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뮤지션 진 킴

단단한(Hard) ‘밥’(Bop)을 씹어 먹는 사나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0월 1일 12:00 오전

거센 에너지가 뭉쳐있고 극악의 난이도를 지닌 하드밥. 그는 하드밥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 재즈계에 씨를 뿌리는 ‘선구자’이다

거센 에너지가 뭉쳐있고 극악의 난이도를 지닌 하드밥.
그는 하드밥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 재즈계에 씨를 뿌리는 ‘선구자’이다

진 킴의 1집 앨범 ‘더 재즈 유니트’를 오디오에 넣고 시동을 건다. 1번 트랙의 ‘First One’이 시작된다. 사운드는 과격하고, 괴팍한 엔진 음 같다. 이번 앨범에서 진 킴은 트럼펫·플뤼겔호른·기타·보컬을 맡으며 대열을 진두지휘했다. 그와 함께한 이들은 유종현(테너·소프라노색소폰), 폴 커비(피아노), 김대호(베이스), 김민찬(드럼), 김이지(보컬/게스트). 김이지를 제외하고 진 킴 더 재즈 유니트는 다섯 명의 남성 뮤지션으로 구성되었다. 앙상블의 이름과 앨범명이 동명인 이번 앨범에서 이들이 일구는 사운드는 ‘A Priori’에서 세 박자 왈츠로 물꼬를 틀고, ‘Chickqueen Mad’에서 다시 열기를 고조시킨다. 그리고 ‘Feminine’에선 차분한 보사노바로 읊조리다가 ‘Black ‘n’ Home’에서는 스윙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고, 펑크한 블루스의 ‘Yes’로 막을 내린다.

진 킴의 본명은 김진영. 개인적으로 재즈뮤지션과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에 관한 인터뷰나 앨범에 관한 보도 자료 속의 말들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진 킴은 클래식과 국악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재즈라는 동네를 궁금해해달라는 과제를 주었다. 진 킴도 클래식을 주로 다루는 ‘객석’이기에 재즈 동네에서 할 수 없는 말들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그의 앨범 이야기로 시작했다.

어떤 음반인가?

데뷔 앨범이다. 의욕이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노련미는 없는··· 성공한 재즈뮤지션들의 데뷔 앨범을 들으면 이런 느낌이 난다. 예전부터 앨범에 넣을 생각으로 쓴 곡이 굉장히 많았다. 약 30곡 정도. 그런데 막상 레코딩 날짜가 닥쳐오니 다 빼고 다시 쓴 곡이 많다.

보통 재즈를 즉흥음악으로 알고 있다. 재즈에서 ‘작곡’이란 무엇인가?

클래식 음악, 대중가요와 다를 게 없다. 멜로디, 하모니, 테마 등이 다 들어간다. 클래식 음악처럼 오선지에 작곡하고. 다만 재즈의 메인 테마는 앞부분에 약 30초에서 1분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연주자들의 역량에 맡긴다. 이게 재즈라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앨범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든 것이다.

클래식 연주자들과 인터뷰를 하면 함께하는 연주자보다는 작곡가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악보와의 약속과 대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예전에 진 킴 씨의 인터뷰를 보니 멤버들의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하더라. 인상적이었다.

짧은 선율 안에는 기승전결로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멤버들과 그 부분을 발전시켜나간다. 예를 들어 악기 편성과 소리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최대치의 화음을 끌어내고, 각자 능력치에 맞는 음악을 꺼내놓아 모은다. 모든 음악이 그렇듯, 이러한 리허설을 많이 가질수록 완성도는 높아지는 법이고. 바깥 동네에서 재즈를 들여다보면 ‘즉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에서 100퍼센트 즉흥 음악이라고 볼 수는 없다.


▲ 왼쪽부터 김민찬, 유종현, 폴 커비, 진 킴, 김대호

연주자가 바뀌면 음악도 많이 달라지겠다.

굉장히 많이 바뀐다. 연주자의 역량 그 자체가 음악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남성 뮤지션으로만 구성된 앙상블의 경우 프런트 보컬이 여성인 경우가 많다. 프렐류드(퀸텟)도 전통소리꾼 전영랑을 영입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우리도 그렇다. ‘Rain Walk’(7번 트랙)는 게스트로 김이지가 참여하여 노래를 불렀다. 보통 피아노와 보컬에 여성 게스트가 많이 들어온다. 여성의 목소리는 악기로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어떤 느낌이 있다. ‘Rain Walk’에서 가사는 나의 능력이 모자라서 못 썼다. 하지만 그 밑에는 여성 보컬의 허밍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음반의 큰 특징이 하드밥이라고 하는데, 하드밥이란 어떤 성격의 음악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공격적이고 격렬한 모던 재즈의 한 스타일이라고 한다. 국내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부연 설명도 없고 낭만적이지도 않은, 그리고 극악의 난이도를 지닌 음악이다.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의 음악이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어렵다. 1920년대와 1940년대의 루이 암스트롱과 찰리 파커가 당시의 비밥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때의 재즈는 클럽 밴드음악으로, 춤을 출 때 연주했다. 이렇게 ‘반주자’로서 하던 음악이 점점 테크니컬하게 변하여 ‘연주자’의 음악이 되었다. 즉, 재즈에 맞춰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드밥은 1930년대와 1940년대 재즈의 정수와 에너지만 뽑아서 만든 음악이다. 나의 앨범은 국내에서 최초로 하드밥을 담은, 즉 재즈의 참맛을 담은 음반이라고 자부한다.

하드밥을 고수하다가 다른 스타일로 넘어갈 수도 있는가?

나도 다른 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당분간 하드밥에 주력하려고 한다. 사실 이런 음반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재즈 관계자들은 ‘어라, 이놈 이거 진짜 냈네’ ‘하드밥 뮤지션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왔네’라며 놀라는 분위기다. 하드밥이 ‘정통’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쉽게 도전하진 못했다. 기획 단계부터 선배들이 팝의 느낌도 고려하라고 조언해주는가 하면, (황)덕호 형은 하드밥으로만 가득 채우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사실 ‘네가 하드밥에 주력해서 어쩔 거냐’ ‘누구보고 들으라는 거냐’ ‘음반 버리려고 만드냐’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Rain Walk’는 비 오늘날 마음먹고 쓴, 팝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곡이다.

한국 재즈계도 유행이 있나?

유행도 있고, 파(派)도 있다. 한국처럼 작은 바닥에 이런 구분이 있다는 게··· 국내에도 유럽식 재즈를 추구하는 음악가들이 있다. 훌륭한 음악이지만 개인적으로 유럽식 재즈가 ‘진짜’ 재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럽식 재즈는 예쁜 선율을 만들어 들려주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 같다. 하지만 ‘정통’ 재즈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스윙과 비밥·하드밥의 코어를 뽑아서 연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통’ 재즈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유럽식 재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역으로 유럽파는 ‘쟤네는 매일 스윙과 블루스만 하나’ 이런 식으로 응대한다. 하지만 블루스와 스윙의 정신이 없는 것은 재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진 킴의 ‘더 재즈 유니트’ 앨범 재킷

앨범에서 하드밥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곡을 추천한다면? 예를 들어 ‘진 킴식의 하드밥’을 보여주는 곡은 무엇인가?

‘First One’(1번 트랙)이다. 이번 앨범의 출정가 같은 곡이다. 작곡할 때부터 타이틀 트랙으로 할 생각이었다.

나도 ‘First One’을 인상 깊게 들었다. 소리들이 가득 차 있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마초적 사운드가 마음에 들더라.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러의 교향곡이 떠오르기도 했다.

작곡할 때, 나름의 감성이 있다. 하지만 듣는 이가 그걸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First One’은 나의 음악(하드밥)과의 약속이고,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재즈뮤지션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계기로 재즈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늘 궁금하다. 사실 클래식이나 국악은 학교 정규 과목으로 어릴 때 맛이라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재즈는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때 밴드를 하면서 록에 빠졌다. 그러던 중 재즈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고, 트럼피터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과 만났다. 그 뒤에 대학교는 여러 과를 전전했다(진 킴은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들어보니 정말 복잡했다). 음악 활동과 디제이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재즈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무렵 피아니스트 김광민 선생님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스물다섯 살에 재즈 기타를 제대로 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0년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다. 가서 트럼펫으로 전공을 바꿨다. 엄청 고생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클리포드 브라운과 그의 음반이 나를 이렇게 고생시킬 줄이야.

재즈는 소수의 음악이고, 그 안에서도 하드밥은 소수가 추구하는 스타일인데, 하드‘밥’으로 ‘밥’을 벌 수 있나?

힘들다. 요즘은 클럽도 많이 없어졌다. 꼽으라면 올 댓 재즈, 에반스, 야누스가 있겠다. 클럽에서 받는 연주료를 밝히면 놀랄 것이다(떼를 써서 연주료를 밝혀달라고 했다. 그리고 좌중에 있는 이들은 모두 놀랐다). 그걸로 돈 벌 생각은 없다. 좋으니까 하는 거다. 나는 한국 재즈계가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낭만과 로맨틱, 서정적인 음악에 목숨을 건다. 재즈라고 하는데 막상 들으면 재즈가 아니더라. 그리고 재즈에 대한 지나치게 심각한 태도도 침체에 한 몫 한다고 본다. 하드밥은 우리나라에서 듣기 어려운 스타일의 음악이다. 재즈의 참맛을 담는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사진 이영선·파고뮤직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