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대표이사 최흥식

5명의 새 선장, 돛을 올리다 ③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월 1일 12:00 오전

‘우리는 함께 간다, 음악 안에서. 더 수준 높은 음악을 위해 조직과 구조를 다져가는 힘찬 발걸음

 

우리는 함께 간다, 음악 안에서

더 수준 높은 음악을 위해 조직과 구조를 다져가는 힘찬 발걸음

 

2015년 7월, 서울시향 대표이사로 최흥식 전 하나금융지주 사장이 취임했다.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금융 전문가인 그는 다양한 경영 활동을 하면서도 예술과 경영, 체육과 경영을 접목시키는 등 다양한 관점을 갖고 문화 활동에 대한 후원자로서 음악계를 지켜본 인사다. 2014년 말, 불거진 박현정 전 대표이사 사태와 정명훈 예술감독을 둘러싼 논란 등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항에서 취임한 최흥식 대표이사는 “서울시향의 미션과 핵심 가치를 공고히 세우는 동시에, 조직 안정화를 통해 다가올 10년을 위한 초석을 닦을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비롯해 금융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그간의 경험이 지금의 자리를 수행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예술을 다룬다는 것만 빼면 거의 비슷하다. 기업으로 치면 지휘자와 단원들이 만들어낸 좋은 물건을 잘 관리하고 세일즈하고 홍보·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경영에 있어 크게 다른 부분은 없다. 최근 경영 분야에서 비영리 재단이 공공조직과 사회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운영될 수 있느냐를 두고 관심이 높은 분위기인데, 여기에 서울시향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공익적으로 팔고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것. 그동안 경험해온 경영·인사·관리·조직·재무 등을 하나도 빠짐없이 활용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예술에 대한 경험과 이해, 감동이 있는 경영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리더십은 다를 텐데.

음악에 대한 실제적 경험이 있는 사람이 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면 가장 좋다.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겸비한 사람들이 있지만 흔치 않다. 비영리 단체 운영이라면 음악을 좋아하는 경영인이 낫다고 본다. 그간 영리 단체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아 일하면서 언젠가 비영리 단체에 내가 가진 지식을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사이 오페라단이나 여자프로농구단 후원도 해봤다. 음악 감상을 좋아하고, 음악가에 대한 동경도 있어 그들을 잘 이끄는 것이 하나의 행복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좋은 기회가 왔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걸로 안다.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는지.

정부 장학생으로 프랑스 릴에서 유학한 시절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유학생들에게 한 달에 한두 번 좋은 공연을 엄선한 브로슈어가 왔다. 자신이 보고 싶은 공연을 체크하면 티켓 2장을 무료로 보내줬는데 그 덕에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공연부터 성당에서 갖는 성악, 실내악 연주를 들은 것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주말에 아내와 슈퍼마켓을 가면 LP와 CD를 사곤 했다. 판이 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는데, 그때 처음 구입한 것이 정경화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녹음이었다. 주말에 쉴 겸 텔레비전을 봐도 재미없는 프로그램밖에 없어 나뿐 아니라 모두들 공연을 보러 가더라. 그런 생활을 하면서 돈이 좀 들더라도 공연예술을 즐기는 것이 소중하다는 걸 자연스레 체감했다. 금융을 공부하는 상당수 사람이 택하는 영미권이 아닌, 프랑스로 유학 가서 예술문화에 흠뻑 빠진 게 이제와 보면 감사할 따름이다.

정명훈/서울시향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하나금융지주가 2006년부터 서울시향을 후원했다. 내가 사장을 맡았던 2012년, 서울시향 후원을 위해 정명훈 감독을 처음 만났다.

정명훈 감독과 ‘프랑스 코드’ 때문에 서로 잘 통했을 것 같은데.

선임될 때 내부적으로 그런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때에 따라 프랑스어 대화가 가능하니, 커뮤니케이션 면에서도 수월하다 봐도 좋다. 정 감독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문화적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잘 헤아리는 편이다.

재단법인 10년을 맞이한 서울시향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서울시향은 한국에서 최고 수준을 갖춘 교향악단이고, 여기에 큰 역할을 한 정 감독의 기여가 대단하다. 서울시향의 10년 전과 지금의 음악은 천지 차다. 좋은 감독, 좋은 악단이 만드는 음악이 가장 큰 장점이다. 여기엔 서울시의 재정적 서포트가 상당했다. 취임 직후 재무제표를 살펴봤는데, 130명 인원에 대한 예산이 180억 원이었다. 얼추 셈을 해도 예산 규모가 작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중 110억 원가량을 시에서 매년 지원해왔다는 걸 알고는 더 놀랐다. 10년간 약 1000억 원가량을 지원한 것은 대단한 투자인 거다. 서울시향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앞만 보고 10년을 달렸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정비하거나 내부 체제를 제대로 갖출 경황이 없었다. 어느 단체든 10년이 지나면 정비도 하고, 데이터베이스도 잘 구축해 다음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해 말, 올해 초에 생긴 사태들은 그간 성장 과정에서 내재됐던 문제들이 표출된 성장통이라고 본다. 그리고 지금은 다음으로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이러한 예술성을 갖춘 조직이 공연 기획, 재원 조성, 홍보 마케팅 등의 백업 시스템을 잘 만들면, 아시아권 정상에 이어 세계 정상권에 진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꼭 중요한 것이 전용 콘서트홀이다.

서울시가 2020년까지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 부지에 예산 1900억원을 들여 지상 5층, 20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재 공감의 온도 차가 각기 다른 상황이다.

콘서트홀은 시에서 필요성을 인식하고 시의원들이 공감해 예산을 세워 진행되는 안건이다. 어디에 세울 것인지를 두고도 의견이 다양했는데, 여러 곳을 검토한 결과 지금의 자리가 타당하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특히 사대문 안에서 땅을 파면 어디든 문화재가 발굴되게 마련인데, 세종로공원 부지는 이미 주차장으로 사용하면서 지하 7층까지 파놓은 상태라 적합하다는 의견이다. 서울시가 하드웨어를 주도하고,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건 우리의 몫이다.

전용 콘서트홀이 건립되면, 서울시향의 의무도 상당해질 텐데.

현재 서울시향은 연간 40회 정도 관현악 공연을 한다. 그 외 실내악이나 공익성 연주까지 합치면 약 120회다. 해외 유수의 주요 교향악단들은 관현악 공연만 연평균 140회를 소화한다. 전용 콘서트홀이 생기면 서울시향도 최소 100회 정도의 관현악 공연을 올릴 수 있다. 일주일에 2회씩 공연하는 셈인데, 그렇게 되면 단원들은 일주일 내내 연습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음악의 질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횟수에 따른 공연 수입과 스폰서십이 늘어나면 단원들 월급도 높여줄 수 있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충분한 기회를 주면 우리도 해외 교향악단처럼 할 수 있다. 현재 상당한 실력에 전폭적 지원을 받아도 그걸 환원할 기회가 없어 아쉽다. 그렇다고 공익성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좋은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고품질을 담보하는 전용 콘서트홀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제대로 된 음악을 전달하고,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 최흥식
1952년생.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프랑스 릴 제1대학교 경영학 박사, 프랑스 도핀 대학교 경영학 국가 박사, 한국금융연구원장,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사, 하나금융지주 사장, 하나금융지주 고문 외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모두가 함께 갈 것

정명훈 예술감독과의 계약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정명훈 지휘자는 서울시향과 계속 같이 간다. ‘계약’보다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명훈 감독은 서울시향에 대한 애정이 있고, 교향악단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지휘료를 서울시향 발전과 인도적 사업을 위해 내놓겠다고 말한 것이다. 계약 여부와 상관없이 서울시향 발전과 본인이 생각하는 발전을 위해 보수도 내려놓고 재능도 기부하겠다는 사람에게 ‘계약’이라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서울시향은 일정 수준 이상의 레벨을 확보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단원들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하고 지휘자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달라져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음악적인 부분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화자찬일지 모르지만 정명훈 감독과 제가 힘을 모으면 음악적으로든 경영적으로든 많은 걸 이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5년, 10년 후를 위한 초석을 닦으러 이곳에 왔다.

하위 5% 단원 해촉 오디션 제도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

완전히 개편한다. 5%는 탈락제는 완전히 없어진다. 다만 서울시향 단원으로서 긴장감을 가지면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5% 탈락은 발전을 위한 과정으로 상대평가가 필요했지만, 일정한 수준의 성장을 일군 지금에 와선 비인간적 처사가 된다. 선진 오케스트라 시스템을 참고해 긴장을 유지하되, 절대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단원들의 동의 아래 바꾸려고 준비 중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경영, 그리고 예술과 경영의 가장 이상적인 조화는 어떠한가?

예술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조직과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예술 경영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예술이 잘되려면 돈이 필요하고 좋은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건물도 짓고, 사람도 지원해야 한다. 그게 경영이다. 다른 분야에선 재원 조성, 마케팅과 홍보에 대한 인력이 조직의 절반을 넘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각개전투로 뛰고 있다. 여기에 힘을 기울이면 예술도 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예술에 절대적 후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 부흥에는 메디치 가문이 있었고, 유럽에서 음악이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귀족들의 후원이 절대적이었다.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기 위해선 재원이 가장 중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의 발전은 바람직한 인성을 갖추는 데 중요하고, 이것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야말로 사회공헌이다. 여기에 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 예술의 발전이 사회의 발전과 기업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2016년 서울시향의 미션은 무엇인가?

수준 높은 음악을 통해 서울 시민, 나아가 우리나라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은 서울시향의 사명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서울시향의 안정화다. 현재 내부적으로 단결되는 분위기인데 오히려 외부에서 우리를 흔든다. 흔들어도 안 흔들리는 조직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더불어 내년도 프로그램이 아주 잘 만들어졌다. 이것을 계속 가져가기 위해 안정화되어야 하고,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진 필주(Purpl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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