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국제오페라축제 창작오페라 ‘가락국기’ 연출가 정갑균

사랑과 시사성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희한한 책이다. 고려 문종 때 편찬된 ‘가락국기’의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삼국유사’의 일부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는, 가야사에 대한 유일한 문헌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초연되는 창작오페라 ‘가락국기’는 정재민의 장편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원작으로 했다. 이 작품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 증거인 ‘가락국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갓 지어진 오페라 ‘가락국기’의 연출을 맡은 이는 정갑균. 작년 서울시오페라단의 행보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기억할 것이다. 한국에서 실연으로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라서 희귀성으로 승부했던 이 작품도 정갑균의 연출력이 하나하나 쌓아올린 무대였다. 이처럼 그는 희귀작을 올리거나 갓 지어진 창작 오페라를 올리는 연출가로 정평이 나 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2008)와 ‘안드레아 셰니에’(2010), 창작오페라 ‘청라 언덕’(2012)을 선보이며 대구와도 그 인연을 깊이 쌓아온 정갑균. 11월까지 이어지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추천작이자 그의 손에 의해 초연으로 피어날 광복 70주년 기념 창작 오페라 ‘가락국기’에 대하여 들어보았다.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정치·시사적 이야기들을.

오페라 ‘가락국기’는 어떤 내용인가.

정재민의 장편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원작으로 했다. 2009년에 나온 이 소설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가상의 독도소송을 통해 독도가 어느 나라의 영토인지를 풀어간다. 한국은 일본의 술수에 국제적으로 휘말리게 된다. ‘가락국기’라는 책에는 일본 천황의 근원이 우리 가야국에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은가. 물론 결말에서 ‘가락국기’를 찾는다. 하지만 그 과정을 방해한 일본이 ‘가락국기’가 있던 동굴을 폭파시키며 모든 것을 신기루로 만들어버린다. 그 장면은 ‘가락국기’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 있기까지를 암시하는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대본을 보니 오페라보다는 뮤지컬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보다는 영화에 더 적합하다. 대본이 애초에 영화 대본(이경식)이었고 오페라에 맞게 각색(최상무)이 필요했다. 그래도 영화적 태생을 다 지울 수는 없었다. 오페라 ‘가락국기’가 끝나면 영화감독으로 데뷔해도 좋을 정도다.(웃음)

독도와 분쟁에 관한 소재라서 조금은 딱딱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국정원의 ‘가락국기’ 반환팀에서 과거의 연인이던 서진과 도하가 만나는 로맨스가 여러 장면에 걸쳐 펼쳐진다. 사랑 이야기와 독도. 연출가로서 어디에 방점을 찍었나.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국토 분쟁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마음가짐을 다지게 하는 ‘시사성’이 예술로 승화되는 길목에 이 작품이 놓여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살아 있는 작품’이란 이러한 시사성을 머금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 성공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작품의 색을 다채롭게 하는 사랑 이야기도 있어야 하고, 거기서 오는 갈등과 해소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 서진(테너)과 도하(소프라노)의 ‘사랑’도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멜로드라마란 오페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결국 이 오페라에는 사랑 이야기가 적당히 배열되어 흘러가면서 원작이 지닌 핵심 주제를 잘 드러냈다. 결론적으로 두 개의 균형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도쿄의 서점


▲ 국정원 비밀 사무실


▲ 서진과 도하가 재회하는 리셉션 현장

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중심 배경이며 옛 가야의 모습, 서진의 30여 년 전 모습 등 다양한 시공간이 등장한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담을 예정인가.

나는 원래 작품을 수정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표현에 있어 제약이 많은 부분은 판단 하에 건너뛰거나 삭제 또는 재해석한다. 창작 오페라에서의 연습이란 곧 작품의 부분적 제거와 다듬질이다. 문헌 ‘가락국기’의 한 대목을 재현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과감히 삭제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는 회상 장면이 많다. 대본에는 서진이 가면을 쓰면 30여 년 전 희석으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다. 하지만 관객은 가면의 그러한 역할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거나, 끝내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무대 벽면에 대형 시계를 걸었다. 시계가 원래의 방향으로 돌면 현재의 장면이고, 멈추거나 반대로 돌면 회상 신이 되는 것이다. 이 시계는 무대에 계속 등장한다. 영상을 통해 마크 로스코의 미니멀한 그림을 연상케 하는 수평선으로 동해의 수평선을 표현하기도 했다. 영상은 무대장치로서 활용되고, 또 주인공의 내면적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도 사용된다. 무대 디자인만 보고 있어도 관객 입장에서 ‘이 오페라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오페라는 ‘일단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오페라 ‘가락국기’의 음악은 어떠한가.

작곡가 진영민은 오페라에 정통한 작곡가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합창곡 ‘독도의 꿈’은 그 자체만으로 완성도가 높다. 우리가 창작 오페라나 뮤지컬을 볼 때 기억에 남는 불후의 명곡을 기대한다. 그런데 ‘불후의 명곡’이라고 할지라도 기승전결 흐름에 잘 묻혀 흘러가야 한다. 아리아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관객을 붙들고 있으면, 귀는 행복해도 작품이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한 단절성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고민할 때도 많다.

광복 70주년 기념 창작 오페라라는 점에서도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좋은 시도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분쟁화하고 있는 독도의 중요성을 토로하는 게 이 작품의 또 다른 역할이자 가치다.

사진 대구국제오페라축제·손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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