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뤼사오자

마에스트로의 긍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3대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대만 지휘자, 그가 말하는 진정성 있는 음악의 조건

‘대만의 정명훈’이라 불리는 뤼사오자(L? Shao Chia)가 한국에서 또 한 번 지휘봉을 잡는다. 2013년, 대만 필하모닉과 대구를 방문하기는 했지만, 본격 한국 데뷔는 지난해 서울시향·그란데오페라합창단과 선보인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으로 볼 수 있다. 바리톤 공병우·소프라노 이윤아와 호흡을 맞춘 뤼사오자는 이용숙 오페라평론가로부터 “다이내믹한 몸짓으로 관객을 러시아의 숲으로 초대했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 관객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겼다.

뤼사오자는 오페라 해석에 능한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1995년 베를린 코미셰 오퍼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그는 프랑크푸르트 오퍼, 슈투트가르트 오퍼,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등 독일 전역의 극장 오케스트라와 벨기에 브뤼셀의 라 모네, 노르웨이의 오슬로 오페라, 영국 내셔널 오페라,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의 오케스트라와 다양한 작품을 연주했다. 2001년부터는 하노버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며 ‘피델리오’ ‘에르나니’부터 ‘예누파’ ‘엘렉트라’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자국에서 대만 필하모닉과 ‘발퀴레’ ‘살로메’ 등 대규모 오페라를 매년 공연하며 대만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뤼사오자는 대만 국립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후 인디애나 음악대학·빈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1994년 세르지우 첼리비다케를 대신하여 극적으로 포디엄에 오른 데뷔 일화는 유명하며, 세계 3대 지휘 콩쿠르라 불리는 키릴 콘드라신 콩쿠르·브장송 콩쿠르·페드로티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한 지휘자이기도 하다. KBS교향악단과의 연주를 앞둔 마에스트로와 이메일로 만났다. 5년째 대만의 국립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최근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바탕으로 예술경영과 관련된 질문을 여럿 보냈지만, 모든 질문에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함께 보낸 예술적 가치관에 대한 질문에는 성실히 답해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먼저 지난해에 한국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춘 소감이 궁금하다. 실력 면에서, 환경 면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그야말로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솔리스트들과 그란데오페라합창단 등 한국의 성악가들은 세계적인 수준이었고, 체계적으로 움직인 주최 측 덕에 편안한 마음으로 성공적인 연주를 선보일 수 있었다. 청중의 높은 집중도도 놀라웠다. 나의 음악세계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아 기뻤다.

대만 필하모닉을 지휘한 지 5년째인데, 당신은 수장으로서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지.

나는 레퍼토리 확대를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단원들과 함께 성장하기를 원한다. 이로써 음악적 깊이가 나날이 성숙해질 것을 믿는다. 또한 투어 공연은 오케스트라의 발전과 국가의 문화 사업을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내부적으로는 예술적 깊이를 더하고, 외부적으로는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 시즌오프 기간에 투어 공연을 성사하려 노력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가?

심리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다루는 학문이기에 연주할 때 어떤 부분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감정적으로 빠져들지 않으면 차갑고 냉정해지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지휘자는 음악적 능력뿐 아니라 리더십도 지녀야 한다. 권위적인 지휘자와 친근한 지휘자 중 당신은 어느 쪽인가? 훌륭한 지휘자가 지녀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지휘자에게는 예술적인 역량, 단원들을 한데 어우를 수 있는 성품, 소통을 위한 적극성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었을 때 권위도 생기고 훌륭한 결과물도 나온다고 본다.

당신은 3대 지휘 콩쿠르라 불리는 프랑스의 브장송 콩쿠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키릴 콘드라신 콩쿠르, 이탈리아의 페드로티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콩쿠르로 지휘자를 평가하는 것에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현재 지휘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음악 자체는 평가가 가능하지만, 음악가의 해석과 그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창조물은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운이 좋게도 세 개의 메이저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는 아무런 연줄 없는 아시아인에게 많은 기회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콩쿠르 이후가 가장 큰 시련이자 도전임을 젊은 음악가들이 알았으면 한다. 지휘자는 실력·성격 등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팔만 화려하게 휘젓는 것은 그저 쇼일 뿐이다.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제스처가 단원들을 움직이게 하고, 좋은 음악을 만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에 KBS교향악단과 베버 ‘오베론 서곡’, 슈만 피아노 협주곡(장하오천 협연),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레퍼토리를 보니 매우 섬세하고 서정적인 무대가 될 것 같다.

협주곡과 교향곡 레퍼토리를 KBS교향악단과 협의해서 정했고, 두 곡에 맞추어 내가 ‘오베론 서곡’을 제안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뛰어난 피아니스트 장하오천과 대곡(大曲)을 연주하게 되어 설렌다. ‘한여름 밤의 낭만음악’이라는 부제에 맞는 아름다운 무대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대만 필하모닉과 남덴마크 필하모닉을 진두지휘하며 여러 나라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 참여하는 당신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물론 100명이 넘는, 잘 모르는 단원들 앞에 서야 할 때도 있고, 연습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을 때도 있어 종종 중압감을 느낀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얻는 희열로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년은 대만 필하모닉이 창단 30주년을 맞는 해라 현재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과 유럽에서의 연주 일정도 많이 계획돼 있다. 무척 바쁘지만 하루하루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사진 KBS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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