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민

달려온 길, 가야 할 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2016년은 김민에게 어느 해보다 의미 있는 해였다. 작년에 창단 50주년을 맞았던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는 올 한 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안정된 연주로 꾸준히 무대에 서며 음악적 호흡을 가다듬었고, 서울 센트럴 콘서바토리(SCC) 개원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예술 교육의 장을 넓혀나갔다. 음악으로 빚어진 그의 인생은 이제 더 깊고 넓은 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창단 50주년을 맞은 서울바로크합주단의 리더 김민 음악감독에게 들어본 2015년 월드 프로젝트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 달려갈 50년의 청사진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50주년을 맞으며 시작한 2015년. 바이올리니스트 김민 음악감독에게 올해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1965년 서울대 고(故) 전봉초 교수에 의해 시작된 서울바로크합주단.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반백년의 시간을 쌓아온 그들의 음악 여행은 올해 국내와 해외 연주 투어를 통해 더 깊고 넓어졌다. 전 세계 무대를 아우르며 성공적인 연주 여행을 마친 그들. 더 높은 이상을 품고 이제 새로운 50년을 향한 항해의 시작을 앞둔 마에스트로 김민을 만나보았다.

얼마 전(11월 12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보관 문화훈장을 타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이런 상을 주시다니, 영광스럽고 기쁘네요.

올해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50주년 특별 콘서트 시리즈로 세계적인 공연장에서 연주 투어를 하셨는데요.

서울바로크합주단 50주년을 맞으면서 1월부터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를 시작으로 런던, 모스크바, 비엔나, 폴란드, 중국, 미국 카네기홀까지 잊을 수 없는 공연을 펼쳤고 청중의 환호도 많이 받았습니다.

굉장히 빽빽한 일정이 이어졌는데, 체력에는 무리가 없으신가요?

사람들이 나를 보면 항상 가장 먼저 묻는 게 건강 비결이에요.(웃음) 특별히 건강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아닌데 사실 나도 그 비결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원래 건강한 체질이고 호기심이 워낙 많아 삶에 늘 열정을 갖고 산다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아요. 물론 피곤할 때도 많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무대만 서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생기는지 새로운 힘이 난다는 거예요. 정신이 풍요로워지면서 마음이 꽉 차는 느낌. 특히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연주를 할 때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죠.

올해 서울바로크합주단이 더 단단한 반석에 올라선 듯한데요.

워낙 오래전부터 해외 초청 무대를 통해 그런 기반을 닦아오긴 했지만, 창단 50주년 기념 연주회는 서울바로크합주단이 앞으로 50년을 향해 새로운 도약을 하는 중요한 발판이었다고 봅니다. 악단 편성도 이제 내년이면 45명 인원의 체임버 규모로 정착되어 앞으로는 더 다양한 앙상블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연주 중 특별히 인상적인 순간은요?

1월에 있었던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내레이션 음악회가 굉장히 화제가 되었지요. 저희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또 해외 연주 투어 때 함께한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의 활약 역시 대단했죠. 뛰어난 연주자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친구예요. 앞으로 어떤 음악 세계를 펼쳐갈지 나 역시 궁금합니다.

해외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번 해외 공연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청중은 참 정직해요. 좋은 연주는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죠. 현장에서 그런 걸 점점 더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음악은 살아 있구나! 정말 잘해야겠구나’ 싶어요. 얼마 전 조성진 군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기도 했지만,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음악적으로 어떤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 할 만큼 놀라워하지요. 내가 생각해도 한국은 교육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어요. 얼마 전 학교에 강의를 나가게 된 제자가, 아이들 레슨을 처음 했는데 너무 잘해서 해줄 말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뉴욕과 보스턴에서는 기립박수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해외 공연장들은 2층에 앉은 오페라하우스 발코니의 청중들이 잘 안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연주가 끝나고 2층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을 때, 참 감격스러웠어요. 그렇게 우리의 연주가 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을 때 그동안 힘들게 견뎌온 시간과 연습 과정, 고민들이 그래도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리고 우리가 온 길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어요. 그런 확신들이 쌓여 우리만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겠죠.

서울바로크합주단은 우리나라 음악계의 전 세대가 골고루 모여 있는데, 긴 시간을 어떻게 이끌어 오실 수 있었나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성취감을 느끼고, 그 만족감이 그다음 에너지를 보충해주곤 했지요.

그래도 많은 단원을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을 것 같은데요.

나를 내려놓는 것이지요. 그들을 이끌어 간다기보다는 함께 연주하는 것이기에 동료 의식을 갖고 지금까지 왔어요.

선후배나 사제 관계가 중요한 곳이 음악계인데, 그런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타고난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난 늘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서울예고에 들어갈 때 사실 미술도 좋아했는데, 고민 끝에 선택한 게 음악이었죠.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앙상블을 하며 훌륭한 동료·친구들·선후배에게 새로운 연주법을 배우고 느끼고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어요.

처음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시작은 바로크 음악을 연주해 보자는 데서 비롯되었죠?

고(故) 전봉초 선생님이 당시 우리 음악계에 바로크 음악 연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클래식 음악의 가장 깊은 뿌리를 이해하자는 목적으로 서울바로크합주단을 창단하셨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음악계도 많이 성장했고, 우리 역시 무대에 올리는 레퍼토리가 다양해져서 이제는 바로크 음악뿐 아니라 현대 음악까지 폭넓은 작품들을 연주하고 있어요. 해외에서는 우리의 이름 때문에 바로크 음악만 전문으로 연주하는 단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2016년부터는 코리아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단체명을 바꿀 예정이에요.

오래전부터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청중이었던 사람도 있을 텐데요.

물론 있지요. 그들은 우리에겐 보물 같은 분들이에요. 예전에 우리가 연주했던 걸 들어보면 지금 우리의 연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니 그때 청중들은 우리의 그 성장 과정을 다 지켜봐준 분들이죠. 그래서 더 귀하고 감사해요. 요즘은 점점 젊은 청중이 늘고 있어요. 덕분에 역동적인 느낌이 들어요.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균형이지요. 아름다움은 조화에서 비롯돼요. 특히 앙상블은 말할 것도 없죠. 그 조화는 단원들과의 관계에서도 무척 중요해요. 리더는 그 조화가 잘 이뤄지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지요.

서울바로크합주단이 걸어 갈 앞으로의 청사진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50년을 걸어왔으니 앞으로 50년은 다음 세대가 더 잘 해줘야겠지요. 내년에는 해외 페스티벌 초청 위주로 연주를 다니고 내후년에 다시 중남미와 남아프리카 지역 해외 순회 연주를 해보려고 해요.

현재 우리 클래식 음악계가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은데요.

무엇보다 동시대 음악들을 무대에서 새롭게 소개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래서 서울바로크합주단에서도 그동안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연주해온 것이고요. 또 하나, 성공한 솔리스트의 조명만큼 우리 색깔을 대표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과 격려도 많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젊은 솔리스트 이야기를 하셔서 생각난 건데, 시인 릴케는 일찍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모든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라고 말하잖아요. 교수님께서는 지금 젊은 음악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만약 누군가 유명한 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진짜 음악가로의 첫걸음을 걷게 되는 거지요. 그때부터는 얼마만큼 외면과 내면을 음악 안에 녹여내느냐가 진정한 음악가가 되는 열쇠가 되어줄 거예요. 때로는 슬럼프가 올 때도 있겠지만 결국 혼자 서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지요. 그러니 그들을 향한 격려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묵묵히 바라봐주는 배려도 필요할 것 같아요.

때때로 오는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음악가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인생에서 감당해야 할 숙제들이 있지요.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거고, 어쨌든 나는 우리 내면에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고 믿어요. 힘든 순간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그 중심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 그 답에 가까워지는 날이 올 거예요.

지금까지 삶을 돌아본다면요?

지금까지는 음악 말고 생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음악은 내 삶의 전부였어요. 그 안에서 얻은 성취감, 환희, 공감 모두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었어요. 감사한 일이지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세요?

서울바로크합주단의 미래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 그때는 여행을 좀 하고 싶어요. 근사한 해안도로를 마음껏 차를 타고 달려보고 싶기도 하고요.(웃음) 그리고 황혼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길, 늦었지만 그땐 나만의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어요.

늦가을이 된 요즘 그는 상념에 젖는 시간이 많아졌다. 욕심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정성을 다한 결과 대한민국 실내악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016년부터 서울바로크합주단은 코리안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새롭게 바뀐다. 미래의 서울바로크합주단이 어떤 성장을 이뤄낼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50년 역시 김민은 그들의 영원한 그늘이 되어줄 것이다. 문득 그가 황혼에 그리고 싶다는 그림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50년 세월, 다다르고 싶고 이루고 싶었던 열망이 한 폭의 맑은 수채화처럼 담기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려온 그의 음악처럼.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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