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린화이민

오리엔탈리즘의 재해석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동양과 서양의 예술미를 융합하여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린화이민의 춤 세계

대만의 안무가 린화이민이 이끄는 현대무용단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시어터가 12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갖는다. 클라우드 게이트 단장 린화이민은 다양한 전통 무용을 학습한 안무가다. 중국의 경극, 일본의 궁중무용, 김천흥·한영숙을 통해 우리 민속춤까지 습득했으며, 쿵푸와 태극권 같은 신체 수련을 움직임에 차용했다.

예술과 밀착된 삶

린화이민의 삶을 살펴보면 모든 예술은 한 숨결을 가진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문학과 무용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낸 린화이민. 그는 1947년 대만 지아이 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시인이자 학교를 설립한 사업가였고, 할아버지는 의사였다. 부모님은 일본에서 유학을 했고, 아버지는 장개석 국민당 정부에서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쳤다. 린화이민은 시각예술과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부모 밑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흡수했다.

그의 예술성은 글쓰기에서 먼저 두각을 보였다. 14세에는 ‘유나이티드 데일리 뉴스’지에 글을 실었고, 18세에는 매거진 ‘크라운’지의 계약 작가가 됐으며, 22세에는 소설 ‘매미(Cicada)’를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올랐다.

대만에서 현대무용이 조금씩 움트기 시작하던 1960년대, 무용에 흥미를 느낀 린화이민은 무용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전공했지만 이내 저널리즘으로 전과했으며, 1969년에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시절 연극과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고, 미국 현대무용에 매료되어 마사 그레이엄에게 현대무용의 정수를 익혔다.

전통의 탐구로 만들어진 작품 세계

대만으로 돌아온 린화이민은 1973년에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시어터를 창단했다. 그는 안무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다. 안무의 실마리를 자국의 전통에 두었지만 그대로 답습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미국 현대무용을 그대로 모방하지도 않았다. 동양의 뿌리에 현대적으로 접근하여, 시대적으로 열려 있는 전통을 추구했다. 민족적인 색채를 가진 안무작들은 클라우드 게이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는 확고한 이유가 됐으며, 아시아의 선두적인 현대무용단으로 대중적 인기를 획득했다.

많은 평론가가 그의 출세작을 1994년에 발표한 ‘방랑자의 노래’로 꼽는다. ‘방랑자의 노래’나 ‘문 워터’는 시각적인 효과로 성공을 보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시각적 효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다. 기(氣)가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데, 린화이민은 단원들의 기를 다듬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2003년 3월,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시어터는 예술의전당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에 초청되어 한자체의 행서와 초서의 서법에서 나오는 에너지 흐름을 무용으로 옮긴 ‘행초’를 선보였다. 당시 무용평론가 문애령은 “‘행초’에 담긴 기교는 동서양의 무용이 오묘하게 결합된 것으로 린화이민은 우리 무용가들에게 창작의 부담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줬다”고 평했다. 이번 내한에선 2013년 클라우드 게이트 창단 40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라이스(Rice)’를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단원들과 함께 대만 츠상 지역을 방문하여 농사를 체험했다는 것을 보면 린화이민의 예술적인 호기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12년 만에 다시 한국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그와 진행한 일문일답.

40년 이상 클라우드 게이트를 이끌어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대만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 덕분입니다. 저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클라우드 게이트를 창단했어요. 무용수들이 춤출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고, 예술을 사회에 나누며, 저소득층과 공유하는 예술을 원했습니다. 4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활동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 20년간 해외 공연이 늘면서 세계 여러 도시에서 공연하고 있어요. 관객들의 호응은 놀라운 에너지를 창출하며 큰 힘이 됩니다.

가장 감명 깊은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2008년 클라우드 게이트 연습실에 화재가 발생했어요. 그런데 여기저기서 클라우드 게이트 시설 재건을 위한 모금 활동이 열렸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보낸 4155건의 기부금으로 클라우드 게이트 시어터를 설립할 수 있었죠. 클라우드 게이트 시어터는 극장·리허설 룸·야외 공연 공간을 갖추고 있습니다. 기부금을 보내주신 분들이 저에게는 4155명의 ‘주주’입니다. 이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 클라우드 게이트 창단 40주년 기념작 ‘라이스’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작품을 위해 타이완 츠상 지역에서 무용수들과 함께 직접 농사를 체험했다고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라이스’는 지난 40년간 클라우드 게이트를 육성한 지역을 기리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츠상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과거 츠상 지역은 화학비료 사용으로 타격을 입었으나, 유기농법을 도입하면서 ‘황제의 쌀을 생산하는 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유럽에 쌀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드넓은 논에 펼쳐진 곡식의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무용수들과 츠상 지역에서 쌀 수확에 참여했는데, 몹시 힘들었습니다. 무용수들은 진흙에 발을 담근 채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느꼈어요. 허리를 구부려 농작물을 수확했고,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죠.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감각이 열리는 체험이었어요. 연습실에서 느꼈던 감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시어터 ‘라이스’

자연환경에서 받은 생각과 감각을 ‘라이스’에서는 어떤 식으로 반영했습니까?

논에 물대기·싹트기·익기·수확까지 농사의 전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이 영상에 담긴 물에 비친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곡물, 논에 퍼지는 불꽃 등은 작품의 주요한 시각적 요소가 돼요. 하지만 제가 초점을 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쌀 지배의 전 과정과 연결된 휴먼 드라마를 연출합니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 ‘라이스’는 작품 의도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쌀은 동양인들의 주식입니다. 하지만 ‘라이스’를 런던·드레스덴·모스크바에서 공연할 당시 관객들은 지평선 너머에 펼쳐진 논의 모습을 투영한 무용수들의 몸짓에 감탄했어요. 쌀의 탄생 과정을 무대 위에서 섬세하고 매혹적으로 재현해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당신은 1947년생인데, 1947년 대만에서는 ‘2·28 대학살’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정부에게 지배받는 대만 주민들을 다룬 작품 ‘가족의 초상화’을 선보인 바 있죠.

예술가들은 ‘어떠한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 때 창작을 합니다. ‘가족의 초상화’는 어린 시절에 독재 정권이 저지른 백색테러(white terror)의 그림자를 거두어내기 위해 만들었어요. 작품을 만드는 일은 자신을 청결하게 하기 위한 의식입니다.

당신의 작품은 스토리보다는 사상을 포함한 움직임으로 주제에 접근한다는 평이 있습니다.

저의 첫 직업은 작가였습니다. 제가 안무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는 서사가 있는 춤을 작업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죠. 무용에서 말과 스토리를 지우는 데 20년이 걸렸습니다. 줄거리와 인물이 있으면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에너지에서 스토리를 읽으면 무용수들은 연기가 없는 순수한 춤사위로 무궁무진한 표현을 해요.

전통 문화가 단순히 리바이벌이 아닌 컨템퍼러리 예술이 되기 위해 특별히 차별성을 두는 것이 있습니까?

전통적 요소를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적은 없어요. 제 작품은 대만에서의 일생생활이 녹아든 결과물이죠. 사원에서 예불을 드리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에스프레소와 향이 좋은 대만차를 마시는 것 말입니다. 대만차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맛을 음미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요.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클라우드 게이트에 집중할 것입니다. 클라우드 게이트는 문화예술재단의 지원 아래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만에선 클라우드 게이트와 클라우드 게이트2, 두 개의 무용단으로 나눠서 투어를 진행하고 있어요. 2015년 클라우드 게이트 시어터는 100회 이상의 공연과워크숍·강의·전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매주 수백 명의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고 거대한 수목을 즐기죠. 클라우드 게이트 시어터는 대중을 위한 공원이자 여러 즐거움을 선사하는 하나의 문화센터가 될 것입니다. 글 장혜선 기자(hyesun@gaeksuk.com) 사진 LG아트센터

린화이민 안무,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시어터 ‘라이스’

9월 11·12일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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