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이끌 젊은 예술가, 양인모·이수빈·김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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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월 1일 12:00 오전


▲ 1995년생인 양인모는 12세에 금호 영재 콘서트로 데뷔했다. 2011년 서울예고 재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음악 영재로 입학해 김남윤을 사사했고, 2013년 도미하여 현재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미리암 프리드를 사사하고 있다. 2015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프레미오 파가니니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청중상과 현대작품연주상을 수상했다. 현재 지오반니 토노니(1690)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음악만큼 순간만 존재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또 있을까요? 음악의 모든 순간을 즐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바이올린은 여섯 살 때 처음 접했어요. 대학생 누나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그 누나를 무척 좋아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연습했죠. 그러다 보니 바이올린의 매력에 빠졌고, 어느덧 음악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석 달 동안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제 소리에 익숙해져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웠죠.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듣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어요. 물론 이러한 노력은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음악 외에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 철학적 사고방식 등 여러 가지 면에 흥미를 느낍니다.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최대한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주말마다 축구를 즐기고, 가끔 혼자서 박물관에 갑니다.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해요.

요즘 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춤’입니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춤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지만, 몸의 움직임과 소리의 표현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 궁금해요. 지휘자나 무용수의 움직임이 음악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는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여러 협연과 독주회를 통해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에요. 2월에는 카를로 펠리체 오케스트라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순회 공연합니다. 3월에는 덴마크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5월에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죠. 4월에 있을 뉴욕 카네기홀 리사이틀 무대도 기대하고 있어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 2000년생인 이수빈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입학해 현재까지 김남윤을 사사하고 있다. 2012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에서 주니어 부문 2위, 2013년 모스크바 오이스트라흐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 및 EMCY 특별상을 수상했다.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에서 최연소 우승했으며, 영국 베어스 국제 바이올린 협회에서 후원하는 1706년 산 지오반니 그란치노를 사용하고 있다.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16세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입니다. 요즘은 영화 ‘인턴’을 보고, 앤 해서웨이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어요. 저는 4남매 중 막내인데,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우던 오빠, 언니들 덕에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손에 처음 잡은 건 여섯 살 때였죠. 일곱 살이 되어 김남윤 선생님을 처음 만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요.

저에게 음악은 거룩하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존재입니다.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거든요. 평소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이 매번 바뀌지만, 요즘은 작곡가 비에니아프스키가 정말 좋아요. 비에니아프스키의 작품은 한 곡에 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이 모두 담겨 있죠. 중간 중간 재밌는 포인트가 많아 연주할 때 몰입도가 강하고요. 연습하는 과정이 때론 지치기도 하지만,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칠 때마다 한 단계씩 성장하는 기분이 듭니다. 2012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파이널 무대가 아직도 선명해요.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졌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함을 느꼈어요. 처음으로 무대에서 가슴이 벅차오르던 순간이었죠. 관객들의 얼굴이 기억날 정도로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합니다.

2014년에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에 최연소 우승을 하여 올해는 케네디 센터,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리사이틀을 하고, 뉴저지 선데이 뮤지컬 시리즈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미국 데뷔를 앞두고 있습니다. 유명한 연주자가 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꾸준히 기억되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오랜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에게 ‘우리 곁에 이수빈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어 늘 행복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연주자로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닐까요.


▲ 1997년생인 김유빈은 예원학교 졸업 후 2011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김창국을 사사했고, 2013년 도불하여 리옹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필리프 베르놀을 사사했다. 2014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1위없는 공동 2위와 특별상, 청중상을 수상했고 2015년 프라하 스프링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현재 리옹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조제 다니엘 카스텔롱을 사사하고 있다

플루티스트 김유빈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플루티스트 김유빈입니다. 연주할 때 중요한 건 자연스러움이라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주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낍니다. 장난스럽고 유쾌한 소나타 선율을 연주할 때면 어딘가 저와 닮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현재 충남교향악단의 더블베이시스트인 아버지(김종관)의 권유로 어머니는 플루트를 취미로 시작하셨고, 덕분에 저도 자연스레 플루트 소리를 접했습니다. 어머니의 악기를 마치 장난감처럼 만지고 불다 보니 이렇게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네요. 대전에서 서울 예원학교로, 또 프랑스 리옹 국립 고등음악원으로 진학하며 점점 멀어지는(!) 외아들을 부모님은 항상 지지해주셨어요. 언제나 제 선택을 존중해주시는 부모님 덕에 지금껏 잘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음악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아직 없어요. 열일곱 살에 홀로 외국에 나와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조금 외롭긴 했지만, 무던한 성격으로 금세 적응했죠. 무대에 오를 때도 떨지 않는 편이라 스트레스가 크지 않고요. 콩쿠르를 앞두고도 체력적으로 지치긴 했지만 연습을 끝내고 나면 만족감에 기분이 좋아졌죠. 예민하거나 깐깐한 면은 없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임하는 편입니다.

2015년 프라하 스프링 콩쿠르 우승의 부상으로 2016년 1월에는 리사이틀을, 5월에는 프라하 스프링 뮤직 페스티벌에서 협연 무대를 갖습니다. 실내악이 좋아 학교 친구들과 부지런히 연주하고 있고요.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어 장대한 작품을 연주하고픈 꿈도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청중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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