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곡가 워맥과 오즈번이 쓴 ‘외국산 국악곡’우리는 이 곡을 어떻게 듣고 느껴야 할까
2016년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임재원)이 첫 연주회로 올리는 ‘무위자연’ 공연에는 서양 작곡가의 위촉초연곡에 눈길이 간다. 도널드 워맥의 가야금 협주곡 ‘흩어진 리듬’과 토머스 오즈번의 관현악곡 ‘하루’다.
파란 눈에 비친 국악
누군가 물을 수 있겠다. ‘서양 작곡가가 작곡한 국악관현악곡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한때, 국악이 ‘전통’과 ‘전승’만의 산물이라는 것에서 탈피하여 ‘창작’의 산물로 흐름을 바꾸던 때가 있었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국악 창작에는 몇 가지 역사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국악인들이 현대국악을 창작하게 되고, 정부에서도 전통문화의 진흥을 위한 정책 수립을 시작했으며, (···) 구미 선진 제국에서는 작곡가들이 동양음악으로부터 새로운 활력소를 찾아 우리의 전통음악에까지 접근해왔다.’(황병기, ‘깊은밤, 그 가야금 소리’)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인 작곡가는 루 해리슨(1917~2003)이었다. 미국 특유의 혼종적 문화에 익숙하던 해리슨은 십대 후반부터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같은 민속 악기에 관심을 가졌다. 훗날 한국에서는 국악을 공부하고 이를 기반으로 몇 개의 ‘한국적인’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중 대표작이 ‘새당악 무궁화’다. 국악기로 연주하는 이 곡에 대하여 황병기는 “국악 창작에 많은 자극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근대음악계가 욕망했던 현대성의 구체적 실현과, 새로운 소리와 음향을 추구하고자 했던 미국 현대음악계가 조우’한 현장이기도 했다(김희선, ‘문화교차의 음악’, 음악과문화 제22호, 2010).
서양 음악적 기법의 도입과 서양 작곡가의 개입은 당시에 낙후되었다고 생각하던 국악을 ‘현대화’하는 것이었고,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문화(동·서양)의 ‘만남’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 곡에는 국악계에서 볼 때 ‘타자’이자 ‘외부자’인 해리슨이 목격한 한국이 담겼으며, 해리슨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떠한 모습일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내부자(국악인)의 시선이 포개졌다. 즉, ‘파란 눈’으로 국악을 바라보는 자(해리슨)와 그러한 눈동자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국악인), 그 시선들이 복잡하게 겹친 것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비롯해 국악관현악단이라는 연주 시스템은 전통적인 음 소재와 음 재료, 그리고 서양식 오케스트레이션이 섞여 있다. 그래서 외국 작곡가들은 국악이라는 ‘소재’는 절반의 낯섦으로 느끼면서, 동시에 절반의 서양식 오케스트레이션에서는 친숙함을 느낀다. 그 반반의 가능성··· 그것이 해외 작곡가와의 협업에서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리고 눈동자의 색깔이 다르듯 그것에 비추는 국악 또한 다르게 그려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부정’하고 싶은 요소들이 그들에게는 ‘긍정’하고 싶은 특장(特長)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악관현악이 지니고 있는 불안정한 음정들이 그들의 눈에는 서양음악에서는 연출할 수 없는 ‘흔들림’과 ‘떨림’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두 작곡가가 지은 자연
이번 ‘무위자연’ 공연에서 발표하는 워맥의 ‘흩어진 리듬’은 2악장으로 구성된 가야금 협주곡이다. 1악장 ‘북 소리가 하늘 너머로 울려 퍼지네’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려 한 2000년 전 고대 의식에서 영감을 얻은 곡. 현재 행해지는 굿이 이러한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 워맥은 록과 국악이 뒤섞여 수많은 장단을 연상케 하는 리듬적 긴장감과 반복적인 구조를 설계했다. 2악장 ‘하늘 한복판으로 가는 소용돌이’는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 빨라지며 절정에 이르는 산조의 특성 중 자진모리나 휘모리 같은 빠른 장단을 차용하여 돌진하는 음으로 구성한 악장이다.
워맥은 2014년 부산마루국제음악제에서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의 연주로 관현악곡 ‘하늘 저편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를 초연으로 선보였다. 이번에 발표하는 ‘흩어진 리듬’의 1악장을 연상케 하는 제목이다. 하지만 ‘흩어진 리듬’은 가야금 협주곡 형식이라는 점에서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협주곡에는 개량된 22현·25현 가야금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워맥은 산조 가야금인 12현 가야금을 사용한다. 이번 협연에는 가야금 독주곡 ‘줄타기’ 등을 국내에서 자주 선보이며, 워맥의 음악 세계를 잘 이해하는 이지영(서울대 교수)이 함께한다. 국내외 작곡가들은 그녀의 감수성과 동시대 음악에 관한 해석력에 매료되어 곡을 헌정하기도 한다. 이번 곡도 이지영에게 헌정한 곡이다.
이러한 워맥의 곡들을 분석해보면, 한국 작곡가들이 계승하고자 하는 음악적 유산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음악적 유산이란 장단과 음계, 농현과 시김새 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들은 한국 작곡가들에게는 ‘소재’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한계’가 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재로부터 더 자유로운 워맥은 ‘국악적인 것’을 (재)생산하기보다는 ‘이것이 국악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소리에 대한 갈망과 한국의 작곡가들의 좌표축에는 없는 제3의 축으로 나가는 것이다.
‘무위자연’ 공연에서 ‘하루’를 발표하는 토머스 오즈번도 마찬가지다. 초연되는 관현악곡 ‘하루’는 4악장 구성으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1악장은 동쪽 지평선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2악장은 강렬한 폭풍우를, 3악장은 서쪽으로 지는 해와 황혼을, 그리고 4악장은 보름달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 곡은 마치 새벽의 바다부터 정오까지를 음향적 회화로 그린 드뷔시의 ‘바다’를 연상케 한다. 워맥과 함께 하와이대에 재직 중인 오즈번은 2007년과 2008년에 일본 레지던시 작곡가로 머무르며 일본 전통음악앙상블 AURA-J와 활동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25현 가야금 협주곡 ‘소나무’의 원곡은 고토 협주곡인데, 이를 작곡한 이가 미키 미노루이고,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곳이 AURA-J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서울대 국악작곡 프로그램 초빙교수이자 레지던시 작곡가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일본의 전통악기 사쿠하치와 고토를 이용하여 행하던 동아시아음악 실험은 한국으로 이어졌고, 현대음악앙상블, 국립국악원, 국립부산국악원 등이 그의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변하는 창작 환경에 대한 인식 필요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러한 해외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레퍼토리를 생산하고, 연주하는 데에 주력해온 국악관현악단이다. 1995년 창단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둘러싼 1990년대를 살펴보면 정치·경제·문화의 장벽이 사라지면서 아시아가 하나의 블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문화적 층위에서도 아시아적 공감이라 부를 만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환경에서 1992년 한·중 수교,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기도 했다.
작곡가이자 초대 단장 박범훈은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의 산파 역할을 했다. 민속악을 기초로 음악적 성장을 했고, 일본 무사시노음대와 대학원에서 일본음악과 서양음악의 협업을 목격하며 유학한 박범훈은 귀국 후, 1993년 오케스트라 아시아(Orchestra ASIA)를 결성했다. 이는 한국(중앙국악관현악단)·중국(중앙민족악단)·일본(일본음악집단)의 전통악기로 구성된, 한마디로 삼국의 전통음악 자원을 ‘아시아’라는 자장(磁場)에 한데 모은 악단이었다. 박범훈의 이러한 경험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단과 동시에 이 악단에 고스란히 수용되어 악단 정체성 확립에 기반이 되었다. 이후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중국·일본 음악은 물론이고 북한 음악까지 아우르는 범(汎)아시아적이고 통(通)아시아적 흐름을 창출해나갔다. 창단 후 제2회 정기연주회로 선보인 ‘한·중·일 개량악기를 위한 협주곡의 밤’을 비롯하여 북경중앙민족악단 초청공연(1999), 한·중·일 오케스트라아시아(2000) 연주회 등을 가졌다. 이러한 공연에서 일본의 미키 미노루와 나가사와 카츠토시, 중국의 유문금 등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고는 했는데, 이는 동양 삼국의 저변에 흐르는 민족과 문명의 동질성을 ‘음악’으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동양 각국에 흐르는 문화적 동질성을 모색하고 탐사하던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10년대에 들어 큰 변화를 맞이했다. 국악관현악 문화의 침체로부터의 탈출과 변화는 작곡가에게 달려 있다고 느낀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작곡가 시리즈를 진행했고, 아시아라는 지역을 넘어보는 실험을 강행한다. 그래서 벨기에의 보두앵 드 제르는 북청 사자놀음을, 미국의 마이클 팀슨은 시나위를, 대만의 치천 리는 대풍류를, 일본의 타카다 미도리는 산조를 재해석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4곡을 ‘리컴포즈’ 공연(2014)에서 선보였다.
외국 작곡가가 그린 ‘한국음악’은 묘했다. 작곡가 김승근은 네 개의 레퍼토리에 대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제3의 음악’”처럼 느꼈으며, “국악기의 신선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국립극장 ‘미르’ 2014년 7월)을 남겼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한·중·일이 함께한 음악-하기는 삼국 문화의 동질성과 중추선을 찾기 위한 것이었고, 2010년대의 해외 작곡가를 통한 실험과 시도는 극단적인 문화적 차이를 이용하여 한국음악에 내재된 새로운 가능성, 즉 ‘내부’의 ‘외부’를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워맥과 오즈번의 곡을 들여다보고, 들어야 한다. ‘무위자연’ 공연에는 김영동과 임준희의 곡도 오른다. 김영동의 ‘단군신화’는 단군신화를 담은 작품이며, 임준희의 ‘어부사시사’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2010년에 초연한 곡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20분 길이로 축약해 선보인다. 윤선도가 사시사철 자연을 벗 삼아 고기잡이를 떠나는 어부들을 묘사한 ‘어부사시사’를 토대로 작곡한 칸타타 형식의 곡이다. 총 4곡을 선보이는 이번 무대의 지휘봉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거문고 연주자를 역임하고, 폴란드에서 지휘를 공부한 이혜경이 잡는다.
오늘날 국악을 둘러싼 환경은 다양한 기획력과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킹으로 인하여 이처럼 바뀌고 있다. 새로운 곡이 태어날 때, 그 곡을 세상에 내놓는 작곡가나, 그 곡과 마주하는 관객 모두 이러한 변화를 인문적으로 인식하며 그 만남의 의미를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