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8일~2016년 3월 6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성공적인 재공연의 조건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빼놓을 수 없는 뮤지컬이 있다. ‘레미제라블’이다. 1980년대 유럽에서 초연돼 30여 년 동안 흥행 뮤지컬의 명성을 이어왔다. 시대를 초월하는 끝 모를 생명력이 새삼 경이롭기까지 하다.
공연장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갔고 턴테이블 무대가 영상으로 대체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배우다. 특히 영·미권 공연가에서 이 작품은 쉬지 않고 막을 올리며 여러 세대에 걸쳐 인기를 누려왔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초연 무대에 섰던 전설의 배우들은 이제 다시 만나기 어렵다. 오리지널 캐스트였던 컴 윌킨슨은 2012년 제작된 뮤지컬 영화 속 디뉴의 인자한 주교 역으로, 또는 30주년 기념 콘서트의 피날레 장면에서나 만날 수 있는 노익장이 됐고, 마리우스 역의 미소년 마이클 볼도 중년 아저씨가 된 지 오래다. 팡틴 역을 맡았던 프랜시스 루펄은 뮤지컬 영화 속에서 창부의 한 명으로 등장한다. 객석의 환호는 여전하지만, 위대한 배우들은 사라지고 뒤바뀌었다.
그런 의미에서 평가해보면 2015/2016 시즌에 다시 찾아온 우리말 버전의 ‘레미제라블’을 즐기는 방법도 비슷한 변화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한국 초연부터 무대를 꿋꿋이 지켜온 정성화나 박지연, 조정은 등의 무대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번 앙코르 무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캐스트에 따른 변화다. 우선 자베르 역의 김준현과 김우형의 가세가 두드러진다. 초연에서 문종원이 보여준 카리스마가 남성적 강렬함에서 비롯되었다면 이번 앙코르 프로덕션에서는 한결 세련되고 능숙한 무대 운영이 돋보인다. 초연에서 자베르가 야생의 날것 같은 거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번 앙코르에서는 한층 노련하고 세련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임기홍의 테나르디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많은 창작 뮤지컬에서 보여준 그의 코믹함이 쌉싸래한 풍자와 뒤섞여 임춘길과는 또 다른 맛을 남긴다. 전나영의 팡틴은 영·미권에서 즐겨 보던 그 모습 그대로에 우리말을 얹은 듯해 군더더기가 없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양준모의 장발장이다. 일본 토호 프로덕션에서의 활약을 국내 버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쏠쏠한 재미다. 한국어 버전 ‘오페라의 유령’에서 눈물 흘리며 미소 짓는, 파격적인 엔딩 장면을 시도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그만의 매력을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여러 번 관극한 마니아 관객이라면 눈치 챘을 정성화와의 미세한 간극과 재미난 해석의 차이가 흥밋거리인 셈이다. 오리지널 캐스트였던 정성화가 따뜻한 인간적 매력에 집중했다면, 양준모는 절제되면서도 속 깊은 감동을 전하려 노력한다. 현장 예술인 무대라 만날 수 있는 라이벌 관계의 선의의 경쟁이다.
한결 부드러워진 노랫말도 주목할 만한 진화다. 문어체의 딱딱하던 문장들이 구어체의 익숙한 표현들로 대체됐다. 덕분에 무대를 보고 이해하는 재미가 훨씬 나아졌다. 이미 입에 익은 노랫말을 다시 고치는 과정이 쉽지 않았겠지만, 앙코르의 진화란 이런 세세한 배려와 노력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재공연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참고해야 할 좋은 선례다.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