를 통해 음악을 직접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올해의 캠프에는 박경소(가야금), 이일우(피리), 윤주희(해금), 이영섭(대금), 윤나금(아쟁), 김용우(소리)를 멘토로 초청했다. 각 파트별로 멘토링을 통해 음악을 만드는 훈련을 했다. 멘토들의 기가 워낙 세다 보니 단원들의 기를 부지런히 죽이고 나는 부지런히 다시 세워줬다. 마지막 날에는 그렇게 만든 작품을 놓고 자체 심사와 평가를 했다.
단시간 내에 단원들이 만든 작품은 어떠한가.
동화나 시 속의 ‘주제’를 음악과 몸으로 표현하게 한다. 예를 들어 아기돼지 삼형제의 늑대가 국악과 재즈를 결합시킨 음악을 배경으로 ‘섹시’하게 등장하거나, 연주자의 몸이 지푸라기 집이 되는 등 단원들의 상상력이 돋보였다. 해금 단원들은 ‘언니 왔다’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제목이 삼류 같아 심사위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마크 론슨의 음악 중 브루노 마스가 피처링한 곡으로 빌보드 차트를 휠쓸었던 ‘Uptown Funk’를 해금 4중주로 편곡하여 선보였는데, 이른바 ‘홍대 문화’로 통용되는 트렌드를 다 녹여냈더라. 심사위원들과 멘토들도 놀랐고, 그냥 이대로 팔면 되겠다고 호평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하고 싶은 건가.
연주자는 홀로 고민할 때는 상상을, 무대에서는 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현 하나에도 생각과 고민이 다 녹아 있어야 하며, 소리 하나에도 상상력과 몸의 호흡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캠프부터는 메이크업 강의도 했다. 이게 인기가 제일 많더라.(웃음) 얼굴에 맞는 메이크업을 가르쳤더니 그 다음부터 무대가 환해졌다.(웃음) 질긴 호기심, 빠른 피드백, 톡 쳐도 나오는 상상력. 이 세대만의 특징이다.
‘대학생 유경화’는 어떤 학생이었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무용가 김매자 선생이 이끄는 창무춤터에서 무용음악을 맡았고, 해외 공연도 자주 다닐 수 있었다. 학교에 가면 늘 데모를 했다.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 시대에 대한 고민과 그에 필요한 철학도 공부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은 세상이 변한다는 것. 이것이 내 음악의 모토이자 삶의 화두가 되어가던 때였다. 그 당시의 고민은 음악이란 ‘인간을 위한 음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종의 꿈은 우리가 이뤄준다
유경화 단장은 임기 중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지난해의 ‘꿈·꾸·세’ 초연과 이 작품으로 제2회 창작국악극대상 연주상을 수상한 것을 꼽았다. 반면 ‘꿈·꾸·세’로 예술경영지원센터 해외문화원 순회프로그램 공모에 국립현대무용단 ‘불상’과 최종적으로 올라갔다가 탈락한 것이 가장 속상한 일이라고 한다. ‘꿈·꾸·세’는 ‘꿈꾸는 세종’을 줄인 제목으로 미스터리청소년음악극을 표방한 작품이다. 몸이 쇠약해진 세종이 요양을 간 초정행궁에 123일 동안 머물렀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이 시기에 세종이 작곡에 몰두했다는 상상을 음악·영상·연극이 어우러진 음악극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세종문화회관 앞의 광화문광장에는 세종과 이순신의 동상이 있다. 한 나라를 떠받치던 무(武)의 상징과 함께 있기에 세종은 상대적으로 더욱더 문(文)의 상징으로 비춰진다. ‘꿈·꾸·세’를 통해 ‘한글을 만든 왕이 알고 보니 음악에도 밝았다!’라는 놀라움을 제공하고 싶은 건가.
‘꿈·꾸·세’는 편종과 편경, 기본음을 잡기 위한 율관, 아악(雅樂) 재정비, 정간보 창시 등 세종의 음악업적을 나열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음악은 한 나라의 정서이며, 정신이다’는 이 한 줄을 말하기 위한 설정이었다. 나는 이것이 세종의 꿈이라고 생각하여 제목도 ‘꿈꾸는 세종’으로 붙였다. 또한 세종문화회관에 상주하는 우리로서 세종을 브랜드로 내세울 작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기에 음악은 재밌고, 무대는 파격적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나오는 ‘소리를 담은 돌’은 우리나라에서 편종·편경이 연주된 지 400여 년 만에 만들어진 최초의 편종·편경 협주곡이다. ‘꿈·꾸·세’의 연주 형태는 3~4미터 간격으로 하나의 악단을 두 개로 분리했다. 두 개의 큰 앙상블이 지휘자 없이 굴러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연극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음악으로, 그것도 국악이라는 아웃사이드 음악으로 세종을 그린다는 건 최악의 조건이었다. 열악하면 오기를 갖고, 무관심하면 관심을 갖고 달려드는 단원의 특징이 큰 빛을 발했던 공연이다.
올해 재공연으로 선보이는데,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대 뒤에는 스토리가 담긴 영상이 펼쳐진다. 연출가 오경택과 영상감독 구춘모가 제작한 것이다. 작년에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했던 반면, 올해는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의 느낌이 강하도록 수정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중요 인물이 마지막에 말하고자 하는 진지한 주제를 계속 암시하고 부각시킬 것이다.
이렇듯 자유로운 앙상블과 창작 중심의 공연도 있지만 매년 선보이는 ‘청춘가악’은 기존에 해오던 국악관현악단의 형태로 선보인다. 예전에는 협연자만 선발했는데, 이제는 지휘자까지 공모하여 등용시킨다. 이 점이 인상적이다.
30세 미만의 지휘자를 발굴하여 공연 전체를 맡기는 것에 대하여 좀 무모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기성 악단도 우리처럼 많은 부문을 열어 공모를 하고 있다고 한다.(웃음) 작년에 장태평과 채길룡이, 올해는 유용성이 지휘봉을 잡았다. 등용 후에는 1년 동안 지방·연계공연에 함께 하며 이들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올해가 창단 10주년이라 ‘10’이라는 숫자만 보면 고민이 마구 떠오를 것 같다. 2년이라는 임기를 끝내고 3년이 붙은 것도 부담이 될 것이고. 남은 한 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꿈·꾸·세’는 작년에 1일 1회 공연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올해는 1일 2회로 선보인다. 12월에 10주년 기념 정기연주회가 있다. ‘10’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부각시킬지 고민이다. 10시간 런 연주도 우리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정해진 것은 뮤직비디오 제작뿐이다. 무엇보다 해외의 청소년 페스티벌과 무대를 통해 서울시청소년국악단과 세종을 알리고 싶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 단장직 외에 개인적으로 어떤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가.
11월에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사진작가 강영호와 함께 사진과 음악이 함께 하는 무대를 준비 중이다. 다음에는 연출가 양정웅, 무용가 원정진, 프리뮤직의 강태환 등과 이어갈 것이다. 경계를 넘는 시리즈로 10여 년간 진행할 것인데, 이를 통해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정진하려 한다. 올가을에는 철현금 음반이 프랑스 이네피(Inedit) 레이블에서 발매되고 이를 위한 유럽 투어가 있다. 스승들에게 물려받은 가락을 복원하여 알린다고 생각하니 바쁘고, 또 기쁘다.
박진호(studio Bob)
서울시청소년국악단 ‘꿈·꾸·세’
8월 13일(3시,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예술감독·연출 유경화, 대본·영상연출 오경택, 작곡 홍정의, JC Cur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