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테오 게오르규

천재 소년의 매력적인 성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4월 1일 12:00 오전

열두 살 신동 피아니스트가 스물넷 진중한 청년으로 첫 내한하다


2006년, 한 천재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비투스’가 개봉했다. 영화는 어린 나이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공부하고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를 연주할 정도로 천부적 재능을 지닌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다. 천재 소년 비투스를 연기한 이가 4월 7일 내한하는 피아니스트 테오 게오르규다. 당시 12세의 나이로 산마리노 콩쿠르·바이마르 리스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라벨 ‘거울’ 등 영화 속 작품을 직접 연주해 화제를 모았고, 이듬해 오스트리아 운디네 어워즈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그는 바투 묶은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훈훈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틈만 나면 피트니스와 조깅을 하고, 축구 할 시간이 부족해 아쉬워한다는 게오르규는 뜨거운 혈기를 지닌 20대 청년 그 자체다. 그러나 피아노 앞에선 달랐다. 악보의 지시를 꼼꼼히 지키고, 몰아가기보다 충분한 여유를 두어 연주하는 스타일에선 차가운 이성이 느껴졌다.

이번 독주회는 테오 게오르규의 첫 내한 무대다. 2009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의 데뷔 음반 발매 후 2010년 본 베토벤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반지(Beethoven ring)를 수여받았고, 지난해 리스트와 슈만의 작품을 담은 두 번째 독주 음반(Sony Classical)을 발매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한국에서는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아직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는 어떤 연주자일까? 궁금증을 안고 이메일 인터뷰를 나눴다.

영화 ‘비투스’에서 신동 피아니스트를 연기했다. 영화 속 인물과 어린 시절의 자신을 비교해본다면?

‘신동’이었다는 것 외에는 우리 둘 사이의 별다른 공통분모가 없다. 다른 점이라면, 음악이 나에겐 굉장히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기대에 얽매인 비투스가 자신의 비범함을 숨기고 싶어 했던 것에 비해, 당시 퍼셀 음악원에 다녔던 나는 친구들과 음악을 공유하며 훨씬 자유롭게 생활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후 오랜 기간 영국에서 공부했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보낸 시간들은 어떠했나?

스위스에서 인생의 첫 9년을 보내며 기본적인 음악의 테크닉을 다졌다. 이후 런던 퍼셀 음악원에서 윌리엄 퐁과 9년간 공부했다. 미국을 거쳐, 해미시 밀른을 사사하기 위해 다시 런던 왕립음악원으로 돌아왔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본능에 의지해 연주했고, 어떤 작품이든 가능하면 심오하면서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데 집착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밀른은 각기 다른 음악의 언어를 알려줬고 음악 안에서 내 본연의 목소리를 찾도록 도와줬다.

당신의 연주는 굉장히 명확하고 꼼꼼한 인상이다. 비결이 무엇인가?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과 ‘흐름을 컨트롤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음악에 몰두하는 동안 스스로 전체 흐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 ‘명확한 컨트롤’은 음악의 큰 틀을 살려주고 표현의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주제를 뛰어넘은, 자유로운 청년

이번 공연에서 하이든 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 G장조 Hob.XVI:40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58,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Op.33 전곡과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를 선보인다. 특별한 주제를 염두에 두고 구성했나?

요즘 리사이틀 트렌드는 프로그램을 ‘큐레이션’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관점은 조금 다르다. 이야기는 이미 작품 속에 담겨 있기에 그 외에 부차적인 ‘스토리 라인’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논리적 흐름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것은 연주자 자신의 음색이나 테크닉, 해석을 녹여냄으로써 쉽게 얻어진다. 다시 말해 주제는 없다. 대신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단정한 하이든으로 시작해 드라마틱한 슈베르트를 거쳐 광활한 러시아가 느껴지는 두 작품으로 마무리되는 가운데 자연스레 하나의 큰 서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Op.33 전곡 연주가 눈에 띈다.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은 Op.33과 Op.39로 나뉜다. 청중에게 좀 더 흥미롭게 다가가는 작품은 후자다. 반면 전자는 전적으로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Op.33에 속한 9개의 곡을 알아가기 위해 지난 2년간 연습에 매진하면서 라흐마니노프가 이 짧은 곡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어 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958은 C단조 조성, 도입부의 화성 진행, 주제 모티브의 변화 등이 베토벤의 ‘32개 변주곡’과 굉장히 많은 부분이 닮았다. 베토벤 ‘32개의 변주곡’ 역시 당신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두 작품의 연관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58은 도입부의 반항적 모티브로 운명에 맞서지만, 결국 비극으로부터 정신없이 도망치며 끝난다. 이 작품이 베토벤 ‘32개의 변주곡’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베토벤이 굉장히 영민하다고 생각한다. 10분 안에 32개의 변주곡을 이처럼 명료하게 녹여내다니! 슈베르트는 피아노 소나타 D958을 죽음에 가까울 무렵 작곡했다. 그래서인지 베토벤의 똑 부러지는 변주곡보다 훨씬 깊은 내면을 지녔다는 느낌이다. 그는 베토벤의 작품을 극도로 존경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슈베르트는 일생 동안 마땅히 누렸어야 할 인정을 받지 못했고, 지난 세기까지도 베토벤과 비교를 당하곤 했다. 그러나 결국 슈베르트의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 것은 많은 이가 비평해온 ‘모호한 화성 진행’이다.

당신이 ‘이슬라메이’를 연주한 영상을 봤다. 조금 느리다고 생각될 정도로 상당한 여유를 가지고 연주하던데, 이때 페달은 어떻게 조절하나?

‘이슬라메이’의 본질은 ‘명료함’이고, 그 중심에 ‘페달’이 있다. 오로지 음악적 의미를 더하기 위해 페달을 사용할 때, 청중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완벽한 화성을 느끼게 된다. 해석은 항상 변하게 마련이고, 지금 내가 추구하는 방법은 조금 ‘천천히’ 연주하는 것이다. 충분한 이완을 통해 곡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베레좁스키도 페달 사용을 극단적으로 자제한다.

베레좁스키의 ‘이슬라메이’는 내가 접한 해석 중 가장 뛰어나다. 숨이 멎는 듯한 그의 연주에서 얻은 다양한 영감을 내 스타일에 반영하는 중이다.

주로 고전부터 후기 낭만까지 레퍼토리를 선보여왔다. 현대음악 연주에는 관심이 없는지?

아직 현대음악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실황에서 몇몇 작품을 들을 때면 몸이 점점 반응하기도 한다. 더 많은 곡을 접할수록 색다른 요소가 나를 이끌 것이라 생각하기에 초조해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쌓여 언젠가 연주하게 될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클래식 음악 외에 관심 갖는 분야가 있다면?

내 삶은 예술로 가득 차 있고, 종종 어떠한 ‘매개’를 통해 감동받는 것을 좋아한다. 조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자코메티의 작품을 몇 시간씩 감상하면서 결국 음악뿐 아니라 미술을 접할 때도 열린 시각을 가지려 노력 중이다. 가장 탐닉하는 분야는 재즈다. 빌 에반스와 톰 조빔을 존경하며, 언젠가는 그들의 언어로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평범한 청년으로서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더 활동적으로 보이길 바란다! 인간적으로, 또 음악가로서 신체적인 건강은 매우 중요하기에 틈나는 대로 피트니스와 조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따뜻하고 햇빛이 비치는 날… 자연을 사랑한다. 게오르규의 답을 곱씹을수록, 그 신중함이 조금씩 밀려들어왔다. 그의 말처럼 공연 전체를 묶는 하나의 테마는 없지만 분명 곡마다 주제 이상의 의미가 들어차 있었고, 연주 스타일 하나하나에는 합당한 이유가 존재했다.

마지막 질문은 ‘음악가로서 최종 목표’였다.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했던 그가 이 물음에는 단 한 마디만을 남겼다. “숨을 거둘 때까지 내 열정을 이어가는 것.”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을 진중함 속에 품은 이 젊은 피아니스트가 진심으로 기다려진다.

사진 금호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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