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봄날의 만개한 꽃처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아시케나지/필하모니아와 데뷔 음반 발매한 에스더 유. 그녀가 머금은 빛깔과 향기가 궁금하다

아시케나지/필하모니아와 데뷔 음반 발매한 에스더 유. 그녀가 머금은 빛깔과 향기가 궁금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Esther Yoo)를 소개하는 이 글에 어떤 수식어를 넣어야 할까 고민했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아직 그녀와 친숙하지 않다. 2011년 서울국제음악제, 2012년 로린 마젤/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를 갖기는 했지만 두 번 모두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지난 10월 발매된 에스더 유의 데뷔 음반(DG)을 재생하자 사려 깊고 따뜻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그녀를 부드럽고 상냥한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러야할까?

1994년 한국인 부모 아래 미국에서 태어난 에스더 유는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여섯 살 때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해 공부하다 뮌헨 음대로 진학했다. 2010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3위, 201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4위를 수상한 이력이 있다. 로린 마젤과 함께 2012년 한국·중국 투어 공연, 2014년 런던 데뷔 무대를 치렀으며,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필하모니아와 함께 2014년 남아메리카 투어 공연과 시벨리우스·글라주노프 바이올린 협주곡을 담은 이번 음반 레코딩을 했다.

그녀는 앨범 부클릿에 ‘마침내 꿈이 현실이 되었다’고 적었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음반을 통해 이게 바로 ‘나’라는 것을 알릴 수 있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녀의 활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으니 그녀가 머금은 색채와 향기는 직접 음미하시길. 그녀와 이메일로 나눈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미국에서 태어났고, 벨기에와 독일에서 공부했다. 당신의 정신적 고향은 어디인가?

미국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질문을 받았는데 집처럼 편한 곳은 비행기 안이라고 농담 삼아 대답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가까워진 오늘날, 여러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장점이라 생각한다. 브뤼셀의 국제 학교에 다니면서 나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다. 연주를 위해 세계 곳곳에 다니는 이 직업이 아주 잘 맞는다.(웃음)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글라주노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데뷔 음반을 발매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콩쿠르를 시작으로 내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특별한 작품이다. 자연스럽게 첫 음반에 담게 되었고, 시벨리우스가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다 평소 좋아하던 작곡가인 글라주노프 또한 시벨리우스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선곡이다.

부클릿을 보니 ‘마침내 나는 스튜디오에 섰고, 녹음을 알리는 붉은 등이 켜지는 것을 보았다. 꿈이 현실이 되었다’고 적었더라. 어떤 의미인지?

바이올린을 막 시작하던 네 살 꼬마 시절 맨해튼에 살았다. 덕분에 부모님을 따라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자주 갈 수 있었다. 다양한 편성의 공연을 보았지만 나는 특히 독주를 좋아했다. 공연이 끝나면 공연장 로비나 근처 레코드숍에 가서 그 연주자의 음반을 구경했고, 운이 좋으면 손에 넣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표지에 실린 연주자들의 사진을 보며 앨범은 연주자를 대표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음반을 통해 ‘이게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꿨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는 이번 음반뿐 아니라 여러 무대에 함께해왔다. 필하모니아가 지닌 음악적 특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필하모니아는 아주 특별한 오케스트라다. 함께 연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이야기를 한다. 단원들은 모두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고, 이들은 위대한 음악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다. 이들의 열정은 예술적 성취를 느끼게 한다. 특히 악장인 졸트 티하멜 비손테는 정말 최고 연주자다.

그동안 여러 지휘자와 함께 공연했지만 마젤, 아시케나지와의 인연이 깊다.

마에스트로 마젤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멘토로 삼던 분이다. 나는 호기심이 많았고, 마젤은 나의 질문에 매번 현명한 대답을 들려줬다. 그에게 배운 모든 것이 지금껏 살아가는 데 지침이 되고 있다.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음악가로서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성공을 이룬 뒤에도 사람들 앞에서 겸손했고, 음악을 대할 때도 늘 정직했다. 아시케나지는, 많은 이가 그랬듯 나도 그를 피아니스트로서 먼저 좋아했다. 그의 연주를 통해 영감을 받으며 자랐다. 지휘자 아시케나지는 음악을 순수하게 이해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러한 접근법은 결과로 나타났을 때 매우 강렬한 활력과 에너지를 지닌다.

‘텔레그래프’지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바흐의 음악을 듣는다고 이야기했더라. 그 외에 탐닉하는 작곡가가 있는가?

바흐는 클래식 음악의 성서라 믿는다. 그의 음악은 마법과도 같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에는 말러 교향곡에 푹 빠져 있고 쇼스타코비치의 여러 작품을 섭렵하고 있다.

당신에 대한 평가 중 인상 깊었던 말이 있는가? 혹은 꼭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뿐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음악가로서 나의 본분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니라 예술로서 개개인에게 감동을 전하는 일이다. 즉, 중요한 건 어떤 ‘말’이 아니라 연주를 하는 순간 나와 청중이 갖는 ‘교감’이다. 아무런 이견 없이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아티스트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을 대했을 때 각자 다른 감흥을 느낀다는 게 예술이 아름다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아티스트가 성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다양한데, 그 중 꽤 많은 부분이 공연장 밖에서 벌어진다. SNS나 각종 행사 등 이미지로 소비되는 일들이 그 예다. 젊은 연주자로서 이러한 것들이 재미있고 즐겁지만 그 어떤 것도 공연장이나 스튜디오에서 펼쳐지는 음악, 그 자체에 담긴 메시지 이상 중요한 건 없다고 본다. 젊은 아티스트로서 앞으로 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넓히는 것은 물론, 음악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내 음악으로 사람들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12월 10일 KBS교향악단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연주한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오랜만에 한국 청중을 만나는 소감을 들려달라.

브람스 협주곡은 독주자를 동반한 교향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곡을 협연할 때 독주자는 혼자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고, 오케스트라와 끊임없이 긴밀히 교류해야 한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절묘한 경계선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작품이다. 마에스트로 요엘 레비, KBS교향악단과 함께 이 곡을 연주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에스더 유의 글라주노프·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흔히 바이올린 소리는 높고 날카롭다고들 한다. 그러나 에스더 유의 연주를 들으며 날카로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대신 듣는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편안함이 전해질 뿐이다. 어떤 곡이든 충분히 소화하지 않고서는 이토록 여유 있는 연주를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일반적인 느낌과 다르게 들리는 것도 에스더 유의 이런 개성 덕이리라. 결코 과도하게 빠른 템포로 몰아붙이거나 과시적인 제스처를 쓰지 않기에 3악장에서 역동성은 다소 부족한 듯 느껴지지만, 1·2악장에선 선율 하나하나가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글라주노프 협주곡에선 도입부의 호소력 있는 연주와 어려운 기교를 너무나 쉽게 소화해내는 솜씨가 놀랍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유니버설 뮤직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