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리스트 우테 렘퍼

날마다 새로운 ‘다작의 여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노래·춤·연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그녀가 올가을, 짙푸른 통영으로 향한다

우테 렘퍼의 이메일 답변이 오던 날, 인터넷 뉴스에는 샤론 스톤의 최신 누드 화보가 걸렸다. 해외 패션지 ‘하퍼스 바자’ 9월호에 실린 사진이었다. 한물간 스타와 상업지의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지 언론의 비난도 있었지만, 어쨌든 흑백사진 속 쉰일곱 살 그녀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여성인 내가 봐도 단번에 반할 만큼! 물론 ‘원초적 본능’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2001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내리막길을 달리던 여배우의 귀환은, ‘인간승리’라는 단어와 함께 절로 탄성이 흘러나오게 했다.

그러다 문득, 우테 렘퍼가 몇 살이더라 싶었다. 찾아보니 그녀는 올해 쉰둘이고, 자식이 넷이다. 그런데 음반과 공연을 보면 정말, 이 사람이 그 나이 맞나 싶다. 그녀에게 올리비에 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1988년 ‘시카고’의 벨마 켈리 때 자료들을 보면, (물론 그때도 대단하지만) 오히려 내겐 지금의 모습이 더 관능적으로 느껴진다.

우테 렘퍼의 이름에는 ‘카바레 뮤직’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끈끈하게 붙어 있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순간은 노래·춤·연기를 전천후로 선보이며 쥐락펴락하는 무대를 볼 때다. 일찍이 쾰른 댄스아카데미와 빈 막스 라인하르트 드라마 스쿨을 거쳐 펑크 록 밴드의 싱어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빈에서 ‘캣츠’ 이자벨라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이래 다양한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동했다. 이후 1992년에는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가 그녀를 위해 만든 발레 무용수로 오르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규정할 수 없는 활동을 펼쳐왔는데, ‘다작의 여왕’인 그녀가 지금껏 내놓은 음반만도 20개가 넘는다.

지난 2012년 LG아트센터에 첫 내한한 그녀가 올해, 다시 한국을 찾는다. 오는 10월 통영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공연예술센터 총회(AAPPAC) 기간 중 올라가는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위해서다. 첫 내한 때와 공연명은 같지만 레퍼토리는 꽤 달라졌다. 무엇보다 이번 무대는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단어와 선율, 호흡과 음직임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그녀의 진면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다음은 현재 남미와 유럽을 오가며 한창 투어 중인 우테 렘퍼와 나눈 일문일답.

 


▲ ©Wolgang Stahr

2012년 첫 내한 이후, 한국에서 갖는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탱고’ 두 번째 공연이다. 이전의 공연을 기억하는 관객들이 이번 공연에서 어떤 차별성을 만날 수 있는지 들려달라.

이 공연은 매번 레퍼토리가 달라진다. 때에 따라 새로운 곡이나 시의적절한 곡을 넣기도 한다. 이번 무대에선 피아졸라의 곡을 줄이는 대신 샹송을 늘릴 생각이다. 올해가 에디트 피아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인지라, 그녀의 명곡들을 부를 생각이다. 내가 새롭게 쓴 곡도 몇 가지 선보이고 싶고. 물론 베를린에서 브로드웨이에 이르는 다양한 유명 곡들은 당연히 선보일 것이다. 또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곡가 레오 페레의 곡에 소설가 파울로 코엘류가 쓴 가사를 붙인 새로운 곡도 소개할 예정이다.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다양한 도시를 포괄하는 공연이다. 투어를 위해 찾는 곳마다 레퍼토리에 대한 관객 반응이 다를 텐데, 올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도시가 있는지.

심지어 같은 도시에서 하는 공연도 매일 밤, 매 공연마다 관객의 반응은 다르다. 나는 그 다양성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언제나 다른 천사가 공연장 위에, 그리고 내 가슴속에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매우 열정적인 남아메리카 관객이나 진중한 스칸디나비아 관객이나 공감하는 건 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 다른 표현, 다른 폭발력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공식 홈페이지를 보니, 투어 공연 레퍼토리 종류가 크게 8개로 나뉘어 있더라. 그 가운데 당신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레퍼토리가 30년 세월 동안 내 안에 자리 잡았고, 여행의 일부가 됐다. 굳이 꼽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새로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막 탄생한 것이라 흥분과 위험 모두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실 모든 곡이 훌륭했고, 인생 여정의 한 부분이자 유산이 됐다.

당신의 작품 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 중 하나는 독일의 정치·역사적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현실 문제를 다루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지속적으로 관객과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이유가 있나.

현실의 정치는 대개 적절한 거짓말과 조작, 속임수들로 이뤄진 경제 게임 같아서 볼수록 지겹고 짜증만 유발할 뿐이다. 게다가 나는 특정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고…. 하지만 여성이자 자유사상가로서 인권과 자유에 대해선 뚜렷한 관점을 갖고 있다. 더불어 모국인 독일의 복잡한 역사와 끔찍하던 나치 시대,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범죄를 이해하려 노력해왔다. 이런 유산을 마주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여기에서 비롯된 절망과 분노는 강력한 영감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일들은 결국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고, 나 역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공연을 한다는 건, 하나의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각기 다른 스타일의 집을 지을 때마다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꼽는다면.

공연은 유려하면서도 정신적인 영역에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혼과 마음, 자극과 영감을 불러일으켜 인생의 한 순간을 경험케 해야 한다. 나에게 집은 휴식처이자 든든한 곳이고,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곳이다. 반면 공연은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언제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무대 위에서 늘 에너지 가득한 모습이다. 목소리와 체력을 관리하는 자신만의 비법은 무엇인지.

몸에 해로운 것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강하면서 유연하고, 우아한 몸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나는 네 아이의 엄마이고, 덕분에 할 일도 너무 많다. 하지만 음악과 창작에 대한 욕심 역시 끝이 없다. 스스로 열정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지금껏 당신의 공연을 본 상당수 관객은 ‘관능미’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스스로 보기엔 어느 때 가장 매혹적이라 느껴지나.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울 때가 가장 매혹적인 순간일 것이다.

지난해 사랑을 주제로 한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곡을 붙여 작업한 새 음반을 선보였다. 기존에 작업해온 브레히트의 텍스트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인데, 특별히 네루다의 텍스트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과 문학에서 드러나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신세계를 탐험하고, 파시즘의 독재에 맞서 자유를 외친 시인을 추모하고 싶었다. 샹송의 전통을 잇는 아름다운 선율로 가사의 의미를 일깨우는 노래들이 담겼다.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였고, 올가을 칠레에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파블로 네루다의 노래 모음집에는 사랑의 순간과 음악적 아름다움이 함께 담겨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 발표를 앞둔 있는 걸로 안다. 어떤 새로운 시도를 선보일지 궁금하다.

‘아홉 가지 비밀(9 Secrets)’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파울로 코엘류가 가사를 썼고 작곡은 내가 맡았다. 월드뮤직과 샹송 형식을 가져와 코엘류의 문학 세계를 탐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공연에는 튀니지의 유적과 밤과 낮을 담은 영상이 시대의 공기와 철학을 담은 음악과 함께한다. 음반으로는 2016년에 전 세계에 발매될 예정이다.

2015 AAPPAC 통영 총회

아시아·태평양 공연예술센터 연합회(Association of Asia Pacific Performing Arts Centers) 연례총회가 오는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4일 동안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다. 이번 총회에서는 예술, 음악 그리고 공연장과 예술 축제의 동향, 역할과 비전 제시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며 국내외 예술가들의 공연도 함께 진행된다.

AAPPAC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14개국, 76개 공연장으로 구성된 연합회다. 1966년 아시아·태평양 공연예술센터들의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설립된 이래, 매년 연례총회를 통해 문화예술 관련 아·태 지역 인적 네트워크 구축 및 다양한 정보 교환의 장을 마련해오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는 젊은 관객을 위한 프로그램, 삶에 미치는 예술교육의 영향, 공연장의 역할 변화, 공연장과 예술축제 간의 협업, 기업과 개인의 후원, 티케팅과 정보 기반 마케팅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된다.

AAPPAC 회장이자 호주 에들레이드 페스티벌 센터의 대표 더글러스 고티에, 예술의전당 사장 고학찬, 국립극장 극장장 안호상,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 주성혜, LG아트센터 대표 정창훈, 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 호프, 시드니오페라하우스 최고경영자 루이즈 헤론, SISTIC 최고경영자 케네스 탄, 뉴욕 필하모닉 부대표 테오도르 위프러드 등이 연사로 통영을 찾는다.

기간 중 우테 렘퍼를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 호프와 아르테 델 몬도 오케스트라가 내한해 무대에 오르며, 현대무용 안무가 정영두의 신작 ‘푸가(Fugue)’ 등이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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